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필의 뿌리는 해학성이다.
내 문학의 스승이신 원형갑 선생님은 우리 수필의 뿌리를 ‘역옹패설’에서 찾았다. ‘稗패’는 벼논에 섞여 있는 ‘피’이다. 벼에 비해서 열매가 작다는 뜻도 있지만 ‘보잘 것 없는’, ‘쓸모가 없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끼적거리듯이 쓰는 보잘 것 없는 글을 말한다. 그러면서 패설의 특성이라면 ‘해학성’이다. 읽고 나서 웃을 수 있는 글이다. 라고 했다. 해학성의 예를 많이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박지원의 여러 글들이다.
수필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글에서 작품을 표현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에 어느 정도의 깊이가 있는지, 긍정적인 작가의 사유세계가 사회에 얼마나 전달되는 가도 문제가 된다. 우리가 고전수필의 영역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은 대부분이 현실생활을 다루는 실기 문학이다. 대체로 현실의 상황과 작가의 생각, 그리고 느낌을 기록한 것이다.
수필로 볼 수 있는 고대의 글 중에서 다시 분류를 한다면 우언(寓言)과 소화(笑話)가 현대 수필과 가깝다. 이 글들은 사회상을 풍자하고, 우스운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러나 소화 중에는 단순히 웃음만을 위한 글이 아니고 사물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우스운 이야기로 표현했다.
우리 수필이 본받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 특성이라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고전수필류의 수많은 글들을 분류하면서 잡기류를 제일 마지막에 다룬 것은 그만큼 가볍게 다룬다는 뜻일 것이다.나는 이 가벼움에서 우리 수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으려고 한다. 현대수필도 문학성에서 조금 가볍게 다루자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자면 원형갑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패설’의 패가 주는 가벼움에서 우리 수필의 맥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가볍다는 것은 짙은 해학성을 뜻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대구대학 인문대학장을 역임하신 오상태 박사께서 퇴임을 하시고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한문강좌를 개설했다. 교재로 채택한 것이 ‘고금소총 古今笑叢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오박사네 고금소총‘이라는 책을 한 권 주셨다. 그리고 우리 고전문학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이 골계미라는 강의 자료까지 주었다.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골계에는 풍자, 해학, 기지, 반어가 있다. 고금소총이라는 책은 일종의 수필집이다. 설명에 의하면 근세에 여러 한국인이 자신들의 삶과 예지를 담은 글을 엮은 책이다. 글에는 역사적, 도덕적, 진실을 굴절 없이 전해준다. 고금소총을 한낱 음담패설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책은 국민 교양서라고 했다.
고금소총을 다시 말하자면 중국에서 들어온 외국 문학이 아니고 우리의 선조들이 쓴 순수한 우리 문학으로서 삶의 예지를 담고 있는 수필류에 해당하는 글이다. 책의 특징이라면 골계미라고 하는 진한 해학성이라고 했다.
우리 문학의 골계미를 장덕순 교수는 대상과 비판적 거리를 취하면서 결함, 악폐. 빌 등을 지적하여 공격한다.대상을 넓게 살펴보고 동정적으로 감싸주는 해학은 조선 후기 문학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미학이다. 이 말은 조선 후기 수필문학의 공통적 특질이 골계미라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토끼전, 박지원의 양반전, 호질 등을 들었다. 조선 후기 수필의 공통적 특성이라는 해학을 현대 수필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가 수필의 뿌리를 한문이나 서양 문학에서 찾지 않고 우리 문학에서 찾는다면 해학성은 필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나름대로 수용한다. 우리 수필을 읽고 반드시 웃으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고금소총의 여러 작가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수필작가인 박지원은 조선시대의 유학자이다. 유학자라면 태도가 엄격하고 딱딱한 도덕군자로만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거지는 실제로 엄숙하고 경건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달랐다. 마광수 교수가 우리 수필을 경건주의,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현대 문인들은 행동은 그렇게 엄숙하지 않다. 현대수필은 내용이 글쓰는 이의 의식과 괴리되어 있다. 허위 의식으로 글을 꾸민다는 뜻이다. 글에 해학미를 담으려면 글쓰기 기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기법이 있을까?
나의 일관된 주장은 ’재미‘이다. 독자들이 읽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쓰자. 내용에서도 재미를 줄 수 있고, 문장 표현에서도 재미를 주도록 표현하여야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문어체보다는 구어체가 재미를 준다고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구어체는 천박한 표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구어체를 사용하면서도 천박함에서 구해주는 것도 수팔작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