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보 게 나 친 구 ! ! !
여보게나 친구 !
우리가 만난지 몇해인지 알겠나 50년대 후반에 까까머리 때 만났으니 햇 수로 몇해던가
세월이 이렇게 흘러 흘러 벌써 우리 나이 고희 벌써 칠십이 넘었으니 정말 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실감나는구려
여보게 친구여 !
그런데 자네와 난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가
더벅 머리에 고교 뺏지가 달린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는 신발은 남대문 시장에서 군화에다 까만 염색을 한 것을 그것도 발이 더 커지면 작을까봐 조금 큰 것으로 신고는 없는 폼 있는 폼 개 폼 잡고 다니지 않았던가
나팔 바지는 키가 훌쩍 자라는 바람에 바지에 밑단을 덧 대어 입혀 주시며 미안해 하시면서도 대견해 하시던 어머님의 눈 빛이며 그 얼굴이 오늘 따라 이 내 가슴을 저미게 하는구려
보릿 고개를 넘기기가 힘들다던 그 시절에 나는 보리 고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매일 매일 하루가 보리밥이라도 배 불리 먹었으면 하는 그 어린 마음 뿐이었으니 보리 고개를 넘긴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네 그려'
양 배추 떡 잎을 남의 밭에 가서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오시던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는 모성애의 강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네.
겉 보리에 양배추 떡잎을 잔뜩 넣어 끓여 주시던 그 죽을 장남이라는 특권(?)으로 누님들과 동생보다 조금이라도 더 주시려는 눈치라도 보이면 누님들과 동생에게선 불만 섞인 볼멘 소리가 지금도 귓 전을 때리는구려
엤 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일곱살 때 피난 나오던 생각이 불현듯이 나네구려
1951년 1.4 후퇴 때 기차 화물 칸 지붕 위에 타고 그처럼 쏟아지는 함박 눈을 그 날 이후로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 같네구려.
맏 아들인 나를 엄동설한에 얼어 죽지말라고 아버님 배 위에 감싸고 꼭 품어 주시던 아늑한 아버님의 체취가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네.
오갈 데 없는 피난민 처지에 집도 입을 옷도 먹을 것도 없는 막막한 타향살이 였지만 그래도 나는 불행하다거나 불편한 것을 못 느꼈으니 아마도 모두가 그렇게 그런 처지에 목숨을 연명하기에도 급급한 시절이었으니 부러워할 대상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구려.
이런 환경에서 유소년 시절을 거쳐 자네들을 만난 것이 십대 중반 즈음으로 날으는 새도 잡을 수 있다는 맹랑한 꿈과 패기 하나로 그 어렵디 어려운 시절에도 막연한 희망을 갖고 살아 왔는지도 모르겠네.
돌도 소화시킬 수 있는 왕성한 식욕이었지만 굶주려 항상 배가 고프고 애궂은 수도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곤 하기를 밥 먹듯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중에도 괜찮은 집안의 친구 한 녀석은 항상 점심 때 도시락을 열면 하아얀 쌀밥에 노오란 계란 후라이 한 것을 위에 덮어서 싸 오던 그 친구의 쌀밥이 어찌나 먹고 싶고 부러웠는지 지금도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네.
어쩌다 어머님이 싸 주신 양은 도시락엔 쌀은 찾아 볼 수 없고 항상 보리밥과 깍뚜기가 어우러져 김치 국물이 책과 가방을 적시던 생각이며 남이 볼새라 한 쪽은 도시락 뚜껑으로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채 허겁 지겁 먹던 그 애잔함이 또 이 가슴을 휘어 젖고 있네 그려.
친구여!
그래도 배 고픔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더욱 참기 힘들고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것은 월사금을 못 냈다고 출석도 안 불러주며 집에 가서 월사금을 가져오라며 돌려 보낼 때의 선생님이 얼마나 서럽고 미웠는지 모르겠네.
집에 가 봐야 돈이 있을리 없고 괜한 부모님만 더 가슴 아프게 할 것 같아서 장충단 공원과 남산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다가 저녁 늦게 가방 들고 태연히 학교에 다녀 왔노라고 할 때의 그 처참한 마음은 지금도 서러워 눈물이 나려 하는구려 그레.
