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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돈의 미술임용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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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소식 [도니의 합격하GO] 웃다! PASS! 8월 7강, 8강_ 영상미술용어_그 여름의 끝
dohnsohn 추천 0 조회 32 24.08.21 03:4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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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8.23 16:56

    첫댓글 김농은 양주팔괴(팔가)의 우두머리로 불릴 만큼 학식과 화풍에 대한 명성이 높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은 50세를 넘어서부터라고 하며, 그 전에는 서예가와 이론가였습니다. 전문화가의 형식주의적 잔재주 등을 배제하여, 깔끔하고 속되지 않은 독특한 개성이 명성을 이끌었죠. 김농의 화훼화는 평면성을 추구하고(기법 상으로는 양해의 감필법을 수용) 화제를 금석학에서 유래한(북위 해서체) 활자형의 서법을 고집하였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선 전위적인 근대성의 발현이었습니다. 그의 양식은 상해파의 오창석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는 지식인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홀로 시서화를 이루었습니다.

  • 작성자 24.08.23 16:54

    당시 18세기는 자유로운 시민정신이 싹트던 시기로 봉건적인 예법에서 벗어나 마음과 영혼을 표현하고자 했던 명대 서위(徐渭)의 개성해방 사상 등에 영향 을 받아 창조적인 정신이 팽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자본주의 맹아 현상이 대두되면서 경제가 점차 발전하여 염상들이 문화계의 새로운 후원자 층이 되었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외롭게 지내며 그의 그림을 알아 줄 부유한 염상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던 고독한 화가는 70살이 되던 해 8월을 끝으로 그가 그리던 선경에 입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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