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민구] 구종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직구 아니면 변화구다. 직구(사실 스트레이트 성의 궤적을 가진 패스트볼은 없다고 보지만)의 범주에서는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을, 그리고 변화구에서는 슬라이더, 커브, 너클볼 등 나머지 구종을 꼽을 수 있다.
포심 패스트볼(four-seam fastball)은 보통 해설자들이 말하는 '직구'라 부르는 것으로, 빠른 속도를 지녔으나 움직임이 가장 적은 성질을 지녔다.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공을 잡는 그립에 변화를 주면서 구속이 약간 느려지는 대신 공의 무브먼트를 더욱 강화한 구종이다. 투심 패스트볼(two-seam fastball)은 투구 폼이나 미세한 그립에 따라 공에 다양한 움직임을 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커터와 함께 많은 투수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구종이라 할 수 있다.
니혼햄 시절의 다르빗슈 유. 그는 '원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
포심과 투심을 모두 던질 수 있는, 그리고 어느 정도 제구가 가능한 투수가 가지는 가장 큰 이점은 '땅볼 유도 능력'에 있다. 투심이 포심 패스트볼에 비해 공의 움직임이 좀 더 있는 편이나, 사실 다른 변화구들에 비하면 그 폭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즉 투심 패스트볼의 움직임 변화량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데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서 범타를 이끌어 내는 데에 맞춰져 있다고 보는게 맞다는 이야기다. 타자의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간다거나, 배트의 아래쪽에 맞는 공들이 안타로 이어질 확률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던지는 직구(또는 포심)에 투심을 추가할 수 있다면 타자와의 승부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몇년 전 다르빗슈 유가 '원심 패스트볼(one-seam fastball)'을 새로이 연마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투심에 비해 공의 움직임이 더 좋은 구종으로, 타자와의 승부에 좀 더 공격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국내에서는 오승환 선수가 잠깐 선보이기도 했었는데, 다르빗슈 유의 말에 의하면 횡적인 움직임을 가진 원심과, 종적인 움직임을 가진 원심 두가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던질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원심 패스트볼은 팬이 보기에도 굉장한 움직임을 지닌, 굉장히 위력적인 공일 것이다. 실제로 원심을 발표한 이후 2년간 다르빗슈는 NPB최고의 투수로 군림했고, 2012년 1100억이 넘는 몸값을 기록하며 미국 MLB로 진출했다. 그렇다면 그 '원심'의 정체는 무엇일까. 메이저리그 투구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토대로 그의 원심 패스트볼에 대해 알아보았다. (메이저리그 기록 상으로 '원심 패스트볼'에 대한 분류는 없으며, FT 즉 다르빗슈가 원심 패스트볼을 던지더라도 그것을 투심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다르빗슈의 투심 중에서도 특이한 무브먼트를 가진 공들을 추려, 이를 원심 패스트볼로 간주하기로 한다.)
그의 원심 패스트볼은 평균적으로 시속 148km/h으로, 포심 패스트볼에(평균 149.5km/h) 비해 약 1.5km/h정도 느린 구속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래는 다르빗슈의 원심 패스트볼 궤적과, 투심 패스트볼을 주로 구사하는 대표적인 투수들의 궤적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낙차를 보기 위해, 릴리즈 포인트를 같은 지점으로 맞추어 놓았다. 대상 투수는 이안 케네디(144.9km/h), 자니 쿠에토(149.6km/h), 그리고 라이언 뎀스터(145.2km/h)이다.
(실제로 네 선수의 릴리즈 포인트는 절대 같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네 투수가 던지는 공의 낙차 비교를 위해 릴리즈 포인트를 하나로 맞추었다.)
그림을 보면, 케네디의 투심이 가장 낙폭이 적고, 뎀스터의 투심이 가장 낙폭이 크다. 쿠에토와 다르빗슈의 경우 낙폭에 있어 거의 비슷한 정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낙폭과 평균 구속을 연관시켜 보았을 때, 케네디는 구속에 비해 낙폭이 적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케네디의 투심이 좌우로 많이 움직이거나 또는 회전량이 많아 다른 투수들의 공보다 덜 가라앉는 성질을 지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안 케네디의 투심은 여기서 대상으로 삼은 다른 세 투수들에 비해 분당 100~200회전을 더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뎀스터의 투심은 넷 중에서 릴리즈 포인트와의 낙차가 가장 크다. 이는 뎀스터의 투심은 단순한 투심이라기 보다 싱커에 가깝다는 뜻인데, 실제로 미국의 Pitch F/X연구가 댄 브룩스는 뎀스터의 투심을 싱커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쿠에토와 다르빗슈의 투심은 수직적 무브먼트가 거의 비슷하며, 또 구속도 비슷한 편이다.
네 투수의 신체 조건과, 투구 메커니즘이 각각 다른 관계로, 릴리즈 포인트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위에서는 낙차 비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릴리즈 포인트를 일원화 하였으나, 아래에서는 그들의 원래 릴리즈 포인트를 통해 네 가지 패스트볼의 무브먼트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포수의 시점에 서 봤을 때, 네 투수가 던지는 투심(또는 원심)의 궤적은 위와 같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여기서도 수직 무브먼트는 케네디의 투심이 가장 적으며, 뎀스터의 공은 뚝 떨어지는 듯한 움직임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알아본 다르빗슈의 원심 궤적은 일본 방송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본 무대에서 엄청난 무브먼트로 타자와 팬을 사로잡은 그의 원심 패스트볼 이었으나, 메이저리그 급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시속 150km를 던지는 투수가 즐비한 데다가, 또 그에 준하는 무브먼트를 동반한 패스트볼을 던지는 선수들이 등판하는 무대가 바로 메이저리그이기 때문이다. 마쓰자카의 메이저리그 데뷔 시에도 '자이로 볼'의 논란이 심했었으나, 결국 그런 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투수가 '원심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하면 그것을 인정해 주는것이 맞다. 허나 분석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다르빗슈의 원심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던지는 투심 또는 싱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이것이 바로 미국 전문가들이 '원심을 던지지만 분류하지 않는 이유'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심 패스트볼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 공을 던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원심 패스트볼이 진정 '변형 패스트볼'류의 하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뭔가 좀더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