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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150. [역경의 열매] 이재만 (1-15) 종친들, 족보 보이며 "고시 합격해 나라에 큰일을"
유년시절 집안 어른들 기대에도 불구 배재고 졸업 후 3修 끝에 연세대 입학
사진: 하나님을 영접한 후 항상 감사와 은혜가 넘친다는 이재만 변호사가 자신의 서울 서초구 집무실에 걸려 있는 액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법정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쟁점을 다투는 전장이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진실이라 해도 증거가 부족하면 진실은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1년에 100만건이 넘는 소송에서 양 당사자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거짓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로 위증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무고사범도 있다.
특히 법정에서는 사랑을 해서 부부가 되었는데 원수가 되어 남남이 되기도 하고, 묻지마 범죄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승승장구하는 기업의 대표가 동업자의 배신과 무고로 풍비박산이 나기도 한다.
내가 수많은 소송을 대리하면서 얻은 결론은 행복이나 성공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만으로 삶의 색채가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내 인생의 멘토는 바로 사랑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나 역시 예수와의 진심어린 만남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겪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인 이재만에게 예수가 나의 삶 속의 변호 업무에 어떤 능력을 주었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신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길 원한다. 고난 속에서도 빛으로 인도하셔서 행복과 기쁨을, 용서와 화해를, 사랑과 평안을 저에게 주시는 예수를 여러분도 만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난 서울 토박이로서 집안(전주 이씨)의 선산이 경기도 국수리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명절이나 시제 때 어린 나를 이곳에 데려가곤 하셨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갓을 쓴 집안 어른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내게 족보를 보여주면서 "너는 고시에 합격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거라"라고 하셨다. 유년시절을 집안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보냈다.
배재고를 졸업한 첫해 대학입시에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방했다. 나는 재수를 시작했고 종로에 있던 '정일학원'에 다녔다. 당시는 청바지에 통기타로 대변되는 청년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던 시절이었다. 난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지만 좀 독특한 재수생에 속했다. 수염을 기르고 긴 장발에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마치 히피나 철학가 같은 행색을 했던 것이다. 당시 학원에서는 하계 캠프인 여름학교를 열어 강의도 듣게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통해서 재수생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나는 친구들과 보컬그룹을 만들어 신나는 공연의 사회를 보았다. 재수시절이 비참한 시절이라고 보컬그룹 명칭이 '비참스'였다,
비참스 공연을 본 학원장이 "장발에 수염 기르고 사회 보는 저 친구 당장 내보내라. 다른 모범학생들 물들겠다"고 지시했다.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교사가 "지난 모의고사에서 우리 반에서 1등한 친구"라고 하자 원장이 놀라면서 그 후에 나를 만나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대화 상대가 되었다.
그해 학원선생님들의 기대와 달리 또 낙방했다. 장남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 종친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압박감이 컸지만 삼수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삼수 끝에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난 대학시절 백양로 벚꽃그늘 아래 벤치에서 물결 흩어지는 대로 낭만적인 대학시절을 보냈다.
모교 배재고나 연세대학은 미션스쿨이었다. 따라서 학교 다니는 내내 채플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이 있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불교 집안에서 성장한 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 [역경의 열매] 이재만 (1) 종친들, 족보 보이며 "고시 합격해 나라에 큰일을"
* [역경의 열매] 이재만 (2) "뜻대로 하소서" 집착 버리니 사시 7전8기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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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1952년 서울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역임, 변호사 1호 명강사 선정, 대한체육회 법률고문, 연탄은행 이사, 다일공동체 협력대사, 굿네이버스 홍보전문위원, 세계예능교류협회 이사장, 충신교회 안수집사, 법무법인 청파 대표 변호사.
***[역경의 열매] 이재만 (2) "뜻대로 하소서" 집착 버리니 사시 7전8기 합격
"법으로 민초들 돕자" 사시 준비 시작 독학에 계속 낙방… 40 코앞에 기적이
사진: 연세대를 졸업한 후 행정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의 이재만 변호사. 신앙 없이 1970년대 청년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보낸 시기였다.
1970년대는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강의실보다 독수리다방에서 비틀스 음악 듣기를 좋아했고, 백양로에서 윤동주의 서시 읊조리기를 좋아했다.
