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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찰스 디킨스 [밤 산책] 한번은 밤 산책을 하다 교회 종이 네 시를 치고 3월의 비바람에 교회 첨탑이 흔들릴 때 그 웅장한 폐허 한 곳의 바깥 울타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희미한 등불을 들고 익히 아는 길을 더듬어 무대로 올라간 뒤 오케스트라석-그곳은 역병이 창궐하던 시절에 파놓은 무덤처럼 보였다- 너머 허공을 바라보았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샹들리에도 꺼진 무대는 안쪽이 거대하고 음침한 동굴이었고, 수의로 뒤덮인 층층의 객석 말고는 안개와 연무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지난번에 관람하러 왔을 때 나폴리 농부들이 자신들을 덮칠 듯 위협하며 불타는 산의 무자비한 나무덩굴 사이에서 춤을 추던 곳인데, 지금은 뱀 같은 화마가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라도 녀석의 갈라진 혀끝을 덮칠 기세로 누워 있는 튼튼한 구렁이 같은 엔진 호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시신 옆에 켜두는 희미한 촛불을 든 야경꾼 유령이 멀리 객석 위쪽에 출몰했다 사라졌다. 나는 무대 앞부분을 비추던 등불로 머리 위 돌돌 말아놓은 장막-더 이상 초록색이 아니라 흑단처럼 검었다-을 비췄다. 하지만 내 시력은 어두운 둥근 천장에서 길을 잃었고, 난파선의 두꺼운 돛과 밧줄인 듯 한 물건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잠수부가 되어 해저에 있는 기분이었다. 교회 종이 울리면 한밤중 노숙자는 처음에 길동무가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소리의 파동이 둥글게 퍼져나가면 무슨 소리인지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하고, 그 후에도 계속 퍼져나가(어떤 철학자의 암시처럼) 영원한 공간으로 퍼져나가면, 착각은 바로 집히며 고독감은 한층 깊어진다. 한번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 북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세인트마틴 교회의 웅장한 계단까지 걸어갔는데 마침 시계 종이 세 번 울렸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못 보고 터덜터덜 걷고 있었던 게 분명한데, 갑자기 발치에서 외로운 노숙자의 비명이 들리며 누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종소리를 듣고 내지른 듯한데, 나는 이전에 그 같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굴만 바라보았다. 상대방은 눈썹이 짙고 입가에 수염이 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으로, 한 손에 묶지 않은 넝마뭉치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덜덜 떨며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는 나를-박해자, 악마, 유령, 그 무엇으로 생각했든 간에- 빤히 쳐다보며 겁먹은 개처럼 나를 물듯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 추레한 청년에게 적선을 하기로 마음먹고 우선 진정시키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청년은 이빨을 갈며 으르렁거리다 몸이 돌아갔고, 그 바람에 내 손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 그 순간 청년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젊은이처럼 몸을 뒤틀어 옷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그의 누더기를 손에 쥔 채 혼자 서 있었다. (막14:51. 베드로) 장날 아침이면 코벤트 가든이 좋은 동행이 되어주었다. 채소 실은 마차와 그 밑에 잠들어 있는 농부와 아들들, 이 모두를 보고 시장 주변에서 몰려온 사나운 개들까지 하나같이 정다웠다. 하지만 그 근처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아는 런던의 밤 풍경 중에 최악이었다. 바구니 속에서 잠을 자지 않나, 동물 내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질을 하지 않나, 훔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닥치는 대로 손을 뻗고, 마차 밑이나 수레 밑이나 가리지 않고 기어 들어가며, 요리조리 경찰관의 눈을 피해 다니고, 비에 젖은 맨발로 시장의 포장도로에 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쏘다니는 아이들, 부자연스럽고도 슬픈 예기지만, 이쯤이면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꾼 땅의 수확물에 보이는 부패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항상 쫓긴다는 점만 빼고) 미개한 아이들에게 보이는 부패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코벤트 가든 새벽시장에 가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그 자체도 좋은 친구지만 따뜻하기에 더욱 좋았다. 게다가 아주 먹음직스러운 토스토도 먹을 수 있었다. 카페 안 작은 부엌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내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겉옷도 입지 않은 데다, 잠에 취한 나머지 토스토와 커피를 만들지 않는 휴식 시간마다 칸막이 뒤로 사라져서는 퀙퀙 대는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의 복잡한 샛길로 빠져들곤 했지만 말이다. 한번은 보우 거리 근처의 이런 카페(가장 일찍 문을 여는 곳 중 하나였다)에 들어가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이제 어디로 갈까 궁리하고 있는데 동이 터왔다. 그때 누리끼리한 밤색의 고급스러운 긴 외투에 신발차림의, 내가 기억하는 한 모자 외에는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남자가 들어와서는 모자에서 차갑게 식은 커다란 고기 푸딩을 꺼냈다. 모자에 꼭 낄 정도로 덩어리가 컸는지 모자에서 꺼낼 때 안감이 딸려 나왔다.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그 푸딩 때문에 유명인사가 된 모양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졸고 있던 주인 남자는 뜨거운 차 한 잔과 작은 빵 한 덩이, 커다란 나이프와 포크, 접시를 내왔다. 주인이 떠나고 혼자 남겨지자 사내는 푸딩을 빈 접시에 올려놓더니 나이프로 써는 대신에, 극도로 증오하는 적을 대하듯 나이프를 높이 쳐들었다 내리꽂았다. 그런 다음 나이프를 잡아 빼 소매에 쓱쓱 문지른 뒤 손가락으로 잘게 찢어 깨끗이 먹어 치웠다. 푸딩을 가지고 다니는 그 사내는 내가 노숙자 체험을 하며 만난 중 가장 특이한 사람으로 꼽힌다. 나는 그 카페에 겨우 두 번 갔지만, 그때 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내가 보기엔 분명, 방금 침대에서 나왔고 금방 도로 자러 갈 것 같은 행색이었다)푸딩을 꺼내 칼로 찌른 다음 칼날을 소매에 닦고 나서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았다. 