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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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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백제를 가다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12년 |
수상횟수 | 제31회 |
출생지 |
[수상 작품]
백제를 가다 / 이사명
백제 25대 무령왕릉에 가기 위해 공주를 찾았다. 높은 산이 거의 없는 공주시는 안정된 분위기로 편안함을 주었다. 산보를 겸하기도 한 그 날은 봄을 자축하듯 진달래꽃이 길목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를 반겼다.
낡은 철교를 지나 왼편 산성 맞은편 대문을 지날 때쯤이었을까. 무령왕릉이 가까워졌는지, 길 양쪽에 눈에 익은 관장식이 일정한 간격으로 일색을 이루고 있었다. 무령왕릉의 상징이 된 관장식은 국보 154호로 무령왕이 평소 비단모자에 즐겨 꽂았다는 장신구다. 그런 애장품을 바로 눈앞에서 대하다보니 왠지 그리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왕과 왕비의 묘지명이 새겨졌던 능이다. 능에 오르면서도, 관람객들을 위해 비치해 놓은 작은 영상에서 보여주었던 장면들이 연상되어 펼쳐졌다. 일행 중엔 이미 몇 번씩 다녀갔다는 이도 있었으나, 나는 처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무덤 속이 주택의 방안 같은 느낌이 드는 가묘를 보고 올라왔지만, 능이 자리 잡고 있는 산세를 보면서 역시 복인이었노라 했다. 인자하고 관대하였다는 성품답게 누운 자리 또한 천하의 명당이라 느껴졌다. 일행과 무령왕만이 지닐 수 있었던 일화들을 더듬어보면서 넓은 혜안을 지녔던 왕을 상상하면서 묘실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무령왕의 숨결은 많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주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많은 유물 중에서도 유독 왕과 왕비의 장신구에 마음이 끌렸다. 보석을 다루어서 뜻말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장신구를 대하고 보니 하나같이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희망을 염원으로 담아 반영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국보 156호․157호인 무령왕과 왕비의 귀걸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하트를 두개나 붙여 달았는데 합궁의 의미를 담고 있어 애정으로 표현되었음을 보여준다. 호방하면서도 열정적인 가슴을 지녔던 왕의 성품에 맞춰 애장품들 역시 사랑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부여박물관 또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의 심벌이 된 금동대향로가 입구에 우뚝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국보 287호인 향로는 높이가 62.5센티로 뚜껑․몸체․다리 부분으로 만들어졌는데, 불교와 도교를 바탕으로 해서 백제사상과 융합한 조형예술의 극치라 한다.
나의 넋을 빼버린 금동대향로는 백제인만의 섬세한 예술 감각으로 명장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곧 세사(世事)의 이치가 우주신비와 땅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이나, 그 가운데 주인은 사람임을 말해 준다. 하늘과 땅을 기저로 상상의 동물과 실제 동물을 안배했는데, 신선인물상과 함께 74곳의 산봉우리를 새겨 넣었다. 상징하는 것이 대부분 상상의 형체라는 것에서도 그 의도가 인간의 포부와 꿈인 것을 보게 한다.
향로 밑은 행운을 상징하는 용(龍)이 입으로 연꽃의 형상을 취하면서 몸체를 받들었다. 뚜껑은 횡(橫)으로 돌아가며 기러기․인물상․동물상․화염문 및 폭포 등을 등장시켰다. 당시의 생활상인 기마인물과 기마수렵상도 함께 새겨 넣어 한쪽은 생각하는 인간상으로 신선을, 다른 한 편은 피리와 배소를 불고 비파와 현금을 뜯는 5인의 주악상을 나열했다. 뚜껑 위의 봉오리엔 행운을 염원하는 용이 몸통을 받치는 것처럼, 장수의 상징인 봉황이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펴 웅비하는 모습으로 묘사 하여 백제의 바람을 희망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백제금동대향로는 인간의 생각을 금속공예와 주조기술로 배합한 세공기술과 도금기술의 조화가 이뤄 낸 백제 최고의 작품이었다.
사람이야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지만, 향로가 연기구멍이 적다해서 크게 장애가 될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도 향로에는 연기구멍이 열두 개나 뚫려있어 향내가 골고루 퍼져 스며들게 했다. 짧은 내 생각이지만, 인간의 향기와 우주의 법칙인 사계의 순리를 의식해 종교적으로 승화한 호흡법이 아니었을는지?
백제는 역사의 패배자였을지언정 백제문화는 삼국 중에서 가장 우수했다. 한때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등한시되었지만,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의 요구로 백제가 다시 부활하는 영광을 보게 해주었다. 역사는 언제라도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뒤늦게 발굴된 유물들이지만 조상들의 얼을 되새겨 보도록 하였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던 것처럼, 귀중한 유물 역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매장될 뻔한 위기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면서.
[수상 소감]
수없이 넘나들었던 극적인 삶과 핑계 / 이사명
한국수필로 등단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껏 해놓은 것이 없고 여전히 변변치 못합니다. 사느라고 힘들었다지만, 힘들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의 병 뒷바라지 17년은 내 황금 같은 청춘을 멈추게 한 세월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었기에 극적인 삶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두를 뭉뚱그려서 요즈음 들어서는 부쩍 핑계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삽니다. 글쓰기에 게으른 것도 하나같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곤 하지만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수필을 사랑하면서도 때론 힘에 겨워 짓눌릴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흡족한 수필다운 수필을 건져내지 못해서입니다.
누구든 자기가 애착하는 장르에는 애착이 강하게 마련입니다. 수필을 짝사랑하는 세월이 꽤 흘렀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아직도 건져내지 못한 아쉬움에 늘 갈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6월은 진주의 계절입니다. 그날도 진주의 영롱한 빛에 취해 있는데 수상의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연분홍 진주가 한없이 화사했습니다. 부족하지만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작가 프로필]
<한국수필>로 등단. 광진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한국수필작가회 부회장, 계룡문학회 회장.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수필집 『함께 하는 행복』,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백제를 가다』
[작품 심사평]
이사명 작가는 1992년 <한국수필>로 등단하여 수필집 『함께하는 행복』,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를 출간했고 세 번째 낸 『백제를 가다』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자연 속에서 삶의 생명률을 터득하며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꽃은 일상의 의미와 발견, 자연의 섭리와 이상을 받아들인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서 피어난 것이다. 확고한 생활철학과 가치관으로 이상적인 삶을 개척하기 위한 열망을 안고 있는 서정수필들이 개인의 체험을 형상화 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사회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톤이 굵고 폭이 넓은 역동적인 수필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강점이라 하겠다.
심사위원장 유혜자
심사위원 정목일, 고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