대학 졸업 후 행정대학원을 다시 졸업했다. 그 후 동부전선에서 3년 만기 전역을 하자 31세가 되어 있었다. 남보다 2년 더 재수했고 대학원 2년에 군대 3년을 더하니 보통 사회생활을 27∼28세에 시작하는데 한참 늦어버린 것이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어느 비 오는 날, 도서실에서 창밖을 보니 어느 사람은 우산을 쓰고 가고, 어떤 이는 우산도 없이 비를 피해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여분의 우산을 손에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 법치국가에서 법은 인간에게 우산과 같은 존재다. 법을 모르면 그냥 비를 맞는 것이다. 아는 법이 힘이 되는 세상이다. 사법시험을 시작하자." 나의 사법시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는 나의 30대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치학, 행정학을 전공하다 법학을 독학으로 하니 너무나 어려웠다. 주변에서 '바윗돌'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한번 고시원 자리에 앉으면 식사시간 외엔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묵언수행하는 수도자같이 하루에 단 한마디 하지 않고 보내는 날도 많았다.
바윗돌처럼 열심히 공부하니 불과 2년 반 만에 고시에 합격할 뻔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에도 아슬아슬한 점수 차이로 계속 낙방했다. 차라리 큰 점수차로 낙방하면 방향 전환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근소한 점수차로 낙방하니 내 노력이 부족한 점에 대해 자책하며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버텼다. 자꾸 떨어지기만 하니 답답한 마음에 후배들과 지리산 종주를 떠났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보러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솟구치며 신에게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크리스천이 아니어서 천지신명께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신이여, 합격시켜 주소서!"
일출을 보러 천왕봉에 모여 있던 사람들 보기가 창피해서인지 옆에 있던 후배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나를 말렸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한 보람도 없이 낙방이 계속되자 누군가가 방해를 하는 것 같았다. 신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시험에 붙을 것 같아서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제목이 다시 바뀌었다.
"신이여, 방해하지 마소서!"
1차 시험을 보름 앞둔 어느 날, 남동생이 나를 고시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생이 차를 돌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것이 동생과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렸다. 동생은 내가 시험 보기 사흘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연락을 받고 영안실로 달려갔는데 너무나 원통하고 슬퍼서 식음을 전폐하고 3일간 울며 소주만 마셨다. 당시 남동생은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형인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하니 결혼을 하겠다는 말도 못하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죄책감이 더해져 가슴이 찢어졌다.
고시 시험일이 동생의 발인일이었다. 심신이 탈진상태라 시험 볼 엄두도 못 내는 나를 가족들은 시험 전날 집으로 보내어 쉬게 한 뒤 시험을 보게 했다. 시험장에서는 시험을 보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시험지를 공허한 눈으로 보고 하기를 여러 번 했다. 며칠간 잠을 못 잔 탈진상태에서 시험을 봤는데 1차가 붙었다. 참 이상했다. 도저히 붙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이듬해 2차 시험을 볼 때는 남동생을 잃고 난 뒤라 시험 합격에 대한 애착도 집념도 다 스러졌다. "신이여, 필요하면 합격시켜 주시고 필요치 않으면 낙방케 하소서." 기도제목이 다시 바뀌었다. 집착을 버린 그 해, 고시에 최종 합격했다. 나는 드디어 7전8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이 코앞이었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3) '불신자' 우리 부부를 교회로 인도하신 힘은?
불교에 심취했던 아내 먼저 구주 영접 새벽기도 운전기사 역할하다 나마저도
사진: 이재만 변호사가 자신을 신앙의 길로 인도한 아내 조향씨와 함께했다. 이 변호사는 결혼 초 아내와 함께 절에 다녔던 불교신자였다.
회색빛 시대에서 7전8기를 거쳐 합격을 하자 새로운 희망이 보였고 못다한 꿈을 펼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법연수원생 297명의 자치회장직을 맡았고 수많은 법 동아리 활동, 판검사 시보생활 등으로 매우 바빴다.
마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슬픔이 너무나 컸다. 아버지는 창을 잘 하시고 친구를 좋아하는 한량이셨다. 그런 성격을 이어받았는지 물 흐르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살기 좋아하는 나는 동생을 잃은 후에는 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노모는 결혼을 성화하셔서 후배 변호사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나의 허전함과 슬픔을 지혜로운 아내가 채워줄 것 같아서 결혼했고, 결국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해준 이는 아내다.
