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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 없어 ( 타작 날 )
가을 타작 날을 받고 나자 경주 어르신은 며칠 전부터 새벽에 일어나게 되면 하늘을 쳐다
보았는데 타작날인 오늘은 그래서 더욱 일찍 일어나서는 하늘부터 살펴보셨다.
경주 어르신은 우선 대문을 열고는 마당 한쪽에 가득 쌓아놓은 낫가리를 살펴보고 있다가
요의가 있어서 변소 간으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잠이 덜 깬 박서방이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오다가 대문이 열린 것을 보고는 얼른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니 대문을 어제 밤에 분명히 꼭 닫았는데 왜 열렸지. 혹시 도적놈이 무엇을 훔치려고
들어 왔던 게 아닌가. “
그때 변소 간에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 왜 그리 호들갑이냐.”
박 서방은 어르신이 목소리에 금방 주눅이 들고 말았으니 아직 어르신이 일어나시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벌써 일어나셨기 때문이다.
“ 어르신 벌써 기침을 하셨습니까. 저는 아직 일어나시지 않은 줄 알았는데요.”
“ 오늘이 타작을 하는 날인데 날씨에 대한 걱정이 되어 어디 잠이 오더냐.”
“ 어르신께서 그렇게 걱정을 하시니 날씨가 안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 하긴 내가 타작날짜를 받게 되면 한 번도 날씨가 흐린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복을 받아
서 그렇겠지.“
“ 그러문입시요.”
“오늘 일꾼들이 오거든 배곯지 않게 막걸리며 음식을 골고루 잘 먹도록 네가 참견을 하거
라. 나는 장에 갔다가 타작이 끝날 때나 되어야 오게 될 것이야.“
“ 예 어르신. 잘 다녀 오십시오.”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가시고 나자 조금 있으니 타작을 할 일꾼 중에 홍 낙주가 마당으로 들
어섰다.
“ 박 서방이 오늘은 일찍 일어난 모양이네. 그런데 마당에 막걸리 퉁자가 보이지를 않아.
집단을 만지려면 먼저 목을 추겨야 손이 제대로 일을 찾을게 아니야.“
“그런 소리 들을까 봐서 어제 저녁에 사랑 부엌 부뚜막에다가 술자배기를 올려놓아서 따뜻
한 막걸리를 드실 수가 있을거에요.“
“ 그럼 얼른 이리로 내와야 할 게 아니냐구. 그나저나 이 육실 헐 놈들은 왜 아직 나타나지
를 않는 게야. 날이 번히 새는데 아직도 단무지를 꺼내지 않고 있단 말인가.“
“식전부터 무슨 단무지 얘기가 나온대요.”
“ 자세히 알 것 없어. 어서 자배기에 담아놓은 막걸리나 내오란 말이여. 부자 댁의 타작하
는 날이니 작년처럼 삼겹살 푹 삶아서 꼬지로 해놓겠지.“
“그러지 않아도 주인마님께서 일꾼들은 잘 먹여야 일을 잘 한다면서 올해는 특별히 쇠 갈
비 한 짝을 삶아놓으셨어요.“
“ 그럼 오늘은 식전부터 쇠갈비 먹게 생겼구나. 그것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는 암소 갈비란 말이지 하하..“
“ 그렇구 말구요. 오늘 타작 밥을 하러오는 사람 중에는 과부 아주머니도 있을걸요.”
. “ 과부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냐.”
“ 그렇게 모르셔요. 그전에 주막에서 술을 팔던 아주머니인데요.”
“ 응 그래 맞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타작하는 일을 할 수가 있을까.”
“ 원래 그 분은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셨대요.”
“그렇다면 팽 기화가 좋아하겠구나.“
" 누구라구요.“
“ 막걸리 잘하고 노랫가락 잘 부르는 건달도 몰라.”
이때 일꾼 대 여섯 명이 한꺼번에 마당으로 들어선다.
“ 팽 기화도 오냐. 오늘 일찍 온다더니 왜 그리 늦은 게야. 오늘명월이가 온단다.“
“ 그 소리를 왜 하는 건데 .”
“ 너. 그 전에 명월이를 좋아하지 않았냐.”
“ 그 소리를 어서 들었는데.”
“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다구 네가 여기 나타나자 그 소리가 바로 들리더
라.”
