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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노트06- 족보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창 9:28)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창 9:29)
창세기5장의 지내었고, 죽었더라가 나왔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창 5:1)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5장 족보의 기능과 의미
5장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노아로 연결한다.
창세후 제2세대인 창4장에서 아담-가인, 아벨, 셋 에노스 창조1-3세대만을 안다.
5장 족보를 연결하는데 4장 가인의 후손의 족보 17-18 낳았고 낳았고
셋의 후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4)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5)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창 5:6)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7)
창5장의 기록방식3개: 낳았다+지냈다+죽었다
창 9:28-29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창 9:28-29)
창5장의 연장이다. 그 사이에 노아의 전체 생애의 일을 삽입한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창5-10,11장 족보의 이야기이다.
족보의 이야기중에 6-8장 홍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0장에 족보중에 니므롯이야기
셈의 족보중에 11:1-9의 바벨사건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전체인 창5-11장은 족보이야기이다.
족보라는 기능을 신학적, 문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창5장 족보
창9장 노아족보
창10장 족보
창11:10 셈이야기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창5장이 셋의 족보인 것처럼
가인이 장자인데 셋의 족보를 기록한다. 이와같이 창10장은 노아의 족보를 기록하는데 셈과 함과 야벳은 역대기1장3절과 같다.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된 후- 원어에는 없다.
노아가 오백살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오백살에 3아이를 낳았나?()
히브리어의 독특한 문학, 그때부터 낳았다라는 것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문법적으로 맞다.
노아가 500살 때 낳은 아이가 있는 것이다. 500살부터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500살 때 낳은 아들은 누구인가?
셈이 아닌 증거 1)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1(둘째 아들, rsv 막내아들, 함은 맏아들은 아니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창 9:24)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창 11:10)
셈100살:홍수 후 2년이다.
노아가 500살에 낳은 아들, 홍수가 시작될 때 셈은 2년,
노아 600세에 창 7:11 홍수가 시작,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 7:11)
함은 맏이가 아니다.
* 맏아들은 야벳, 셈, 함의 순서이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창 10:21)
셈은 야벳의 형이라니(?) 원문에서는 형- 형제의 개념이다. 우리에게 형은 순서의 개념이지만 원문에는 형제라는 의미이다.
성경역본을 비교해야하는 이유이다. 히)원문에는 성경번역본5개를 보면 원문이해와 같다.
창 5:32 출생순서로 하면 아담이 셋을 낳고 하지만,
* 야벳을 낳고, 셈이 신앙적 영적 장자이기 때문에 셈을 제일 먼저 놓았구나!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2)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창 10:6)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창 10:21)
표현의 차이를 살펴라. 똑 같은 정보를 제공하면 차이를 예민하게 관찰하라. 강해설교, 주석설교가 시작되고, 의미가 도출된다.
10:21에서 셈의 아들은? 이라고 안하고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에벨전에 아들이 있는데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1-25)
세상이 나뉘었음이라-창11장 바벨탑사건이다.
11:1-9절의 바벨사건은 10장의 족보가 끝난 다음의 사건이 아니고 에벨의 후손인 벨렉때의 일을 일단 족보기록을 끝내고, 벨렉시대 때 어떻게 나뉘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게 바벨사건이다.
10:25 나뉘었음을 설명하는 기사가 창11장 바벨사건이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세아들의 순서와 아들의 순서의 차이
1) 세아들: 셈과 함과 야벳
2) 아들의 순서: 야벳, 함 셈
123-321순서이다. 무자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교차댓구구조를 이루려는 중심축이 있어야 한다.
역순일 때는 바깥이 가장 중요하다. 셈함야벳- 야벳의 후손은
11:10- 셈의 족보
셈의 후예를 밝혀주는 이야기,
다시 족보를 기록해 준다.
미스라임-이집트의 히브리 발음이다.
붓-블레셋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 10:8)
기억해야할 3가지
니므롯을 설명하는 본문의 정보이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 10:8)
영걸-용사라(깁보르):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
부정적 의미:독재 군주의 의미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9)
여호와 앞에서-앞에서라는 전치사는 앞에서의 의미와 against 대적하여라는 의미도 있다.
1) 용사이다
2) 특이한 사냥군- 여호와를 대적하여/ 후에 니므롯같아
3) 시날 땅의 주인이었다. 시날의 헬라의 표기가 무엇인가?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창 10:10)
시날에서의 사건은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시날의 헬라어?