아내는 원래 크리스천이었는데 대학에서 고전무용을 가르치면서 민속학을 연구하다 민속종교를 믿었고 불교에 더 심취하게 되었다. 그러던 신혼시절, 처갓집의 경제적인 큰 어려운 사건 때문에 시댁의 도움을 받으니 자존심이 강하고 완벽주의자인 아내가 매우 힘들어했다. 시댁에서 아내를 위로하고 심지어 아내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신경 쓰고 있던 차에 아내와 형제처럼 지내는 크리스천인 손위 시누이가 새벽기도를 권했다.
아내는 매일 새벽마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나는 아내가 새벽마다 나가는 것을 전혀 몰랐는데 어머니는 새벽잠이 없으셔서 며느리가 새벽마다 집을 나가는 것을 알고 계셨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으니 며느리가 새벽기도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셨다고 한다.
평생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를 위하여 평생 믿어 온 자신의 종교와 다른 종교를 믿으려는 며느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크리스천으로 개종케 할 줄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크리스천이 되신 어머니는 많은 목사님들의 기도속에서 편안히 영면하셨다.
아내는 그렇게 예전의 신앙을 기억하고 주일이면 서울 동부이촌동 충신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다니던 어느 겨울날 아내는 내게 "너무 춥고 어두워서 무서우니 새벽기도 나가는데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새벽기도 운전기사가 되었다. 아내는 새벽기도만 다녀오면 얼굴에서 평안함이 가득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아 매일같이 아내를 교회로 데려다주고 교회 밖에서 새벽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들고 차 안에서 신문을 보며 일과를 시작했다.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교도인 내가 매일 아내의 새벽기도를 돕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때때로 아내는 나의 피곤을 풀어준다면서 안마를 해주고 발마사지를 정성껏 해주면서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틀어주었다. 1년이 지나자 찬송가와 설교 말씀이 귀에 익어갔다. 어떤 날은 구두 닦는 분에게 구두 닦는 비법을 배워왔다며 내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놓기도 하였다.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게 겨울,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1998년 한 해를 마감하는 1998년 12월 31일이었다. 아내는 이날 내게 저녁예배에 함께 참석해 보자며 처음으로 운을 뗐다. 새벽기도를 바래다 준 지 1년이 지난 때였고 그날은 송구영신 예배였다. 성악가들의 찬송을 듣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충신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그해 초봄 아내는 내게 이번 주일에는 양복에 넥타이를 한 정장차림으로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무심코 그러마고 했다.
그날 예배시간에 박종순 담임목사님이 오늘 새로 등록한 교인이 있다고 발표를 하는데 갑자기 나를 호명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어서 일어나 인사하라기에 얼떨결에 일어나 인사를 하니 전 교인이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난 충신교회 등록교인이 되었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4) 생애 첫 예배의 선물… 가슴 깊은 곳서 뜨거움이
통성기도 후의 느낌 아내에게 말하자 "여보 성령님이 임한거예요" 감사기도
사진: 지난해 서울시 자살예방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이재만 변호사(가운데). 이 변호사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교회에 처음 나가 겪었던 신앙체험을 나누고 싶다. 1998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때 '전교인 새해맞이 기도'가 있었다. 그날 교인들의 기도는 너무나 뜨거워 마치 용광로 속의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큰 소리로 하는 기도는 초신자인 나에게는 익숙지 않았다.
'기도를 조용히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텐데 왜 저리 미친 듯이 큰 소리로 기도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용히 기도하는 것도 익숙지 않던 나는 주위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리치며 우는 성도, 가슴에 손을 얹고 우는 성도, 일어나서 발을 구르며 기도하는 성도, 두 팔을 벌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성도, 가슴을 막 때리며 기도하는 성도 등이 보였다.
가슴을 때리며 기도하는 성도를 볼 때는 저렇게 때리면 가슴이 아프겠다는 생각도 했다. 전교인의 기도소리가 너무나 크니까 '혹시 교회 천장의 전등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내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기도했다. 아내의 손에서 뜨거운 맥박이 전해져 왔는데 아내의 손힘이 이렇게 강한가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날 송구영신예배에서는 성경말씀 카드를 뽑아 한 해 동안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나는 레위기 26장 6절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 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서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적힌 말씀카드를 뽑았다.
