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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번역) - 737[5 ~ 036](250923)
< 전 체 번 역 >
술을 마시다가 유기가 또 말했다. : “계모가 저를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선생께서 한말씀 하셔서 저를 좀 구해주십시오.”
공명 : “이 문제는 제가 감히 계책을 말씀드릴 일이 못됩니다.” 말을 마치자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하니
유기 : “선생께서 말씀 안 해주시면 그만이지 왜 곧 가시려 합니까?” 공명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기 : “제가 고서[古書]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선생께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공명을 인도하여 작은 다락으로 올라갔다.
공명 : “책이 어디에 있나요?”
유기가 울면서 절하며 말했다. : “계모가 저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저의 목숨이 조석 간에 달려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리 잔인하시도록 저를 구할 말씀 한마디 안 해주십니까?”
공명은 얼굴색을 변하며 일어서서 다락을 내려가려 했는데 뜻밖에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유기 : “저는 좋은 계책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랐는데 선생께서 누설 될 가 봐 말씀해 주시기를 꺼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위로는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고 아래로는 땅으로 내려갈 수도 없으며 선생의 입에서 나와 유기의 귀로 들어갈 뿐이오니 [의심치 마시고]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공명 : “소불간친[疏不間親]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제갈량이 어찌 공자를 위해 계책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유기 : “선생께서는 정녕코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저의 목숨은 정말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선생님 면전에서 제 목숨을 끊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고서는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했다.
공명은 급히 유기를 제지하고 말했다. : “좋은 계책이 있기는 있읍니다만은”
유기가 절을 올리며 말했다. :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공명 :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신생과 중이[申生, 重耳]의 일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신생은 나라 안에 있다가 죽임을 당했고 중이는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무사했다 합니다. 지금 황조가 망하고 강하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 다. 공자께서 어찌하여 군사를 주둔하여 강하를 지키겠다고 위에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유기는 재배를 올려 가르침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수하에 명하여 사다리를 가져오게하여 공명을 다락 아래로 내려 보냈다. 공명은 작별을 하고 돌아와 현덕을 만나 그간 일을 상세히 보고했다. 현덕은 미우 기뻐했다. 다음 날 유기는 강하를 지키고 싶다고 말씀을 올렸는데 유표는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이 일을 상의코자 현덕을 불렀다.
현덕 : “강하는 중요한 요지입니다. 진실로 이곳은 다른 사람이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당연히 친히 가서 지켜야지요. 그리고 동남의 일은 형님 부자께서 맡으시고 서북의 일은 이 유비가 맡아서 처리하겠 습니다.”
유표 : “근래 들은 바로는 조조가 업군에서 현무지를 파 놓고 수군을 조련하고 있다하는데 이는 필시 남정[南征]할 뜻이 있는 것인지라 방비 하지 않을 수 없네.”
현덕 : “이 유비도 벌써부터 알고 있는 바이니 형님께서는 걱정하시지 마십시요.” 그리고 절하며 인사드리고 신야로 돌아왔으며 유표는 유기에게 명하여 삼천 명의 군사를 인솔하고 가서 강하를 잘 지키라고 명했다.
한편 조조는 삼공이란 직책을 없애버리고 스스로 승상으로 이 직을 겸했다. 그리고 모개를 동조연에 최염을 서조연에 사마의를 문학연에 임명했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이며 하내 온 사람이다. 영천태수 사마준의 손자이며 경조윤 사마방의 아들이고 주부 사마랑의 동생이다. 이리하여 [조조에게] 문관들이 대거 갖추어졌다. 그리고는 무장들을 소집하여 남정 일을 상의하게 되었다.
하후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요즘 들으니 유비가 신야에 있으면서 매일 사졸들을 훈련시킨다 하옵니다. 이는 필시 후환거리이니 속히 도모해야 할 줄 압니다.”
조조는 즉시 하후돈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십만 군사를 통솔하여 바로 박망파로 나가 신야의 동정을 살피도록 했다.