‘ 이 잡놈들이 어서 나에 대한 과거를 알게 되었지 제길헐.’
“내가 한 소리를 고깝게 듣지 말아. 사람이란 살다가 보면 천차만별의 일을 당하면서 사
는거 아니냐. 더구나 외롭게 살게 되면 누구나 여자를 그리워할 수가 있어. 너야말로 지금
이 외로운 처지잖아.”
“ 너는 지금 좋은 말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네가 하는 소리가 역겹게 들리니 다른 이야기
나 하자.“
“ 명월이 얘기가 왜 듣기 싫냐. 어디서나 치마가 끼게 되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인데.”
사실 술 좋아하는 팽 기화는 주막에 드나들기를 부뚜막으로 골방쥐 드나들듯이 명월네 집을
드나들었다.
이를테면 명월이에게 마음을 두고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어느 날 서울에서 웬 놈의 놈팽이가
한번 명월네 집을 찾은 다음부터 명월이는 팽 기화에게 곁을 두지 않았다.
그리 되자 기화는 어느 날 밤에 술을 잔뜩 먹고는 명월이를 찾아 들어갔는데 웬걸 거기에
는 이미 서울의 놈팽이가 명월이를 끼고 술을 먹고 있었으니 그 광경을 보게 되자 기화는
분을 새길 수가 없어서 변소 간에서 똥물이라도 한 바가지 퍼서 두 연놈에게 안기려 하였지
만 독하게 먹은 마음은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대문간 문지방만 걷어차고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 팽 기화는 다시는 찾지를 않았는데 그 사이에 서울 놈팽이는 명월이를 구슬러
논을 살려고 은행에서 찾아다 둔 돈 3 십 만원을 밤중에 훔쳐 달아났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자 명월이는 술집도 걷어치우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밑천까지 다 날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기화야 말로 조실부모하고 삼촌네 집에 얹혀 자라면서 눈총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하다
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는 건설업에 막일꾼으로 쫓아다니다가 사장님의 인정을 받아
한동안 건축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중에 사무실로 올라가다가 발을 헛딛
는 바람에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허리뼈가 부러져 근 1년여를 입원을 하였다가 퇴원을
하고나니 백수건달이 되고 말았다.
병원에 오래 있다가 나오니 마땅하게 할 일도 없었는데 농사 일하는 친구가 동무나 해달라
고 하여서 쉬엄쉬엄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타작마당까지 나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항상 외롭게 지났는데 어느 날 친구와 술 한 잔을 먹다가 명월이를 알게 되고 그
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 사연은 명월이가 팽 기화의 죽은 누이를 빼닮은 것이 마음에 들어
서 그를 점찍게 되고 명월이 또한 그의 사정을 알게 되자 동정을 하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
는데 사람의 눈에 무엇이 덧 씌워지게 되면 앞이 잘 안 보인다더니 명월이 앞에 서울 놈팽
이가 나타나자 명월이의 마음은 돌변한 것이니 거기에는 서울 놈팽이의 외모가 한 몫을 하
였다. 명월이야말로 돈으로 인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라 돈이 있는 사람을 사귀려 하였
으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나야지 하면서 나타나지를 않았기에 심성이 착한 팽 기화를
알게 되고 그를 신랑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런데 중간에 웬 서울 사람이 나타난 것이 명월이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게 되자 명월이는
하루저녁에 마음을 돌렸던 것인데 웬걸 가다보니 허방이 앞을 막았던 것이다.
일이 이리 된 것을 아무도 알지를 못하자 팽기화가 아직도 명월이를 좋아하는 줄 알 수밖에
없었다.
“기화야. 오늘 타작 날이니 우리 좋은 말로 시작을 하자. 그런데 한 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며칠 전에 오 장달과 고 순달과 같이 주막 끄트머리 방에서 내 생일날 술한 잔
먹던 생각이 나지.“
“ 그야 물론 내가 망령이 들지 않은 한 엊그제 일을 잊었겠나.”
“ 그날의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머리는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 내 이래봬도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를 잘 했지 않냐.”
“그래. 그것은 맞는 말이야. 그 바람에 여자아이들이 너를 많이 쫓아 다녔지 .”
“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
“ 남자라는 게 말이야 .자고로 여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바가 있지만 그때 남자아이들은 너를 많이 부러워하였어. “
“ 그랬었나.”