이 말씀카드를 앞에 놓고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는데 때때로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내에게 이 느낌을 전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자고 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소리치며 하는 기도가 통성기도이고 가슴을 치며 하는 기도가 회개기도임을 구주를 영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기도인지도 비로소 깨달았다.
통성기도 후 목사님의 기도 가운데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아내에게 결국 이 말을 전했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했다.
"여보, 성령이 임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해 첫 예배를 송구영신예배로 보게 하시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나는 아내가 종교 때문에 가정도 소홀히 하는 광신도의 길을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내는 감사기도를 하더니 내게 성령이 임했으니 동해바다로 가서 바다를 보며 기도하자고 했다. 나 역시 어떤 끌림에 의해 그 새벽에 동해로 떠났다.
철 지난 겨울바다는 쓸쓸하기 마련인데 그날의 겨울바다는 무엇인지 모를 기쁨을 내게 주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삶, 동생을 잃은 슬픔,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장남인 나를 위하여 평생을 기도하셨는데 지금은 며느리가 크리스천이 된 미안함, 늦어진 고시 합격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주었던 고통 등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마흔에 첫아들을 얻은 아버지는 나를 '갓 마흔의 첫 버선'이라면서 집에 오시면 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나의 고시 합격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마음 깊숙한 곳에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그날 겨울바다에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슬픔이나 회한을 더 이상 간직하지 말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에게 이 감동스러운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많이 울었고, 울면서 내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통성기도를 했다. 겨울바다의 찬바람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꼈고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첫 선물이었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5) 충신교회의 맞춤전도 "법률이야기 한번 써보세요"
담임목사 안부전화에 가끔 출석하던 초신자에게 전도지에 글 쓸 것을 권유
사진: 방송에 출연해 생활법률에 대해 설명하는 이재만 변호사. 교회에 출석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99년 1월 1일 신년예배 이후 몸도 마음도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날아 갈듯 가벼워진 마음,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암시,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주는 평안인줄 그때는 잘 몰랐다.
초신자인 나는 하나님의 큰 선물을 받고도 매주 교회에 나가지는 못했다. 가끔 박종순 담임목사님의 전화가 왔는데 박 목사님은 교회 나오라는 말은 전혀 안 하고 그저 안부만 물으셨다. 그러나 난 안부전화에 대한 보답으로 그 주는 꼭 교회에 나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담임목사님을 통하여 맞춤전도를 한 것이다.
안부전화에 대한 보답으로 교회를 나갔으니 참 어리석은 초신자였다. 그해 봄에 등록교인이 되고 주일성수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목사님 설교말씀 중에서 가슴에 와 닿는 성구가 있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이다.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박 목사님의 맞춤전도에도 불구하고 주일성수를 지키는 것이 익숙지 않았지만 점점 교회 나가지 않으면 마치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안 한 것처럼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충신교회에서는 매달 전도지인 '지금'이 발간되었는데, '지금' 담당인 장원재 부목사님(현 영문교회 담임목사)으로부터 법률 칼럼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 칼럼은 내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회보 '지금'의 '이재만의 법률 이야기'는 현재까지 15년째 이어져오고 있으며, 나는 이를 계기로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들을 자주 만나고 성경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신앙이 조금씩 자라났다.
