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석굴 3군데를 다녀와서 중간에 답사기를 쓸 시간이 없어 늦게까지 답사기를 썼다. 매일의 답사기를 쓰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라 늦더라도 답사기를 쓰는 것이 이 답사팀 내에서 밥값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오늘로서 답사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투르판박물관이 작년부터 개방이 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어제 입수했다. 동선을 수정해야 하는데 윤스리가 플랜B로 찾아 놓은 곳이 있어서 별 걱정없이 오늘의 답사를 시작한다.
오늘도 대절차량을 이용하는데 택시기사가 우리가 가자고 하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중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도 통역기와 바디랭귀지를 통해 필요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09:30 교하교성
중국에서는 괸광지에서 매표를 할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관광지 입장권을 끊을 때 세종아빠님은 경로우대로 무료이다. 대부분 여권을 보여주고 들어가는데 여권을 경로우대증으로 쓴다. 관광셔틀을 타면 고성주위를 돌아서 남문으로 데려다 준다. 성내부로는 도보로 다닐 수 있는데 더운 날씨에 걷자니 힘이 든다. 고지대라서 바람이 불어서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다.
어제 봤던 고창고성이 평지에 있고 왕실 중심의 불교인데 비해 이 고성은 양쪽 협곡으로 둘러싸인 고원에 있고 사원 중심의 불교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 고성 전체를 구석구석 살피는데 거의 5km정도를 걸어야 한다. 북쪽에는 사원들이 몰려 있고 남쪽으로 거주구역이 몰려 있다. 고창고성이 황량한 느낌이라면 이곳은 오밀조밀한 느낌이다. 윤스리는 고창고성이, 세종아빠님은 교하교성이 더 좋다고 한다.
이 성안에 아얼호 석굴이 있는데 사실 우리들은 고성보다는 석굴에 더 관심이 있어 가는 방법을 여러 명에게 물었으나 공사중이라 갈 수 없다고 한다. 인터넷의 정보에는 개방한지 1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6월 초에 올라온 글이 있는 것으로 봐서 최근에 공사가 시작된 듯 하다. 세종아빠님은 출발하면서부터 석굴에 꽂혀서 절벽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찾는다. 성안을 탐색해도 길이 없자 걸어가지고 하는데 그 만큼 간절히 가고 싶다는 뜻이다. 못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3:00 카레즈박물관
카레즈는 천산 산맥에서 눈이 녹은 물을 오아시스까지 물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증발을 막기 위해 판 지하수로이다. 이 수로를 파는 인부들은 지하공사 시에는 등을 3개 들고 간다고 한다..하나는 산소의 농도 측정, 직선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 땅의 사람들이 참 강인해 보인다. 물에 손을 담그니 아주 차갑다.
15:00 베제클리크 석굴
어제 왔었는데 다시 왔다. 시간의 여유가 될 때는 이렇게 다시 복습하는 것도 좋다. 어제는 사진을 주로 찍었다면 오늘은 살피는데 더 주안점을 두었다. 안내판을 번역해서 답사기에 써 본다.
16호굴
11세기에 만든 석굴이다. 대좌 남쪽에는 (众生奏乐)'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인도 국왕이 악공에게 청하여 석가모니의 장례를 배웅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독일의 르코크가 전면 벽의 위구르 귀족 공양상과 천장 부분의 벽화를 약탈해 갔으며, 현재 독일 베를린 아시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7호굴
11세기에 만든 석굴이다.
관무량수경변상도와 법화경변상도가 있으며 한문방제가 있으며 앞쪽벽 오른쪽에는 위구르 인물상이 작게 남아 있다.
20호굴
또 봐도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앞쪽에 일부 남아 있는 벽화의 발이 아주 예쁘다.
27호굴
11세기에 만든 석굴입니다. 굴의 천장 벽은 천불로 되어 있고 정면 벽과 양쪽 벽의 원래 7구의 조상은 파손되었다.
양쪽 벽의 조상은 광배, 화염주 문양 등의 채색된 무늬만 남아 있는데 그 광배 문양이 모두 다르다.
광배 양쪽 벽면에는 평온한 표정에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문법보살(Bodhisattva of Wenfa)이 그려져 있다. 정면 벽이 파손된 후 노출된 흰색 벽에는 위구르어로 된 마니교 명문이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콕(Albert von Le Coq)과 영국의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이 약탈했다.
31호굴
11세기에 만든 석굴입니다. 천장 벽에는 천불이 그려져 있고 정면 벽은 조각과 회화가 결합된 열반경변상도이다. 와불상은 파손되었으며 상단에는 왕자의 애도 그림, 불교의 천룡팔부, 사라수 그림이 있다. 중앙에는 수직의 광명 기둥이 있고, 상단에는 사리탑이 5개 있다. 양쪽 벽의 거대한 서원도는 석가모니가 수많은 전세(前世) 동안 어떻게 과거 불교를 진심으로 공양하고 마침내 스스로 부처가 되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측면 벽 뒤쪽의 벽화는 1914년 영국의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이 약탈했으며 현재 인도 델리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3호굴
11세기에 만든 석굴이다. 천장 벽에는 천불이 그려져 있고 정면 벽은 열반경변상도이고 와불상은 파손되었다. 상단에는 왕자의 애도 그림, 불교의 천룡팔부, 사라쌍수 그림이 있다.
양쪽 벽에는 서원도가 있었다. 20세기 초, 일본의 오타니 코즈이(Otani Kozui)가 이끈 소위 탐험대가 측면 벽 뒤쪽의 벽화를 약탈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9호굴
12세기에 만든 석굴이다. 굴의 중앙은 직사각형 불단이 있고 천장 벽에는 천불이 그려져 있다.
정면의 관음상은 파손되었고 양쪽 벽에는 관음보살 권속, 문수, 보현보살, 십대보살, 사천왕 등의 경전 그림이 있다. 전체 그림은 커다란 원형모양에 그려져 있는데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서 측면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敦煌(돈황)의 병풍화나 龟兹(구자)의 마름모꼴 그림과는 다르며, 위구르족 고유의 양식에 속한다고 한다. 측면 벽 뒤쪽의 벽화는 1914년 영국의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이 약탈했으며 현재 인도 델리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늘의 답사는 여기까지다. 늘 그렇듯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도 답사를 시작하면 잰걸음으로 다녀도 계획된 시간보다 더 늦어진다.
오늘은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이동하는 날이라서 답사를 마치고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호텔에서 대실을 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 봤는데 4시간을 빌릴 수 있다고 해서 어제 밤에 미리 예약을 해 놓았다.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이동할 때는 이 방법이 아주 좋을 듯 하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더 이동해야 한다.
오늘의 답사기는 여기까지다.
첫댓글 답사기 열심히 보고
산천초목도 이른시간내 실크로드답사 발원합니다
올리자마자 댓글을 다시는군요..응원해 주시는 덕분에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탐험대가 조금은 여유로워진듯 보여서 안심입니다
강행군으로 무리해서 아프면 안되니까요.
예쁜부처님의 발은 새끼발가락이 크게 엄지처럼 보입니다
지난번 단원의 풍속화 새참에서 발모양이 어색했던부분이 떠오름니다.
여유로워 져야 하는데 나서면 다들 눈이 벌개서 다닙니다. 아름다운 그림에서 부처님의 발만 남아서 아쉬움이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