사내는 곧 송장이 될 것 같은 몰골이었지만, 말처럼 길쭉한 얼굴은 지나칠 만큼 붉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 그는 주인 남자에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밤 내 얼굴이 빨갛소?” “그렇소.” 상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도 술을 좋아해서 얼굴색이 붉었지, 어머니가 관에 누워 있을 때 오래 쳐다봤더니 내 얼굴도 빨개졌소.” 어쨌든 이후로 푸딩은 그다지 먹음직해 보이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그 길을 지나지 않았다. 기차는 연기를 내뿜고 몸을 들썩이며 땀을 흘렸다. 마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그동안 달려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십 분쯤 흐르면 기차역 전등이 꺼지고, 나는 다시 홀로 남은 노숙자가 되었다. [길을 잃다] 나이로나 체격으로나 정말로 작은 아이였던 어느 날, 나는 런던 시내에서 길을 잃었다. 내게 성대한 대접을 해주려던 아무개 씨의(죄송하게도 당신에 대해서는 아주 어슴푸레하게만 기억이 날 뿐이다!)손에 이끌려 세인트 가일스 교회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 종교 건축물에 관한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거지들이 평일에는 장님이나 절름발이, 외팔이, 벙어리, 귀머거리, 아무튼 신체 장애인인 척하다 주일이 되면 거짓 행동을 그만 두고 말쑥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자기들의 수호성인을 모시는 교회로 가서 경건하게 예배를 올린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또한 그럴 때마다 그 지역을 주름잡는 뱀필드 무어 커루의 후계자가 교구위원 행세를 하며 붉은 커튼 뒤 높은 단상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봄이었는데, 계절의 영향인지 머릿속의 이런 철없는 생각은 무럭무럭 가지를 뻗어나갔다. 내가 부모님과 후견인을 어찌나 괴롭혔는지, 아무개 씨는 자진해서 나에게 세인트 가일스 교회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내 추측으로는) 그렇게 하면 활활 타오르는 망상의 불을 끄고 현실로 돌아올 거리고 믿었던 듯하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기억하기로 아무개 씨는 시선을 끄는 옷차림을 했던 것 같다. 희뿌연 색깔의 고급스러운 코듀로이 브리치스에 길쭉한 면포 각반을 차고, 위에는 연한 빛깔 단추가 달린 초록색 겉옷에 푸른색 네커치프를 둘렀으며, 셔츠 칼라가 독특했다. 내 생각에 그도 틀림없이 (나처럼) 켄트의 홉 농장에서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리라. 나는 그를 ‘풍속의 거울이자 예의범절의 규범“ (※햄릿 3막1장)이라고 생각했다. 골치 아픈 집안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는 햄릿 말이다. 우리는 잡담도 나누고, 첨탑에서 펄럭이는 깃발에 한껏 들떠 흡족하게 세인트 가일스 교회를 구경했다. 그런 다음 관문 너머 그 유명한 사자를 보러 스트랜드 가의 노섬벌랜드 하우스로 내려갔던 것 같다. 나는 놀라워하며 감탄하며 그 유명한 동물을 구경하다 그만 ‘아무개 씨’를 잃어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래를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 갑자기 많아지다 보니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고 조심스레 믿어본다. 나는 그래 봬도 창창한 소년이었다. 아마 여덟 살이나 아홉 살쯤 되었을 것이다. 성공만 하면 말 여섯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금의환향하여 나의 신부에게 청혼하리라. 거인들은 음흉하게도 여전히 안 보는 척하면서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쪽 구석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이제는 귀를 쫑긋 세운 개 한 마리만 보였다. 한쪽 눈 위에 허연 얼룩이 있고 발은 희색과 검은 색이 섞여 얼룩덜룩 했지만 전체적으로 검둥개였다. 개는 장난을 치고 싶은지 내 주위를 킁킁대며 뛰어 다니고 내게 콧잔등을 비벼대는가 하면, 옆으로 살짝살짝 몸을 피하고 고개를 저으며 달아나는 척도 하고,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내 기분을 돋워주려는 듯 자진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다. 나는 그 개를 보는 순간 휘팅턴이 떠올랐고, 뭔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참 잘하는데! “ ”아이고, 가엾어라! “ ”귀여운 녀석이네! “라고 격려해주었다. 녀석이 이제부터 영원히 나의 개가 되어 내가 성공하는데 발판이 되어 주리라 상상하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일로 크게 위안을 받은(길을 잃은 후로 이따금 조금씩 훌쩍거리며 울었더랬다)나는 저녁을 먹으려고 주머니에서 작은 독일 소시지를 꺼내 한입 베어 개에게 던져주었다. 개는 냉큼 달려와 소시지 조각을 물고 한쪽 옆으로 달려가더니 알약이나 되는 듯 꿀꺽 삼켰다. 내가 소시지를 우물우물 씹고 있는 동안 녀석은 더 주지 않으려나. 기대하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개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궁리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메리찬스(Merrychance)라는 이름이 알맞을 것 같았다. 기억해 보면 나는 아무리 봐도 기막히게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에 잔뜩 우쭐해 있었다. 그때 메리 찬스가 나를 향해 맹렬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럽지도 않은지 궁금했지만, 녀석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하게 짖어댔다. 그것도 모자라 침을 질질 흘리고 눈알을 반짝이며 코가 촉촉해지더니 고개를 옆으로 한껏 기울인 채 위협하듯 슬금슬금 옆걸음질을 치며 나를 향해 으르렁댔다. 그러다 급기야 내 작은 독일 소시지를 향해 달려들더니 손에서 낚아채어 멀리 달아나버렸다. 녀석은 결코 내 성공에 도움을 주러 돌아오지 않았고, 그때 이후로 마흔이 된 지금까지 나는 충성스러운 메리찬스를 다시 보지 못했다. 나는 몹시 외로웠다. 작은 독일 소시지가 아쉽기도 했지만(당시에는 그것이 후추를 잔뜩 넣은 말고기라는 것도 몰랐다), 소시지를 잃어버린 것보다 나를 처참하게 배신한 메리찬스 때문이었다. 나는 녀석이 말만 못했지 친구로서 뭐든지 도와줄 거라고, 아니 어쩌면 말도 통하게 될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조금 더 울고 나자 문득 사랑하는 그녀도 길을 잃어 나의 친구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수가 되는 것도, 군대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눈물을 닦고 빵을 먹었다. 