어느 날 부터인가 보름 달만 뜨면 휘영청 밝은 달과 수 없이 약속에 약속을 하곤 했지 않았겠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반드시 장학금을 탈 것이라 맹세에 맹세를 수 없이도 했던 기억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버렸네그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오늘 여기까지 왔는데 요즘 친구들 그대들은 정녕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그 토록 아들 딸 자식들 위해 온 몸 불사르며 밤 낮으로 뛰며 내 자식에겐 절대로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게 해 주겠노라 다짐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춘을 불사르다 보니 우리 어느새 이 곳 까지 온 것이 아니 겠는가.
지금은 자식들 모두 공부 시키고 결혼으로 한 가정을 이루고 그 자식들이 또 자녀들을 낳아 우리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녀석들을 품에 안겨 주었으니 정녕 그대들 우리 세대들은 행복하지 아니 하겠나.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용돈도 매달 푸짐히 줄 것이며, 아프다면 얼른 모시고 유명한 대학 병원에도 모시고 가서 건강 검진이며 검사란 검사는 모두 받게하고, 몸에 좋다는 영양제와 건강 식품도 떨어질새라 며느리가 사다가 바칠 것이고, 수시로 국내 여행뿐 아니라 해외 여행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보내 주니 어디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부 전화도 매일 자식들은 물론이며 사위 며느리가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으로 해대니 귀찮을 정도가 아니겠나.
모두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자가 붙은 직업과 유수한 공기업의 간부로 근무하는 자식들이 있으니 목에 힘 잔뜩 주고 어깨를 활짝 젖히고 뽐내며 살기만 하면 되는 세월이거늘, 이제 세상 부러울건 없으며 오로지 내 건강만 신경 쓰고 맛 있는 맛집일랑 모두 섭렵하고 있으니 얼마나 호강을 하며 살고 있는가
이번 주말에도 손주 녀석들 데리고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동해안에 가서 맛있는 음식 사주겠노라는 며느리의 전화가 왔으니 나와 우리들의 세대는 정녕 복에 겨운 사람임에 틀림 없지 않은가.
" 여보 ! 아직 안 일어 나고 뭐하고 있는거야 ! 오늘 재활용 쓰레기 갖다 내 놓는 날인데 늦잠 자면 어떻게 해 ! 밥먹고 빨리 약국에 나가야지 , 어서 후딱 일어나야지 ! "
아내의 볼 터지는 앙칼진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아직도 꿈 속에서 헤매느라 오늘도 늦 잠을 자고 있었네 그려.
사랑하는 친구여 !
인생은 일장 춘몽 꿈이라 하지 아니 하던가
"人間 一世 如夢中" 이라고 이제는 자네나 나나 우리 모든 시름일랑 접어 버리고 오늘 밤도 흐뭇하고 행복한 꿈이라도 꾸어 봄이 어떠 하겠나 .
여보게 친구 !
우리 인간들의 生老病死 태여나서 병들고 늙어 죽는 것이 어찌 우리 뜻대로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인간사가 너무 허무하고 덧없음을 느끼곤 한다네. 우리 주위를 말 없이 훌쩍 떠나간 벗이 어디 한 둘이겠냐만, 며칠 전에 한 녀석이 간암 말기에다 간경변이 겹치고 출혈이 심하여 응급차에 실려 갔다네.
평소에 큰 소리 잘 치고 술도 매일 마시며 건강이라면 자부하던 친구가 이젠 가망이 없으니 그냥 집에 가서 쉬라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었노라고 남 얘기 하듯 내 뱉는 소리에 뒷 통수를 무언가에 얻어 맞은 것처럼 한 동안 멍하니 말을 못했다네. 한 마디 위로의 말도 그 무엇이 그 친구를 위로해 줄수 있겠나.
자네와 나 우리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 할 미물(微物)이거늘 오히려 담담하게 다가오는 저 먼 곳의 세계를 편안하게 받아 들여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울런지도 모르겠네 그려.
친구여 !
부디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고 혹여나 자식들이 전화 한 통화 아니하고 섭섭한 말을 하더라도 그냥 웃음으로 넘기고 그리 마음 쓰지 말게나.
더구나 몸이 불편하고 힘 들더라도 털고 일어나야 되네. 절대로 들어 누울 생각일랑 말고 이번 일요일도 다음 일요일도 함께 산행하면서 허튼 소리도 해대고 자식 녀석들 없는 자랑 있는 자랑 실컷 떠들어 가며 한잔 함이 어떠하리요.
이것이 바로 자네와 나 천년지기 친구가 아니겠나.
" 친구야 우리 우정의 잔을 잔을 잔을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하자 ! 건배 ! 건배 ! 건배 ! 건빼 ! 완썃 !!! "
2014년 9월 18일
청원 약국에서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