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7.7.19
05:40피아골야영장-06:30출발-07:00직전마을-07:30표고막터-07:55구계포교-08:30피아골대피소-조식-09:20출발-10:20피아골삼거리-11:30노고단고개-11:37:노고단-12:00노고단대피소-중식-12:40출발-13:10집선대-13:30국수등-14:35화엄사
나의 오두막집 변산을 떠나 오후 5시 피아골 직전마을로 향합니다. 격포 I.C로 나온 후 동학 혁명지 고부면을 지나 정읍을 거쳐 호남고속도로 접어듭니다. 장성 J.C에서 새로 완성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홀로 독점하여 애마는 기분이 좋게 내달립니다. 기나긴 병풍산 터널을 빠져나오니 금세 담양 벌판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우측으로는 선명하게 무등산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곡성 I.C를 통과합니다. 오랜만에 섬진강을 따라 풍광을 즐기며 경치 좋은 압록과 구례를 지나 피아골 들머리인 내서리에 도착하여 피아골 야영장에 내려섰습니다. 도착 시각이 오후 7시 30분이니 변산에서 2시간 반이 걸렸군요.
야영장에는 텐트 1동이 있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그 커플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날이 흐리고 어두워졌기 때문에 재빠르게 텐트를 친 후 저녁 준비를 합니다. 미역국에 고추 참치통조림, 깻잎, 볶은 멸치, 김치를 안주로 햇반과 함께 소주 1병을 홀짝홀짝 마십니다. 2병을 마셨더니 얼큰하고 기분이 알딸딸한 게 좋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푸른 기운이 감돌고. 다행히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네요. 뭐. 비가 오면 차에 기어들어 가면 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테지요. 심심해서 운동 삼아 야영장 부근을 서성대다가 9시가 넘어 텐트에 들어갑니다. 친구가 있다면 가스램프에 노랗게 불을 밝히고. 분위기를 잡고 소주를 두어 병 했으면 더 좋겠는데 조금은 쓸쓸합니다.
곤한 잠을 자다가 오전 5시에 깼으나 조금 뭉개다 6시가 안 되어 기상합니다. 텐트를 뒤집어 놓아 말리고 주섬주섬 오늘 산행하는데 필요한 버너, 코펠, 햇반, 라면, 북엇국, 찰떡, 물, 여벌 옷과 재킷을 배낭에 쑤셔 넣고 텐트를 접습니다.
간밤에 번개같이 술을 먹고 잠을 잔 터라 속이 거북해 화장실을 방문하고 출발을 합니다. 늘 그랬듯이 연곡사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포장도로를 따라 직전마을을 지나 피아골에 들어섭니다. 몇 일간 비가 내렸던지 많은 수량의 물들이 흘러 섬진강으로 길을 떠나갑니다. 오늘은 평일이라 이렇다 할 행락객과 산님들이 없습니다.
계곡의 멋진 풍광을 보면서 표고막터, 삼홍소, 구계포교를 지나 신선교를 건너 피아골 산장에 도착합니다. 피아골 산장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문이 닫힌 채 조용합니다. 피아골 산장에서 북엇국을 만들어 속을 달랩니다. 함 선생님은 무애막(無愛幕)에서 아직도 주무시는지. 1시간 동안 머물다 떠나는데 고요함에 인기척도 없습니다.
이제 임걸령까지 힘겨운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군요. 흩날리는 안개비를 가르며 천천히 쉼 없이 주능 임걸령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딱 1시간이 걸렸군요. 목과 귀 뒤에서 계속 땀이 많이 나는 걸 보니 오늘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안개와 이슬비에 온몸이 홀딱 젖었습니다. 젖은 팬티 때문에 걸을 때마다 쓸려 바지를 내리고 보니 허벅지 안쪽 살이 벌겋게 부르텄습니다. 원래는 폐쇄된 뱀사골 산장을 들러 아쉬움을 표하고, 토끼봉에 올라 능선을 타고 화개면 신흥리까지 냅다 치려고 했는데 걸을 때마다 아랫도리가 쓸리며 통증이 생겨 부득이 계획을 수정하여 노고단으로 향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면바지, 청바지 차림의 반소매 복장으로 학생들이 반야봉을 향하고 있습니다. 맨 뒤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여선생 산님이 커다란 망원렌즈가 장착된 니콘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야봉까지 장난이 아닌데, 후의 일이지만 이 양반들 고생깨나 했을 겁니다. 물론 노고단 대피소로 다시 돌아오겠지만, 비가 제법 내렸고 바람도 불었고 추웠을 테니까요.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여 올 3월부터 개방된 노고단을 오릅니다. 데크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양옆에 많은 야생화와 노랑원추리가 너무 예쁩니다. 안개구름이 껴있어 몽환적인데 혹. 이곳이 천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감격의 노고단에 공식적으로 18년 만에 올라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른 때가 89년 5월이었으니까요.