그곳을 나오다 우유를 파는 부인을 만나 우유도 1페니어치 사먹었다. 든든히 먹었더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휘팅턴(※고양이로 인해 거부가 되고 세 번 런던 시장이 된 전설적 인물)이 되기 위한 행운을 찾아 나섰다. 요즘 런던 시내에 가면 내가 무척이나 교활한 인간이 된 것 같아 서글퍼진다. 미아가 되어 여기 저기 쏘다닌 그때 나는 영국 상인이자 사장님을 떠올리며 숭배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요즘 그곳을 걸어 다니면 신성한 국가 공무원의 제복을 비웃고 , 가장 흔한 농담거리로 전락해버린 기업들에 대해 분개한다. 하기는 내가 그때, 이 도시에 언제나 정치인을 만나고 돈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한 번도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실망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내가, 그때, 이 도시의 친구인 훌륭한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 많은 일을 하고, 이 사람을 국내의 이 자리에 앉히고 저 사람을 저 자리에 앉히며, 이 사람의 채권자와 담판을 짓고, 저 사람의 아들을 부양하고, 다른 사람이 돈을 받았는지 확인하며, 이 대형 합자회사의 확실성에 투자하고 저 생명보험회사의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내가 그때 어떻게, 그가 경마장을 예사로이 드나들고 주로 레드라이언 광장 근처에 살며 모세 율법을 따르는 아랍인 신사들의 친구이며, 어떤 금액만큼의 종이돈을 빼돌리지는 않더라도 유명한 고급 셰리주 술통과 화장도구 가방, 티치아노의 비너스 그림을 챙김으로써 기꺼이 수지를 맞추는 사람인줄 알았겠는가? 내가 그 순진한 나이에, 그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만찬 테이블에서 근엄한 대머리 사내들에게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정보를(행여라도 진실 된 것으로 밝혀질 리가 없는)알려주었다는 예기를 어디에서 들었겠는가? 천만에,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금융시장에서 돈이 귀해지고, 콘솔의 전망이 암울해지며, 금 수출이라든지 밀을 부셸로 거래하게 하여 모두의 앞길이 막힌 일이 그와 관련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있었던가? 결코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최소한 공직을 이용한 부정축재라든지 시세 조작, 장부 조작, 배당금 싹쓸이, 분식 회계 등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야 했을까? 아니, 나는 조금도 몰랐다. 내가 런던이라는 황금 송아지를 응시하며 쓰다듬는 허드슨 씨를 의심했어야 했을까?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 도시는 나에게 보석과 귀금속, 술통과 화물, 명예와 관용, 외국 과일과 향신료를 파는 거대한 상점이었다. 상인과 은행가는 하나같이 피츠-워렌과 뱃사람 신밧드가 합쳐진 사람들이었다. 스미스, 페인 앤 스미스 은행은 바바리와 선장이 있는 곳에 순풍이 불어오면 으레 혼혈 요리사까지 포함해 하인들을 모조리 호출하여 하찮은 물건까지 장에 내놓게 했다. 글린 앤 핼리팩스 은행은 다이아몬드 계곡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베어링 브라더스 은행의 형제는 전설의 대괴조 로크의 알을 발견했고, 대상들과 여행도 했다. 로스 차일드는 바그다드 시장에 나와 앉아 값비싼 물건을 팔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술탄의 하렘에 사는 베일 쓴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영국 기업들을 구경했고,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진 것들에 대한 믿음에 잔뜩 고무되었다. 시장 관사에서는 만찬 준비가 한창이었다. 창살 있는 부엌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흰 모자를 쓴 남자 요리사들이 보였다. 나는 혹시 시장님이나 사장님 부인, 혹은 시장의 딸인 어린 공주님이 관사 2층에서 내려다보며 내게 들어오라고 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요리사 한명이 나를 부르더니(창문이 열려 있었다) “이 녀석, 썩 꺼지지 못할까!” 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그의 시커먼 수염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즉시 복종했다. 나는 각종 장비를 파는 상점가로 갔다. 그곳에서 인도로 떠나는 소년에게 필요한 장비들을 적어놓은 항목을 훑어보다 ‘피스톨 한 쌍’을 발견하고, 문득 이런 운명의 주인공에게는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영국 상인들은 날 자기 집으로 데려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굴뚝 청소부였다. 그는 내가 자기 직업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유심히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얼른 그로부터 도망쳤다. 이런 괴롭힘을 당한 후, 나는 전체적인 계획도 점검할 겸 작은 교회 묘지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과 한 날 한시 그곳에 묻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문밖에서나 극장 안에 들어와서나, 사람들이 나를 주목한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는 보호자를 찾는 척하거나 저만큼 떨어져 있는 가상의 보호자에게 고갯짓도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다. 아무튼 입장권을 사기 위해 6펜스를 손에 꼭 쥐고 있는데 덜컹거리는 볼트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군중 속에서 몇몇 여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지푸라기처럼 사람들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접수원이 앉아 있는 제비집처럼 생긴 작은 구멍이 나의 6펜스를 잽싸게 삼켜버렸는데, 내 눈에는 마치 주둥이처럼 보였다. 거리로 나왔을 때는 늦은 시각이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고 비만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인파에서 벗어났을 때 유령과 남작은 내 기억에 추한 모습으로 남았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기분에 젖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내 작은 침대와 그립고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울적해졌다. 낮 동안에는 집 생각을 하거나 슬플 틈이 없었다. 어머니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새롭게 처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약한 경비병은 나를 가까운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갔다고 말했지만 실은 내가 그를 데리고 갔다. 