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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헝가리 원광사 청안스님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원광회) 원문보기 글쓴이: ivory
Musangsa Kwanum Jeil Dharma Talk
2009, November 11 (2009 11 11 무상사 관음재일 법문)
Good morning, everybody, today is Kwan Um Jeil. We call this Kwan Seum Bosal day.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관음재일입니다. 관세음보살일이지요.
We all know that Kwan Seum Bosal is the Bodhisattva of Great Love and Great Compassion.
우리 모두 관세음보살님이 대자대비보살님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It is wonderful to celebrate this. In the west we don’t have this celebration.
관음재일을 축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서양에는 이런 경축이 없습니다.
In the west the closest thing we have is called Christmas.
서양에서 가장 비슷한 것은 성탄절입니다.
It doesn’t happen every month, it happens just once a year.
매달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일 년에 한번 있습니다.
Even then, although it is called the celebration of loving each other, we buy gifts and give objects each other.
그 때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경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물을 사고 그것을 서로 주고 받습니다.
People have meals together, family members stay together almost like during Chuseok in Korea, then everybody goes home.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추석처럼 식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지요. 그리고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So, what is really the celebration of compassion?
그러면 자비를 경축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엇일까요?
At first, if you look at compassion, it is very easy to understand what it is: Feeling what you feel.
처음에 자비를 잘 들여다본다면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지 이해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If you go deeper than that, it is not just feeling what the other feels but also completely becoming one with the other’s mind.
여러분이 그것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이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Then there’s not just understanding, not just feelings, but complete attainment of the other’s situation.
그러면 단지 이해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완전하게 얻는 것입니다.
If some bad feeling appears, we perceive that bad feeling.
만약 나쁜 감정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 나쁜 감정을 알아챕니다.
Happy feeling appears, we perceive that happy feeling.
행복한 감정이 생기면 우리는 그 행복한 감정을 알아챕니다.
Worry appears, we see that worry.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그 걱정거리를 봅니다.
We feel all these, but are not attached to any of these.
우리는 이 모든 감정을 느끼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If we are not attached to anything, we can perceive our correct job .in the other person’s situation.
우리가 그 어떤 감정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상황에서 우리의 올바른 임무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If somebody is happy, we can be happy together. It’s wonderful.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면 우리는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일이지요.
If somebody is sad, we can be sad a little bit, of course, but what is our job then?
어떤 사람이 슬프다면 물론 우리는 조금 슬플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We have to help that sadness, unhappiness go away somehow.
우리는 그 슬픔과 불행이 사라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To really do that, we have to be very perceptive and skillful.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매우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솜씨가 좋아야 합니다.
This human mind is one of the most complicated things in the universe.
사람의 마음이란 이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We depend on the notion of what we think we are, we depend our ‘I-my-me’ strongly, and support it with the most skillful weapons.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관념에 의존하며 ‘나-나의-나를’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의존하며 그것을 가장 솜씨 좋은 무기로 지지합니다.
When we see cause and effect, our job changes.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볼 때 우리가 할 일은 변합니다.
Instead of defending ourselves, we attain the true, selfless, compassionate mind, and we put down these weapons, not fight with them.
우리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우리는 진정한, 이기적이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을 얻고 이런 무기들을 내려 놓고 그들과 다투지 않습니다.
Sometimes people do not want to be happy.
때로는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Sometimes people do not let you come close.
때로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다가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What is the first job? Your center shouldn’t move.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중심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Compassion is based on one mind so don’t let your mind split into dualistic views and emotions.
자비란 마음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여러분의 마음이 이분법적인 사고와 감정으로 분리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One moment you have compassion towards the other person, next moment you have a strong opinion. The two are not the same.
한순간은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향해 자비를 가집니다. 다음 순간에 여러분은 강한 견해를 가집니다. 그 둘은 같지 않습니다.
Strong opinion takes away compassion in one nano-second.
강한 견해는 아주 짧은 순간(10억분의 1초)에 자비를 빼앗아 버립니다.
Now I will tell you a story from long time ago in China, where this teaching comes out really well.
지금부터 이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는, 오래 전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There were three young monks who wanted to do a three-year retreat.
3년간의 결제를 하려고 하는 젊은 스님 세 분이 계셨습니다.
They received their novice precepts from their Eunsa Sunim, and obtained permission to go up to the mountains and practice in a small hermitage.
그 분들은 은사 스님으로부터 행자계를 받고 산으로 올라가서 작은 암자에서 수행하는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As they were going up the mountain, they passed a farm.
스님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 농가를 지났습니다.
In that farm, there was a large family living with one young daughter.
그 농가에는 대가족과 함께 사는 젊은 딸이 있었습니다.
This young daughter was very unhappy, very sad.
이 젊은 딸은 행복하지 않았고 매우 슬펐습니다.
