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렴한(자동차계의 허풍스런 기준으로 본다면) 쿠페가 별로 없었다. 포드 퓨마와 토요타 셀리카는 사라졌다. 이따금 BMW가 2만 파운드(약 3천520만원) 남짓한 소형 쿠페를 내놓았지만 대다수 메이커들은 이 정도의 소형 스포츠카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다. 고성능 해치백이 더 안전한 투자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 분명히, 그리고 다행히 사정이 달라졌다. 폭스바겐 시로코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골프/이오스의 하체 위에 조심스레 실은 시로코는 생산시설이 남아돌던 포르투갈에서 나왔고, 2008년 등장과 동시에 동급 정상에 올랐다. 이 비교시승에는 2만4천705파운드(약 4천350만원)짜리 207마력 GT 2.0 TSI 모델이 나왔다. 푸조 RCZ는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대신 아우디 TT를 불러냈다. 대부분 모델이 3만 파운드(약 5천280만원) 대로, 아우디에게 성공과 이익을 동시에 안겨줬다. 하지만 이번 비교 시승에는 2만7천140파운드(약 4천770만원)인 211마력 2.0 TFSI 스포트를 골랐다. 물론 이보다 적은 돈(최저 2만4천7백 파운드:약 4천230만원)을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델은 최고출력이 160마력이라 이 자리에 끼어들기에는 힘이 부쳤다.
다음은 마쓰다 MX-5 로드스터 쿠페. 하드톱을 씌우면 편리하게 이 비교시승에 들어올 수 있다. 최고출력은 160마력에 불과하지만 MX-5는 성능 면에서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심지어 2만2천636파운드(약 3천980만원) 스포트 테크에도 제한슬립 디퍼렌셜이 기본장비로 달린다. 이들 모두가 한판 승부를 위해 <오토카> 본사에 모여들었다. 그곳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서리 테스트 트랙을 거쳐 뉴포리스트를 돌아왔다. 왜? 미니 쿠페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즘 미니 쿠페의 외모가 내게는 제법 익숙해졌다. 많이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약간 정이 들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미니 쿠페는 진정한 오리지널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미니 쿠퍼 S의 경우에도 의식적으로 스포츠카 행세를 하지 않았지만, 이 쿠페는 바로 스포츠카를 자부하고 있다. 다만 그 위에 생뚱한 루프를 달고, 뒷좌석을 걷어냈다. 과연 제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기로 하자.
인터넷을 통해 보더라도 골수 마니아들은 미니 쿠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BMW는 탈탈거리는 차로 돈을 벌려고 한다. 충격적이다. 일부 미니는 운전성능이 기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제 미니 쿠페가 그런 부류에 들어가는가를 밝힐 때가 왔다.
우리의 시승용 미니 쿠페는 최고출력 211마력에 이르는 존 쿠퍼 웍스(JCW). 옵션을 제외한 가격이 2만3천795파운드(약 4천190만원). 바탕이 되어준 해치백 모델보다는 1천465파운드(약 260만원) 더 비싸다.
미니의 새 루프는 보디강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뜻하지 않게 무게가 25kg 늘었지만). 그렇다면 서스펜션(JCW 해치백과 똑같다)은 역할을 더 잘해야 한다. 그래서 상당히 거칠지만, 놀랍게도 쿠페는 스프링이 단단했다. 더 높아진 보디 강성을 통해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신차 2대를 몰아봤는데, 차체(특히 BMW M3 GTS)가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내 미러의 흔들림과 스티어링의 킥백으로 헐렁한 차체를 구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진동과 간섭이 없을 때 차체 강성을 알아낼 수 있다. 강성이 뛰어나면 흔들리지 않고 도로를 잘 달린다. GTS와 쿠페 둘 다 그랬다.
그렇다고 반드시 승차감이 바위처럼 단단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미니는 그랬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아름답고 차분한 르노 클리오 컵은 갖가지 보디 조절력을 갖췄음에도 스프링과 댐퍼 탄성은 요철에서 최악의 충격을 걷어냈다. 하지만 존 쿠퍼 웍스는 그 부근에도 갈 수 없었다.
이들 4대 라이벌은 우툴두툴한 시가지를 빠져나왔다. 이 그룹의 최고를 겨냥해 TT와 시로코가 각축전을 벌였다. 둘 다 미니보다 스프링이 나긋했고, 요철을 훨씬 잘 격리했다(미니와 달리 어느 쪽도 런플랫 타이어를 신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시로코가 한결 더 세련됐기에 시가지 정속주행에 더 뛰어났다.
그러면 마쓰다는? 나이가 들어가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할 단계였다. 미니가 보디 강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에도 마쓰다는 그렇지 못했다. 루프가 천막보다 부실해서 어쩔 수 없었다. 루프를 올리든 내리든 약간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마쓰다는 승차감도 약간 불안했다.
마쓰다가 미니와 비교해 가장 뒤떨어지는 부분은 실내. MX-5 플라스틱의 품질은 결코 강점이 된 적이 없었고, 세월이 흘러도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너무 평평한 좌석은 너무 높았고, 스티어링 휠은 너무 낮아 거리를 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쓰다는 편안하게 앉기는 약간 어려운 차였다(기어박스 터널의 돌출부 때문에 클러치를 조작하는 발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다). 한편 정속주행에서 4대 라이벌 중 가장 시끄러웠다.