순욱이 간했다. : “유비는 영웅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적을 얏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 原 文 >
飲酒之間,琦又曰:「繼母不見容,乞先生一言救我。」孔明曰:「此非亮所敢謀也。」言訖,又欲辭去。琦曰:「先生不言則已,何便欲去?」孔明乃復坐。琦曰:「琦有一古書,請先生一觀。」乃引孔明登一小樓。孔明曰:「書在何處?」琦泣拜曰:「繼母不見容,琦命在旦夕,先生忍無一言相救乎?」
孔明作色而起,便欲下樓,只見樓梯已撤去。琦告曰:「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泄漏,不肯出言;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孔明曰:「『疏不間親』,亮何能爲公子謀?」琦曰:「先生終不肯教琦乎?琦命固不保矣,請即死於先生之前。」乃掣劍欲自刎。孔明止之曰:「已有良計。」琦拜曰:「願即賜教。」孔明曰:「公子豈不聞申生、重耳之事乎?申生在內而亡,重耳在外而安。今黃祖新亡,江夏乏人守禦,公子何不上言,乞屯兵守江夏?則可以避禍矣。」
琦再拜謝教,乃命人取梯送孔明下樓。孔明辭別,回見玄德,具言其事,玄德大喜。次日,劉琦上言,欲守江夏。劉表猶豫未決,請玄德共議。玄德曰:「江夏重地,固非他人可守,正須公子自往。東南之事,兄父子當之;西北之事,備願當之。」表曰:「近聞曹操於鄴郡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南征之意,不可不防。」玄德曰:「備已知之,兄勿憂慮。」遂拜辭回新野。劉表令劉琦引兵三千往江夏鎭守。
却說曹操罷三公之職,自以丞相兼之,以毛玠爲東曹掾;崔琰爲西曹掾;司馬懿爲文學掾。懿字仲達,河內溫人也:潁川太守司馬雋之孫,京兆尹司馬防之子,主簿司馬朗之弟也。自是文官大備,乃聚武將商議南征。夏侯惇進曰:「近聞劉備在新野,每日教演士卒,必爲後患,可早圖之。」
操即命夏侯惇爲都督;于禁、李典、夏侯蘭、韓浩爲副將;領兵十萬,直抵博望城,以窺新野。荀彧諫曰:「劉備英雄,今更兼諸葛亮爲軍師,不可輕敵。」
< 文 段 解 說 >
(1)飲酒之間,琦又曰:「繼母不見容,乞先生一言救我。」孔明曰:「此非亮所敢謀也。」言訖,又欲辭去。琦曰:「先生不言則已,何便欲去?」孔明乃復坐。琦曰:「琦有一古書,請先生一觀。」乃引孔明登一小樓。孔明曰:「書在何處?」琦泣拜曰:「繼母不見容,琦命在旦夕,先生忍無一言相救乎?」
孔明作色而起,便欲下樓,只見樓梯已撤去。琦告曰:「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泄漏,不肯出言;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孔明曰:「『疏不間親』,亮何能爲公子謀?」
음주지간,기우왈:「계모불견용,걸선생일언구아。」공명왈:「차비양소감모야。」언흘,우욕사거。기왈:「선생불언즉이,하변욕거?」공명내복좌。기왈:「기유일고서,청선생일관。」내인공명등일소루。공명왈:「서재하처?」기읍배왈:「계모불견용,기명재단석,선생인무일언상구호?」
공명작색이기,변욕하루,지견누제이철거。기고왈:「기욕구교량책,선생공유설루,불긍출언;금일상부지천,하부지지,출군지구,입기지이,가이사교의。」공명왈:「『소불간친』,양하능위공자모?」
訖 마칠 흘, 그칠 흘. 樓 다락 루[누]. 辭 말씀 사, 고별하다, 이별하다, 알리다, 고하다. 사양하다. 忍 참을 인, 모질게[차마] …하다. 梯 사다리 제. 撤 거둘 철. 疏 트일 소, 먼 친척, 친하지 않음. 疏不間親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관계가 친밀한 사람들을 이간시킬수 없다.
< 해 석 >
술을 마시다가 유기가 또 말했다. : “계모가 저를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선생께서 한 말씀 하셔서 저를 좀 구해주십시오.”
공명 : “이 문제는 제가 감히 계책을 말씀드릴 일이 못됩니다.” 말을 마치자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하니
유기 : “선생께서 말씀 안 해주시면 그만이지 왜 곧 가시려 합니까?” 공명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기 : “제가 고서[古書]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선생께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공명을 인도하여 작은 다락으로 올라갔다.