그때 비를 맞고 걸어가던 우리 모습을 떠올려보면 누가 보더라도(유년이 노년을 이끌다)라는 삽화 같은 광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침을 심하게 해서 벽이 보일때마다 몸을 기대야 할 정도였다. 나는 난롯가에서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될 때까지 한 번도 잠을 깨지 않았다. 이상이 말 그대로 내가 길을 잃고 헤맨 사연이다. [채덤 조선소] 나는 배 구경을 좋아한다.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거나 짐을 가득 싣고 육자로 들어오는 거대한 배들, 그 배들 곁에 붙어 수평선을 당당히 오고 가는 활기찬 꼬마 증기 예인선들, 나무가 울창한 풍경 속에서 적갈색 돛을 뽑아 싣고 오는 듯 한 바지선들 무리, 바닥짐이 가벼워서 조수가 바뀔 때면 허우적거리는 낡고 묵직한 석탄선, 다른 배들이 끊임없이 이리저리 침로를 바꾸는 동안 거만하게 직선 항로만 고집하는 가뿐한 바크선과 스쿠너, 앙증맞은 선체에 거대한 희색 돛을 매단 요트, 하찮은 사람들이 하찮은 일을 하며 소란을 떨듯 즐거움을 주거나 심부름 따위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앞뒤로 깐닥거리며 자나가는 작은 돛단배. 나는 이런 배들을 바라보며 내키지 않는데도 생각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한참 바라봐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철썩철썩 쏴 하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나 발아래 물결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양묘기의 덜커덕 소리, 혹은 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증기선 외륜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만 약간 느낄 뿐이다. 허물어진 방죽 길과 허물어진 강둑, 제 모습을 자랑스레 수면에 비춰보는 듯 앞으로 기울어진 부서진 말뚝과 울타리 따위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 공상 속에 자연히 녹아들 것이다. 때에 따라 아무 용도로나 쓸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들로는 습지에서 방목되는 양들과 암소들, 내 머리 위를 선회하다 추락하듯 하강하는 갈매기들, 먹이 풍부한 추수 들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사정거리를 한참 벗어난) 까마귀들, 낚시하러 왔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쓸쓸히 날아가는 왜가리들이 있다. 감각 범위 안의 모든 것들이 흐르는 물의 도움으로 그 바깥의 모든 것들에게도 적용되어, 일종의 선율과 비슷하지만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몽롱한 한 덩어리가 된다. 나는 거기에서 만나는 정체불명의 소년에게 내 빈약한 지식을 보충하는 데 큰 신세를 지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모래 색깔 피부에 똘똘해 보이는 얼굴, 피부색과 비슷한 색의 머리카락이 부스스한 어린 소년은, 필요한 때마다 홀연히 사라지는 한쪽 검은 눈동자를 빼면(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기는 꺼려졌다)학구적인 탐구열이라든지 명상 습관과는 도무지 어울리는 구석이 없었다. 소년한테서 나는 어느 거리에서나 세관원의 배를 알아맞히는 방법이라든지, 강으로 올라오는 본국행 인도 무역선에 세관원이 승선했을 때 준수해야 할 온갖 관례와 의식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소년이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익히 알고 있는 질병에 관련해서 ‘무오한기’라는 용어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아이의 기분을 맞추지 않았으면 나의 보잘것없는 경력은 진작 끝났을 것이며, 바지선 돛에 그려진 하얀 말을 보아도 그것에 석회 바지선의 표지라는 사실은 절대 몰랐을 것이다. 소년은 특정 시설의 맥주는 규정 온도를 맞추지 못해서 시큼한 맛이 난다는 경고를 비롯해서, 맥주와 관련된 일급비밀도 알려주었다. 비록 나의 어린 현자는 에일 역시 똑같은 맛의 저하가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소년은 나에게 늪지의 버섯을 만져보라고 함으로써, 거기에 소금이 스며들어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나의 무지를 조심스럽게 일깨워주었다. 이렇듯 소년이 나한테 지식을 전달해주는 태도는 사려 깊고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내 옆에 모로 누워 있다가 작은 돌이나 모래 한 줌을 강으로 던진 다음, 신탁을 내리는 것처럼 의견을 말한다. 마치 수면에 점점 퍼져가는 동심원 한가운데서 말을 하듯이, 그는 반드시 그런 방식에 그런 방식에 맞춰 내 머릿속을 개선시킨다. 최근 강물이 우리를 덮칠 듯 뛰어오르며 생명력으로 충만하던 어느 바람 부는 날, 그 똑똑한 소년 -나는 ‘항구의 유령’이라는 별명으로만 알고 있는-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나는 강으로 오는 길에 황금빛 들판에서 다발로 묶여 옮겨지고 있던 옥수수를 보았다. 안장을 얹은 땅딸막한 잡 종 말을 타고 일꾼들을 감독하던 혈색 좋은 농부는 지난 주 260에이커의 밭에서 대가 길쭉한 옥수수를 얼마나 많이 수확했는지 자랑하며, 평생 그 일주일만큼 작업을 많이 한 적이 없다고 귀띔해주었다. 농촌의 들판에서 평화와 풍성함은 아름다운 색깔과 아름다운 형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수확물이 누런 짐의 형태로 바지선에 실려 항해를 하면, 그런 곡물이 절대 나지 않는 바다까지 아름답게 꾸며주어 거리감이 한결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조선소는 당당히 드러내지 않고 옥수수 밭과 맥주용 보리밭, 과수원이 있는 언덕 기슭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한가로워 보일 정도로 조용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조선소의 거대한 굴뚝은 마치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고, 선체를 재단하는 거대한 절단기는 기계로 찍어낸 기린처럼 균형이 맞지 않아 위협적 이기는커녕 온순해 보였다. 근처 건위프 위의 대포들은 장난감처럼 천진하게 생겼고, 대포 너머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빨간색 군복의 보초병은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한낱 장난감 인형이었다. 아마도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면 그때서야, 자그마치 납으로 만든 총알을 장전한 소총을 들고 있는 군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강을 건너 여왕의 계단에 도착하자, 나보다 먼저 도착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해초와 부유물 족가들이 보였다. 