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강천산으로 1... (여행을 떠나며)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한 중종반정(中宗反正)...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成希顔),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박원종(朴元宗)이 폭정으로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 놓은 연산군을 몰아낸 사건이다. 연산군은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키면서 많은 선비들을 희생시켰다. 또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는 세력을 축출(逐出)하면서 대간(臺諫)들의 직언을 금지하게 하는 신언패(愼言牌)의 실시, 성균관의 연락(宴樂) 장소화, 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 언문 도서의 폐기, 사대부 부녀자의 농락, 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인한 정치의 파탄 등 수많은 악행과 폭정을 거듭하였다.
이에 훈구세력을 중심으로 연산군의 폐위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성희안과 박원종 등은 연산군 폐위를 밀약하였다. 당시에 인망이 높던 이조판서 유순정(柳順汀),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던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신윤무(申允武) 등의 호응을 얻으면서 계획을 도모하였다. 1506년 그들은 먼저 궁금세력(宮禁勢力)으로 권력을 쥐고 있던 임사홍(任士洪,) 임사영(任士英), 신수근(愼守勤)과 그 아우 신수영(愼守英) 등 연산군의 측근들을 죽였다. 이어 궁궐을 에워싸고 옥(獄)에 갇혀 있던 자들을 풀어 종군(縱軍)하게 하였다.
반정에 성공한 박원종 등은 군사를 몰아 텅 빈 경복궁에 들어가서 성종의 계비이며 진성대군의 어머니인 대비 윤씨의 허락을 받아 연산군을 폐하여 강화도에 안치하였다. 이어 진성대군을 맞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11대 왕인 중종이다. 당시 연산군의 원비인 신씨의 오빠이며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端敬王后)의 아버지인 愼守勤... 이조판서를 지냈지만 중종반정에 가담하지 않았다. 愼守勤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그 딸인 중종비인 단경왕후도 폐출(廢黜)되었다. 훗날 이 단경왕후를 복위운동을 벌인 곳이 삼인대다.
단경왕후의 폐비 후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장경왕후다. 하지만 장경왕후는 25세에 사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에 모여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의 복위를 모의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라 하여 삼인대(三印臺)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三印臺가 있는 강천산을 한화관광을 따라 10월 30일 여행을 떠났다.
순창 강천산으로 2... (회문산을 지나며)
대전IC를 떠난 여행길...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서전주IC로... 국도 27번을 따라 임실군으로 이어져 김용택 시인의 고향인 덕치면에 다다른다. 일중리에서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로 가는데 경사는 적지만 구절양장(九折羊腸) 길이다.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九折羊腸... 세상(世上)이 복잡(複雜)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가수 이인권이 부른 ‘꿈꾸는 백마강’... 그는 낙화암에서 고란사 종소리를 들으니 ‘없어진 조국 땅에 무심한 강물만 말없이 흘러 구곡간장(九曲肝腸) 올올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또한 6.25 전쟁의 와중 속에서 철사 줄로 꽁꽁 묶여 북으로 끌려간 임을 그리는 노래 역시 九曲肝腸일 것이다. 작곡, 작사한 반야월 선생은 전쟁 중 피난길에 어린 딸을 잃은 이별의 아픔 속에서(愛別離苦)에서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를 지었다고 한다. 특히 이해연의 간드러지고 애달픈 목소리를 들으면 창자가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인간의 내장은 감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옛날 중국에 허진군이란 사람이 독 묻은 화살로 새끼 사슴 한 마리를 쏴서 잡았다. 이를 본 어미가 달려와 박힌 화살을 뽑아 보겠다고 한참 애썼지만 결국 어미도 지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어미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진데서 유래하였다. 이곳의 회문산(回文山)...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첩첩산중(疊疊山中)을 이루고 있다. 이 천혜의 요새는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또 6.25때는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자연 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생의 묘가 안치된 천주교의 성지이며 증산교의 강대성은 이곳 금강암에서 깨달음을 얻어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곳의 만일사(萬日寺)...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자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을 위하여 1만 일 동안 기도하였다는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이 遺墟碑에는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때 고추장 맛에 반해 임금이 된 후에도 고추장을 대궐에 진상하게 하였단다. 정유재란과 6·25전쟁 때 전소(全燒)된 것을 1954년 김인숙(金仁淑)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국도 21번과 792번을 따라 팔덕면으로 가면 강천산 입구가 있다. 주차장도 만원이라 입구에서 하차시킨다.