미니의 실내는 그보다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펑크적이고 뭉툭한 디자인은 미니 해치에 앉아본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친숙했다. 그러면서도 더 가파르고 낮은 윈드실드가 훨씬 아늑한 느낌을 줬다.
오직 아우디만이 실내 분위기에서 미니와 맞먹었다. 소재선택에서는 한결 앞섰고, 넓은 윈드실드와 나직한 스포츠카 감각이 뛰어났다. 미니는 여전히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시트는 너무 작고 얄팍했다. 반면 TT는 좀 더 편안하고 몸받침이 좋았을 뿐 아니라 운전위치가 빼어났다.
시로코는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 잡았다. 예상했던 대로 딱 들어맞는 운전위치를 갖췄다. 그와는 달리 대시보드는 별로 감동을 주지 않았고, 실내 분위기는 덜 아늑했다. 그 대신 라이벌들과는 달리 뒷좌석에 어른 2명을 앉힐 수 있다. 물론 마쓰다와 미니는 아예 뒷좌석이 없다. 한편 아우디는 거의 쓸모없는 2+2를 갖췄을 뿐.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시로코의 패키지는 기적이라 할만했다.
게다가 꼬부랑길에 들어가서도 아주 깔끔하게 달렸다. 하마터면 시로코를 스포츠카라 부를 뻔했다. 이 비교시승에서 그것은 장애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폭스바겐 스티어링은 아주 직선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대로 치고 나갔다. 아주 정확해서 코너에서 코너로 파고들기에 무척 즐거웠다. 4기통 2.0L 터보 엔진에서는 흡기음이 약간 들렸다. 각지게 예리하지 않았지만, 반응이 매끈하고 예측 가능했다. 비록 짜릿하지는 않아도 시로코는 경쾌하기 달리기에 만족스럽고도 정다웠다.
유감스럽게도 TT는 그렇지 않았다. 상당히 나긋한 승차감은 헐렁한 보디 컨트롤로 이어졌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볍고 약간 쿨렁한 스티어링을 합치면 이 비교시승에서 탁월하다고 하기에는 미흡했다. 물론 엔진과 변속기는 시로코만큼 좋았고, 폭스바겐보다 빨랐다(0→시속 100km 가속에 6.1초 vs 6.9초). 하지만 파워기능이 과도한 브레이크를 더하면 운전하기에 불만스러웠다.
미니의 경우에는 그런 불만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좋은 도로에서는. 노면이 비교적 매끈하다면 미니는 예리하고 민첩한 소형차였다. 반응이 좋고 정확한 스티어링(알칸타라로 덮어 감각이 뛰어난)은 림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이 뛰어났다. 변속은 시로코와 TT보다 상큼했고, 파워가 광적으로 폭발하는 스포트 버튼만 손대지 않으면 엔진반응은 상쾌했다. 0→시속 100km 가속은 6.1초. TT 및 시로코만큼 빨랐다. 다만 어느 모델보다 긴박한 느낌을 줬다. 한계에 이르면 언더스티어에 들어갔다. 그러나 상황을 제대로 추스르면 꽁무니가 코너링 라인을 잘 따라갔다.
하지만 크고 작은 요철에 부닥치면 일반적으로 그립이 떨어졌고, 흔들리는 보디가 코너링 때보다 더 불안했다. 다른 라이벌이 운전재미를 보여준 곳에서 미니는 좌절감을 안겼다. 평정을 유지했던 곳에서 미니는 튀어 올랐다. 아쉬운 대목이었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미니 쿠페는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점들에도 미니는 전체적으로 TT를 눌렀다. 이번 비교시승에서 때로는 다른 라이벌을 제치고 잠시 몰아붙이고 싶은 유일한 차였다.
마쓰다 MX-5는 이때까지 이 대열을 뒤따라왔다. 버튼 하나를 건드리면 루프를 떼어낼 수 있는 분명한 매력도 있었다. 아울러 이 그룹에서 두 가지 독특한 매력 포인트가 있는 차였다. 뒷바퀴굴림 섀시는 다른 어느 모델보다 조절·조종력이 뛰어났다.
미니 쿠페는 코너에 들어갈 때 브레이크와 스티어링을 조심해야만 뒷바퀴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와는 달리 마쓰다는 어느 코너나 기꺼이 힘차게 돌아갔다. 한계가 극단적이 아니어서 어지간한 도로에서도 한계에 도달할 수 있었고, 트랙에 나가야 할 경우 조절형 뒷바퀴굴림이 대단한 재미를 보여줬다. 뛰어난 스티어링도 마찬가지.
가속한계를 찾아내기는 그보다 더 쉬웠다. 비교적 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그러나 6.1초 만에 0→시속 100km에 도달할 때 라이벌 중 가장 힘찬 엔진 노트를 자랑했다). 의문의 여지없이 4대 라이벌 중 최고의 드라이버즈카였다. 만일 그게 차를 고르는 기준이라면 달리 더 볼 것이 없다. 특히 세컨드카, 펀카, 주말에 탈 차를 찾는다면….
하지만 앞으로 3년 동안 해마다 1만6천km를 달릴 모델을 찾는다고 하자. 그러면 마쓰다는 조금 힘이 빠진다. 그럴 경우 다른 차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여기서 운전재미, 안락성과 스타일을 뒤따를 수 없는 경지로 아우른 유일한 모델이 있다.
‘소형 쿠페가 돌아왔다’ 내가 3년 전에 썼던 기사의 한 대목이다. ‘그 이름은 폭스바겐 시로코’ 당시에 그랬듯 그 표현은 지금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