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이별의 노래. 떠나가는 배 ) 에 얽힌 사연
이별의 노래-시인 박목월과 ‘떠나가는 배
’
✦현재 70대 노장년층들이 고교시절 목청 높여 애창했던 노래가
묘하게도 시인 박목월과 관련된 ‘이별의 노래‘와 ’떠나가는 배‘라고 하여
관련된 잼있는 에피소드 자료를 찾아 보았으니 참고가 되시길~
박목월 (본명 박영종) 시인, (전직) 대학교수
생몰 : 1916년 1월 6일 생~ 1978년 3월 24일 몰(당 62세)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 경주시
데뷔 : 1939년 문장 '길처럼' 등단
경력 : 한양대학교 문리대학 학장
수상 :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
1952년 전쟁이 끝날 무렵 박목월 시인이 중년이었을 때
그는 제자인 여대생 H양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가정과 명예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않고 홀연히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박목월의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서 새로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남편을 찾아 나섰는데 ...
마주하게 되자..머리채 잡는 난투극을 벌이는대신.
두 사람에게 '힘들고 어렵지 않냐' 며 돈 봉투와 추운 겨울 지내라고
두사람 의 겨울 옷 보따리를 내밀고 서울로 사라졌다.
박목월과 H양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 아파하며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하였고 박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이 詩를 지어 사랑하는 연인 H양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 詩가 이리저리를 거쳐서 김성태 선생이
작곡하게 되어 첨으로 부산에서 발표 됐다고 한다.
이별의 노래
-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1.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아~ 아 나도가고 너도가야지.~
2. 한 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아~ 아 나도가고 너도가야지.~
3.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아 ~ 아 ~ 아 ~ 아 나도가고 너도가야지~
H양은 사랑과 인생을 걸었지만 박목월의 부인이 다녀간
며칠 후 부산에서 그 H양의 아버지 (당시 목사)가 찾아와
설득 했고, 사흘을 버티다 결국 이별을 선택한 목월의 연인(H양)은
부친의 손에 이끌려 제주항으로 떠나고,
망부(忘婦)를 태운 꽃상여를 뒤따르 듯 목월이 따르고,
그 뒤를 목월이 제주에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양중해 선생(당시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이
이별의 장면에 동행하게 된다.
목월의 연인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뱃전에서 고개만 떨구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그날 저녁 양중해가 詩로 썼고
같은 학교 음악교사 인 독학으로 작곡공부를 하다시피한
변 훈선생에게 이 詩를 주어
지금은 ‘제주의 노래’가 된 불후의 명곡
"떠나가는 배" 가 탄생 하였다고 한다.
떠나가는 배
- 양중해 작사, 변 훈 작곡-
1.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2.터져나오라 애설픔 물결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내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3.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가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떠나가는 배'
시를 자연석에 아로새긴 높이 3m, 폭 2.2m 크기 시비(詩碑)가
제주항 여객선 부두가 바라다 보이는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잔디밭에 세워져 1999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