공명 : “책이 어디에 있나요?”
유기가 울면서 절하며 말했다. : “계모가 저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저의 목숨이 조석 간에 달려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리 잔인하시도록 저를 구할 말씀 한마디 안 해주십니까?”
공명은 얼굴색을 변하며 일어서서 다락을 내려가려 했는데 뜻밖에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유기 : “저는 좋은 계책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랐는데 선생께서 누설 될 가 봐 말씀해주시기를 꺼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위로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고 땅으로 내려갈 수도 없으며 선생의 입에서 나와 유기의 귀로 들어갈 뿐이오니 [의심치 마시고] 가르침 을 내려 주십시 오.”
공명 : “소불간친[疏不間親]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제갈량이 어찌 공자를 위해 계책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2)琦曰:「先生終不肯教琦乎?琦命固不保矣,請即死於先生之前。」乃掣劍欲自刎。孔明止之曰:「已有良計。」琦拜曰:「願即賜教。」孔明曰:「公子豈不聞申生、重耳之事乎?申生在內而亡,重耳在外而安。今黃祖新亡,江夏乏人守禦,公子何不上言,乞屯兵守江夏?則可以避禍矣。」
琦再拜謝教,乃命人取梯送孔明下樓。孔明辭別,回見玄德,具言其事,玄德大喜。次日,劉琦上言,欲守江夏。劉表猶豫未決,請玄德共議。玄德曰:「江夏重地,固非他人可守,正須公子自往。東南之事,兄父子當之;西北之事,備願當之。」表曰:「近聞曹操於鄴郡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南征之意,不可不防。」玄德曰:「備已知之,兄勿憂慮。」遂拜辭回新野。劉表令劉琦引兵三千往江夏鎭守。
기왈:「선생종불긍교기호?기명고불보의,청즉사어선생지전。」내체검욕자문。공명지지왈:「이유량계。」기배왈:「원즉사교。」공명왈:「공자기불문신생、중이지사호?신생재내이망,중이재외이안。금황조신망,강하핍인수어,공자하불상언,걸둔병수강하?칙가이피화의。」
기재배사교,내명인취제송공명하루。공명사별,회견현덕,구언기사,현덕대희。차일,유기상언,욕수강하。유표유예미결,청현덕공의。현덕왈:「강하중지,고비타인가수,정수공자자왕。동남지사,형부자당지;서북지사,비원당지。」표왈:「근문조조어업군작현무지이련수군,필유남정지의,불가불방。」현덕왈:「비이지지,형물우려。」수배사회신야。류표령류기인병삼천왕강하진수。
掣 끌 체, 뺄 체, 뽑을 체, 당길 철. 刎 목벨 문, 자를 문. 止 그칠 지, 금(禁)할지,
붙들 지, 억제하다, 발지. 已有 이미 있다, [없는 것이 아니고] 있기는 있다. 禦 막을 어, 지키다. 申生, 重耳之事 신생(申生)과 중이(重耳)는 춘추시대 진(晉) 헌공(獻公)의 아들로 이복형제이다. 헌공이 여희(驪姬)를 총애해 그녀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우려 했다. 여희는 태자 신생과 그의 동생 중이를 모함에 빠뜨려 죽이려 했다. 외지로 달아나지 않은 신생은 협박을 당한 끝에 자살했다. 중이는 도피해 19년 동안이나 국외에 머물다가 진나라로 돌아가 권력을 탈취하고 군주가 되었으니, 이가 곧 문공(文公)이다. 제후들의 패자(覇者)가 되는 업적을 세웠다. 猶 오히려 유, 같을 유, 아직, 여전히,마치 ---와 같다, 차라리, ---조차, 지금도 역시, 그 위에 더, 마땅히 ---해야한다. 豫 미리 예, 즐기다, 놀다, 꺼리다, 미적거리다, 주저하다. 猶豫 주저하다, 망설이다, 머뭇거리다. 須 모름지기 수, 마땅히 수, 수염. 練 익힐 연.