난 이 무렵 변호사 일에 최선을 다하며 아주 열심을 내고 있었다. 법정은 아프리카의 초원처럼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때까지 싸우는 승자독식의 현장이다. 교통사고로 생명이 희미해져가는 위독한 중환자에게 분, 초를 다투면서 응급처치를 하는 병원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듯 법정에서도 구속된 피고인이나 파산 직전의 회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증거재판주의 국가이므로 변호인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을 치밀하고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기업 사건의 경우 사건 결과에 따라 회사가 회생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회사는 회사 오너의 형제 간 분쟁이나 회장이 형사사건에 연루되는 경우 주가가 하락하는 동시에 회사의 브랜드에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요즈음 스타 연예인들의 경우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처럼 수입 규모가 커졌고, 한류스타는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을 준다. 그런데 스타 연예인들이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재기가 불가능하여 영원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스타 연예인 사건 진행을 하는 때에는 그들의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하고 치밀하게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이처럼 죄 있는 사람은 그 죄보다 더 많은 벌을 받지 않도록 변론하여야 하므로 업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로 인해 교회를 나가긴 해도 신앙인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영생의 확신과 빛된 삶을 사는 크리스천으로 거듭나진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좀 더 깊이 만나고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었던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개그계의 신사 주병진씨 사건'이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7) 주병진씨 통곡의 기도 후 2심·대법원서 "무죄"
아내, 나무십자가를 주며 기도 권유… 기독 연예인들의 중보기도에 진실은…
사진: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해 법률적 해석을 해주고 있는 이재만 변호사. 주병진씨 사건을 무죄로 만들어 일약 유명 변호사가 됐다.
주병진씨의 1심 재판기록을 보면 볼수록 자해공갈단의 범죄 수법은 정교하고 지능적이고 대담했다. 난 주씨에게 덧씌워진 견고한 누명의 매듭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사건기록을 일일이 챙기면서 의혹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먼저 공갈단의 휴대전화 통화 기지국을 따라가면서 동선을 찾아갔다. 사건 당일 서울 반포 어딘가에서 만난 이들은 공범의 아파트에서 피해자라는 주범의 얼굴을 때려 상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찌나 수사기록을 많이 보았는지 수사기록 몇 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를 알 정도가 되었다. 주씨는 명백한 무죄지만 문제는 상대가 1심 증언이 허위임을 스스로 자백하느냐였다. 그들은 1심 증언이 허위임이 밝혀지면 중한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므로 절대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이들의 진술이 허위임을 증명할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위해 법조계 인사들과 회의를 거듭했다. 이성미씨는 만삭의 몸으로 동료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를 도와 증거를 찾아주었다. 박미선 송은이씨 등은 방송 스케줄을 연기하면서까지 부산에 가서 내가 원하는 증거를 찾았다. 그러나 허위 진술을 깨뜨릴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크리스천 기독 동료들이 주씨를 위해 수시로 기도모임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앙심도 깊어졌다. 나도 교회에서 진실을 밝힐 혜안을 달라고, 진실을 밝힐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런 중보기도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주씨와 사건 내용에 대한 상담과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 아내는 주씨에게 나무십자가를 건네면서 기도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주씨는 지갑 속에 있던 부적을 버리고 대신 지갑에 나무십자가를 넣고 다녔다.
어느 날, 이성미 박미선 김자옥씨가 주씨와 함께 기도모임을 하다 동부이촌동 충신교회에 가서 기도하자며 다시 교회에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늦은 시간이라서 교회 앞 철문이 닫혀 있어 네 사람이 철문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한밤중에 톱스타들이 철문을 붙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들의 간절함이 뒷모습에서 전해졌을 것이다.
이날 주씨는 철문 앞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기도를 했다고 한다. 난 하나님이 맺은 매듭이라면 하나님만이 풀 수 있다고 여겼다. 이성미씨로부터 이 통곡기도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렇다면 이 사건은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다가왔다. 그때부터 맞추어지지 않던 몇 조각의 퍼즐들이 스스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실체적 진실이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았다. 주씨가 스스로 통곡 속에서 회개기도를 한 이후 숱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계속되던 나의 두통도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렇게 주씨의 기도 속에서 진실의 문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결국 2심에서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다. 실체적 진실이 교묘하게 가려졌던 거짓을 파헤칠 수 있었던 놀라운 승리였다.
무죄 판결이 나자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이 역시 승소했다. 주씨는 내 손을 잡으며 진정한 감사를 표시했다. 사건의 맥을 짚어 작은 단서를 활용해 치밀하게 법리적 공격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준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성미씨에게 "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살겠다"고도 했다.
주씨 사건은 변호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일깨우는 동시에 오직 사랑으로 동료를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는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기독교 신앙'에 대해 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더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8) 잇단 '무죄' 변론… 그 승리의 원천은 기도의 힘
'무죄제조기' '형사 콜롬보' 등 명성에 스타 연예인들 찾아와 인생 상담까지
사진: 이재만 변호사는 법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법에 대해 설명하는 이 변호사.