She wanted to get marry, but she couldn’t.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The family lived half way up the mountain, quite isolated, and she was in marrying age.
그 가족은 산 중턱 매우 외진 곳에 살았고 그녀는 결혼 적령기에 있었습니다.
Although the road was going by the house and there one some men coming and going, she couldn’t get to know the right one.
비록 집 근처로 길이 나 있고 남자들이 오고 가기는 했지만 그녀는 적당한 남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As the years were passing, she became desperate.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필사적이 되어 갔습니다.
“How can I get married, how can I become a wife and mother?”
“어떻게 하면 결혼해서 아내가 되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One day, her desperation reached a critical threshold, and she decided to do something radical.
어느 날 그녀의 바람은 극한점까지 이르러 무엇인가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결심 했습니다
That morning she said, “I’m going to marry the first man that comes up this road!”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 길로 처음 올라오는 남자와 결혼 할 거야!”
That morning the three young monks were walking up the road.
그 날 아침 젊은 스님 세 분이 그 길로 올라 왔습니다.
She looked at the three men coming.
그녀는 세 사람의 남자가 오는 것을 보았죠.
“Wow, now I have a big choice.”
“야, 오늘은 선택의 여지가 많네.”
But she had to play the drama.
그러나 그녀는 연극을 해야 했습니다.
So, she threw herself on the road and shout “If somebody doesn’t marry me, I am going to kill myself!”
그래서 그녀는 길에 누워서 외쳤습니다. “누가 나와 결혼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 버릴거야!”
The three young monks stopped and started to talk to each other.
세 분의 스님은 길 가다 멈추고 서로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Being engaged in this matter in any way is not our job. Come on! We were going up to the mountain and do the retreat.”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자, 우리는 산으로 가서 결제를 하는 거야.“
They want to pass the young woman, but she took out the knife and put it to her chest.
스님들은 젊은 여인을 지나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칼을 꺼내서 가슴 쪽으로 가져갔습니다.
“If somebody doesn’t marry me, I am going to kill myself!!”
“누가 결혼해 주지 않는다면 죽어 버릴 거야!”
The three young monks saw the knife, and they became really concerned.
스님 세 분은 칼을 보고 정말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They looked at the house. Nobody was visible.
스님들은 집 쪽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How can we help this young woman, I mean, we have the great vow to help other people… Now, how do we do that?”
“어떻게 이 젊은 여인을 도울 수 있을까? 즉 내 말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지금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They were thinking among themselves a little bit.
스님들은 서로 생각을 좀 했습니다.
One of them, who had the greatest compassion, said,
스님들 중 가장 큰 자비심을 가진 스님이 말했습니다.
“Okay, you guys go up there, do the retreat and tell my Eunsa sunim that I couldn’t keep my monk’s vows and I married this woman.”
“그래, 너희들은 산으로 가서 결제를 하고 내 은사 스님께 내가 계율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씀 드려. 나는 이 여인과 결혼을 할 거야.”
The young monk turned layman saw the young woman still lying on the road, ready to kill herself.
이제 속인이 된 스님이 아직도 길에 누워 죽을 태세를 하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았습니다.
He said, “Young lady, marrying you is no problem, please take away the knife from yourself. I will marry you.”
스님은 말했습니다. “ 아가씨,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요. 제발을 칼을 치우세요. 내가 당신과 결혼 할 겁니다.”
The door of the house suddenly opened, people came out, and looked at this young monk.
갑자기 농가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와 이 젊은 스님을 보았습니다.
“What’s happening here?”
“무슨 일이지요?”
It was very unusual, so they invited him in, and talked to him.
그것은 별로 흔치 않은 일이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스님을 초대해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It was clear that this man was serious.
스님이 진심이라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He really wanted to help this young woman.
스님은 이 젊은 여인을 정말로 돕고 싶었습니다.
The family waited until his hair grew out, and prepared for the great marriage ceremony.
가족들은 스님의 머리카락이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거창한 결혼식을 준비했습니다.
The ceremony took place, the young groom married the young bride.
결혼식이 열렸고 젊은 신랑은 젊은 신부와 결혼하였습니다.
Somehow, by some mysterious trouble after the first night, the young husband fell ill.
첫날밤을 지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젊은 남편은 병에 걸렸습니다.
He could barely move his body, and he was getting weaker, weaker and weaker.
남편은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In a few days, he could only lie in bed and look at ceiling.
며칠이 지나고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He could still talk, but very, very softly.
남편은 아직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매우 목소리가 약했습니다.
In a few weeks he stopped talking at all.
몇 주가 지나자 말하는 것조차 멈추었습니다.
The whole family had a big concern how to take care of him.
가족 모두가 신랑을 돌볼 방법에 대해 큰 걱정을 했습니다.
