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도롱뇽을 찾아본다. 불현듯 애들과의 옛날 일이 생각나서다. 설핏 풍기는 이미지가 한국의 에니메이션 영화(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주인공을 많이 닮았다. 도롱뇽도 둥근 머리와 돌출된 똥그란 눈만 놓고 보면, 둘리처럼 깜찍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악동으로 보이지 않는가.
나는 주말이면 집 뒤에 있는 구덕산 기상관측소까지 산행을 즐겨 한다. 내 고향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서면, 어릴 때 살던 집 마당에서 머리에 수건을 덮어쓰고 분주히 움직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가 떠난 지도 벌써 28년째로 접어들었다.
“선경아! 어이구, 여기가 어디지?”
어머니는 한밤중에 갑자기 비명과 같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어머니, 저희 집입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진정하세요.’
그리고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똥 귀저귀 갈아 끼우며 키운 자식들이 여섯이나 되건만 마지막 임종 때는 아무도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중병을 달고 살았다. 그중에서도 심장비대증이 제일 심각한 지병으로 제대로 눕지를 못했다. 한 방에 같이 있기가 고통스럽다는 아버지의 하소연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지냈다. 그런 아버지도 외로움에 1년을 못 버티고 결국 어머니 곁으로 떠났다.
형제들이 한식 일이 낀 주말에 시골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들렸을 때다. 초등학생 아들이 산소 근방 논두렁에서 희뿌옇고 순대처럼 생긴 젤리 형태의 도롱뇽 알을 주워서 나에게 가져왔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집에서 키우고 싶다고 애원하는 데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부화 되고 다 빠져나간 허물 덩어리를 가져와서 그런지 수족관에 넣어둔 알에서 딱 한 마리만 깨어났다. 얼마 후 다리가 나고 곧바로 우리 집의 귀염둥이 ‘도롱이’가 되었다.
휴일을 맞아 세 들어 살고있는 집 계단에서 화분을 손보고 있을 때였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내미가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하려고 생기발랄한 도롱이를 바깥나들이 시켰다.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원주인인 아들이 근처에 있어 그냥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딸내미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손바닥 위에서 한참을 어르다가, 아차! 하는 사이에 도롱이를 한여름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 내려놓고 말았다.
감색의 매끄럽고 얇은 피부를 가진 도롱이는 필사적이었다. 한쪽 다리를 들고, 또 두 다리를 동시에 들다가, 나중에는 네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꼭<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목도리도마뱀처럼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들이 긴급 구조에 나섰으나 이미 온몸에 입은 화상으로 빈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다시 수족관에 넣고 회생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도롱이는 끝내 유명을 달리하였다. 장례 처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화장지에 곱게 싸서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 뒷산에 묻어줬었다.
그런데 왜 도롱뇽을 공룡처럼 ‘룡’이라 하지 않고 ‘뇽’으로 칭할까? 나름대로의 생각 한 자락. 그것은 아무리 유생 시절이라고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설에 걸맞으려면, 자그만 산개구리 따위에게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표준 발음법 제19항에는 받침‘ㅁ, ㅇ’뒤에 연결되는 ‘ㄹ’은 [ㄴ]으로 발음한다는 규정이 있다. 도롱뇽을 ‘도롱룡’이라고 써도 음의 동화 현상에 의해 ‘도룡뇽’이라고 발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달리 소리 나는 대로 도롱뇽이라고 이름을 명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롱뇽이 옛말 ‘되룡(16c)’에서 되롱, 되롱룡(龍)(18c), 도롱룡을 거쳐 도롱뇽(20c)으로 변해 왔으니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는 아니다. 18세기에 잠시 ‘룡(龍)’으로 대접받은 사실을 놓친 것 외에는.
한편, 그리스어 사우루스(Saurus)는 ‘도마뱀’을 뜻한다. 둘리가 속한 ‘케라토사우루스’는 코에 잎사귀 같은 뿔이 달려 있고, 눈 위에 작은 두 개의 뿔이 돋아 있어 ‘뿔 있는 도마뱀’이 라는 뜻을 지녔단다.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긴 도롱뇽도 족보를 따져 보면, 한낱 미물이 아니라 공룡의 먼 사돈에 팔촌쯤은 되고도 남으리라.
평소와 같이 주말 산행을 하던 어느 날, 코스를 달리하여 다른 방향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 중간쯤에 이르니 습지 비슷하게 질척거리는 평지가 나타나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는 조그맣고 얕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웅덩이에는 개구리 알인지, 도롱뇽 알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알주머니가 여러 개, 떨어진 낙엽과 함께 담겨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러고 또 수 주일이 흘렀다. 낙엽 밑을 보니 꼭 올챙이 같은 도롱뇽 유생들이 수없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이후, 수시로 거기를 들락거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다녔어도 성장한 도롱뇽은 한 마리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몇 해간 지속되던 성장기 탐구는 난데없는 훼방꾼이 나타나 일단락되고 말았다. 근자에 그 습지가 온통 진흙밭이 된 것이다. 멧돼지가 진흙 목욕을 했는지 뒤집어져 있고, 옹달샘 같은 웅덩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즉에 유생 한 마리를 잡아 와서 수족관에 넣고 길렀으면, 딸내미가 속죄할 기회를 가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그 ‘도롱이’에게 남다른 마음을 가졌었다. 어머니 산소 근방에서 가져온 것이라, 꼭 어머니가 환생하여 우리 집에 온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 같은 것. 그래서 도롱이의 죽음을 룡(龍)이었던 본색(本色)을 찾아서 하늘나라로 날아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애달픈 마음을 담아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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