나는 대포가 있다는 거리 표지판과 조개처럼 생긴 건축 장식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선소로 갔는데, 특허 밭은 거대 금고 같은 커다란 접이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문이 게걸스럽게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조선소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첫눈에도 다음 전쟁터에 나갈 때까지 휴업상태라는 듯, 깨끗이 정리된 휴가 분위기가 났다. 그러나 실은 그 순간에도 밧줄을 만드는 대량의 마섬유가 창고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기는 조선소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잠잠했다면 하얀 바윗돌 위에 그 많은 건초가 널려 있지 않았으리라. 화물칸 맡에서 작업하는 백이십 명은 몸을 트는 게 쉽든 어렵든 멋들어지게 희 선체의 곡선을 따라 엉금엉금 기거나 살금살금 움직여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장차 노가 될 이런 나무토막은 멀리 떨어진 숲에서 용도에 맞게 대충 잘린 뒤 작별인사를 건네고 여기 영국으로 건너왔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까 본 나비들이 진짜 나비가 아니라 톱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계의 폭력으로 튀어 올라온 톱밥은 기계의 회전력에 의해 공중에서 빠르지만 일정치 않은 동작으로 파닥파닥 나플나플 오르락내리락 나비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다 기계의 소음과 동작이 멈추면 나비들은 죽어서 떨어졌다. 값나가는 목재 더미는 요란을 떨거나 잘났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으면서 저만치 떨어진 외딴 곳에 쌓여 있다. 되도록 자신을 덜 내세우며, 아무한테나 ‘이리 와서 나 좀 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 봬도 전 세계 나무들 중에서 간택되어 온 몸이다. 각종 선박과 보트의 수요에 맞춰 직접 살펴본 후에 수령이 오래되어 뽑히고, 굵다고 뽑히고, 곧아서 뽑히고 , 휘어졌다고 뽑혀왔다. 이상하게도 비틀어진 통나무가 조선공의 눈에 귀하게 여겨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나는 이런 목재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너른 공터에서 방금 운반해 온 목재를 검사하는 인부들을 발견한다. 아, 뒤편으로 강과 풍차가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이여! 게다가 현재 미합중국과 달리 전시 상태도 아니다. 밧줄 만드는 작업장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더없이 행복한 게으름 상태로 빠져들고, 그 안에서 내 인생의 밧줄도 풀어져서 아주 어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 나는 길고 가느다란 실로 가닥을 만들어 끊임없이 밧줄을 꼬는 악몽을 꾸었는데-지금의 성숙해진 이해력으로는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끔찍했다- 내 눈앞에서 그 가닥들이 서로 비비 꼬이면서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이어서 나는 돛과 돛대, 삭구, 거룻배 따위를 보관해둔 다락으로 간다. 아마도 이런저런 물건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허리춤에 찬 엄청나게 무거운 열쇠꾸러미 때문에 구부정한 관리자가 냉큼 달려와 푸른 수염처럼(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에 나오는 포악한 남편, 아내에게 열쇠 꾸러미를 주며, 비밀스러운 다락방 문을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열쇠를 골라서 문을 열어 주리라. 이윽고 기다란 고미다락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축전지에 명령을 내리면, 셔터와 문이 활짝 열리면서 돛을 단 무장 함대가 증기를 내뿜으며 진격하여, 오래된 메드웨이 강을-명랑한 스튜어트 왕은 네덜란드 군에게 이 강을 넘겨주었고, 그사이 별로 명랑하지 않았던 그의 해군 병사들은 거리에서 굶어 죽었다- 볼거리로 가득 채우며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가롭게 지금 난조인 메드웨이 강으로 간다. 그때서야 강이 지금, 준비가 안 된 아킬레스 호에게 바다로 나오라고 강력히 요청하기 위해 인부 백이십 명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건식 도크로 들어가려 하고 잇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조선소는 조용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 내가 네덜란드식 선착장에서도 가장 이상한 곳을 가린 조용한 숲을 지나 출입문으로 가고 있을 때, 저 끝에서 방금 사라진 조선공이 남긴 얼룩덜룩한 나뭇잎 그림자는 아마 러시아인 표트르의 그림자였을 것이다. 어쨌든 특허 밭은 거대한 금고 문이 마침내 닫히고 나는 다시 보트에 오른다. 그리고 물속에 노가 잠길 때 허풍쟁이 피스톨과 그의 부하, 그리고 ‘별로 내키지 않지만, 꼭 그래야 한다면야!’라고 말하는 조선소의 과묵한 괴물들이 생각난다―철썩! [와핑 노역소]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어느 날 런던의 이스트엔드가 나를 향해 유혹의 손짓을 한다. 나는 런던광역시 중에서도 동쪽 방향을 향해 코벤트 가든 을 출발해서는, 티푸 사힙과 찰스 램을 느긋하게 떠올리며 동인도회사를 지나고, 반바지 차림인 작은 해군생도 목각인형의 한쪽 다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그 앞을 지나서, 알드게이트 펌프를 지난 뒤(거무스름한 얼굴을 흉측하게 묘사한 포스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 있는) 사라센스 헤드를 거쳐, 그의 오래된 이웃이 운영했던 블랙 보어인지 블루 보어인지 아니면 블루 불인지 하는 건물의 텅 빈 마당을(그 집 주인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사라진 그의 마차들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어슬렁어슬렁 통과해 다시 철도의 시내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화이트채플 교회를 지나 -비상업적인 여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상업적인 거리로 들어섰다. 이어서 푹푹 빠지는 진흙탕 대로를 신나게 걸으면서 설탕 정제업자 소유의 대형 건물과 뒷골목 작은 공터에 있는 작은 돛대와 풍향계, 그 근처 수로와 선착장, 돌멩이가 깔린 전찻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인도회사의 화물열차, 돈에 쪼들리는 뱃사람들이 육분의나 사분의 깨나 갖다 바쳤을 전당포(그 물건들의 사용법만 알았더라면 내가 싼 값으로 샀을 텐 대) 따위를 즐겁게 구경하다, 어느 순간 오른쪽 샛길로 빠져 와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무튼 내가 와핑으로 가는 이유는 , 동부의 치안판사가 조간신문에서 여성전용 와핑 노역 소에서 수감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은 망신이자 수치라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해서 그 실상이 어떠한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 옆에는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누렇게 뜬 혈색, 더럽고 번질번질한 얼굴에 비썩 마른 몸매가 도무지 젊은이로 보이지 않는 사내가 내 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늙고 지저분한 템스 아버지의 막내아들이거나, 우리 사이에 있는 커다란 골무처럼 생긴 화강암 기둥에 걸린 현수막에 적힌 익사자 같았다. 