“ 너 그때 느티나무 집의 윤 해자가 너를 제일 좋아한 것 알지. 그런데 어느 날 끝종이 나
자 너와 해자가 불이 나게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이들이 보았다는 거야. 그런데 그때
해자를 좋아했던 송 뭉구가 그것을 보고는 바로 뒤쫓아서 갔는데 귀신같이 둘이 어디로 갔
는지 찾지를 못했다는 거지. 그날 어딜 갔었냐. 솔직히 말 좀 해보아라.“
“ 야. 너 지금 타작하러 와서 옛날 그것도 초등학교 이야기를 왜 꺼내냐. 난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까맣게 잊어 버렸다구. 나중에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둘은 보리밭으로 들어가서 짝짜꿍
을 하였다고 하더라. 정말 그랬냐 .“
“ 야, 너 지금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냐. 아득한 옛날 일을 들추자는거냐.”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그럼 말을 돌려보자. 다른 것이
아니고 언젠가 주막에 갔을 때에 네가 한 짓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 그날 너는
우리와 술을 마시다가 소피를 보러 간다 해놓고는 생전 들어오지를 않는 거였어. 그래서 이
사람이 필연코 무슨 사연이 있어서 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자리를 파하고 나오려다가
뒷방을 지나게 되는데 어디서 숨넘어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 가만히 서서 들어보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러고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여. 거 희한한 일도 다 있다고 하면서 발
걸음을 옮기는데 모기 소리만 하게 숨넘어가는 소리가 또 들리는거 였어. 나 세상에 살다
살다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본지라 뒷문을 활짝 열어볼까 하다가 그냥 돌아왔는데 지금도
그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단 말이야.“
“ 너의 말을 들어보니 너는 나를 끄러드리고 싶은 모양인데 나 솔직히 그날 먹은 것이 좋지
를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을 뿐이여.“
“그랬다구. 본인이 아니라는 데야 어떻게 할 수가 없네. 그렇지만 그때 사람이라고는 너
하나가 빠져 나갔을 뿐 우리 패에서는 술만 진탕 먹다가 헤어졌거든. 그런데 그 희미하게
들리던 감창소리는 뭐였지. 어쩌면 내가 무슨 환청을 들었는가 모르겠네. 어쨌거나 일은 그
렇다 치고 술이나 한 잔 마시고 얼릉 타작이나 하세.“
그 소리에 모두가 막걸리 한 잔 씩을 하고는 각자 자리로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고 순달이 홍 낙주를 보고는 잠시 할 말이 있다면서 뒷곁으로 가자고 하였다.
“ 야. 지금 한창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우리가 빠지면 일이 되냐. 그러지 말고 점심을 먹을
후에 만나자.“
“ 점심을 먹은 뒤에 시간을 낸다구. 알았어.”
타작이 시작되면서 한 쪽에서는 낟가리에서 볏단을 날라오고 또 한쪽에서는 날라온 볏단을
기계를 밟는 일꾼에게 한 움큼씩 떼어주는데 이 작업이 빨라야 털어진 벼가 산처럼 마당에
쌓이는 것이다.
기계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홍 낙주가 제일 잘하고 그 다음이 고 순달로 서로 교대를 해가면
서 벼를 털게 되니 죽이 잘 맞아서 그런지 기계소리는 점점커지는 것 같.았다.
“ 야. 고 순달. 너는 새우젓 장사나 잘 하는 줄 알았더니 벼 터는 일도 잘 하는구나.”
“ 너. 모르는 소리 하질 말아 걔는 기계도 잘 돌리지만 도리깨질도 잘 한다네 .”
“ 세상에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도리깨질 못하는 사람이 어데 있냐.”
“ 도리깨질이라니까 콩 털고 깨 터는 도리깨질인줄 아냐 .”
" 아니 그럼 또 다른 도리깨질이 있다는 말이냐. 참.“
“그 얘기에 대해서는 새우젓 장사를 하던 고 순달에게 물어보시게.”
사실 고 순달은 소싯적부터 바닷가에 가서 새우젓을 떼어다가 등짐으로 지고 다니면서 팔았
는데 대 가을에 김장을 할 때야말로 돈을 많이 벌수가 있었다.