① 아간이 시날산 외투와 아이성공격 때
② 시날 바벨사건 – 11장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느므롯을 소개한다.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이었더라”(창 10:20)
<가나안 족속의 기원정보를 제공한다>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창 10:15-18)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창 10:21)
21절은 함의 아들은(7절)과 같이 셈의 아들은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무슨 이유로?
왜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라고 말했나?
에벨은 어떤 족속의 조상인가?
*에벨에서 히브리라는 말이 파생된다.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곳: 창 14장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창 14:13)
히브리: 문자적 의미- 강을 건너온 자. 갈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오르면
이전의 춘천댁, 서울댁이라고 하는 것처럼 강 건너 온 사람
창12장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결시킨다. 에벨(히브리)-셈
12장 건너갈 준비를 상기시킨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나뉜얘기 바벨이 11장에서 설명한다.
기록순서를 발생순서로 오해하면 안된다.
백성들이 나뉘어진 것은 벨렉시대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가인-아벨
창4장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창 4:25)
아담이 그 전에 아들을 낳았다면
셋이 아담의 영적 장자라면? 그 전의 아들은 가인과 같은 존재들이었다가 전재되어야 한다.
셋을 낳기전에 아들을 낳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충돌이 생긴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의미는?
창2장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왜 이곳에서 이름을 불렀더라는 의미는
4가지 신학적 해석
①셋의 후손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②셋의 후손이 본격적 예배 공적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③셋의 후손이 가인의 후손에게 여호와를 증거하기 시작했다.
④가인의 후손이 셋의 후손에게 여호와를 욕보이기 시작했다.
교재 122)부조 80 그때 셋의 후손에 의한 선교와 가인의 후손에 의한 모욕이 이루어 진 것이다. 가인과 아벨사이의 제사에 의한 대쟁투가 그의 후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4:26절이다.
창5장 셋의 후손이 얼마나 충성스럽게 신앙을 지켜왔는지에 대한 기록
창6장은 그렇게 긴세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지켜온 셋의 후손의 타락을 기록한다.
셋의 후손이 범죄하기 시작하고 타락하기 시작
그때 남은 자 6:8,9절에 언급된 노아이다.
그 노아에 대한 사역 6-9장
9장 끝에서 노아의 족보가 끝난다. 방주에 들어간 10장 , 노아의 족보가 시작된다.
그런데 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은 자손에게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10:25절 벨렉이야기가 나온다. 함에 의해서만 바벨 사건이 생긴 것이 아니라 셈의 후손 마저도 창5장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의 아름다운 것을 본 것처럼, 니므롯의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벨이다.
빛과 어둠의 싸움,
5장 빛의 후손‘
6장 빛의 후손의 타락
10장 셈의 후손, 함의 후손의 문제,
11장 함의 후손들도 함께 저지른 바벨사건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을 불러내시는 민족을 세우시는 한 사람, 아브라함의 이야기이다.
창 1-11 원역사가 왜 족보로 끝나는가? 너무나 조직적, 의도적이다. 철저한 의도가 나온다.
빛과 어둠의 대쟁투 사관으로 보아야 한다.
6-2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창 11:10)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 10:22)
엘람과 앗수르를 먼저 낳은 것 아니냐?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10장 1절에 홍수후에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셈과 함과 야벳의 순서도 출생순서가 아니다.
창10:22절을 방주안에 7식구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지 않았나(?)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백성이 나뉘었더라”(창 10:32)
11장
11:1-9은 11:25 나뉘었음> 어떻게 나뉘어졌는가하면 11장이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창 11:2)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창 11:2, 새번역)
“그런데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바빌로니아에 있는 한 평야에 이르러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창 11:2, 현대인)
온 땅: 모두가
시날: 니므롯의 땅에서
니므롯의 3가지 정보
셈의 후손이 함의 후손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날땅에서
나뉨은 벨렉시대인데, 현장은 함의 아들-구스이 아들에게서 이루어졌는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창 11:3)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건축은 돌하고 진흙으로 하는 거야, 돌하고 진흙으로 건축하는 사람들은 고대 히브리 독자들에게 그 당시의 이루어졌던 바벨건축양식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벽돌과 역청은 자연이 아니고 벽돌은 인간의 건축, 역청- 도로포장, 건축방법을 설명한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① 성과 대를 쌓아: 무엇이 중요한가? 어느 것이 부속품인가?
하늘에 닿게 하여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창 11:5)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 11:7)
창 1:27, 창 11:7, 사6:3 복수 우리가 나온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 11:8)
건축과정에는 “성과 대”- 그 작업이 중지되었을 때는 “성 쌓기를 ” 그쳤더라.