나는 이 유령 같은 사내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다. 유령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데 목구멍에서 꼬르륵 물소리가 났다. 두툼한 윗입술에 체력을 잔뜩 비축해둔 듯한 분위기의 여감독관은 나이가 많고 몸은 건강한 극빈자 출신인데, 팔짱을 끼고 서서 눈알을 천천히 굴리며 넘어지는 환자를 붙잡아주거나 받쳐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선생님, 저 사람들은 계속 저래요. 마차를 끄는 말이 달에서 떨어질 때보다 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쓰러진답니다. 이쪽에서 쓰러지고 저쪽에서 쓰러지고, 어떤 때는 한 번에 네댓 명이 쓰러지죠. 말도 마세요, 쓰러져서 구르고 찢어지고, 맙소사! 그중에도 이 처녀는 정말 심각하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처녀의 고개를 돌려 얼굴을 들어올렸다. 이 처녀나 심하게 아픈 다른 여성들이나, 혼란스럽고 몽롱한 머리로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 햇빛에 날아다니는 먼지 사이로 건강한 사람들과 건강한 사물들을 얼핏 본 적이 있을까? 이 처녀도 여름이면 으레 떠오르는 어딘가에 피어 있을 꽃과 나무들, 심지어 산과 넓은 바다 같은 생각을 할까?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이 젊은 처녀는 그 나이 또래의 처녀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적이 있을까? 지금 여기 있지 않고 앞으로도 절대 올 리가 없는, 구애를 받고 다정한 포옹과 사랑을 받으며, 남편이 있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사는 모습,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덮치고 후려치고 잡아 뜯는지 절대 알지 못하는 그런 처녀다운 모습 말이다. 이 처녀도, 오, 하나님, 그녀를 도우소서! 언젠가 자포자기해서 달에서 떨어진 말처럼 쓰러질까? 그곳에는 아기들도 많고, 잘생긴 젊은 엄마들도 많았다. 물론 못생긴 엄마도 있고, 침울한 엄마도 있고, 냉담한 엄마도 있었다. 몇 군데 창문으로 활기차게 물결치는 강이 보였다. 그날은 눈부시게 맑았지만,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커다란 방에 가니 난롯가의 독특한 안락의자에 아흔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부인 둘이 큰 회사의 회장과 부회장처럼 앉아 있었다. [동쪽의 작은 별] 전날 밤 유명한 <죽음의 춤>을 끝까지 보았더니, 오늘따라 원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울한 낡은 목판화의 으스스한 단조로움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왔다. 바로 눈앞에 기괴한 해골이 달가닥거리며 지나갔고, 뼈들이 서로 세게 부딪쳤다. 하지만 해골은 결코 수고스럽게 변장을 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는 해골이 덜시미를 연주하지도 않고 머리에 꽃을 꽂지도 않으며 깃털 장식을 흔들지도 않았다.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긴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를 이끌고 종종걸음 치지도 않으며,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들지도 않고, 잔칫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지도 않고, 주사위를 던지지도 금덩이를 세지도 않았다. 그저 가는 길마다 닥치는 대로 살육을 하는, 뼈밖에 남지 않은 수척하고 굶주린 해골이었다. 런던 동쪽, 불결한 강과 인접한 레트클리프와 스테프니의 경계 지역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1월이면 영락없이 <죽음의 춤>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도로와 공터, 허름한 집들이 미로처럼 얽히고 설 켰다가 한 칸짜리 집들에서 끝이 났다. 불결함과 넝마와 굶주림이 난무하는 이 질퍽질퍽한 진흙탕 동네에는 일자리를 잃었거나 어쩌다 드물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어쨌든 숙련된 기술자들은 아니었다. 부두노동자, 강변노동자, 석탄 운반군, 바닥짐 싣는 인부, 장작을 패거나 물 긷는 허드레 일꾼까지 한낱 막일꾼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 세상에 생겨나서 비참한 자신들 종족을 번식 시켰다. [아마추어 순찰기] 아무리 한가한 산책이라도 반드시 행선지를 정하는 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나는 거리 산책을 하려고 보벤트 가든의 숙소를 나서기 전에 과제를 정한다. 그리고 도중에 행선지를 바꾼다든가 끝까지 가지 않고 뒤돌아오는 것은 누군가와 맺은 합의를 부당하게 여기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번은 라임하우스까지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이처럼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맹세한 굳은 신념에 따라, 나 자신과 약속한 대로 정오에 출발했다. 이런 공공의 피해에 대한 내 몫의 책임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그만 비참하고 가련한 어느 피조물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한 손으로 누더기처럼 해진 바지를 움켜지고 다른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움켜진 채 진흙 묻은 돌멩이에 맨발이 걸렸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 그 불쌍한 존재를 일으켜주려고 걸음을 멈췄다. 그때였다, 남녀 할 것 없이 오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내게 달려들더니 매달리고 구르고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르며 헐벗고 굶주린 몸을 떨었다. 내가 넘어뜨린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던 돈은 금세 누군가에게 낚아채었고, 그 돈은 다시 늑대의 손아귀로 들어간 뒤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갔다. 넝마조각과 여러 개의 팔다리들이 진흙탕 속에서 벌이는 노골적인 실랑이 속에 돈의 행방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를 일으켜 큰길 밖으로 끌어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곳은 템플 바에서 멀지 않은 몇몇 목재더미와 울타리 그리고 철거된 건물의 잔해 사이였다. 