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0
‘우영우’에서 박원순 찾을 시간에 실력을 쌓으라
“성범죄자 박원순을 미화하는 드라마 우영우 시청 거부합니다.”
8월 4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12화가 방영된 후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 등에 이런 식의 제목이 달린 게시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우영우는 보험회사가 사내부부 중 아내에게만 사직을 강요했다는 원고 측 주장에 맞서야 한다. 우영우가 볼 때 본인이 변호해야 할 보험회사는 옳지 않다. 반면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편에 선, 돈 안 되고 승산 없는 싸움만 하는 여성 변호사는 마치 멸종된 양쯔강 돌고래처럼 멋진 사람이다. 이런 설정과 내용 전개를 접한 일부 시청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률이 하락한 이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말 그대로 화제작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어려운 사건들을 맡아 척척 해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여러 사안을 되짚어본다는 독특한 설정은 처음부터 기대와 우려를 자아냈다.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은 대단히 까다로운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표현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다른 배우들 역시 상당한 호연을 펼치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키웠다. 그러한 바탕 위에 현실에서 발생했던 사안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법정물이 넓은 시청자층의 흥미를 잡아끄는데 성공했다. 9화에서는 전국 15.8%(닐슨코리아)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기까지였다. 시청률 상승 추세는 10% 중반에서 멈췄고, 그 지점에서 정체된 채 종영을 맞이했다. 9화부터 내용과 전개에 호불호가 갈린 탓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9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사교육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해방’시킨다며 사실상 납치를 한 범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10화에서는 지적장애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다뤘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코믹한 터치가 가미된 힐링 법정 드라마를 기대하던 시청자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만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12화, 그 중에서도 원고 측 변호사인 류재숙(이봉련 분)의 캐릭터였다. 그는 옥상텃밭에서 야채를 길러 다른 여성 변호사 및 의뢰인들과 비빔밥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옥상에서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낭송한다. 극중 미르보험 해고 사건의 모델이 된 실제 사건이 1999년 농협 사내부부 해고소송이고, 류재숙의 여러 행동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연상시키니, 결국 드라마는 박원순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러한 반발 여론은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온갖 억측과 허황된 음모론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어려운 사건들을 맡아 척척 해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여러 사안을 되짚어본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 ENA
한번 불만의 물꼬가 터지자 논의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영우가 고래에 집착하는 것은 박원순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돌고래를 자연으로 방사했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둥, 우영우가 쓰레기를 주으며 달리기를 하는 이른바 ‘플로깅’을 하는 모습 역시 박원순과 무관하지 않다는 둥, 심지어 문지원 작가의 학력을 두고 ‘박원순이 만든 하자학교 출신이어서 그렇다’는 둥, 온갖 억측이 오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간 사람들도 있다. 2022년 현재 한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좌파 세력’이 쥐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온갖 요소가 모두 박원순 미화라는 일치된 목적의식을 지니고 투입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이나 드라마 리뷰 유튜브 등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장애아를 혼자 키우는 아버지(우영우의 아버지)부터, 부모의 뜻에 따르는 원치 않는 결혼 및 동성혼에 대한 이야기(2화),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3화) 등 석연치 않은 기분이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페미가 묻어 있다’는 식의 힐난을 퍼붓는 이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과연 그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사실관계부터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좌파 세력 음모론’은 대부분 허황된 소리다. 우선 박원순은 하자학교를 만들지 않았다. 또 박원순은 농협 사내부부 해고소송과 무관치 않지만 그리 큰 관련이 있지도 않다.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갔을 때,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이던 최병모 변호사를 비롯해 민변 여성위원회 변호사들이 공동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동물원 돌고래 방사, 쓰레기 줍기, 옥상텃밭 등이 박원순과 관련 있는 소재인 건 분명하다. 다만 그것은 박원순이 한국 시민운동의 초기 개척자로서 벌여놓은 사업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는 농협 사내부부 해고소송에서 박원순을 ‘연관 검색어’처럼 떠올릴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박원순은 선구적 인권변호사로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여러 사건과 다양한 방식으로 직간접적 관련을 맺었다. 물론 훗날 박원순은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른 후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식으로 도피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더럽히고 말았다. 허나 ‘인권변호사 박원순’의 생전 업적은 별개로 봐야 한다. 박원순이 개입된 사건을 100% 배제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분명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진보진영의 주요 아젠다를 여러 에피소드에 골고루 담고 있다. 그러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좌파 드라마냐, 우파 드라마냐’로 따져 묻는다면, ‘좌파’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좌파 드라마’라 비난하는 이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다. 설령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좌파 드라마’라 한들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좌파 드라마’, ‘페미 드라마’라며 손가락질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여론몰이를 하려 하는 이들이야말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감상 태도가 만연할수록 ‘좌파 드라마’는 더욱 많이 나오고 성공하게 될 것이며, 반대로 그들이 기대하는 ‘우파 드라마’는 점점 더 희귀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더 나아가 어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작법서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무언가를 원하는 주인공이 있다. 그 주인공의 욕구 달성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환경 등이 있다. 이를 극복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과정과 결과를 담으면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된다. 욕망, 난관, 성취.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비극부터 오늘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까지 인류가 만든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기본 공식이다.