So, as usual in most cultures, the young wife had to take care of her husband.
대부분의 사회에서처럼 젊은 부인이 남편을 돌보아야 합니다.
She did so indeed, completely.
부인은 진실되고 완벽하게 돌보았습니다.
She fed him three times a day, washed him, cleaned him, took care of him with complete compassion.
신부는 남편을 하루에 세 번 먹이고 씻기고, 닦기고, 완벽한 자비심을 가지고 돌보았습니다.
The family often contemplated how long this situation would last. Nobody knew.
가족들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종종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도 몰랐죠.
It turned one year, two years, eventually three years.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마침내 3년이 흘렀습니다.
After three years, the two monks who finished their retreat were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taking the same road.
3년이 흐른 뒤 결제를 마친 두 스님은 같은 길로 산에서 내려 왔습니다.
That morning, when they passed the house, they knocked at the door to see how the husband was.
그 날 아침 스님들은 농가를 지나면서 신랑이 잘 지내는지 보기 위해 문을 두드렸습니다.
Did he have any children? Was his wife happy?
아이가 있나? 부인은 행복한가?
Was the family satisfied with the situation?
가족들도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가?
When they saw their former comrade lying in bed, not moving, just looking at the ceiling, not talking, they were shocked.
스님들은 예전 동료가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How long has this been going on? That’s very strange. He has been always healthy.’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이상한 일이군요. 그는 항상 건강했어요.’
Then his wife said, “I’m so sorry, you know, he just married me and right after that this illness began to appear, and lasted three years non-stop.”
그러자 부인이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병이 나서 3년간 계속 아팠어요.”
The two monks looked at each other, and mused, “See what happens if you don’t keep your precepts…”
두 스님들은 서로 쳐다보며 생각하였습니다. “거봐 계율을 어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They bid farewell to the family and left.
스님들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The following morning the husband’s bed was empty.
다음날 아침 남편의 침대가 비어 있었습니다.
There was only a piece of paper saying short notice of farewell:
오직 작은 종이에 작별 인사만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My young wife, thank you very much for taking care of me for three years.
나의 젊은 신부여, 3년 동안 나를 돌보아 주어서 정말 고맙소.
During this time your compassion reached as much as that of Kwan Seum Bosal.”
그 동안 당신의 자비심은 관세음보살만큼 컸습니다.
He reached temple the day after his monk friends did, and they went up to their Eunsa Sunim teacher together.
남편은 친구 스님들보다 하루 늦게 절에 도착했습니다. 스님들은 함께 은사 스님께 갔습니다.
His Eunsa Sunim looked at him and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은사스님은 젊은 남편를 보자 “여기서 뭐하고 있냐?” 하고 물었습니다.
He said to his teacher, “I’m very sorry to disappoint you but I had to do my practice in a little different way.”
그는 스승께 말했습니다. “스승님을 실망시켜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The Eunsa Sunim had some wisdom, and said “I don’t care about form.
I don’t care about rule. Whatever you guys have done, I will check now.”
은사 스님은 지혜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형식이나 규칙을 따지지 않는다.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지금 점검하겠다.”
In every Zen room there is at least one horizontal wooden rod, where they store the Kasas.
모든 선실에는 가사을 걸어 놓는 수평 막대가 적어도 한 개 있습니다.
The old monk hung up three bottles suspended on strings, full of water.
노스님은 물이 가득 담긴 병 세 개를 줄에 매달았습니다.
He said to his three students, “If you can break these bottles without spilling the water, then your practice is ripe.”
노스님은 세명의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물을 흘리지 말고 병을 깰 수 있다면 너희들의 수행은 숙달된 것이다.”
The two monks were supposed to be able to do that, because they were supposed to do strong samadhi practice, the meditation with unbroken concentration.
두 스님은 지속적인 집중을 하는 명상인 사마디 수행을 열심히 하였으므로 아마도 그것을 할수 있겠죠.
So, the first tried it. He grabbed a stick, broke the bottle with one hit, and the water just spilled to every possible direction.
그래서 첫 번째 스님이 시도를 했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를 잡고 한 번에 병을 깼습니다. 그러자 물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That monk was reading too many sutras. He did some meditation but not enough.
그 스님은 경전은 너무 많이 읽었습니다. 명상을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죠.
Although the environment was pure and clear, and his practice was undisturbed, he couldn’t reach that level of concentration.
비록 환경이 순수하고 확실했고 그 스님의 수행은 방해가 없었지만 그 스님은 그 정도의 집중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The second monk did a lot more meditation, nonetheless, his mind wasn’t so strong.
두 번째 스님은 명상을 더 많이 했지만 마음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He smashed the bottle, the water stayed in a globe-shape for some time, but after a while the cohesion just disappeared, the water spilled on the floor.