그때 뜻밖에도 그들 중에서 진짜 순경이 뛰어나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지긋지긋한 종족을 가로막으며 이쪽저쪽으로 휙휙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는 잡는 척할 뿐 아무도 잡지 않았다. 모두 놀라서 달아나자 그때서야 모자를 벗고 그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뜨거워진 이마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대단한 도덕적인 의무를 다한 듯 굴며 - 사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 손수건을 다시 모자 속에 넣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진흙탕에 어지러이 남은 발자국을 보았다. 문득 비바람을 견디며 몇 겁의 세월이 흐른 후 지질 학자에 의해 절벽 표면에서 발견된, 멸종된 생명체의 발자국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추측을 해보았다. 만약 이 진흙 밭이 지금 이대로 돌처럼 굳어져서 수만 년 동안 여기에 가려진 채 있게 된다면, 지구상에서 우리의 후세가 될 인간 종족은 전통의 도움 없이 이곳에서 찾아낸 흔적만 가지고 인간의 지력을 최대한 발휘해, 한 나라의 수도에서 아이들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바다와 육지에서 휘두르는 힘은 자랑스러워하면서 그 힘으로 아이들을 붙들어주고 구해주지는 않는 공공의 야만성을 가진 문명사회가 존재했다는 놀라운 추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어떤 스코틀랜드인의 설명에 의하면 집달 리가 자유 지역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을 때 공포에 질린 채무자들은 그 도랑을 건너 홀리루드 성소에 들어간 후에야 안도하곤 했다 - 모든 것이 질이나 분위기 면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서쪽에서 판매하는 식탁이나 서랍장 따위는 마호가니로 만든 데다 니스 칠이 되어 있었다. 반면 동쪽에서 판매되는 가구들은 입술에 바르는 연고 비슷한 싸구려 모조품을 덕지덕지 발랐다. 또 서쪽에서는 페니 로프나 페니 번의 속이 조밀하고 알찼지만, 동쪽에서 파는 빵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개수를 늘린 듯 이리저리 잡아당겨 울퉁불퉁 볼품이 없었다. 이윽고 화이트 채플 교회 주변과, 인접한 설탕 공장을 돌아-오른쪽으로 빠져 나간 뒤 왼편의 불편한 모퉁이를 겨우 돌자, 별안간 멀리 떨어진 런던 거리와 비슷한 환영이 나타났다. 요사이 런던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치고, 뭔가 척추 질환 때문에 몸이 둘로 접힐 듯 구부러진 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쪽 옆으로 돌아가 있던 고개가 이제는 팔 뒤로 내려가다 못해 손목에 닿을락 말락 하는 여인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길바닥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에 손으로 더듬어 길을 걸어가고, 구걸도 하지 않으며, 걸음을 멈추는 법도 절대 없다.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왜 가고 있을까? 그녀의 누런 팔이 뼈 위에 양피지 같은 가죽을 씌운 것에 지나지 않았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는 인간의 피부다운 짙은 혈색이 도는 것이다. 스트랜드 가는 그녀가 돌고 도는 반마일쯤 되는 궤도의 중심점쯤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어떻게 이 멀리 떨어진 동쪽까지 왔을까? 그녀는 이 근방에서 보기 드문 구경거리다. 나는 개한테서 그녀의 유명세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꼬리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잡종견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느릿느릿 걸어가다 자기 동료-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인 인간의 행동에 우호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개는 푸줏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다음 돼지고기의 여러 가지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하는 듯 헤벌쭉 벌린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나처럼 동쪽으로 달려가다, 잔뜩 웅크린 덩어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개는 그 덩어리를 보고 움찔하긴 했지만, 자체 이동수단이 있는 상황이니만큼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걸음을 멈추고 귀를 더욱 쫑긋 세운 채, 작은 움직임도 집중해 노려보면서 짧고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며 코를 반짝거렸다- 내가 공포를 느낄 때와 비슷했다. 그 덩어리가 계속해서 다가오자 개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마구 짖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순간 그런 비행이 개한테 어울리는지 스스로 갈등하다 고개를 돌렸고, 여전히 다가오고 있는 헝겊 뭉치와 마주쳤다. 개는 한참 머뭇거리다 이내 그 넝마 뭉치 어딘가에 얼굴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탐색하고 조사해봐야겠다고 결심한 뒤 슬금슬금 그 덩어리에게 다가가 천천히 둘레를 돌았다. 그러다 마침내 아래쪽,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충격의 비명을 지르며 동인도회사의 부두로 비행하듯 달려갔다. 병실 벽마다 온통 인형들로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뽐내며 침대 위로 팔을 뻗은 채 앞을 응시하는 인형들을 보며 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하긴 푸들은 환자에게 더 관심이 많다. 나는 녀석이 마치 외과 의사라도 되는 듯 다른 개의 보좌를 받으며 병동을 순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인 듯한 그 개는 붕대 감는 조수처럼 푸들의 옆을 졸졸 따라다녔다. 푸들은 어느 예쁜 소녀가 많이 건강해졌다고 보고하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 든, 종이에 싼 1기니를 꺼내 개에게 주고 싶었다. [마권 판매소] [죽음을 거래하다] 장례식에 관한 영국인들의 행태가 분명 안타까울 지경에 이른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야만스러운 과시욕과 고비용의 관습이 무덤 위로 서서히 고개를 쳐든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가장 엄숙한 행사를 쓸데없이 거창하고 무의미한 의식과 부당한 빛, 과도한 낭비, 책임을 완전히 망각한 나쁜 사례와 결부 지어 인식하게 함으로써 고인을 추억할 때 불명예가 될 수 있고 유족에게는 엄청난 낭패를 안겨줄 수 있다. 