2년여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주병진씨 형사사건을 무죄로 입증하자 언론에서 나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나를 '무죄 제조기' '형사 콜롬보' '법정의 승부사'라고 보도해 변호사로서 큰 명예를 안겨주었다. 아울러 이 승리는 크리스천 동료들이 보여준 헌신과 기도의 열매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한 만큼 보람이 있어 기뻤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호사는 목사님처럼 많은 의뢰인들의 고민과 비밀을 듣는 직업이다. 그러나 직업상 얻은 의뢰인의 비밀은 언제나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주씨 사건 이후 많은 연예인들이 찾아왔다. 법적인 문제 외에도 그들의 고민, 유언, 상속, 부부갈등 등 많은 것을 나와 터놓고 상담했다.
스타들과 접하면서 화려함 이면에 존재하는 그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인기가 있어도 스타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늘 불안감과 압박감이 있었다. 스타들은 영원한 스타이기를 원하기에 아프거나 화가 나거나 슬퍼도 항상 웃고 예쁘고 매력적인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데다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상대가 없어 매우 힘들어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인 데다 성폭력 사건, 명예훼손 등이 만연하고 있다. 악한 영과 미혹의 영이 우는 사자처럼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특히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생명처럼 생각하므로 인터넷상의 악플만으로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교제를 하다가도 신상털기로 인해 본의 아니게 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비단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참 그리스도인의 말씀을 전하는 일, 그리고 가족과 이웃, 나라를 위한 많은 기도와 전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법정의 승부에는 성실과 끈기, 그리고 전략적인 변론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 명쾌한 변론의 힘은 의뢰인들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변론을 준비하면서 정말 기도의 힘에 의지해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주씨 사건 후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또 하나의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그맨 권영찬씨 사건이다. 기도의 힘이 절대적임을 알아가고 있을 때였다. 1심에서 2년6개월의 실형 선고를 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한 권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2심에서 무죄를 밝히지 못하면 2심 선고일에 바로 법정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권씨는 무죄 변론이 실패해 구치소에서 복역하는 한이 있더라도 허위자백으로 가슴에 한을 안고 전과자로 사느니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끝까지 무죄를 밝히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는 권씨와 함께 진실을 밝히려고 현장검증에 들어갔고, 권씨의 약혼녀와 가족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간절한 기도 속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 승리했다. 크리스천인 권씨는 지금 사업가이면서 행복전도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며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그가 만약 무죄를 받지 못했다면 이런 선한 일은커녕 죄인처럼 숨어 살았을 것이다.
선량한 여성 피해자들이 꽃뱀으로 오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꽃뱀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아직도 사회 통념상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피해자라고 보지만 두 사건을 통해 남성도 범죄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구속 수사로 진행하는 형사사건이므로 특히 수사 단계에서부터 치밀한 변론 준비와 변론 전략이 필요하다.
난 요즘도 법정에 갈 때마다 춘천중앙교회 사공정 담임목사님이 내게 격려차 주신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를 되뇐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9) 누명 쓴 ‘노랑머리 사건’… 주님께 기도하자 진실이
어느 대학생의 무죄 호소에 사건 수임 ‘무죄 판결’ TV 유명 드라마로도 나와
사진: 이재만 변호사는 서울 서초구 집무실에서 수시로 대형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건을 잘 해결한 후 기자들로부터 ‘법정의 승부사’란 말을 들었을 때 월드컵에서 결승골을 넣을 때처럼 짜릿했다. 변호인으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돌이키면 이런 보람은 변호사의 변호 능력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의뢰인과의 영적 공감을 통해 얻게 된다.
누구나 갈등을 겪는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 간, 동료 간, 사업상 겪는 갈등 때문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위기나 갈등의 원인은 결국 사람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 정보화 시대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글로벌하게 확대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고독하고 우울해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대기업의 경우 회장이 잘못되면 주가가 하락하거나 중요사업의 결정이 늦어지고 관련 중소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는다. 어느 재벌회장 사건을 변호하는 중에 자택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면서 기업경영이야기, 인생경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그가 회고하기를 ‘수많은 충성스러운 인맥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하면서 탄식했다.
그날은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새벽 3시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법적 자문을 하게 되었고 그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게 예쁜 장미 벽시계를 선물했다.