순창 강천산으로 3... (병풍바위에서)
매표소까지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좁은 인도에 많은 인파... 자동차는 일방통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다. 터널을 뚫어 새롭게 길을 내지 않으면 항상 교통 혼잡을 피할 수 없다. 매표소 근처는 앉을 자리조차 없다. 이곳 강천산에는 병풍 폭포, 천우 폭포, 구장군 폭포, 용머리 폭포, 약수 폭포, 비룡 폭포, 신선대, 투구봉, 금강문, 범바위, 거라시 바위, 송음암, 부처 바위, 수좌굴, 북바위, 연리목 등의 자연물과 금성산성, 강천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자연의 조형물이 애기단풍과 어우러져 명불허전(名不虛傳)하여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름은 헛되이 전(傳)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名不虛傳... ‘명성(名聲)이나 명예(名譽)가 널리 알려진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理由)가 있다.’는 뜻이다. 그 유래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사공자(四公子)의 하나인 맹상군(孟嘗君)... 제(齊)의 왕족으로 진(秦), 제(齊), 위(魏)의 재상을 역임한 실력자였다. 그는 모든 식객(食客)들을 대등(對等)하고 진솔하게 대우하여 다양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때문에 그가 秦의 재상(宰相)이 되었다가 모함을 받아 진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 도둑질을 잘하는 사람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의 고사(古事)처럼, 명인(名人)의 도움으로 성공하였단다.
이 많은 자연의 조형물 가운데 때문에 투구봉...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바위가 장군의 투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요, 그 옆으로 신의 조화가 아니면 뚫을 수 없는 문이 금강문이요, 인간의 마음이 금강문을 통하여 불 수 있다는 통천문(通天門)이 있다. 그 뒤편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咆哮)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한 모습이 바로 범바위란다. 또한 병풍처럼 펼쳐진 병풍바위, 일명 볼록한 등에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라 거북바위하고도 한다. 이곳에 내리는 폭포수는 방문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주고 있다.
문전걸식 구걸해온 걸인들이 거적을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받아 강천사 스님들에게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는 거라시(乞人) 바위... 꽃동네처럼 바로 나눔의 실천 장소였단다. 욕심은 부릴수록 더 부풀고, 인정은 나눌수록 더 가까워지며, 사랑은 베풀수록 더 애틋해지고, 몸은 낮출수록 더 겸손해지며, 마음은 비울수록 더 편안해지고, 행복은 감사할수록 더 커지고, 칭찬은 해줄수록 더 잘 하게 되고,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하고, 괴로움은 느낄수록 더 깊어지고, 집착은 하면 할수록 더 질겨지는 것이란다.
순창 강천산으로 4... (강천사에서)
여행길은 통일신라 진성왕 때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한 강천사(剛泉寺)에 도착한다. 자연암석으로 된 금강문과 절 주위의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59년 주지 김장엽(金奬燁)이 중창하기 시작하여 관음전, 대웅전, 칠성각을 복원하였다. 역사적으로 이 사찰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단다.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란다.
한편 이 사찰에 인간으로 변신하고 싶어 하는 천년 묵은 지네가 살았단다. 지네는 사찰에서 피우는 향이 너무 독해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인간이 되는 것이 힘들게 되자 그 앙갚음으로 요괴(妖怪)가 되어 절에 들어와 비구니들을 하나씩 죽였다고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오고 있다. 사찰 앞에 300년 된 모과나무... 그 세월을 말해주듯 나무 둘레가 아름드리다 사찰 주변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이 모과나무는 잎이 졌는지 앙상하게 남아 있다. 다리 건너에 있는 삼인대(三印臺)... 그 의리(義理)를 대변하는 듯하다.
인생이 살아가는 길... ‘사람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면 사치심이 없어지고 공손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 오만함이 없어진단다. 또 어진 사람과 함께하면 사나운 생각이 줄어들며 강직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유약(柔弱)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어느 선각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최근 최순실 사건에 의하여 불안한 정국... 여당은 책임 짓는 모습에, 야당은 국정(國政)을 동반(同伴)한다는 의미에서 협치(協治)하여야 하는데 미약한 것 같다. 약속하였으면 지켜야 하고 잘못하였으면 시인하여야 하고 책임지라면 제일 먼저 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 여행길... 마지막으로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로 갔다. 전통장류(醬類)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순창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 제조 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이 마을 입구에 토종 소나무를 가로수로 조성하였다.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고추장과 장아찌 항아리가 가득하고, 처마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민속마을을 방불케 한다. 순창에 오면 한정식인 남원집(653-2376)이 생각난다. 6인상에 12만원... 반찬이 100가지는 될까? 오늘 강천산 여행... 올 때와는 다르게 순창IC로 진입, 남원 분기점에서 전주를 거쳐 대전으로 오면서 마친다. 감사합니다.
거라시 바위
강천사
모과나무
구장군폭포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