그러기를 몇 년을 하다 보니 돈도 많이 벌었겠다 한 겨울이 되면 새우젓을 팔러 다니기가
힘이 들어서 친구들과 술집엘 다니면서 술타령을 하였는데 그때 고 순달이 퍼뜨린 말이 도
리깨질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란 어느 가을날 그날도 고 순달은 거진 항에서 새우젓을 떼어가지고 인제로 넘어
오던 길인데 너무 늦게 길을 떠나다 보니 진부령을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도저히 더 가지를
못하겠어서 중간에 어디서 집이 있으면 재워달라고 할 참인데 마침 초가 한간이 있어서 주
인을 찾아 사정 이야기를 하자 집이 누추하지만 윗방에서 하루 밤 자고 가라고 하였다.
너무도 고마워서 고 순달은 새우젓 한 대접을 퍼서 주자 주인 내외는 무얼 그런 것을 주느
냐고 하더니 저녁밥을 차려주었는데 차조밥에 시래기국과 김치여서 맛있게 먹고 나자 고단
해서 그런지 잠이 쏟아지기에 먼저 자겠다고 하자 윗방에서 자라고 하였다.
아래 윗방 사이에는 흙벽을 치고 작은 문이 달려 있어서 윗방에서 코를 골더라도 크게는 들
리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 놓고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만큼을 잤는지 꿈결 속에 도리깨질을 하는 것 같이 퍽 퍽 소리가 나다가는 철컥
하는 소리가 연방 나는 것 같아서 잠이 깨면서 물이 먹고 싶은 생각이 났지만 도저히 일어
날 수가 없었다.
고 순달은 다시 새벽잠이 들었다가 깨고 나니 주인양반은 벌써 조반을 차려 놓고 일어나기
를 기다리고 있어서 얼마나 미안하였는지 꿀맛 같은 아침을 먹자마자 허리를 걲고 고맙다
는 인사를 하고는 길을 떠났다.
고 순달의 새우젓장사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하였는데 새우젓 값의 이문이 점점 박해지
게 되자 더 이상 하지를 않고 농사를 짓기로 하였으니 새우젓장사를 하면서 마련해놓은 농
토가 조금 있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시작하다 보니 농사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해야
쉽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할 수없이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익히다 보니 이제는 무엇이나 잘
하는 선수가 되었다.
농사철 이외에도 농촌에서는 할 일이 많지만 더운 여름에는 동네에서 청년들이 모여서 개울
가에 나가서 천렵을 하기도 하였다.
날씨가 덥다 보니 모두는 멱을 감은 후에 한편에서는 고기를 잡느라 어항을 놓고 또 한편에
서는 밥을 하느라 솟을 걸고 나무를 줏어다가 불을 때기 시작하니 밥은 곧 끓어 밥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어항에는 고기가 연실 들어서 그것을 밸을 따개서 매운탕을 끓이니 한나절이 되기 전에 음
식이 다 된다.
“ 자. 그러면 점심을 먹게 되었으니 둥글넙적한 돌을 하나씩 가지고 자리를 잡읍시다.”
이때에 가장 앞장서서 판을 만든 사람이 고 순달로 일년 열 두달 만날 새우젓을 팔러 다녀
서 그런지 일도 부지런하지만 어딜 가나 궂은일은 도맡아서 하였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고 순달이 돌아가면서 양조장에서 갓 걸러서 온 약주를 한잔씩 돌리자
얼굴마다 화색이 돌았다.
“ 술잔을 채웠으면 누가 한 마디를 해야 먹을게 아니야.”
“ 맞아. 이 좋은 날에 모처럼 강에 나와서 천렵을 하는데 이 일을 주선한 고 순달이 한 마
디 하라구.“
“ 술 보았으면 그냥 껄떡 마시면 되는데. 자 그럼 잔을 번쩍 들읍시다. 그리고 목구멍이
시원하도록 단숨에 껄떡 껄떡 소리를 내서 마십시다.“
“ 좋아. 좋아.”
이날 잡은 물고기의 맛은 어느 때 보다도 맛이 좋아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서 술잔을 돌리
다 보니 모두가 낮술에 취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대면서도 술들을 권하였다.
술이 들어가자 한쪽에서는 노랫가락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노래라면 고 순달이 빠지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판이 한창 무르익을 때에 고 순달을 향하여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었으니
술만 먹으면 주정을 잘 하는 오 장돌이었다.