존경받던 권력가나 재력가라 하더라도 해결할 길 없는 법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우왕좌왕하고 주변사람들이 떠나가 몹시 외로워하고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주님을 만날 때이다. 현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주님을 찾을 때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언제나 한곳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외로움과 배신감, 그리고 고통에서 손쉽게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건사고를 당했을 때나 무슨 일을 이루려고 간절히 원했을 때 진실한 기도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다. 주님께 간구하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대한민국 만세사건’이 기억난다. 이 사건은 사법연수원 시험문제로도 출제되었고, 실화극장 ‘죄와 벌’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일명 ‘노랑머리 사건’이다.
매우 바빴던 어느 날, 평범한 중년 아버지가 대학생인 아들이 억울하게 구속됐다며 하소연했다. 구치소로 가 아들을 접견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럽게 울기만 했다. 난 그 울음이 너무 구슬퍼 더 이상 면담이 불가능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 사건은 한여름 밤에 발생한 여고생 납치 특수강도 사건이었다. 지목된 범인은 8명의 노랑머리 남자들. 여고생이 노랑머리인 대학생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는 모범생 스타일로 너무나 예쁘게 생긴 여고생이었다.
이 역시 기도에 의지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드러난 여고생의 실체는 경악 그 자체였다. 여고생은 동거 중인 자신의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한밤중에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을 감추기 위해 그 시간에 노랑머리한테 특수강도를 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것이었다. 노랑머리 범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대학생이 노랑머리를 해서 여고생의 허위 진술 때문에 억울하게 구속된 것이다. 그래서 구치소 첫 접견 때 말을 못하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던 것이다.
아들의 무죄를 믿었던 아버지는 법정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쳤다. 평범한 중년의 시민이 법정에서 외쳤던 이 목소리는 지금도 내가 법정으로 향할 때 “주님과 늘 함께하며 또 늘 기도하라”는 메시지로 삼고 있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0) 우리 집 작은 기도방은 가족들의 ‘신앙 발전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믿음을 나누고 기도를 생활화하게 돼
자신의 집에 설치한 기도방에서 기도하는 이재만 변호사. 기도방은 온 가족의 신앙 발전소이자 믿음의 충전소가 되어 주었다.
기획연출가인 아내(조향)는 출석하던 교회에서 2000년 밀레니엄 송구영신 예배를 기획했다. 그 당시 부목사였던 이전호 목사님이 기획을 함께했는데 현 충신교회 담임목사다. 우리는 교회 봉사를 통해 교회 안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믿음도 성장했다.
우리 집엔 작은 기도방이 있다. 이사 후 작은방을 옷방으로 할 것인가, 기도방으로 할 것인가의 선택에서 아내는 망설임 없이 기도방을 택했다. 이렇게 ‘기도방’이란 명칭을 부여하니 잠깐이라도 들어가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될 수 있었다. 기도방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다.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들이 오셔서 조그만 기도방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연예인들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한 적도 있다. 급한 법적 문제 때문에 늦은 밤에 집으로 오는 지인들이나 동료 후배들도 기도방에서 기도하도록 제공했다. 기도방은 우리 가족의 신앙 발전소이자 믿음의 충전소였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주일성수도 힘들어하던 초신자가 어느덧 기도방에서 매일같이 기도하는 크리스천이 되어 있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처럼 기도방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게 했다.
하나님은 CBS 신앙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 날 출연하게 하셨다. 이 출연은 내가 세상에 크리스천임을 공개하는 것으로 신앙적으로도 큰 도전을 주었다. 최일도 목사님과 오미희 권사님이 사회를 보았는데 “변호사는 사안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의뢰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자 오 권사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사연을 들어보니 “자신이 억울한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변호인이 없었는데 내가 경청의 중요성을 말하니 그 당시가 생각나 눈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의뢰인을 만날 때마나 난 오 권사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경청하게 된다.
‘밥퍼운동’과 함께 다일공동체를 운영하는 최 목사님과는 이 만남을 계기로 ‘다일공동체 협력대사’로 임병받아 부족하지만 옆에서 돕고 있다. 이 방송을 계기로 크리스천 변호사로서 ‘성경으로 풀어보는 법 이야기, 여성을 위한 법’을 이어 강의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자 시도였다. 하나님께서 내 달란트를 사용하신다고 하면 아낌없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초신자인 나를 방송에서 신앙 간증을 하게 하고 성경으로 법을 푸는 강의를 하게 하심으로 결국 성경 공부를 강제적으로 하게 만드셨다.
