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피프티피프티가 차트 기록을 세운다고 난리입니다. 하지만 무슨 기록이 대체 어느 정돈지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딱 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컨대, 돈 만 원은 어떨까요? 그게 어느 정도 가치인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걸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묶어서 계산해 구매력을 측정하거나, 환율을 이용해 타국의 기축통화로 가치를 환산해 볼 수 있습니다.
차트의 순위를 모아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수치로 분석해 내는 건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차트가 다른 어떤 차트보다 보다 중요하고 영향력이 높다 정도는 쉽게 파악해 낼 수가 있습니다. 한터나 써클 같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래 세 가지가 특히 중요합니다.
Billboard Hot 100 (일명 빌보드 핫 백)
UK Official Singles Chart (영국 오피셜 차트)
Spotify Global/US Chart (스포티파이 글로벌 및 미국 차트)
(1) 먼저 빌보드가 중요하다, 라는 점은 웬만한 분들께서 다 아실 겁니다. 하지만 빌보드엔 차트 종류가 천 개가 넘으며, 어떤 그룹은 '올라가기 쉬운데다 중요하지도 않은 차트'에서의 성적을 "빌보드"라는 이름과 함께 홍보한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실까요? 이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메인차트인 빌보드 핫 100에서의 성취가 외려 부정되지 않을까요?
빌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싱글 메인차트인 빌보드 핫 100과 앨범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 그리고 비교적 새 싱글차트인 Global 200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것 같은데 장르별 국가별은 물론, 별갖 차트가 다 있습니다. 비회원은 그중 일부만 접근 가능한데 이런 것들은 모조리 내버려 두겠습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글로벌 200은 음반 판매량이 기이하게 부푼 현 K-Pop 피지컬 음반 시장을 꽤나 열심히 반영하고 있어, 대형 기획사의 한국 그룹들도 쉽게 올라갔다가 내려가곤 합니다. 곡 자체의 인기보다는 인지도가, 곡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팬들의 구매력이 훨씬 크게 반영됩니다. 그렇다면 이게 국내 차트와 다를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는 빌보드라는 이름 빼곤 불투명한 글로벌 200보다 ‘음반 초동 판매량’이라는 훨씬 더 명확하고 투명한 지표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으로선 초동 판매량이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가 없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싱글 차트에 집중할 것입니다.
(2) 영국의 음악 시장으로서의 규모나 선도하는 역할, 그리고 희한할 정도로 K-Pop이 쉽게 스며들지 않는 영어권 국가 등의 특징은 물론이고, 영국 오피셜 차트의 권위를 생각하면 두 번째로 꼽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콜라보를 제외하면 오피셜 차트 20위 내에 든 한국 아티스트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딱 둘뿐이었습니다: 싸이와 BTS. 하지만 이제 핍티핍티가 추가되었죠.
(3) 마지막으로는 세계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갖고 있고 애플 뮤직의 두 배 이상 규모인 스포티파이의 차트입니다. 당연히 그중에서도 글로벌 차트가 중요한데, 미국 차트 또한 중요합니다. 동남아권에서 성공한 그룹은 많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시장인 미국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한 곡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부분이 팬덤의 힘으로 높은 순위로 데뷔했다가 순식간에 밀려납니다. 방탄소년단의 곡 상당수조차 비슷한 경로를 따르죠.
2. 스포티파이 글로벌 일간 차트 추이
오늘은 그중에서 스포티파이 일간 차트 추이만 살펴 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핖 글이 이 주제였기 때문인데요, 그 글을 대충 발췌해서 긁어온 뒤 수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선 비교할 곡을 선정하기 위해 스포티파이 한국 일간 차트에서 최근에 발표된 곡을 위주로, 높은 순서대로 8곡을 뽑았습니다. 아티스트당 하나만 골랐습니다.
르세라핌 - UNFORGIVEN
아이브 - I AM
지민 (of BTS) - Like Crazy
세븐틴 - Super (손오공)
뉴진스 - OMG
피프티피프티 - Cupid
지수 (of BLACKPINK) - FLOWER
슈가 (of BTS) - Haegeum (해금)
음반 초동 판매량으로 세계 신기록을 찍은 그룹도 있고, 초대형 기획사 소속 그룹도 있고, BTS도 보입니다.