“ 야. 고 순달. 너 우리 여편네 몇 번이나 가지고 놀았냐.”
그 말과 동시에 술잔을 고 순달에게 던졌는데 술잔은 바로 고 순달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금방 피가 숫구치는 것이었다.
한창 기분이 좋게들 술을 마시던 중에 일이 이렇게 되자 금방 술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
고 한쪽에서는 수건으로 순달의 이마를 쳐매기도 하였다.
갑작스레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고 순달은 분을 참지 못하더니 오 장돌의 멱살을 잡으니 오
장돌은 맥도 없이 자갈바닥으로 넘어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 야. 너 내 멱살을 졸랐어, 어디 더 조여 보시지. “
그러는 동안에 둘을 뜯어 말리려 하자 고 순달은 분을 참지 못하면서 한마디를 하였다.
“ 야. 이놈아. 너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함부로 당치도 않은 말을 하는 거냐. 나는 솔직히 말
해서 새우젓이나 팔러 다니다가 노총각인 너를 장가들이기 위해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색시
를 알게 되어 소개를 하였는데 뭐 내가 네 색시를 건드렸다구 입은 비뜰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구, 난 하늘을 두고 맹서지 네 마누라 손목 한번 만진 적이 없어 이놈아“
“ 야, 순달아 네가 참아라. 쟤는 원래 술이 한잔 들어가면 무슨 꼬투리라도 하나 잡아서
분위기를 흐려 놓는 놈 아니냐.“
“ 그래 네가 참아. 쟤 마누라 젖통 큰 것은 세상이 다 아는데 뭘 그래.”
사실을 말을 한다면 오 장돌의 마누라는 거진읍내의 술집에서 술을 팔던 여인이었다.
고 순달이 새우젓 장사를 하는 중에 날이 저물면 저녁을 이집에서 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술도 마시다 보니 단골이 되어 날이 저물면 자기도 하였는데 언제 부턴가 이 집에 윤 숙희
라는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아가씨는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데 술집으로 나온 것은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어느 군
인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 연애를 하다가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애를 갖게 되어 할 수없이
살림을 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군인은 이미 결혼을 하여 애까지 둘이나 있었던 것을
모르고 살림을 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속은 생각을 하면 분하기도 하여 부대에 신고라
도 하려다가 그리 되면 그의 인생을 망칠 것 같아서 애를 지우고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직업을 얻는다는 것이 술집을 전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고 순달은 그의 신세가 너무도 딱한 생각이 나서 시집을 가라고 종용을 하자 그럼 신랑감을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신랑감이 어디 줄을 서고 있지 않는 한 어떻게 금방 얻는단 말이야.”
“그래도 여기 저기 눈이 내리면 숫캐 뛰어다니듯이 잘 다니시니 눈에 띄는 사람이 있겠지
요.“
“ 숙희는 나를 숫캐로 보는가 .”
“그게 아니구요. 남자들은 원래가 그렇게 여자라면 환장을 하며 다니는 것 아니에요.”
“ 하하. 하긴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를 좋아하긴 하지. 나를 빼놓고 말이야 .”
“ 어련하시겠습니까요. 어쨌거나 신랑 하나 소개를 해주셔요.”
“ 거 정말이야. 신랑 소개를 해주면 나에게 무얼 줄건데.”
“ 달라시면 아무거나 다 드릴께요. 호호.”
“ 그래 알았어. 그러면 내가 알아보긴 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걸세.”
고 순달은 그러고는 한동안 그 일을 잊어버렸는데 다시 거진을 가게 되다 보니 숙희 생각이
나고 이번 기회에 끈을 맺어줄 생각을 하다가 친구 중에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오 장돌을
소개하게 되었고 운이 맞아서 그런지 서로가 좋아하여 바로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때 오 장돌은 길을 닦는 김 감독으로 일꾼을 여럿 데리고 다닐 때였으니 읍내에서는 누구
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돈도 잘 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처럼 고 순달이 술집엘 갔는데 그 자리에서 술이 취한 오 장돌이 대뜸 고
순달의 팔소매를 잡더니 간곡히 부탁할 게 있다고 하여 그게 무엇이냐고 하자 여자 하나
소개를 해달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실 오 장돌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늦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것은 술만 먹으면 주
정을 하여 어머니까지 괴롭힌다는 소문이 나다보니 어느 누구도 주인을 이르려 하지 않았
다.
