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칼빈의 믿음론, 기독교강요 제3권 2장 2(1559년 라틴어 최종판 완역, 문병호 옮김, PP.43-44)
2. 무지(無知)가 아니라 지식(知識)에 자리하는 믿음
이러한 악(惡)함은 여느 무수한 악들과 다를 바 없이 스콜라주의자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숨기기 위해, 말하자면, 그분 위에 천을 덮어씌웠다.
만약 그리스도를 올바로 직관(直觀)하려 들지 않는다면, 많은 미로(迷路)를 끝없이 이리저리 헤매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자기들의 모호한 정의(定義)로 믿음의 모든 의미를 제거하고 거의 걷어내다시피 하면서 "불명확(不明確)한 믿음"39)이라는 허구를 창안했다.
39) “Implicitae fidei." '불명확한 믿음'(fides implicita)은 맹목적 믿음'(fides arcana)이라고도 불리는데, 믿음의 대상이 되는 말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이 교회가 믿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명확한 믿음'(fides explicita)에 상대(相對)된다.
그들은 이 이름을 가지고 가장 우매(愚昧)한 자기들의 무지(無知)를 치장하고 그 가운데 불쌍한 일반 사람들을 속여 큰 파멸(破滅)에 이르게 한다.
이 사안을 좀 더 참되고 명확하게 부연해서 말하자면, 이 허구는 참 믿음을 파묻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파괴한다.
만약 당신이 아무 것도 이해함 없이 오로지 교회를 향한 순종적 감정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것을 두고 믿는다고 할수 있겠는가?
믿음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지식(知識)에 자리한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뿐만 아니라 신적(神的) 의지(意志)를 아는 지식을 아우른다.41)
41) 이와 같이 믿음의 첫 번째 요소인 지식(cognitio)은 오성(intellectus)과 의지(voluntas)의 영역에 모두 미친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우리를 잘 준비(準備)시켜, 교회가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참되다고 포용하거나 진리를 찾고 아는 소임을 교회에 넘기거나 해서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화목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아버지이시라는 사실과(고후 5:18-19)
그리스도는 의(義), 거룩, 생명(生命)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데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감정(感情)을 쏟아서가 아니라 이 지식(知識)으로써 천국에 들어가는 문(文)을 확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도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전할 때,
만약 누군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심지어 자기가 찾지도 않고 있는 것을 불명확(不明確)하게 믿고 있다면 그 믿음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한편,
우리의 의(義)가 자리하고 있는 신적(神的) 선(善)하심에 대한 명확(明確)한 인식(認識)을44) 요구하고 있다.
44) 이와 같이 믿음의 지식은 구원의 의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지식과 그 의를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지식을 함의한다. 이 점에서 모든 믿음은 '명확한 믿음'(fides explicit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