강한 바람에 운무가 휘날리면서 공기 방울로 샤워를 합니다. 끈적하게 흘렀던 등줄기의 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추위가 엄습해 옵니다. 고어 재킷을 걸치고 한동안 노고단 정상에 머물며 노고단 정상석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습니다. 인증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감회의 노고단이라 자세를 잡았습니다.
깜찍하고 예쁜 아가씨 산님이 눈에 띄었는데 슬쩍 힐끔힐끔 몇 번을 훔쳐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쁜 여자를 산에서 보니 정말 사랑스럽고 더 예쁘더군요. 젊은 오빠 나이가 내일모레면 오십인데 주책이겠죠. 하지만 독일의 문호 괴테도 칠십이 넘은 나이에 첫눈에 반해 열아홉 소녀 울리케를 열병을 앓고 사랑하였습니다. 무려 나이차가 55살입니다. 괴테가 정말 부럽네요. 후의 일이지만 울리케도 괴테에게 연정을 품고 95살까지 독신으로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세기의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놀러 온 아줌마 산님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데 행복했던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망치네요. 요즘 무늬만 등산 복장에다 예의 없는 산님이 많이 늘었습니다.
날씨 좋은 날을 기약하고 아쉽지만, 노고단에서 산장으로 내려섭니다. KBS 송신소로 돌아내려서는 길을 따릅니다. 역시 곳곳에 날개하늘나리, 동자꽃, 며느리밥풀 등 아름다운 여름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고 노고단의 상징 노란색 원추리들이 나풀나풀 바람에 흔들리는 게 정말 곱습니다. 천상의 화원이란 바로 여름 이 노고단을 보고 말하는 거겠지요.
노고단 산장에서 라면을 끓여 한기를 달래고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섭니다. 화엄사 계곡은 물이 흔하지 않은 곳인데 상류부터 거세게 물이 흐릅니다. 집선대 아래에서 뒤로 미끄러져 하마터면 허리를 심하게 다칠뻔했습니다. 하산 후에 배낭을 열어보니 코펠이 사정없이 찌그러졌네요. 손가락도 꺾였는지 부었습니다. 비 오는 날 바윗길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노고단에서 화엄사까지 내려서는데 시간 반이 걸렸군요. 이제 비도 그치고 주능이 차츰 벗겨지는데, 조망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오늘 산행의 압권은 감격의 노고단 정상에 섰다는 겁니다. 코스는 단조로웠지만. 오랜만에 지리산에서 비를 맞고 걸었다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날씨 좋은 날 노고단을 다시 찾으렵니다. 오늘은 전북 장수군 장계읍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 집에서 술 한잔하며 1박을 하고 내일은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을 오를 예정입니다.
첫댓글 노고단 대피소가 있다는 것을 몇년 않되었는데 태풍 때문에 새벽에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통과 못하여 노고단 대피소에서 산행 친구들과 하룻밤 잤습니다. 그다음날 아침도 통과 못하고 하루종일 노고단에서 어슬렁거리며 지리산 반달곰 식구들도 보고 등등.....
지리산종주를 몇번이나 하면서 바쁘게바쁘게 통과만 하고 새벽 에도, 저녁에도 통과만 한것이 서운하고 속상했는데.....태풍 덕분에 노고단에서 하루를 꼬박 노닐었던 날은 진짜로 행복과행운이였습니다.
지리산 할아버님,
감사합니다!!~
한남정맥을 같이한산우님들
너무보고싶고 고맙고 그렇네요
잘들계시죠언제나화이팅하세요 대장님수기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