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어제 하지 못했던 '오늘의 베스트 동무상'을 선발했다. 추천이 많이 나왔다. 그 중 경석에게 상이 돌아갔다. 우쿨렐레를 공항에 놓고 온 걸 알고 나서 침착하게 해결하는데 정성을 다한, 그리고 공항 분실물센터로 전화를 연결하고 우쿨렐레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후 출발하는 일행에게 가지고 올 수 있게 조치를 잘한 경석이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9시 정각이 되니 찰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 앞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우리 각자는 자신의 신들께 오늘의 여행이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 요청드리는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가는 중, 찰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나는 유준이는 지금쯤 배가 몹시 고플것이다. 아침을 안 먹고 지내는 내가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그때부터 1시간30분을 김밥소동을 벌였다. 이른 아침에 김밥이나 간단한 요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겨우 오픈하는 김밥전문점에서 한참을 기다려 김밥이 도착했다. 모두의 진득한 기다림 끝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동안 너븐숭이기념관! 1시간 30분이 늦어지다 보니 출근날도 아닌데 나와주신 이상헌선생님은 다른 일정이 있어 가시고, 대신해 직원분들을 모시고 준비했던 같이살자 노래를 불렀다. 생각보다 많이 고마워 하셨다.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면 미리 말해주시지요. 지금 막 가셨는데요." 선한 영향력 발휘되며 커지는 순간이다. 아쉽지만 마음을 전했으니 충분하다 싶다.
이동하면서 마음을 나눴다. 우리는 의미있는 곳에 와 그걸 잘 느끼면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의미있는 곳을 꼭 끼워넣는다. 그리고 사전 공부도 같이 한다. 제주를 다니면서도 잘 몰랐다는, 알았지만 이렇게 찾아오진 못했다는, 마음이 아프다는 나눔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제주의 깊은 아픔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찾아올수록 제주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느낀다. 그건 아마 속살 깊이 박힌 아픔이 있어, 이 평화의 기운이, 치유의 힘이 있게 하는 것 같다. 제주가 속깊은 상처를 안고 아름다운 풍광이나 멋진 광활을 펼치는 것처럼, 인간도 그렇다. 자기 아픔을 겪고 난 사람의 깊이는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 모두 깊은 곳에 상처, 아픔 하나쯤 안고 살아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동백동산이다. 이번 여행에서 어쨌든 좋은 결실은 맺게 될 수 있다면 그중 하나가 동백동산이었다. 1시간여 곶자왈을 걸어 도착한 곳에 우리를 기다리는 먼물깍(습지, 마을과 가장 멀리 있는 물, 람사르습지)을 만나 둘러 볼 것이다. 기대가 컸다. 내가 늘 가보고 싶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지로 넓은 숲이란다. 긴코스와 짧은 코스(다시 돌아오는) 정하면 거의 학생들만 먼길을 선택해 갈 줄 알았는데 아니다. 모두가 긴코스를 걷겠단다. 여행 초반이라 현서를 짧은 코스로 보낸다. 마음이 편치 않다. 현서모와 현서만 짧은 코스로 보낼 수 없어 나도 같이 걷는다. 덕분에 현서모랑 차분히 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른쪽 걱정이 없다. 다른 인솔교사가 있고, 오직 오솔길이니 자기들끼리 충분히 시끄럽고 즐겁게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하여 우리는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으러 걸어간다. 한참을 가니 땟밤(구실잣밤?, 작은 도토리만함)주워 까먹고 오느라 늦었다면 즐겁다. 왁자하게 같이 걸어 먼물깍에 도착하여 자유시간을 갖는다. 자유시간을 주면 자유시간을 잘 누리지 못한다. 혼자 가만히 앉아 멍을 좀 때리면 좋겠는데, 아니면 혼자 바람을 좀 맞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숲속에 드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면 좋겠는데, 아니면 혼자 걸으면 좋겠는데.... 계속 왁자하다. 가만히 유준과 멀물깍 건너편 벤치로 이동한다. 그곳에 오니 여전히 즐겁고 흥미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인다. 에라~ 나도 즐겁다. 하나 둘 학생들과 나만 모였다. 좋다. 고맙다. 멀리 있는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자유시간을 마치고 먼물깍에서 출발하는데 땟밤이 떼로 떨어져 있다. 어른들은 줍느라 정신이 없고, 현서와 나는 제일 앞에 서서 출발을 한다. 그러다 경석과 유준이 현서와 나와 넷 달리기로 내기를 하자고 한다. 그래 출발! 현서와 나는 손을 잡고 뛰다 그 청춘을 어찌 이겨볼꼬꼬고. 그들의 청춘이 많이 아프지 말길 바란다. 더 많은 시간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뭉클했다.
