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는 삼삼 오오 캠퍼스에 모여 카드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최초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딛은 80년대 중반엔 고스톱을 많이 쳤다.
서울 여의도 쌍마 빌딩 싸우나는 밤새 고스톱을 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가끔 입사 동기들 끼리 월급을 받으면 그곳에 모여 밤을 새워 고스톱을 치곤 했다.
그때 월급이 27만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털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다시 돌려 주곤 했다. 일부만 술값, 싸우나 값으로 제하고...
하긴 다들 20대 후반이고 대부분 총각이어서 월급 봉투를 가져다 줄 사람도 없었다.
한번은 고스톱은 많이 했으니 이번엔 룸쌀롱 이란 곳을 가기로 했다.
회사가 여의도에서 멀지 않았으니 다시 여의도에 있는 룸쌀롱을 갔다.
입사동기 5명 중에 딱 한명만 유부남 이었다.
그런데 이 유부남 친구는 와이프가 같이 따라온 것이 아닌가..?ㅋ
모두 짝을 맞춰 여자들이 앉았는데 이 친구 좌측엔 업소 아가씨, 우측엔 와이프...ㅠ
처음엔 와이프 눈치를 보더니 양주 폭탄 몇번 돌아가자 옆에 와이프가 있건 말건 파트너와 빙글 빙글...ㅋ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는 팩 토라져 룸을 나간다. 다들 술이 취해 헬렐레...ㅎㅎ
돈은 있고, 결혼은 안했으니 말리는 사람도 없고...그야말로 청춘의 황금기였다.
난 고스톱을 별로 안쳐봐서 내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고스톱은 5명에게 패를 돌리지만 실제론 3명만 칠 수 있고 2명은 죽거나 광을 팔아야 한다.
난 가능한 죽거나 광을 팔았다. 안 치는게 따는 거였으니...
나중엔 이 친구들이 2연사 금지법을 만들었다. 즉 연속해서 두번은 죽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난 패가 괜찮게 들어와도 이길 자신이 없어 그냥 죽곤 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쳐야 되는 때가 온다. 즉, 밀려서 치는 판이다.
그러면 어김 없이 대형 사고를 맞는다. 쓰리고에 피박,광박...ㅠㅠ
승률이 높을 땐 위험을 감수하고 고!! 를 불러야 함을 그 때 배웠다.
살아가면서 어차피 100퍼센트 승산이 있는 일은 없다.
위험이 있더라도 승산이 높을 때는 결단해야한다.
오늘도 돌아 본다. 혹시, 두려움 때문에 결단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지....
질병이나 죽음이란 2연사 금지법에 걸려서 밀려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첫댓글 그 당시 선생님들도 퇴근하지 않고 숙직실에 모여 고스톱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도 분위기 살리기 위해 참여할 때도 있었는데 2만원 잃고 나면 물러나곤 했습니다. 딸 때도 있었지만 그 돈 다 잃을 때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잃어주기도 했지요.추억 소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당시 고스톱은 그냥 국민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조금 있으니 컴퓨터 보급 되면서 서서히 컴퓨터 게임으로 자리를 옮겨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하 친구들과 가끔 고스톱을 친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쳤던 고스톱은 시기가 좋지 않던 80년 초에 그 유명한 전두환 고스톱, 이주일 고스톱으로 당시에 재미로 룰을 만들어 쳤는데 때로는 무서운 룰이 되서 재미가 아니라 큰 도박이 되기도 했었습니다.ㅜㅜ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아내가 짬짬이 배운 실력으로 친척들과 친선경기(?)를 할때 점수가 나면 무조건 고~ 합니다. 바가지가 있는지도 모르고 ~ㅋㅋㅋ
저도 전두환 고스톱 기억이 납니다. 자세한 룰은 기억 안 나는데, 하여간 그 패 들어오면 무식하게 피 한장씩 뺏어 왔던가...ㅎ 그래도 고스톱 시절엔 나름 낭만이 있었어요. 서로 웃고, 화내고..ㅎ
그 당시에 저를 보는 듯 합니다 ㅎ
광화문에 있던 직장 다닐때는 근처 사우나에서 , 용산 전자상가에서 장사할때는
칸막이 사무실에서 ~~
세븐 카드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나 이기자님,neweast님 다들 갑장이시네요 ㅋ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살았으니 경험한 것들도 비슷하겠지요. 그런데 용산 전자 상가에서 장사도 했었군요. 그럼 저하고 몇 번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노는 날만 되면 여의도 집에서 용산 전자 상가로 쪼르르 달려가서 뭐 새로운 전자기기 나왔나 살펴보고...아직도 디지털 카메라 100만 화소 신상품을 24 만원인가....사서 흥분해서 막 찍어 대던 기억이 납니다. ㅎ 요즘 아이들 장난감도 100만 화소 정도 할건데 말이죠. ㅎ
신혼 초
남편이 친구들과 고스톱 치느라 통행시간 넘겨 집에 오는 바람에 부부싸움 많이했어요
내 집에서 치는 날은 다른 댁에서 부부싸움이 났었겠죠?
정말 오래 전 살벌했던 기억입니다 ㅎㅎ
똥 쌍피로 바닥에 깔린 똥 광을 딱 쳤는데 뒷 패에서 조커가 나오고, 또 한번 뒷 패를 넘겼는데 비광이 나와 바닥에 깔린 비 쌍 피가 딱 붙어서 1타 6피에 2광을 획득했을 때의 짜릿함... 더구나 나머지 두 명은 피가 한 개도 없이 전전긍긍, 광박, 피박의 조짐이 보이고 있을 때 그 흐뭇한 기분..흐흐흐 집에 가기 싫죠.ㅋㅋ
우리 가족중에도 평생을 고스톱을 즐기다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명절이면, 저를 억지로 앉히시며 이렇게 재밌는것을 왜 안하냐고 어이없어 하시던 분들도 있었죠, 전 인건비도 안나오고 허리아퍼서, 몇번 사양했더니, 더이상 끼우려생각도 않하더군요. 그당시의 친목의 장으로 생각됩니다. 못먹어도 고, 38 광땡 ^^.
저도 전에 직장 동료 중에 상가 집은 한번도 안 빠지고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상가 집에 가면 어김 없이 고스톱 판이 벌어졌으니까요. 얼마나 고스톱을 좋아 했냐 하면 상대가 돈이 다 떨어지면 땄던 돈 돌려 주며 계속 치자고 애원을 했었죠. ㅎㅎ
고스탑 배울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 그러나 저희 어려선 따짜들이 치는
가보잡기, 섯다, 도리짓꼬땡은 아주 많이 7살 시절부터 했었죠. ^^
겨울엔 밖에서 다마치기와 딱지놀이가 힘들어서...따뜻한 친구집 골방에 들어가 화투로
다마 수천개가 왔다리 갔다리 했었죠. ㅎㅎ
80년대 때 한국 나가서 고스탑 할줄 모른다 했더니 이상한 눈으로들 쳐다 봤던
생각도 나구요.
섯다,도리짓고땡, 많이 들어본 단어네요. 80년대 들어선 고스톱이 거의 국민 두뇌 스포츠가 되었죠. ㅎ 저도 어릴 때 구슬치기 딱지 치기는 많이 했지만 이걸 화투로 따먹기 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조숙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