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윤석렬 검사는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철저히 원칙과 법률을 따를 뿐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충성하여 영달을 구하지 않는다는 소신의 발언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신자들, 그 가운데서도 장로교인(Presbyterian)들이 마땅히 추구하며 할 수 있는 말이다. 장로교회의 신앙이야말로 그 어떤 인간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권위와 충성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장로교 신앙의 기본적인 전제를 바르게 숙지한 신자들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교주를 중심으로 하여 세워진 신앙체계로 된 이단(heresy)이나 사이비 종교(pseudo religion)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일반적으로 모든 신학과 믿음의 체계가 철저히 가시적인 것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의 내용들이 눈에 드러나거나 체험되는 형태여야만 하는 것이 로마 가톨릭의 교의체계인데, 기적과 신비체험이 발달한 것도 바로 그러한 가시적 신앙 추구에 바탕을 두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대상에게 신적인 권위와 권한을 위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자 혹은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인 사제(priest)권의 보장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로마 가톨릭교회와 구별되는 개신교회, 그 가운데서도 장로교회들의 독특한 신앙체계는 그 어떤 권위와 권한도 사람이나 조직에 두지 않는다. 흔히 장로교회의 의사결정이 특정한 사람(총회장이나 노회장 혹은 당회장 등)에게 있지 않고 회(council) 자체에 둔다고 하는 기본적인 원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본질적인 원리는 장로교회의 모든 권위는 성경에 따른 원리에 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충실하지 못한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장로교회의 원리가 아니라 회중주의(congregationalism)의 원리일 뿐이다.
따라서 장로교회에서 동등성(equality)은 중요한 원칙이다. 특별히 목사 위에 목사가 있는 수직적인 위계구조는 소위 종교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조차 계승하지 못하는 지극히 큰 잘못이다.
흔히 중세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극심한 타락과 부패 가운데서, 이를 자각한 개혁자들의 개혁된 주장과 신학사상들 가운데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 ‘개신교’(protestant)라 불리는 교회들과 신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의 가치와 범위를 협소하게 하는 생각이다. 오히려 개혁된 교회와 신자들로 시작된 신학과 신앙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단절하면서 새롭게 시작한 교파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로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교회와 신학이 무엇인지를 밝혀, 원래의 순수한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로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개혁된 교회들이 고백한 여러 신앙고백들을 보면, 특별히 초기 개혁기의 신앙고백일수록 로마 가톨릭교회나 개신교회나 공히 정통교리에 대한 계승을 전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나 프랑스 개혁교회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개혁된 교회들이 동일하게 정통 신조(교부들의 신조)들을 계승할지라도, 그 계승의 양상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프랑스 신앙고백(1559)이 사도 신조,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고백했을 때에 그 근거에 대해 “이 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매우 일치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달리,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그러한 신조들의 신앙을 수용하는 근거는 “거룩하고 갈릴 수 없는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합법적으로 소집되었으며 사도좌로부터 파견된 세 분의 교황 전권 대사들이 주제하는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보편적인……트렌토 공의회”의 권의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으로서의 기준은 우리 신앙에 있어 아주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전제다. 그리고 동일하게 회 자체의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장로교회와 회중주의교회일지라도 바로 이 점에서 원리적으로 구별되는데, 회중주의의 원리에서는 교회의 사역자(직분)들이나 조직, 혹은 정치 등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데 반해, 장로교회의 원리에서는 성경에 바탕을 두는 노회(presbytery), 당회(Session), 그리고 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직분들로 이뤄진 “교회의 권세”(Government)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장로교회의 권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거룩하고 갈릴 수 없는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합법적으로 소집되었으며 사도좌로부터 파견된 세 분의 교황 전권 대사들이 주제하는 거룩하고 세계적이며 보편적인……트렌토 공의회”의 권위와 같이 조직이나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혹은 그들)이 성경에 있는 그리스도(하나님)의 원리를 잘 따르는 한, 그 유익한 도구로서 충분하게 존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로교회의 신앙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에 충실하여 사역하는 사람을 존중하며 귀하게 여길 뿐이다. 바로 이런 기초적인 장로교회의 신앙원리를 장로교회 신자들 누구나가 숙지하고 있다면, 어찌 교주(사람)를 중심으로 철저히 패쇄적인 이단에 현혹될 수 있으며, 사람에 불과한 자를 교주처럼 숭상하는 회중에 속할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