기다리는 찰스한테 도착하니, 벌써 어른들이 도착한다. 맛있는 점심! 방주식당으로 이동하여 우리는 뜨끈한 도메칼국수, 통통한 제주 고사리비빔밥, 곰취로 만두피를 한 곰취만두를 시켜 먹는다. 배부르게 먹고 나왔는데도 속이 편안하다. 될수 있으면 직접 농사 지은 재료로 장사하신다고 하는데 그런가 보다.
김녕 풍력단지 드라이브를 하면서 세화까지 가는데 모두들 내내 잠이 들었다. 목청껏 일어나 제주의 푸른 바다를 봐달라며 사정해도 아무 대꾸가 없다. 촬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세화 해수욕장에서 내려 잠시 잠을 깨운다. 물이 차 해변의 모습이 아쉽다. 잠깐씩 백사장을 걷게 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물이 빠져 나갔어도 낮은 물을 건너면 다시 백사장이 있는 세화의 해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럴수가 없었다. 다시 찰스차에 타 해녀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제주의 해녀가 얼마나 강건하고 훌륭한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일제강점기때 동원 되어 동남아까지, 러시아까지 물질을 하러 갔던 일도, 해방운동 때나 제주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마다 고비고비에서 해녀들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긍지와 강인함을 볼 수 있게 바랬다.
2018년 학생들과 올레길을 15일 걷고 난 겨울이었다. 혼자 여행을 왔었다. 차를 빌려 오름을 찾아다니다 어딘가 선창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도 아닌것에 끌려 선착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내는 숨비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의 가슴떨림이란! 삶의 경이와 존경과 애환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울었었다. 그 자리에 서서. 걷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올레길을 걷기란 여간이 아니다. 매일 몇번씩 지지고 볶아야 한다. 그 자리에 서서 걸으면서 힘겨웠던 감정들을 위로 받았다. 그때의 숨비소리가 나에겐 치유의 산물이었다.
다시 레일바이크를 타자! 출발한다. 40여분동안 체인을 돌려 레일을 타는 줄 알았는데 전체적으로 자동이다. 재미가 덜 했다. 좀 고생스러워도 일부 구간은 수동으로 해서 함께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끌고가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와서 나도 모르게 끌려간 동물농장, 내가 딱 싫어하는 곳인데 아이들과 주머니에 든 땟밤을 염소, 양한테 주느라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엔 약간 무서웠는데 어릴적 키웠던 염소를 생각하니 급 친근함을 느꼈다. 손에 땟밤을 잡고 주면 지도 내 손을 조심해서 땟밤을 먹느라 떨어뜨릴때가 많았다. 손 바닥에 두니 잘 먹는다.
더 놀고 싶어하는 다큰 아이들을 놓고, 먼저 와 보니 모두 녹차가 되어 차에 앉아있다. 더 이상의 쏟아낼 힘이 없어보여 오늘 일정 마지막 코스라는 것이 안도가 된다. 근처로 오겹살을 먹으로 간다. 추가되는 비용이 걱정이 조금 된다. 하지만 많이 실컷 배부르고 맛있게 먹길. 껍질까지 붙어있는 오겹살은 맛이 있었다. 모두 쏱뚜껑에서 익어가는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밥은 후식으로 조금 먹는다. 만족스러워 한다. 나도 좋다. 제주에서 먹은 음식 중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맛이다.
속소에 도착해 모두 씻고 8시 40분에 모두 모였다. 감정카드로 지금의 감정을 나누고 조용히 존중한다. 그리고 중창 힘내라 맑은물을 배운다. 멜로디와 화음이 조화로워져 가는 것을 느낀다. 생각보다 노래를 다 잘 부른다. 옆 파트로 끌려가 자기 파트를 잃어버리기 일쑤인데, 애써 노력하는 모습들이 고맙다. 그리고 학생들이 준비했던 독창을 선보이고 어떤 부모는 운다. 노래가사에 울고, 아이의 모습에도 운다. 그 심정이 짐작이 간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고녀석고녀석고녀석고녀석고녀석!! 고단해하는 아이들을 빨리 재우고 싶은데, 이건 나의 철칙인데,(어떤 경우에도 배고프게나 잠자는 걸 방해하지 말자) 쌤과 부모님을 재촉하여 지금의 마음을 나누고 마무리를 한다.
하루가 길었다. 그리고 즐겁고 무탈하게 마무리 되었다. 고맙다.
너도 애썼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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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동무상 - 김밥사건 - 너분숭이 방문공연, 해설 - 차에서 마음나눔 - 동백동산, 땟밤 줍기 - 점심 방주네 - 풍력단지 드라이브 - 세화바다, 해녀박물관 - 레일바이크- 흑돼지 오겹살 - 숙소 감정카드 - 힘내라 맑은물 배우고 중창 - 학생들 독창 공연 - 부르고 들은 소감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