주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그 이름- 그 대명사의 선행사는 무엇인가? 성이다.
히)성은 여성이다. 그 (her name) 그 성의 이름은 , 오해의 여지가 전혀없다.
문법적으로 바벨탑 사건이 아니라 바벨성 사건이다. 바벨탑사건으로 너무 많이 알려졌기에 바벨탑사건으로 나오지만 이 도시는 ... 반복해서 도시 기능을 설명한다.
계14장 셋째천사의 기별,
계18장 또 다른 천사의 기별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둘째 천사가 외치는 무너진 성 바벨론의 의미가 정확해 진다. 이 성의 이름이 바벨이었다.
탑의 이름이 아니라 성의 이름이 바벨이다.
그 성의 이름을 사용해서 지은 나라가 바벨론이다.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단 1:1-2)
신 바벨론 제국이 있던 신당이 있던 곳이 바로 시날이란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신 바벨론,
단군 조선, 이씨 조선이 있다. 옛날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한다.
고대 바벨론, 신 바벨론을 구분하기 위해 뒤쪽에다 신을 붙인다.
함무라비시대에 바벨, 바벨성에서부터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바벨 – 최초 전재군주의 통치에 의해 시작된다.
바벨론 – 느부갓네살 절대군주가 나오는 것처럼, 계시록에도 바벨론 정치체제임을 발견하게 된다.
교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독자들로 하여금 바벨론 제국이 어떤 체제임을 연상하게 한다.
바벨탑이라고 하면 제사제도 기능으로 제한된다.
바벨성이라야 정치체제이다.
교재169) “그들은 이 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안에 세계의 경이가 될 굉장히 높은 탑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업은 백성들이 각지에 널리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계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서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도록 지시하셨었다. 그러나 이 바벨탑 건설자들은 그들의 공동 사회를 한 단체로 연합시켜서 결국 온 세계를 포함할 한 왕국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면 그들의 도시는 세계적 제국의 수도가 될 것이며, 그 영광은 온 세계의 칭찬과 존경을 자아낼 것이며 건설자들은 명성을 얻을 것이었다. 하늘에까지 닿을 굉장한 탑은 이 탑 건설자들의 명성을 후대에 길이 보존시키면서, 저들의 능력과 지혜의 기념비로써 서 있게 하고자 의도되었다. ”(부조, 118-119)
바벨사건을 한 정치적 나라 건립의 의미, 왕국으로 표현한다.
계시록의 큰 바벨론의 의미가 여기서 기원된다.
그 근원으로 올라가서 바벨사건의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
11:10 – 연결하는 다리이다.
원역사와 부조사의 연결다리
12-23장 아브라함 이야기
12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 300년밖에 안된다.
가인과 아벨, 셋의 후손, 의 타락, 노아의 후손, 함의 후손, 타락, 아브라함, 민족의 형성
마1장, 눅3장의 족보의 뿌리- 창11:10-
셈의 후손이 함의 후손의 영향을 받았다.
데라가 셈의 후예면, 셋-노아, 셈에서 데라까지 왔다면 신앙적 장자의 족보여야 한다.
노아의 아들 셈의 아들 이어져 가는데, 함에서 문제가 생긴다.
함은 물리적 구원은 받았으나 영적 구원은 받지 못했다. 홍수에서는 구원받았으나 영혼의 구원은 받지 못했다.
창10:9 함의 부도덕
방주에 탔던 함을 통해, 노아의 후손이 망가진다. 교회에 왔다고 물리적 구원으로 영적 구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데라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 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 24:2)
여호수아의 마지막설교이다.
23장 24장 마지막 설교이다.
데라는 우상숭배자였다.
셈의 후손인데 우상숭배자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자인 아버지에게서 참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아들이었다.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11:25)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창 11:26, 개정)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창 11:27, 개정)
창5:32 된후를 넣었으면 여기도 된후를 넣어야 하는데 여기는 안넣었다.
70세 이후에 낳았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 11:32, 개정)
70살에 아브라함을 낳았다면 데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205-70=135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개정)
어떤 설교: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고, 215세에 죽었다. 이때 135세인데, 12:4 75세, 데라가 죽은 것은 아브라함의 뒤로 옮겨야 합니다.(?)
70살에 낳은 아들이 아브라함이 아니다. 또 다른 정보가 성경에 없다. 그러나 추론이 가능하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창 11:27, 개정)
조카 롯을 데리고 간 것으로 보아 큰 형의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90%
하란이 데라보다 먼저 죽음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창 11:29, 개정)
사래는 누이동생, 하란이 딸도 낳고, 아들을 낳음, 하란이 맏아들일 것이다.