고 순달은 그를 볼 때마다 그가 부탁한 생각이 나서 색시가 있으면 소개를 해 주어야지 하
다가 윤 숙희를 소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 장돌이 장가를 가게 되자 누구보다도 장돌의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고 며느리를 사
랑하셨는데 윤 숙희가 살다 보니 신랑이 술만 한잔 마셨다 허면 보통 술주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잠을 자려면 밤새도록 아내를 붙들고 하루의 일과를 말하라는 것이고 게다가 남자
를 만났으면 누구를 만났느냐고 따졌으며 심지어 고 순달과는 어떻게 된 사이냐고 까지 따
져 물었다.
오 장돌은 결혼하고 얼마동안은 고 순달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잘 들었는데 느닷없이
이날 고 순달에게 행패를 부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 고 순달에게 윤 숙희가 찾아왔다.
고 순달은 무슨 일이 났구나 생각을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윤 숙희의 말을 들어보니 오
장돌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는 달리 그는 하루도 윤 숙희를 괴롭히지 않
는 날이 없을 정도 하루의 일과를 상세하게 말을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하루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였으니 어머니 모시고 밥하고
빨래하고 때로는 집안의 일을 하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가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그것
말고 다른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 일을 대라고 하였다.
윤 숙희가 생각을 하니 남편은 혹시 여자들끼리 만나게 되면 남편과의 정사에 대해서 묻는
것인가 싶어서 우물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버드나무집의 각시는 남편이 아주 점잖은데 저녁만 되면 언제 점잖았느냐싶게 여자의 옷을
홀랑 벗기고는 얼마나 자기를 못살게 구는지 괴로워서 죽겠다고 하는가 하면 돌다물집의 마
누라는 저녁만 먹으면 잠이 쏟아져서 잠을 자려면 잠을 자지 못하게 덤벼들어서 하루는 깎
지광에 가서 자려고 하자 거기까지 이불을 들고 온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그
게 아니고 남자 누구를 만났느냐고 하였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면 어떻고 여자를 만나면 어떠냐고 하자 자기와 사는 이상 외간남자를
만나면 안 된다면서 나중에는 고 순달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하더니 그 사람이 왜 자기
에게 소개를 했는지 말을 하라고 하였다.
윤 숙희는 그가 묻는 것이 하도 가소로워서 그냥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 다음부터는 손
을 밧줄로 묶더니 왜 바른대로 말을 하지 않느냐면서 손찌검을 가하는데 다른데도 아닌 얼
굴을 손바닥으로 몇 번을 갈겨 눈이 빠지게 아파서 할 수없이 안방에 계시는 어머니를 부르
자 이번에는 왜 어머니를 부르느냐면서 발길로 옆구리를 걷어 내차는 바람에 그 자리에 폭
고꾸라지고 말았다.
윤숙희는 하도 분해서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냐면서 엉엉 울자 그때 어머니가 뒤늦게 방
안으로 들어 오셔서 그 광경을 보시고는 다듬이방망이로 아들의 등가죽을 후리치는 바람에
윤 숙희는 겨우 쫓겨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다시는 이 사람과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으니 고 순달인
들 더 이상 윤숙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라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를 않았는데 일이 이처럼 꼬이게 되자 고 순달은 주
인애비 노릇을 잘 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잘못하면 뺨이 세대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모처럼 색시장가를 들었으면 여자를 사랑하지는 못하나마 여자를 가만히 놔두기라
도 하였다면 고생을 해본 여자기 때문에 살림살이 하나는 잘 할 여인인데 그런 여인을 못살
게 굴다니 오 장돌의 팔자도 기구하다는 생각을 할 수박에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며칠 후에 소식을 들으니 색시는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을 나갔다고 하였다.
고 순달이 생각을 하니 모처럼 친구 하나를 살리려 한 것이 오히려 그의 어머니에게 못쓸
짓을 한 것 같아서 고 순달은 오 장돌네 집을 찾아가기로 하였으니 어머니께 사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웃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머니가 낯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고 하시면서 집을 나가시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게 되자 고 순달의 마음은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니 어디를 가셨다는 말인가.
고 순달은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생각을 하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
머니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오 장돌이 모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고 순달이라도 챙겨
드려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었다.⁂
김 두 수 21.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