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립의 시 세계 한 시인의 시 세계를 알려면 성장 과정을 알아야 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삼천포 양계단지에 입주하면서, 목사님 딸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친구랑 와룡산에 매일 놀러가 신나게 놀았어요. 계곡에서 목욕하며 피라미의 혼인색이 정말 이쁘구나 감탄하며 온갖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해가 지는 줄도 몰랐지요. 제가 삼천포여중에 전교 6등으로 합격했을 때, 아버진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공무원 퇴직과 밀양 사포 동아축산 창립으로 절 혼자! 아버지 친구분 집에 맡겨놓고 가족들이! 밀양으로 가 버렸어요. 공부는 안 하고 바닷가에 나가 울었어요. 아버지 친구분 집엔 제 또래 친구가 있어 저를 달래 주었고 그 집 벽에 있던 正자가 아직도 선명하네요. 밀양여중으로 전학을 와 화훼시간에 꽃에 대해 진짜 많이 배웠어요. 밀양여고에 다닐 땐, 광산여고 2기라 했어요. 한 해 선배부터 산 위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비가 오나 안 오나 미끄럼 비탈길에 깡으로 학교를 갔으며, 홍수 때는 미친 듯이 용솟음치는 남천강물은 웅대한 기상을 심어줬어요. 저는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던 여동생과 불교에 흠뻑 빠진 사촌 언니가 있어요. 법구경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던 어린 시절. 불교의 윤회사상은 정말 매력적이었지요. 그리고 밀양여고의 생활관 체험과 고전 읽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달달 외우고 카르멘과 투우사에 심취했지요. 그런데 부산실업전문대 (현 경남정보대)는 민석 장성만 학장의 기독교 대학입니다. 냉정산 산자락에서 펼쳐지던 야외수업과 일주일에 한 번인가 교회에서 행하던 기독교의 사랑, 나눔, 베품과 찬송가 합창. 그러니 미리내는 불자는 아니고 기독교 신도도 아닌 어중이가 될 수밖에요. 그리고 그 어중이와 학교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다시피 한 책벌레가 만났으니 시인이 안 될려야 안 될 수가 없지요. 또한 저는 신숭겸 장군의 피와 금시당 이광진 선생의 피를 물려 받았으니 장군의 칼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섬세할 땐 한없이 섬세한 `쨍`과 `최소한의`를 들 수 있지요. 저는 한글 전용 세대라 한문을 모르기도 하지만 시를 쓸 때, 우리말과 경상도사투리를 골라 씁니다.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물으신다면 이때까지 쓴 그대로 낮은 곳에서 힘없는 이웃들의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오늘 여기 함께 해주신 여러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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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이를 뛰어넘어 진정 내 삶에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숙명이라고 하지요. 같은 시대에 태어났기에 서로의 글을 읽으며 같이 울고 웃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