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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추석에 먹는 떡은 거의 다 보름달 모양인데, 송편은 전통적인 추석 음식인데도 보름달을 닮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보름달을 닮은 월병을 먹는다. 이름 자체도 달떡이라는 뜻의 월병(月餠)이다. 일본은 음력 추석이 없지만 전통 추석 음식으로 쓰키미당코(月見團子)를 먹는다. 역시 달처럼 둥근 모양인 데다 이름도 달을 보며 먹는 둥근 떡이라는 의미다.
반면 우리가 먹는 송편은 보름달이 뜨는 추석에 먹는 떡인데도 둥근 달 모양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름도 달과는 전혀 관계없다. 솔잎으로 찐 떡이라는 의미에서 송편[松餠]이다. 혹자는 송편이 반달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근거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북이 이야기를 들었으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즉 거북이 등에 백제는 지는 달인 만월(滿月)이고 신라는 앞으로 보름달이 될 반월(半月)이라고 쓴 것에서 송편이 반달 모양이 됐다는 것이다.
송편은 추석에 먹는 떡인데도 왜 보름달과 전혀 닮지 않은 모양이고, 이름조차도 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걸까?
옛날 문헌을 찾아보면 송편에 관해 궁금한 부분이 또 생긴다. 송편은 전통적으로 추석에 먹는 떡이었을 것 같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옛날에도 추석에 송편을 먹었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추석 때보다는 다른 명절에 송편을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추석에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은 주로 근대 문헌에 보인다. 조선 후기인 1849년에 발간된 《동국세시기》에는 추석 때면 햇벼로 만든 햅쌀 송편을 먹는다고 나온다. 그리고 1925년에 발행된 《해동죽지》에도 추석이면 햅쌀로 송편을 빚는다고 적혀 있다. 한자로는 특별히 그냥 송편이 아니라 햅쌀로 빚은 송편이라는 뜻에서 ‘신송병(新松餠)’이라고 표기했다.
근대 문헌을 보면 추석 때 먹는 송편은 오려송편이다. 올벼[早稻]를 수확해서 빻은 햅쌀로 빚은 송편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송편은 다른 명절에도 먹지만 특별히 추석에는 올벼로 빚은 오려송편을 먹는다는 말이다.
실제 옛 문헌에는 추석이 아닌 다른 명절에 송편을 빚었다는 기록이 더 많다. 19세기 초반 무렵의 문집인 《추재집》에는 정월 대보름에 솔잎으로 찐 송편을 놓고 차례를 지낸다는 글이 있고, 《동국세시기》와 같은 무렵의 풍속서로 주로 한양의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에서도 2월 초하룻날 떡을 만드는데 콩으로 소를 넣고 솔잎을 겹겹이 쌓아 시루에 찐 후 농사일을 준비하는 노비에게 먹인다고 했다. 바로 노비송편이다. 사실, 추석 때 송편을 빚는다고 한 《동국세시기》에도 2월 초하룻날 빚는 송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광해군 때 팔도 음식을 기록한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는 송편을 봄에 먹는 떡이라고 했다. 봄 떡으로 쑥떡, 느티떡, 진달래화전과 함께 송편을 먹는다고 했지만 추석이 낀 가을에 송편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다.
영조 때의 문인 이의현은 세시 음식으로 정월에는 떡국, 대보름에는 약식을 먹으며 삼짇날에 송편을 먹는다고 했고 정약용도 봄에 송편을 빚는다는 시를 지었다. 인조 때 이식은 《택당집(澤堂集)》에 초파일에 송편을 준비한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의식을 기록한 《사례의》에도 5월 단오에 시루떡이나 송편을 만든다고 했으며 6월 유두절에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도 있다.
옛 기록을 보면 송편은 특별히 추석 때 빚어 먹는 떡이 아니라 정월부터 6월까지 명절을 비롯한 특별한 날에 빚던 떡이다. 송편을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서 굳이 햅쌀이 아니라도 조, 수수, 옥수수, 감자, 도토리 등도 가루로 만들어 송편을 빚었으니 햅쌀로 만드는 오려송편, 쌀 앙금으로 만드는 무리송편, 보리쌀로 빚는 보리송편 등 송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송편이 현대와 달리 계절에 관계없이 특별한 날이면 빚어 먹던 민족의 대표 떡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햅쌀을 거둔 추석 무렵이면 특별히 올벼로 오려송편을 빚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 현대에 들어 다른 명절은 의미가 퇴색되고 설날과 추석만 명절로 인정되고 있으니 송편이 특별히 추석 때 먹는 떡으로 기억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