아브라함이 먼저 기록된 것은 영적장자이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창 11:30, 개정)
*소설에서 이런 것을 뭐라고 표현하나? 암시, 아주 의도적인지 세밀한지, 독자들로 하여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잃어야 할지를 장치를 준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개정)
히11장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개정)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개정)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개정)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개정)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9, 개정)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히 11:8-9, 개정)
아브라함은 믿음을 세 번 언급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 11:17, 개정)
믿음을 3번 설명하는 유일한 사람
8,9 땅에 대한 믿음
17 아들에 대한 믿음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개정)
믿음으로 노아는 그 집을 구원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였다.
120년간 침례자 한명도 없었다. 자기 식구만 구원했다. 세상을 정죄했다. 실패가 아니라 세상이 철저하게 악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였다.
히11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 땅+아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개정)
약속의 땅으로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이란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가는 거야!(과연)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개정)
본문에 아브라함이 아니고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행위 주체가 데라이다.
갈데아 우르는 아브라함이 떠난 것이 아니고 데라가 떠난 것이다. 그래서 창12장 아브라함이 데라가 죽은 다음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는구나?(?) 본문간 주석 – 스데반의 내용과 충돌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행 7:2-3, 개정)
스데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시점을 정확히 말한다.
메소보다미아=시날의 헬라어이다.
본문간주석: 창11:31절의 해석이다.
왜 스데반은 데라가 떠났다고 하는데, 왜 여호수아는 왜 데라가 우상숭배라고 하는가?
그들이 이해한 창11:31절의 의미는? 데라가 아브라함을 떠나라고 해도, 그들은 알았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심을 받고 떠났다.
11:31절은 왜 이렇게 표현했나?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창 11:27, 개정)
데라 중심의 족보기록이다. 데라가 가장이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데리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심으로 기록한다. 본문간 주석을 해야하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데라를 모시고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개정)
완전해 지면 침례를 받을게요.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을 갈대아 우르에서 주셨다.
본토를 떠났지만 친척을 떠나지 못했다. 롯을 데리고 떠났다. 형 하란, 믿음의 순종 행렬이 어려워진다.
아버지 버리지 못하고 하란=지체의 의미, 하란에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지체한다.
창 12:1은 데라가 죽은 후에 다시 말씀하셨다면 , 또 한번 명령하신 것인가?
종합적으로 주석해야만 하는 것을 화잇은 또 다시 명령하셨다.
조카 때문에 안 떠난 것이 아니다. 못 버려두지만 떠났다. 부족하지만 받아야 한다.
방향은 뚜렷하다. 출발해야한다. 모든 게 완전해서 갈 사람은 없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개정)
방향이 분명하다. 일단 떠나고 보자가 아니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개정)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개정)
갈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의미는? 어딘지도 모르고 떠났다고 하면 안된다.
가나안 땅으로 가야할 곳은 알았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히 11:8, 공동)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고 떠났다.
교재 174)
“그는 약속의 땅에 관하여 묻지 않았다. 곧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건강에 적합한지, 그리고 그 지방은 유쾌한 환경을 제공하며 재물을 쌓을 기회를 줄 것인지 묻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의 종은 순종해야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하나님께서 그로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었다. ”(부조, 126)
교회를 옮길 때 전임자에게 사람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나는 새로운 땅으로 간다.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는 아나 어떤 곳인지 조건을 묻지 않았다. 모두가 다 오해하는 구절을 이렇게 설명해놓았는지 압도 된다.
본문을 읽다가 발견하는 기쁨을 얻어라.
학계에 논문을 쓸 때도 화잇의 설명을 싣는다.
예외없는 프레임은 아니다. 창4-5장 의인과 악인-창4-5장 비교에 머물러야 한다.
데라는 의인인가? 낳았더라.
창1-11장 대쟁투 의도적 조직적인 책이다.
시편 마지막 절 146-150편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난다. 끝 부분에 모여있다.
렌덤일까 의도일까?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글을 쓰는 사람은 학문이 높다. 모세를 포함해서 자기가 가진 학문적 지식을 충분히 발휘한다. 문학적 작품을 만든다.
단7장을 중심으로 교차댓구를 이룬다. 카이아즘 철저한문학적 기법이다. 성령은 사람의 사상을 감동, 표현방법도 함께 감동시키신다. 필요할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야! 시19, 시119편, 잠 37장 현숙한 여인은 알파벳구조, 답관체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