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가사의 해탈
維摩詰이 言하되 唯舍利弗이여 諸佛菩薩이 有解脫하니 名은 不可思議라 若菩薩이 住是解脫者는
以須彌之高廣으로 內芥子中하되 無所增減하고 須彌山王도 本相如故하며 而四天王과 忉利諸天이
不覺不知己之所入이로되唯應度者라사 乃見須彌가 入芥子中하나니 是名不可思議解脫法門이니라
유마힐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해탈이 있습니다. 이름은 불가사의(不可思議)입니다. 만약 보살이 이 해탈에 머무는 사람은 수미산과 같이 높고 넓은 것을 겨자씨에 넣더라도 더하거나 감하는 바가 없고 수미산도 본래의 모양이 예전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사천왕과 도리천과 같은 여러 천왕은 자신들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오직 꼭 제도 될 사람은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볼 것입니다. 이것이 이름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이라고 합니다.
강설 ; 세상사 자세히 뜯어보면 불가사의(不可思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작용이 불가사의하다. 사람의 몸도 훈련에 의해서 상상도 못할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역시 불가사의하다. 요즘은 정보가 발달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가사의한 일들을 다 알 수 있다.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사의하지만 한 사람이
만권의 책을 읽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손톱만 한 작은 칩 속에 수십만 권의 책이 들어가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한국에 앉아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불가사의하다. 모두가 불가사의해탈 법문이다.
又以四大海水로 入一毛孔하되 不嬈魚鼈黿鼉水性之屬하고 而彼大海도
本性如故하며 諸龍鬼神과 阿修羅等이 不覺不知己之所入하고 於此衆生도 亦無所嬈니라
또한, 사방의 큰 바닷물로써 한 모공에 넣어도 고기와 자라와 도롱뇽 악어와 같은
물의 권속들을 괴롭히지 않고 저 큰 바다도 본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온갖 용과 귀신과
아수라들이 자신이 모공에 들어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이곳의 중생도
또한 번거롭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강설 ; 필자가 이 자리에 앉아 1백 페이지의 글을 쓴 것을 천명 만 명 수억만 명이 복사해서 사용해도
내가 쓴 글은 조금도 손상이 있거나 잘못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동영상도 마찬가지로 수억만 명이 복사해 가도 조금도 줄어들거나 손상이 되지 않고
원본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큰 바닷물을 한 모공에 넣을 수 있는 것도
불가사의다. 왜 모든 것이 불가사의인가 하면 모든 존재의 이치가 본래로 그렇기 때문이다.
又舍利弗이여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斷取三千大千世界호대 如陶家輪하야 着右掌中하고 擲過恒沙世界之外어든 其中衆生은 不覺不知己之所往하며 又復還置本處하되 都不使人으로 有往來想하고 而此世界는 本相如故니라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3천대천세계를 끊어 가지기를 마치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물레를 돌리는 것과 같이 오른쪽 손바닥에 두고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 밖에다 던지는데 그 안에 있는
중생은 자신들이 멀리 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또다시 본래의 곳에 던져두어도
도무지 사람에게는 가고 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본래의 모습도 예와 같이 그대로입니다.
강설 ; 질그릇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흙덩이로 그릇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을 잘라서 버리기도
하고 더 가져다가 붙이기도 하는 일이 자유자재하다. 그래도 그 흙은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또 흙의 본성(本性)도 아무런 손상이 없다.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공간의 문제가 불가사의하다는 뜻이다.
又舍利弗이여 或有衆生이 樂久住世而可度者면 菩薩이 卽演七日하야 以爲一劫하야 令彼衆生으로 謂之一劫이라하며 或有衆生은 不樂久住而可度者면 菩薩이 卽促一劫하야 以爲七日하야 令彼衆生으로 謂之七日이니라
또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제도 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7일을 늘리어
1겁을 만들어 그 중생으로 하여금 1겁으로 여기게 합니다. 혹 어떤 중생은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지
않고 제도 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곧 1겁을 줄여서 7일이 되게 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7일로 여기게 합니다.
강설 ; 공간(空間)이 불가사의하듯이 시간의 문제도 역시 불가사의함을 밝혔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 필요에 따라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보살은 불가사의한 일을 다 나타내 보인다.
又舍利弗이여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以一切佛土嚴飾之事로 集在一國하야 示於衆生하며
又菩薩이 以一切佛土衆生으로 置之右掌하고 飛到十方하야 遍示一切하되 而不動本處니라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은 일체 불토에 장엄한 것을 한 나라에 모아두어
중생에게 보입니다. 또 보살이 일체 불토(佛土)의 중생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두고
온 시방을 날아다니며 일체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도 본래의 장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강설 ;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더라도 경전의 말씀은 마술과는 다르다.
