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김성문
삶의 질이 높은 도시는 지구상에 여러 곳 있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에 갔을 때 내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주위 환경과 공기의 맑음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 지구라는 땅에 살도록 할 때 차별을 많이 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미국 워싱턴주 터코마시에 있는 APCC(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의 초청으로 문학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비행기는 워싱턴주 터코마(Tacoma)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APCC 관계관의 승용차를 타고 시애틀 근교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데, 편도 4차선의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줄을 지어 달린다. 고층건물과 집들이 잘 보이지 않는 주위에는 숲만 보인다. 숲속에서 띄엄띄엄 얼굴을 보여주는 지붕이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숲의 도시로 넓고도 넓음을 실감한다.
미국 본토 북서쪽 끝에 있는 워싱턴주는 면적이 대한민국의 약 1.8배이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워싱턴주 인구는 약 760만 명으로 한국 보다 약 6.8배나 적다. 한국보다 면적은 넓고 인구가 적어서 자연환경 보존이 더 잘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애틀, 터코마, 벨뷰는 서쪽 지역으로 워싱턴 인구의 절반이 산다. 종교는 기독교가 57%이고, 무종교가 32%이며 기타 11%이다. 미국은 기독교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내가 묵고 있는 가정은 천주교 신자라서 불교 정신이 강한 나와는 공통점이 많아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워싱턴주는 워싱턴이란 이름 탓에 미국 동쪽에 있는 수도인 워싱턴 D.C.와 매우 혼돈된다. 그래서 워싱턴주를 특정하는 시애틀로 많이 사용한다. 시애틀이라는 이름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온 사람들의 정착을 위해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시애틀 인디언 부족의 추장인 실스(Sealth)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경치가 좋아 관광과 위락 시설이 발달했다. 삶의 질을 향상하기에 알맞은 기온이고 날씨마저도 쾌적하다. 시애틀의 공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들어 활력을 넘치게 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애틀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름은 더글러스 퍼(Douglas fir)로 소나뭇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수이다. 크기는 높이가 20m~100m까지 자란다니 하늘 높은 줄만 아는 것 같다. 더글러스 퍼는 북아메리카 서부가 원산지이고 더글러스 전나무, 더글러스 가문비나무, 오리건 소나무, 콜롬비아 소나무로도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는 미송(美松)이라 부른다. 침엽수에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 산림욕의 효과를 나타내는 근원이 피톤치드이다. 수십 그루의 더글러스 퍼가 숙소 앞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높이가 30m는 충분해 보이는데 아래위의 굵기가 거의 일정하다.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곧아진다. 건축하는 데는 다양한 용도로 쓰일 것 같다.
시애틀 도착 사흘 후 다운타운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보고 싶었다. 숙소에서 APCC 관계관과 함께 승용차로 시애틀 다운타운 쪽으로 달렸다.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는 전봇대가 나무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오래전 사라진 나무 전봇대가 여기에 있다니! 다운타운 쪽으로 더 달리니 나무 전봇대는 보이지 않고 한국처럼 시멘트 전봇대들이다. 더 쇼킹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커다란 저택인데 모두가 목조로 지었다고 한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도중에 약 60여 세대의 5층 아파트를 모두 나무로 짓는 공사 현장을 목격했다. 골조 공사만 해 둔 모습이 정글짐 같아 보인다. 불그스름한 색상을 띤 나무들은 주위의 녹색과 어우러져 돋보인다. 나무로 짓는 건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실감이 난다. 이곳의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나도 이미 동화되고 있다. 시애틀 다운타운에는 고층 건물이 많고, 모두 시멘트 건물이다. 건물과 사람이 많아도 공기는 청정하다. 항구 도시인 시애틀은 물고기의 비린내가 많이 날 것 같은 내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다. 일부러 킁킁거려야 비린내를 맡을 정도이다.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제일 높은 건물은 약 286m인 콜롬비아 센터이다. 1층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김준규 교포 시인을 만났다. 그의 안내로 센터의 가장 높은 76층에 있는 전망대에서 시애틀 전체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었다. 가시거리가 엄청나게 길다. 시선이 머무는 곳은 거의 가시권 안에 선명하게 들어와 공기가 깨끗함을 또 한 번 느꼈다. 한국은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가시거리가 머나, 보통날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거리가 짧게 보여 아쉬움을 안고 생활할 때가 많다. 다운타운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도로 가장자리에서 나무통과 반려견의 끈을 잡고 운전자에게 손을 내미는 시민이 있었다. 한국의 도심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몇 명의 시민을 생각할 때 지구상의 모든 곳에는 빈부의 격차가 있음을 느낀다.
위도가 북위 약 47도라서 시애틀은 겨울에 매우 춥겠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겨울에도 온화하고 따뜻하여 1년에 한 번 정도라도 눈(雪)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내가 사는 대구의 기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에도 눈(雪) 보기는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다. 숲이 우거져 있고 기후가 온화한 시애틀은 가을부터 봄까지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다니 생활에 불편함도 있다고 한다. 잔디는 여름에 비가 없어서 황금색으로 지내다가 가을이 되니 비를 맞고 새파랗게 변하는 모습에 자연의 힘을 새삼 느낀다. 마침 내가 머문 시기는 9월 하순인데 가끔 구름이 해를 잡고 있다가 풀어주기도 한다. 짙은 구름은 갑자기 소나기를 보내다가 금방 해를 보여준다.
인공보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는 시애틀 시민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다. 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산다면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본다.
시애틀 근교의 숙소 앞에 있는 더글러스 퍼가 싱그럽다.
서기 2023.9.28.(목) 시애틀 근교 숙소 앞 더글러스 퍼
첫댓글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곧아지는 '더글러스 퍼(Douglas fir)' 를 생각합니다.
2004년에 벤쿠버에서 한달 가량 연수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슬쩍 국경너머로 다녀온 시애틀은 여러가지로 인상적인 항구도시였습니다. 스타벅스 1호점에 가자는 여성동료들과,이에 반해 시애틀 매리너스 야구장에 가자는 제가 충돌한 일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회장님!
시애틀은 기억에 남을 장소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온병 사기 위해 저도 줄 섰어요. 스타벅스 1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