< 해 석 >
유기 : “선생께서는 정녕코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저의 목숨은 정말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선생님 면전에서 제 목숨을 끊게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고서는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했다.
공명은 급히 유기를 제지하고 말했다. : “좋은 계책이 있기는 있읍니다만은”
유기가 절을 올리며 말했다. :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공명 :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신생과 중이[申生, 重耳]의 일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신생은 나라 안에 있다가 죽임을 당했고 중이는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무사했다 합니다. 지금 황조가 망하고 강하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어찌하여 군사를 주둔하여 강하를 지키겠다고 위에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유기는 재배를 올려 가르침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수하에 명하여 사다리를 가져오게하여 공명을 다락 아래로 내려 보냈다. 공명은 작별을 하고 돌아와 현덕을 만나 그간 일을 상세히 보고했다. 현덕은 미우 기뻐했다. 다음 날 유기는 강하를 지키고 싶다고 말씀을 올렸는데 유표는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이 일을 상의코자 현덕을 초청했다.
현덕 : “강하는 중요한 요지입니다. 진실로 이곳은 다른 사람이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당연히 친히 가서 지켜야지요. 동남의 일은 형님 부자께서 맡으시 고 서북의 일은 이 유비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유표 : “근래 들은 바로는 조조가 업군에서 현무지를 파 놓고 수군을 조련하고 있다하는데 이는 필시 남정[南征]할 뜻이 있는 것인지라 방비 하지 않을 수 없네.”
현덕 : “이 유비도 벌써부터 알고 있는 바이니 형님께서는 걱정하시지 마십시요.” 그리고 절하며 인사드리고 신야로 돌아왔으며 유표는 유기 에게 명하여 삼천명의 군사를 인솔하고 가서 강하를 잘 지키라고 명했다.
(3)却說曹操罷三公之職,自以丞相兼之,以毛玠爲東曹掾;崔琰爲西曹掾;司馬懿爲文學掾。懿字仲達,河內溫人也:潁川太守司馬雋之孫,京兆尹司馬防之子,主簿司馬朗之弟也。自是文官大備,乃聚武將商議南征。夏侯惇進曰:「近聞劉備在新野,每日教演士卒,必爲後患,可早圖之。」
操即命夏侯惇爲都督;于禁、李典、夏侯蘭、韓浩爲副將;領兵十萬,直抵博望城,以窺新野。荀彧諫曰:「劉備英雄,今更兼諸葛亮爲軍師,不可輕敵。」
각설조조파삼공지직,자이승상겸지,이모개위동조연;최염위서조연;사마의위문학연。의자중달,하내온인야:영천태수사마준지손,경조윤사마방지자,주부사마랑지제야。자시문관대비,내취무장상의남정。하후돈진왈:「근문류비재신야,매일교연사졸,필위후환,가조도지。」
조즉명하후돈위도독;우금、리전、하후란、한호위부장;령병십만,직저박망성,이규신야。순욱간왈:「류비영웅,금경겸제갈량위군사,불가경적。」
掾 도울 연. 懿 아름다울 의. 雋 영특할 준. 自是 당연히,자기가 옳다고 여기다, 제 멋대로 하다, 이로부터, 이곳부터. 抵 거스를 저, 막다, 도착하다m 이르다, 다다르다. 窺 엿볼 규.
< 해 석 >
한편 조조는 삼공이란 직책을 없애버리고 스스로 승상으로 이 직을 겸했다. 그리고 모개를 동조연에 최염을 서조연에 사마의를 문학연에 임명했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이며 하내 온 사람이다. 영천태수 사마준의 손자이며 경조윤 사마방의 아들이고 주부 사마랑의 동생이다. 이리하여 문관들이 대거 갖추어졌다. 그리고는 무장들을 소집하여 남정 일을 상의하게 되었다.
하후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요즘 들으니 유비가 신야에 있으면서 매일 사졸들을 훈련시킨다 하옵니다. 이는 필시 후환거리이니 속히 도모해야 할 줄 압니다.”
조조는 즉시 하후돈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십만 군사를 통솔하여 바로 박망파로 나가 신야의 동정을 살피도록 했다.
순욱이 간했다. : “유비는 영웅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적을 얏 보아서는 안 될것입니다.“
2025년 9월 23일
이 종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