두 번째 스님은 병을 부수었고 물은 공 모양으로 잠시 머물러 있었지만 곧 응집력이 없어지고 바닥으로 튀었습니다.
Last came the former monk, who married the young woman.
마지막으로 젊은 여인과 결혼했던 전직 스님이 나섰습니다.
He didn’t use a stick. He did not break the bottle with a hit. He just shouted.
그는 막대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때려서 병을 깨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리쳤습니다.
KHAAA!!! As he shouted, the bottle just burst into a thousand pieces.
크아악!!! 스님이 소리를 치자 병은 천개의 조각으로 터졌습니다.
The water was kept in one piece, as if the bottle had never been broken.
물은 마치 병이 터지지 않은 것처럼 한 덩어리로 모양을 유지했습니다.
The water did not move. Then the Eunsa Sunim said, “Enough.”
물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은사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하다.”
That moment, the water fell to the ground.
그 순간 물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Then Eunsa sunim said “You are my true student.”
은사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야 말로 나의 진짜 제자다.”
The two monks looked at each other, and asked their married friend, “What? What did you do for three years?”
두 스님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결혼했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3년 동안 무었을 했니?”
“Well, I was just lying in bed, looking at the ceiling.” Then they understood.
“응, 그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지.” 그러자 친구들은 이해했습니다.
True practice does not depend on any condition or situation.
진실한 수행은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의지 하지 않습니다.
We can practice hard, and very clearly in any kind of situation, in any kind of form.
우리는 어떤 조건이나 형식으로도 수행을 열심히, 명료하게 할 수 있습니다.
You may think that this is the most important moral of this story. It is not.
여러분은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Most of you already understand that the most important point is the beginning of the story.
여러분 대부분이 벌써 이해했듯이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있습니다.
There was one person, who could give himself up, give up his ideas, give up his desires to save a life.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Saving a life doesn’t mean that you have to lose your wisdom.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여러분이 지혜를 잃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It doesn’t mean that you lose your original direction.
또한 여러분의 본연의 목표를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Our big question is how do we keep the Daeja Daebi Maum, the mind of great love and great compassion while not losing our direction to attain enlightenment.
우리의 가장 큰 물음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본연의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자대비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입니다.
This young man found the answer.
이 젊은이는 그 해답을 발견했습니다.
But this answer did not come from thinking.
그러나 그 해답은 생각에서 비록 되지 않았습니다.
It came from one moment of not thinking about himself.
그 해답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은 한 순간으로부터 왔습니다.
It came from completely becoming one with another person’s mind.
그 해답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으로부터 왔습니다.
Then he could really become a great monk and great teacher.
그래서 그는 훌륭한 스님이 되고 위대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Our true practice should include not being attached to any situation.
우리의 진실 된 수행은 어느 상황에도 집착하지 않음을 포함하여야 합니다.
It should include perceiving at another person’s, other people’s situation.
우리의 진실 된 수행은 다른 사람, 여러 사람들의 상황을 알아채는 것을 포함하여야 합니다.
Then our great vow to save all beings from suffering opens and we actually walk on that path.
그러면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고자하는 우리의 서원이 열리며(이루어지며) 실제적으로 정도를 걷게 됩니다.
You may ask how do we save 6,7 billion beings from suffering on this earth: Start with your family!
여러분들은 어떻게 우리가 지구상의 67억 인구를 고통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부터 시작하세요!
Start with your neighbor! Start with your neighborhood!
여러분 이웃부터, 여러분 마을부터 시작하세요.
Then you can move right along, transcend that, and do even more.
그러면 여러분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고 그것보다 더 할 수 있습니다.
You do not have to think how to do this.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You remember today’s talk. You do not have to think about this.
오늘의 법문을 기억하세요. 이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You just keep your mind as clear and unmoving as the young husband did, looking at the ceiling.
젊은 남편이 천장을 바라 보았듯이 그저 명료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세요.
Just as open and compassionate, as he was when he made the decision to marry that young woman.
젊은 남편이 젊은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처럼 그저 열린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세요.
Our practice is not difficult and it is not complicated.
우리의 수행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It has a beautiful traditional lineage in this country, for which you should feel fortunate.
우리의 수행은 아름다운 전통의 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해야겠지요.
Our practice not only helps all beings, it also helps the survival and development of this tradition into the future.
우리의 수행은 모든 중생을 도울 뿐 아니라 미래에 이 전통이 계속되고 발전하는 것을 돕습니다.
Taking this responsibility is a part of our Bodhisattva Path.
이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보살도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So, I hope, from time to time and lifetime after lifetime we can meet again, share the Dharma again, practice together again to attain Enlightenment, and save all beings from suffering.
앞으로도 계속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서 법문을 나누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함께 수행하고,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를 바랍니다.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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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헝가리 원광사 청안스님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원광회) 원문보기 글쓴이: iv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