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이렇게 섬기십시오.
성경본문 :느혜미야 12: 44-47
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45.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좇아 행하였으니
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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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100조 이상의 세포로 구성:
세포 하나하나가 생명 그자체, 그 세포속에는 생명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DNA디옥시리보핵산, 즉 유전정보가 RNA라고 불리우는 효소에 의하여 심장, 뇌, 눈, 코, 손가락까지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 낸다. 이 작은 DNA에는 약 600페이지 되는 책 1,000권에 해당되는 내용의 정복가 보관되어 있다. 이 엄청난 정보조직을 통해 생명의 탄생, 재생, 성장, 집산, 사멸등의 작업이 아주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더욱이 우리 몸무게의 겨우 2%정도밖에 안 되는 약 1,400g의 무게인 뇌는 약 100억개나 되는 신경세포의 배선을 통해 작용하는데 이는 현재 전 세계의 전화 교신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취급하고 있다.
이렇게 지어진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1) 모델이 될 말큼 섬기자!
느헤미야 12장은 멋진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신앙의 모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섬겨온 선배들의 이름들입니다.
고등학교때 일류대학을 가면 그들의 이름이 학교에 붙어있었다. 격려와 도전을 위함이다.
마찬가지다, 신앙의 위대한 일군들의 이름은 잊혀질 수 없다. 12장 1절에서 21절까지는 제사장들의 명단입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일차귀환 때 지도자였던 스룹바벨 시대의 제사장들의 명단입니다. 90년도 더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레위인들의 명단, 여호야김 제사장 시대에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이 명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1)신앙은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一代로 끝이 나지 않는다. 신앙의 유산을 남긴다. 우리의 신앙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에게 또한 남는 삶입니다. 함부로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전달 될 것인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질지 고민할 필요가 충분히 있습니다.
(2) 우리 인생은 지속적인 도전의 삶이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전받고 우리도 언제인가 후손들에게 도전하는 삶이다. 영향을 미칩니다. 자꾸만 우리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인가 말하는 자로 남아야 합니다.
(3)길을 잘 닦아두는 자여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길 닦아 주고 길을 예비해주어야 한다. 히브리서 13장 7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신앙의 선배는 우리의 모범입니다. 우리를 게으르지 않게 만드는 삶의 새로운 에너지입니다. 신앙의 선배를 보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섬기십시다.
2) 사역은 어떤 차별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 12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은 다양하다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이것만 이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것도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저것도 주님을 섬기는 것 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의 대 제사장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레위인일 수도 없습니다. 레위인들도 모두 동일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종이 맡는 일을 하는 가하면 어떤 이들은 좀더 품위 있는 일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전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전 밖에서 사역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역이 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각 사역이 하나님을 위한 전체 사역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행사는 몇몇 사람이 아니라 모두 소중한 사역을 감당할 때 잘 이루어집니다. 얼핏보기에 고귀한 일, 폼 나는 일, 품위있는 일이 더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일을 위해 땀흘리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인들이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 일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내가 그래도 레위인인데 겨우 문지키는 사람밖에 안된다고 흥분하지 않고 그일들을 감당합니다. 어떤 레위인은 노래를 맡았습니다. 찬양합니다. 감사찬송을 합니다.
어느 대학교 철학과의 가장 깐깐한 교수가 자신의 교회에서 헌금 바구니 돌리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레위인들도 십일조를 거두어들이는 일도 합니다.
교회의 행사를 해보면 각자 잘 들어맞는 임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엌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성껏 간을 봐 가면서 식사를 준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추운 바깥에서 차량 안내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돋보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밀한 부분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뚤어진 것들을 바르게 하고 깨끗하지 못한 부분을 걸레로 닦습니다. 별로 표가 나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바쁩니다.
에베소서 4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에 관한 내용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도로 일합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을 받아 헌신합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의 열정과 비젼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합니다.
가르칩니다. 말도 안되는 질문에도 다정하고 다감하게 설명해줍니다.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위로의 은사를 받습니다.
아픈 곳을 잘 쓰다듬어 줍니다.
어떤 이들은 지혜의 말씀을 받아 전합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고, 들어주는 귀가 있는가 하면, 말을 전하는 은사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의 섬김의 현장에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를 세워주는 섬김입니다.
이것을 통해 교회는 아름답게 다져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섬김의 스승들을 발견하고 싶은 것입니다.
3) 이 섬김의 기초는 정결입니다. 거룩함입니다.
이 섬김의 사역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소하나는 30절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니라"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해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섬김의 모범과 스승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삶의 가장 처음입니다." You are first in my life, Lord!
오늘 저희들이 읽은 본문은 성벽 봉헌을 마치고 회복된 성전 봉사직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성벽 봉헌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 처음 성벽을 만들려고 했을 때 수많은 반대와 조롱, 비난을 기억하십니까?
산발랏과 도비야 그외의 많은 사람들의 조롱은 이렇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성벽을 다 짓고는 두 떼로 나누어 성 남단에 있는 분문에서 시작해서 한 떼는 동쪽으로 에스라의 인솔하에 올라가고, 한 떼는 서쪽으로 느헤미야가 주도하면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양쪽으로 가서 마침내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 함께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는 조롱은 여지없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영광스럽고 멋진 것입니다.
마지막 한가지를 추가합니다.
4) 섬김은 찬송으로 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들 무리는 모두 감사 찬송 하는 자의 큰 무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감격적인 것입니다. 무슨 사역을 교회에서 맡든지 감사 찬송하면서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감사찬송의 팀들이 사역하는 교회, 불만이 아니고, 억지로가 아니라, 강제로 어쩔 수가 없어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에 겨워하는 사역이 멋진 것입니다. 중얼거림이 아니라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와 감사로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찬송이 있다는 말은 저희들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는 말입니다.
44절 마지막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섬기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정성껏 섬기는 사역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런 기쁨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예림방에 한때 붙어있었던 포스터는 "Smile is contagious"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렬로 서서 웃음을 활짝웃는 그림이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이런 기쁨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이민 생활에 고달픔이 교회를 섬김으로 기쁨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찬송이 있도록, 노래하는 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