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253 술회述懷 25 자이自貽 자신에게 준다
처사본한아處士本閑雅 처사處士는 본디 한아閑雅하여서
조세호대도早歲好大道 어릴 적부터 큰 道를 좋아했더니
지여시사괴志與時事乖 품은 뜻과 세상 일이 서로 어긋나
홍진적여소紅塵跡如掃 홍진紅塵에 발길이 쓸은 것 같네.
소소유명산少小遊名山 어려서부터 이름난 산에 놀면서
맹속불교호甿俗不交好 어리석은 俗人과는 사귀지 않았네.
만거폭포방晚居瀑布傍 만년에는 폭포 가에서 살아가면서
욕작청계로欲作淸溪老 청계淸溪의 늙은이 되려 했더니
세인나득지世人那得知 세상사람 어찌 이 뜻 알겠는가?
심상칭료도尋常稱潦倒 보통은 신세 망쳤다 이르네.
처사역불시處士亦不猜 처사處士도 또한 시기하지 아니하고
매피풍화뇌每被風花惱 언제나 바람과 꽃에 번뇌 당하네.
은현혹무시隱顯或無時 은현隱顯은 혹시 때 없어도
기왕봉래도期往蓬萊島 봉래도蓬萊島로 갈 것을 기약하노라.
자이自貽 내 모습
처사는 본시 한가하고 우아하니
어릴 때부터 큰 길만을 따랐다네.
품은 뜻이 세상의 일과는 거리가 있어
먼지 같은 속세의 흔적은 지워버렸다오.
젊어서는 명산에서 조금 노닐었으나
무지한 저자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네.
말년에는 폭포 근처에 살며
청정한 계곡 같이 늙어가고 싶었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랴만
흔히들 나보고 망할 놈이라고 하는데
처사도 단지 시기만 하지 않을 뿐
봄바람에 꽃이 필 때마다 고뇌하는 인간이라네.
불쑥 나타났다간 숨어버리지만
언젠가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으로 떠날 것이라네.
►처사處士 거사居士.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선비.
사찰寺刹에서 잡무雜務를 담당하는 남자를 일컫기도 함
►한아閑雅
처사處士는 도덕이 높으면서도 세상에 나대지 아니하고
산림 간에 들어앉아 한가하게 세상과 경쟁하지 아니하니 아담하다는 말.
►대도大道 대로大路. 사람이 마땅히 行해야 할 바른 길
►홍진紅塵 번거로운 俗世
►맹속甿俗 저자의 무지한 백성. ‘백성 맹甿’ 百姓. 農夫. 無知한 百姓
►심상尋常 대수롭지 않고 예사例事로움.
►칭료稱潦 호락호락하다
‘일컬을 칭/저울 칭稱’ 부르다. 칭찬稱讚하다
►료도潦倒 망해버림(零落). 자포자기
‘潦 큰비 료(요)/초라할 료(요), 큰비 로(노)’ 큰비. 장마.
►역亦 단지但只. 다만 ~뿐
►풍화風花 바람 속에 핀 꽃. 얼룩덜룩한 하늘의 구름.
►은현隱顯(隱現) 숨었다 나타났다 함. 또는 숨는 일과 나타나는 일.
►봉래도蓬萊島 봉래산蓬萊山.
신선이 사는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과 함께 3大 神山으로 꼽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