공식만 외웠다고 수학 문제를 풀 수 없듯, 이야기의 공식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욕망하고 갈등하며 번민하고 해결해내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상상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그려낼 수 있어야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좌파 드라마’로 매도하는 분위기와 그것을 주도하는 목소리 속에서는 그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찾기 어렵다. 드라마에 나오는 특정 장면이나 사안을 파편적으로 떼어놓고, 자신들이 아는 몇몇 사건이나 상징 등에 끼워 맞춘 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야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런 수요층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넓은 관객층에게 호소력을 지니기 어려워 보인다. ‘좌파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은 관객에게 통할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 자신들의 사회 문제에 대한 여러 의제를 녹여 넣는다. 반면 ‘좌파 드라마’를 욕하는데 급급한 이들은 어떤가? 페미니즘은 잘못된 것이며 장애인에 대한 과도한 배려가 문제라는 둥 불평불만은 한가득하지만, 본인들의 세계관과 욕망을 보편적 대중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인물과 사건 속에 배치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경우를 도저히 떠올리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좌파 드라마’, ‘페미 드라마’를 비난하는 이들이 실은 전혀 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인물과 상호 관계, 더 나아가 사회상이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기계적이고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내미는데 머물고 만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에 나온 장면들. / ENA
보수에 유리하건 진보에 유리하건
지난 정권 시절부터 보수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흔히 하는 불평이 있다. 문화예술계의 패권은 이미 좌파가 꽉 쥐고 있기 때문에 좌파들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아니면 아예 제작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저 말이 사실로서 얼마나 옳고 그른지 따지는 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논점이 있다. 소위 ‘좌파 콘텐츠’가 아닌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가 묻는다면, 충분할 만큼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계 좌파 헤게모니’를 불평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보수적 관점에 입각해 만들어졌음에도 재미있기 때문에 보게 되는 이야기’는 2000년대 이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는 보수적 성향을 지닌 창작자들이 문화계에서 인위적으로 배제당해 벌어진 일이라기보다,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이들의 창작자로서의 실력 저하로 인해 벌어지는 일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드라마의 거장인 김수현 작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랑이 뭐길래’로 대표되는 그의 홈드라마는, 물론 중간 중간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진보적인 관점을 투입하고 포용하였지만, 결국은 가족과 화합을 강조한다. 오늘날 보수적 시청자들이 ‘좌파적이지만 재미있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채널을 돌리지 못하듯, 당시에는 진보적 시청자들도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만 안 볼 수는 없다’면서 ‘사랑이 뭐길래’에 빠져들었다.
작품에 담기는 정치적 메시지가 보수에 유리하건 진보에 유리하건, 모든 이야기는 창작자가 인간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된다. 인간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꿈꾸기. 이것이야말로 드라마의 성패 뿐 아니라 정치적 싸움의 승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노정태 /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신동아 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