마술은 눈속임으로 한순간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은
모든 존재가 이미 그와 같이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람에게서 가장 차별이 심한 문제가 안목이다. 한 가지 사실과 사물을 두고도
그 견해는 천차만별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은
먼지 하나와 지구 하나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깨달은 사람에게 왜 위와 같은 불가사의한 경지가 없겠는가.
又舍利弗이여 十方衆生의 供養諸佛之具를 菩薩이 於一毛孔에
皆令得見케하며 又十方國土에 所有日月星宿을 於一毛孔에 普使見之니라
또 사리불이여, 시방(十方) 중생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물건들을 보살이 한 모공(毛孔)에서
다 볼 수 있게 합니다. 또 시방 국토에 있는 모든 해와 달과 별들을 한 모공에서 다 볼 수 있게 합니다.
강설 ; 작은 눈동자에 큰 건물과 큰 산과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들과 저 멀리 있는 태양과 별들까지,
그리고 어둠과 밝음까지 모두가 들어오는 것도 알고 보면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又舍利弗이여 十方世界所有諸風을 菩薩이 悉能吸着口中하되 而身不損하고 外諸樹木도 亦不摧折하며 又十方世界劫盡燒時에 以一切火로 內於腹中하여 火事如故하되 而不爲害하며 又於下方으로 過恒河沙等諸佛世界하야 取一佛土하야 擧着上方을 過恒河沙無數世界하되 如持針鋒하야 擧一棗葉而無所嬈니라
또 사리불이여,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바람을 보살이 입속으로 다 빨아들여도 몸은 손상되지 않고
밖에 있는 온갖 나무들도 또한 꺾어지지 아니합니다. 또 시방세계가 겁(劫)이 다하여 불이 탈 때에
그 모든 불을 배속에 집어넣어도 불은 그대로며 몸을 해치지도 아니합니다. 또 하방으로 항하강의
모래 수(數)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한 나라를 취하여서 상방으로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가더라도 마치 바늘을 가지고 대추나무 잎을 하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전혀 번거롭지 아니합니다.
강설 ; 불가사의 해탈을 경전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소이(所以)다. 모든 이야기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들을 더욱 다른 차원의 안목으로 관찰한 것이다.
사실대로 시방세계의 모든 바람을 빨아들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서
원융무애(圓融無碍)하고
사사무애(事事無碍)하고
융통자재(融通自在)한 도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又舍利弗이여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能以神通으로 現作佛身하며 或現辟支佛身하며
或現聲聞身하며 或現帝釋身하며 或現梵王身하며 或現世主身하며 或現轉輪聖王身하며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은 능히 신통으로 부처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벽지불(辟支佛)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성문(聲聞)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제석(帝釋)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범왕(梵王)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세상 주인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몸을 나타냅니다.
강설 ; 그렇다. 제대로 된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의 처지에서 눈높이를 같이한다.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자기란 없다. 부처가 필요하면 부처도 되고 연각(緣覺)이 필요하면
연각이 되고 성문(聲聞)이 필요하면 성문이 된다. 어찌 그와 같은 성인(聖人)의 모습뿐이겠는가.
필요에 따라 지옥도 되고 아귀도 되고 아수라도 되고 축생도 된다. 그것이 보살다운 보살이다.
又十方世界에 所有衆聲의 上中下音을 皆能變之하야 令作佛聲하야 演出無常․苦․空․無我之音과
及十方諸佛所說種種之法하야 皆於其中에 普令得聞이니라 舍利弗이여 我今略說菩薩의
不可思議解脫之力이어니와 若廣說者인댄 窮劫不盡이니라
또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소리의 상, 중, 하의 음성을 다 능히 분별하여 부처님의 소리를 만들어
무상과 고와 공과 무아의 소리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시는 갖가지 법을 연출하여 다
그 가운데에서 널리 듣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 해탈의 힘을 간략하게
설하였습니다. 만약 자세히 설한다면 겁이 다할 때까지 설해도 끝이 없습니다.
강설 ; 위에서는 인격으로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량을 밝혔다.
여러 가지의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소리와 다양한 가르침을 다 들어
이해한다는 뜻이다.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이 이와 같은 능력뿐이겠는가.
미래의 세상이 다할 때까지 설명하더라도 다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