중산층에서 벌어지던 경쟁이 극빈층까지 내려갔다. 극빈층에게 장례식 비용은 재산을 탕진하고 분수에 넘칠 정도여서 그들은 장례식 비용을 갚기 위해 스스로 클럽까지 결성했다. [Review] 영국이 낳은 최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찰스 디킨스의 젊은 시절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정사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열두 살부터 구두약을 만드는 공장에서 하루 열 시간 이상을 노동하는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며 깊은 상처를 받았다. 다행이 열다섯 살 때에 법률회사 사환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얻어 인생은 달라졌다. 그곳에서 독학으로 익힌 속기 기술로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829년 언론사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며, 정치가들에 대한 불신을 느끼고 빈민계층들을 위한 사회 보호 시설에서의 악습과, 도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폭로하는 진보적인 글을 써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소설에는 풍자적 희극성과 감상주의적 휴머니즘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가운데 인간의 이중성이 많이 드러나 있다. 산업혁명의 격변기에 신분의 차이로 인한 인격적 모순을 파헤치고,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야망을 품어보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짧은 글들은 찰스 디킨스의 후기 작품으로, 그가 창간한 두 잡지 <일상적인 말들> 와 <일 년 내내>에 게재된 것들이다. <밤 산책> <길을 잃다> <채덤 조선소> <와핑 노역소><동쪽의 작은 별> <아마추어 순찰기><죽음을 거래하다> 의 내용들은 런던의 어두운 면, 극빈층들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고 기자의 입장에서 보고 만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인상을 적은 글들이다.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야간에 런던의 뒤 골목을 다니며 스스로 노숙자의 경험을 일상으로 기록한 <밤 산책>에서는 윤리 도덕도 상실한 채, 소외된 노숙자의 황폐한 모습과 애환이 담겨 있다.
[교회 종이 울리면 한밤중 노숙자는 처음에 길동무가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소리의 파동이 둥글게 퍼져나가면 무슨 소리인지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하고, 그 후에도 계속 퍼져나가(어떤 철학자의 암시처럼) 영원한 공간으로 퍼져나가면, 착각은 바로 집히며 고독감은 한층 깊어진다.] [기차는 연기를 내뿜고 몸을 들썩이며 땀을 흘렸다. 마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그동안 달려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십 분쯤 흐르면 기차역 전등이 꺼지고, 나는 다시 홀로 남은 노숙자가 되었다.] <길을 잃다>에서는 가련한 소년이 길을 잃고 런던의 뒷골목을 헤매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길을 잃은 것이 처음에는 혹시 성공으로 가는 기회가 아닐까? 라고 작은 희망을 가져 보지만 소년은 결국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순된 세상이 개의 이중성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성공만 하면 말 여섯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금의환향하여 나의 신부에게 청혼하리라.] [거인들은 음흉하게도 여전히 안 보는 척하면서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쪽 구석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이제는 귀를 쫑긋 세운 개 한 마리만 보였다. 한쪽 눈 위에 허연 얼룩이 있고 발은 희색과 검은 색이 섞여 얼룩덜룩 했지만 전체적으로 검둥개였다. 개는 장난을 치고 싶은지 내 주위를 킁킁대며 뛰어 다니고 내게 콧잔등을 비벼대는가 하면, 옆으로 살짝살짝 몸을 피하고 고개를 저으며 달아나는 척도 하고,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내 기분을 돋워주려는 듯 자진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다. 나는 그 개를 보는 순간 휘팅턴이 떠올랐고, 뭔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참 잘하는데! “ ”아이고, 가엾어라! “ ”귀여운 녀석이네! “라고 격려해주었다. 녀석이 이제부터 영원히 나의 개가 되어 내가 성공하는데 발판이 되어 주리라 상상하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개는 소년의 저녁식사로 아껴둔 독일 소시지를 낚아채 도망치고 말았다. <채담 조선소>는 배를 만드는 백이십 명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의 모습을 기계톱에 잘리는 나무에서 날아오르는 톱밥에 비유한 모습이 인상 깊다.
[화물칸 맡에서 작업하는 백이십 명은 몸을 트는 게 쉽든 어렵든 멋들어지게 희 선체의 곡선을 따라 엉금엉금 기거나 살금살금 움직여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장차 노가 될 이런 나무토막은 멀리 떨어진 숲에서 용도에 맞게 대충 잘린 뒤 작별인사를 건네고 여기 영국으로 건너왔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까 본 나비들이 진짜 나비가 아니라 톱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계의 폭력으로 튀어 올라온 톱밥은 기계의 회전력에 의해 공중에서 빠르지만 일정치 않은 동작으로 파닥파닥 나플나플 오르락내리락 나비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다 기계의 소음과 동작이 멈추면 나비들은 죽어서 떨어졌다. ] 지나간 옛 날, 산업혁명의 격변기에 일어난 영국의 어두운 면이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는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사물을 꿰뚫어 묘사하는 글을 보면서 위대한 작가의 필체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쉽고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내면에 깊은 철학적 통찰력이 들어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앙금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는 글들이다. 글을 써보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유머와 재치 그리고 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표현들을 책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