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인생』을 읽고
프로그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왜 이렇게도 모르는 것이 많은가?"하고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그 동안 내 생각에는 상당히 많은 도서를 구입했고 그런 책들이 책장에 쌓이는 것이 더 많기는 했지만 읽기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위화의 『인생』도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1993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아라는 제목으로 푸른숲 출판사에서 발행되어 지금은 절판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연히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읽기 『쾌락독서』에서 위화의 『인생』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투박하지만 오래된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 위화의 『인생』이다"고 먼저 소개하고, 장편소설『인생』은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하의 대표작이라고 썼습니다.
1995년에 발표한『허삼관 매혈기』는 우리나라에서 1999년 2월 3일 역시 푸른숲에서 발행했는데 여화(余華)의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서평이 좋아서 그 해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위화는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 세계문단의 극찬을 받았다는 뉴스에 접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의 삶이 마치 195,60년대 우리나라의 가난한 가장이나 학생들의 모습과 대비되었기에 공감이 배가될 수 있었을 겁니다. 이어서 2007년에는 그의 3 권짜리 소설 『형제』를 구입하여 보관했는데 내 책장에서 사라지고 없군요.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위화의 장편『인생』은 가파른 중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生)의 역정을 그려낸 작품이며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나는 근처 밭에서 소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있는 한 늙은 노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하룻밤 사이에 전 재산을 잃고,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합니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 그날 이후 푸구이는 운명과의 장난 같은 줄다리기를 합니다. 푸구이는 자기의 전 재산을 빼앗아간 룽얼에게 다섯 묘의 토지를 경작할 수 있는 소작인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 자전과 딸 펑사와 함께 한 집에 모여 사는 신세가 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똥통에서 미끄러져 넘어져서 돌아가시고, 부잣집에서 시집 왔던 자전은 임신 중이었는데 장인이 와서 처가 집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다행히 얼마 후 아내는 아들 유칭을 낳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일 년 후 푸구이는 어머니가 병이 나서 성안에 있는 의원을 모시러 가는 중에 국민당 병사들을 만나 끌려가게 됩니다. 2년 동안이나 전쟁터에서 전쟁다운 전투 한번 치루지 못하고 그냥 지내다가 해방군에 의해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미 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 딸 펑사는 열병을 앓아 말을 못하는 농아가 되어 있습니다. 아내 자전 역시 구루병에 걸려 비실거립니다. 푸구이 부부는 아들 유칭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열 세 살인 딸 펑사를 쉰 살쯤 보이는 남자에게 보냈으나 몇 개월 만에 집으로 도망쳐 옵니다.
국민당을 몰아낸 해방군은 지주들을 처형합니다. 해방군인 공산당은 노름으로 푸구이의 전 재산을 빼앗아 갔던 룽얼의 전 재산을 몰수해 이전의 소작인에게 되돌려줍니다. 그리고 룽얼은 악덕 지주로 몰려 다섯 발의 총탄을 맞고 사형에 처해집니다.
"푸구이,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p.110)
하고 소리치며 죽어가는 장면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1958년, 그동안 경작해 왔던 다섯 묘의 땅도 인민공사에게 빼앗기고 마을사람들과 공동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오의 대기근(1958-1962) 시대를 맞이합니다. 아들 유칭이 오 학년이 되던 해, 유칭이 다니던 학교 교장, 그러니까 현장 댁 부인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다가 피를 아주 많이 흘리게 되어 수혈을 위한 헌혈이 필요했습니다. 유칭은 자진하여 헌혈에 참여하였고, 그 때 피를 과도하게 뽑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류 현장은 푸구이가 전쟁터에서 운명처럼 만났던 춘성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성안에서 문화대혁명(1962-1976)이 진행되는 동안에 성안의 류 현장이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푸구이가 하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사람목숨이 아무리 질겨도, 일단 자기가 죽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슨 수를 써도 살 수가 없는 법이라네."(p.243)
그렇습니다. 나 역시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고 말던 것을 목격했습니다.
딸 펑시는 성안에서 수레를 끄는 짐꾼으로 머리가 기울어진 왕시에게 시집을 갑니다. 왕시는 펑샤가 아이를 갖자 집안의 모기들이 배가 불러 더 이상 물지 않게 되면, 그제야 제 처를 들어가 자게 할 정도(p.247)로 아내를 사랑했습니다다. 그러나 펑샤는 아이를 낳고 나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고 맙니다. 유칭은 남의 아이 때문에 죽었고, 펑샤는 자기 아이를 낳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펑샤가 죽은 지 세 달도 되기 전에 자전도 죽고 맙니다. 이제 푸구이 곁에는 얼시와 외손자 쿠건만 남게 됩니다. 왕시는 화물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면서 등에 쿠건까지 업고 헉헉거리며 살아갑니다. 쿠건이 네 살 되던 해, 왕시는 몸이 시멘트 판에 착 달라붙어서 다리와 머리를 빼고는 온 몸이 납작하게 눌려버린 채(p.265) 죽고 맙니다. 이렇게 유칭, 펑샤 그리고 사위마저 같은 병원에서 죽게 됩니다. 푸구이와 함께 살아가던 쿠건마저 열 일곱 살이 되었는데 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고 맙니다.
결국 혼자 남은 푸구이는 자신의 인생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 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ㅡ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시는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지,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때는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pp. 278-279)
결국, 이 소설은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의 일생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고난을 견뎌내는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주인공이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가족과 전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해방 전 후부터 약 40년간의 중국 역사를 묵묵히 살아낸 중국민초들의 삶을 생명과 죽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위화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화제작이기도 합니다. 나는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을 때처럼 우리나라 1950대의 농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
첫댓글 역시 동서 동아리 대장 프로그님! 우리나라도 60년대는 참 배가 많이 고팠지만 지금은 이렇게 잘 살게 된것을 배아파 하는 분들이 계시는지 나라가 걱정 됩니다. 평범하게 걱정 없이 살수는 없을까요 독후감 써 주신 덕분에 지난 날을 한번더 기억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도 어린시절 주위에서 가난하게 살던 이웃들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