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4제(題) 외, 불가사의와의 등식 / 이원우
지하철 안, 오늘은 우리말 사전 대신 낡아빠진 <팝송> 책을 무르팍 위에 얹었다. 그런데 나는 이 고본을 신줏단지 모시는 것 이상으로 조심해서 다룬다. 22쪽까지는 떨어져 나갔고 그 다음이 Anything that's Part of You인데, 그 동안 가사와 멜로디, 박자를 익히느라(외느라) 무던히 애를 써 왔었다. 그런데 아직 완전하지 않다. 글쎄, 90% 정도?
나는 내 휴대폰 메모난에 상식 밖의 여러 가지를 입력시키고 다닌다. 백미로 꼽을 만한 것은 올드 팝송 가사다. 책이 없을 땐 그것만 들여다보아도 지하철 안에서의 한 시간쯤 후딱 지나간다. 하이눈의 주제가 Do not Forsake Me--, 번안 가요로 한때 인기를 누렸었던 칸초네 Casa Bianca, 앞서의 Anything---,등등이다. 녀석들은 이제나저제나 내가 시선을 던져주길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오늘도 책과 휴대폰을 번갈아 매만졌다. 도중에 허리가 몹시 굽은 어떤 할머니가 전동차에 오르는 것이었다. 아주 깨끗이 늙어가는 80대. 그런데 할머니는 옆의 아주머니에게 뭐라 이야기를 하는 눈치다. 주위가 워낙 왁자지껄해서 들릴 듯 말 듯한데, ‘나의 살던 고향은--’어쩌고저쩌고는 귀에 잡힌다. 난 할머니가 어느 노인 대학에서 배운 ‘고향의 봄’을 자랑하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면에 열차가 닿자 할머니는 내렸다. 나는 맞은편으로 아주머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고선 할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더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이 어디서든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몇 년 전 할아버지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려졌단다. 진단은 거의 회복 불능, 죽음만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니던 노인대학에서 배운 ‘고향의 봄’을 할머니가 수시로 불렀다.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할 수 없더라는 것. 이윽고 할아버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복되고 나서는 정작 할아버지가 ‘고향의 봄’을 잊어 버리더라나? 여기까지가 정훈교 시인의 혼사 때문에 해운대로 가면서 체험한 것이다. 내가 허구를 동원시키지 않았다는 근거로 해운대 행 지하철을 들먹였지만, 글쎄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歷史)도 해석을 하지 못하는 불가사의? 정답이 ‘노래’다. 그제 밀양 노인 대학에 다녀왔다. 대용식으로 점심 한 끼를 역 대합실에서 때우다가 친구를 만났다. 노인 학교에 수업하러 왔다니, 뜬금없이 밀양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평양에서 우세를 한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몇 년 전 어느 종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북한 방문에 시장과 의회 의장이 동행했다는 것부터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다르랴, 일행은 평양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모양인데, 그만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식당 종업원이 밀양 시장이라니 부탁한다며 ‘밀양 아리랑’을 한번 줄러 줄 수 없겠느냐는 주문을 하더라나? 그런데 아뿔싸, 밀양 시장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그런데 2절 가사가 아니 나와 얼버무렸다는 게 아닌가. 그 뒤를 북의 식당 종업원이 이어 불렀으니 역사의 시공을 뛰어넘은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식당 종업원이다. 북한에도 올바른 장삼이사가 있구나 싶어 웃을 수밖에. 그 얘길 듣고 나는 다시 단언했다. 불가사의가 있긴 하구나!
그래서였을까? 나는 노인 학생 120여 명 앞에서 여느 때보다 더 힘차게 밀양아리랑에 빠져 들었다. 지도안에도 밀양 아리랑 가사를 빼곡히 적어 뒀으니 그거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서투른 마술까지 동원해 가면서 나는 오히려 목이 멨다. 열광의 도가니, 모두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오후 늦게 백이성 문화원장을 만났다. 그가 이끄는 대로 문화원에 들러서 지역 문화 돌아가는 얘길 나누었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소식, 그와 내가 너무나 아끼고 존경하던 박복명 할머니가 세상을 떠셨다는 것이다. 전하는 그나 듣는 나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탄식이다, 오호 애재라!
할머니와의 인연은 백 원장이나 나 자신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내 노인 학교에서 서른 곡 정도의 민요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학생, 백 원장의 입장으로 보면 낙동 민속 예술제에서 구포 장타령을 간단없이 ‘퍼부을’ 수 있었던 기능 보유자. 백 원장이 그와 나를 장타령으로 한데 묶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전직 교장이자 현직 노인 학교장인 나와 그 노인 학교 수제자 아니 애제자인 박복명 할머니의 동반 출연이 이루어졌다면? 체통 어쩌고저쩌고 하여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늘썽늘썽한 짜임새는 아니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아쉬움을 느낀다.
박복명 할머니에 대한 보충(?) 설명? 그래 하자. 할머니는 일자 무식꾼이다. ‘여기 들어오면 죽는다’라고 상인방(上引枋)에 써 붙여도 거침없이 문을 열 노인이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설명하자. 할머니는 자기 이름 석 자도 아니 성(姓) 한 자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런 노인이 민요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잘 부른다는 사실, 그걸 무슨 재주로 설명한단 말인가? 방송에 출연한 국악인이 ‘새타령’을 부르면서, 쌩긋쌩긋 날아든다 어쩌고저쩌고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할머니는 쌍거쌍래(雙去雙來)라 한다. 내 입에서 불가사의란 말이 어찌 아니 튀어 나올 수 있겠는가? 가설극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의문이 풀리지만 이제 그 고백을 들을 수 없으니, 그리울수록 오히려 찜부럭이 나는 걸 어쩌랴. 불가사의다.
마지막, 넷째의 불가사의는 거인 K시인과의 음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흘러간 대중가요를 영어로 옮기려는 것이다. K시인과 며칠 전에도 ‘가거라 삼팔선’으로 둘이서 씨름했다.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Ah, ah, cannot you come/ due to the mountain in your way?)
이번 불가사의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창출한다. 대중가요에 영어 가사를 대입시켜 부르는 작업, 참 그 큰 매력에 흠뻑 젖어 보자는 뜻이다. 겨냥하는 시장(市場)? 아서라, 그것부터 염두에 두지 말자. 대신 K시인의 영역 ‘해운대 엘레지’에나 빠져 보자, 몇 시간이고 간에.
바야흐로 경쟁력의 시대이긴 한 모양이다. 노래, 그 자체가 불가사의라 규정짓자.
.60자씩 57행/200자 원고지 16장 남짓)
(2010년 10월 18일)
<창작 후기>
퇴고한다는 게 참 힘들다. 게을러서도 그렇지만, 자기 글에 자신이 없어 두려운 것이다. 졸고는 처음 23장이나 되어, 이걸 과연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느 행간에서 엉뚱한 교만이 튀어나올까 싶어 핀셋을 든 기분으로 여러 번 훑어보았다.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 그게 빌미가 되어 손가락질 받을까, 염려를 하면 뭣하나? 여전히 모자라는 글재주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중시킬 따름이다. 영어 가사를 적어 놓고 보니 그것 또한 내 눈에 거슬린다.
이원우 <한국 수필> 84년 천료/ <한글 문학> 97년 소설 등단/ 초등학교장 퇴임/ 부산 노래 19곡 취입/ 화합 콘서트 14회/ 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