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7:24-26...하나님의 속성 사랑.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영원히 함께 할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헤어지게 되어 있는데 주님은 죽음너머까지 함께 하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고 계신다. 사도 바울도 고후5장 8절을 보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따로 거하는 줄 아노니’ 죽음 넘어 주님과 거하는 것을 말씀함이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천국의 삶으로 이해하는데 종말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천국은 믿는 자가 누릴 기업이다.
첫째 그곳은 실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눈으로 보일 수 없다고 해서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억지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것이다. 천국을 부인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 결정에 따라 인정하든 부인하든 둘 가운데 한 가지 기업을 차지하게 된다.(눅16:19-31)
둘째 성도들은 천국을 기업으로 차지한다고 하신다. 본래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옥은 없었다. 그런데 천사의 반란으로 생겨난 곳이다. 그리고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 되었다. 이곳은 예수그리스도로만 통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행4:12,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일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로 거부하면 천국입성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상당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마8:12,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경고하셨다. 이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우리의 눈은 하늘에 두고 천국에 입성할 것을 그리며 준비하는 것이다. 이 땅은 잠시 거쳐 가는 나그네의 삶 여관 같은 곳이지만 영원한 천국은 우리가 들어가서 누릴 기업인 것이다.
이 가치를 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얻으려 할 것이다. 마13:44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떤 곳과 같을까, 하시면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어놓은 보화를 발견하고 돌아가서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 천국이 그런 곳이다. 전부를 주고 살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하셨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고난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작은 고난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2 예수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영광에 참여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제자들도 보게 하시기를 기도하신다. 성도는 이 약속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다. 주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것을 그리고 왕 노릇 할 것을 계22:5절에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다 유효한 것은 아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을 성경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고 하신다.(롬8:17)
예수님 때문에 아무 고난도 받지 않으면 아무 영광에 참예할 수도 없다.
기억해야할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는 고난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자가 되는 세 가지 조건은 ①자기를 부인하는 것, ②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③주를 따르는 것이다.(마16:24).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난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잘못을 해서 매를 맞고 회개를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고난 뒤에 예비 된 놀라운 축복이 있음을 믿고 고통의 문을 잘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에 고난에 낙심하지 말 것은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것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감내해야 한다. 또한 베드로와 바울처럼 철저하게 비우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주의 은총이다.(벧전4:14).(행14:22, 롬8:17).
3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26절)
교회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①기쁨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가식과 위선이다. 해야 할 의무만 남게 된다. ② 거룩에서 사랑이 빠지면 자기의가 나온다. 그가 곧 바리새인이다. ③ 진리에서 사랑이 빠지면 죽은 정통만 남는다. 그곳엔 감동이 없다. ④ 선교에서 사랑이 빠지면 자기 문화를 심고 민주주의 정책을 펴는 것 밖에는 없다.
⑤연합에서 사랑이 빠지면 교주가 나오게 되고 교권이 남용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일치, 연합하여 독점하려는 잔인한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관계에서 바르게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 사랑이 가져오는 열매는 기쁨이고 거룩이고 진리이며 선교이고 연합인 것이다.
4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시다.
이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된 것이다.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25절) 이것이 지식인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가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신앙은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른 지식에서 생기는 것이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모른다가 아니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모든 이방신들은 무서운 신이라는 의식이 있다. 신들이 노할까바 벌벌 떨면서 신을 섬기는데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죽음에 까지 내어 준다는데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헬라어의 사랑은 몇가지가 있다. 스톨게(Storge)가족간의 사랑, 필리아(Philia)우정 친구간의 사랑, 에로스(Eros)이성간의 사랑, 하나님사랑(Agape)진리와 의와 거룩과 영원한 사랑, 희생적인 아가페...여기에 아가파오라는 단어도 있는데 존경의 사랑이다.
계시로 전달된 신적인 사랑이 아가페인데 이 사랑을 사람에게도 넣어 주셨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타나 보여 주셨다. 그래서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은 이 사랑을 알 수가 없고 이해도 할 수도 없다. 십자가는 높기도 하고 깊기도 하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 있다면 남을 비난하고 저주하고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관의 탕감받은 달란트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다. 1만탈란트를 탕감받고 500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않은 것이 사랑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그의 가슴에는 진정한 사랑이 흘러내리지 않았기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요셉을 알고 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 야곱의 사랑을 받은 그는 그 사랑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사랑도 알았고 그래서 사랑으로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 갚지 않고 덮어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할 때 그것이 가슴으로 흘러내리지만 받아 본 일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사랑이라 하는지 그리고 자신도 할 수 도 없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받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 동관처럼 자기만 받고 베풀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너무 배부르다. 자기들의 목적만 위해서 쓰고 사회에 베풀지 않는다. 언젠가 난 했던 이야기인데 어느 모 중형교회에서 담임목사30주년 기념사업이라 건축헌금을 하게하고 철원 어느오지에 기도원이라 할까 쉼터라 할까 수양관을 만들고 기념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초청한 목사님들은 리무진을 한대에 20만원이라나 전세내서 타고 일반인은 관광버스를 동원해서 타고가고 그곳에 가서는 뷔페를 했는데 이것은 돈 잔치였다고 갔다 온 분들의 이야기였다.
성도들의 혈을 받아서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30년을 성역을 했다면 본 교회에서 감사의 예배로 드리고 그 돈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면 아마도 주님은 더 기뻐하시지 않았을까. 성도들은 어떤이는 파출부로 그 작정한 헌금을 내면서 그 교회를 떠나고 싶은데... 고통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생각을 했다.
생색나지 않는 곳에 말없이 헌신하는 것, 주님만 바라보고 이것이 값진 것이다. 주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 잊지 말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기도해보고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지 그렇지 않으면 주의일이라 해놓고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끌어다가 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기억하세요...
내일은 주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
주님의 사랑은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다, 상담에서 empathy 이입감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어 주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위로를 할 때 위로가 되는 것이다.
나의 말이 상대방의 가슴을 아프게 할 때 이것도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듣고 나누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말은 사랑한다 하면서 나눔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세 번째는 봉사로 사랑을 실천할수 있다. 도와줄일이 있을 때 도와줄 때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이 하나님을 빚쟁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표식을 붙이고 다니는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총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