아래 표는 현재 절대시간 기준의 표 (ⓐ)와 차트인 후의 추이를 볼 수 있는 표 (ⓑ) 두 가지입니다. TOP 10에 든 경우는 색칠했습니다.
쟁쟁한 상대들이고, 발표된 지 오래된 곡이라는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Cupid.
차트인 후 1일, 11일, …, 51일의 순위를 나타낸 표.
지민의 40위*는 41일차가 아니라 40일차라 실제론 조금 더 낮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븐틴의 80위**는 11일차가 아니라 9일차라서 11일차 순위는 더 낮을 가능성이 살짝 큽니다.
뉴진스의 OMG (혹은 Ditto)가 살짝 특이한 케이스로 롱런 중인데, 이 곡과 Cupid의 글로벌 주간 차트 순위 기록을 잠시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표의 결론은 '최근에 나온 곡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다'입니다. 그 상대가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멤버일지라도,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라는 말이죠.
3. 스포티파이 미국 일간 차트 추이
미국차트에서는 어떨까요? 더 압도적입니다. 지금 골라온 곡으로는 표를 구성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5월 4일 기준으로는 이틀 전인 2일자 차트가 최신인데, 미국 차트 100위 안에 있는 곡이 피프티피프티의 Cupid뿐입니다. 말이 돼?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어떻게 됐는데? 이미 차트아웃됐습니다.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곡인데도요.
뉴진스의 OMG와 Cupid의 미국 주간 차트 순위 기록을 잠시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간으로는 5월 2일 기준 177위이니 곧 차트아웃될 듯합니다.
그래서 역대 한국 곡 중 가장 좋은 차트 성적을 보인 곡과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럼 딱 둘이 나옵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은 피크 순위나 차트인 기간 측면에서 확실히 압도적이지만, 블랙핑크와는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고 보입니다. 예컨대 팬덤 화력이 센 블랙핑크는 피크 순위가 높은 편인데, 이와 큰 상관관계를 갖는 일간 스트리밍 횟수는 Pink Venom이 103.9만 회, Shut Down이 103.7만 회입니다. Cupid는 어떨까요? 오늘자로 최고 기록을 다시 경신해 102.4만 회입니다. 어제(5월 1일자 차트)도 새 기록이었는데 그땐 100.8만 회, 그전까지의 기록은 97.5만 회로 이 역시 최근인 4월 29일자 기록입니다.
그래서 블랙핑크의 가장 성적이 좋았던 두 곡과 비교를 해 봤습니다. 연빨강은 차트인 후 Cupid의 일간 미국 차트 순위입니다. 노랑과 초록은 각각 Pink Venom과 Shut Down의 것이죠. 진한 빨강은 일간 글로벌 차트에서 첫 6위 (당시 오랫동안의 피크)를 기록한 뒤의 순위를 따로 떼어 표기한 것입니다. 너무 낮은 순위에서 출발했으니 오래 차트인하는 게 아니냐는 핑계 섞인 푸념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추가로 넣었습니다.
Shut Down이나 Pink Venom은 굉장히 높은 순위에서 출발했지만 50일도 채 되지 않아 차트에서 사라졌습니다. TOP 100을 기준으로 하면 더 일찍 사라집니다. Pink Venom이 차트에서 사라진 그 순간 핍티핍티의 Cupid는 이틀 연속으로 피크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람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음악성이나 추이나, K-Pop이라는 범주에 걸맞은 걸 찾기가 차라리 더 어려울 정도죠. 단순히 K-Pop의 성취일까요? 혹자의 말대로 중소돌의 기적이라는 나이브한 말로 표상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한국 대중음악사에 획을 몇 십 개는 그을 사건입니다. 차트파괴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완전한 아웃라이어입니다.
가장 성적이 좋다던 게 BTS와 블랙핑크라고 했었죠? 그런데 블랙핑크보다 성적이 좋다면 이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죠?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겁니다.
사실 저는 4월 초순까지만 해도 아이돌 음악은 거의 듣질 않고 살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팬카페를 가입해서 이런 글을, 등업이 되기 전까진 블로그에 써 왔습니다. 엄청난 매력입니다.
첫댓글 대단한 분석인데요... 핍티 꽃길걸어요-👏
와우!! 글쓴분에게 감사를. 핍티에게 사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