이런 것이 바탕이 되자 이번에는 극동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바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길을 인도하신다는 확신 속에 ‘하나님의 법, 세상의 법’ 등 1년6개월간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을 할 때마다 항상 기도했다. “하나님. 크리스천들도 생활 속의 법을 잘 알아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설명하는 이야기가 청취자나 시청자에게 잘 전달돼 도움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기독교 언론매체들과의 협력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고 나는 시간이 없으면 쪼개서라도 기독교 관련 방송은 출연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깃 중의 하나라고 분명히 믿기 때문이다.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은 좀 선선해졌다. 촉촉한 단비가 내린 오늘 모처럼 아내, 아들과 함께 외식을 나갔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댔지만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아들이었다. 우리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양보한 것이다. 식기도를 하면서 내겐 하나님 아버지의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로 ‘은혜’였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1) 한류스타 송일국씨, 새벽에 찾아와 “도와주세요”
의뢰인-변호사, 상호 신뢰로 명예 회복
NGO 굿네이버스 홍보전문위원으로 위촉돼 패를 받는 이재만 변호사(오른쪽). 다양한 사회공헌 기관에 참여해 봉사하고 있다.
“추운 비 속에서/ 따뜻한 햇볕 같은 빨간 우산/ 비오는 날/ 온 세상이 따뜻해졌다.” 이 짧은 시는 ‘빨간 우산’이라는 제목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들이 쓴 시다. 우리 부자는 우산과 인연이 깊은가 보다. 공교롭게도 내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바로 우산 때문이었다. 법치국가에서는 법을 모르면 비를 맞게 되는데 바로 이 비를 가려주는 우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택한 길이 바로 변호사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추운 비를 맞는 이에게 햇볕 같은 빨간 우산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위기를 관리해 주는 리스크매니지먼트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다를 때는 하나님의 시선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해답을 주신다. 사건의 매듭이 안 풀릴 때 기도하고 주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혜안을 주시며 나아갈 길을 보여주셨던 것을 나는 수없이 체험했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새 힘을 얻는 보너스도 있곤 했다.
리스크매니지먼트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배우 송일국씨의 명예훼손 사건을 설명하고자 한다. 송씨는 플리랜서 여기자를 폭행해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혔다고 고소되어 국민배우로서 도덕적인 신사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아침에 여자를 폭행한 폭력범으로 보도됐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송씨는 끝내 결혼식장에 형사피의자로, 신부는 판사로 입장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당시 송씨는 아시아권에서 인기 있는 최고의 한류 스타였다. 그가 주연한 드라마 ‘주몽’이 이란에서 TV로 방영될 때는 시청률이 80%를 넘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날 송씨는 형사고소되자마자 새벽에 수소문하여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날 새벽 바로 사건 현장으로 가서 현장검증을 하면서 사건을 재현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상대방과 옷깃조차 접촉한 사실이 없는데도 상대방을 폭행해 이가 부러져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게 하였다는 상대방 주장에 대해 영화배우의 생명을 걸고라도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했다.
나는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서 당시 사건을 재현하는 영상을 촬영했고 이때 전문 영화촬영 장비인 지미집을 사용할 정도로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재현 현장에서 수십차례 재현을 했을 때 송씨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역 없이 그 재현에 직접 참여했다. 재현 당시 초를 재고 줄자로 정확한 거리를 재면서 상대방의 진술과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른 재현을 하더라도 쌍방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결국 도저히 서로 옷깃도 스칠 수 없음이 밝혀졌다. 이는 CCTV 동영상이나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송씨의 아내도 판사이고, 송씨 주변에 많은 법조인이 있음에도 초지일관 담당 변호사를 신뢰해 변론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음으로써 명예가 회복되었던 리스크매니지먼트의 승리였다.
송씨는 그 당시의 승소로 명예가 회복되고 스타로서 연예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송씨는 사건진행 내내 유명한 한류 스타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예의가 바른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그러한 좋은 이미지가 바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은 반전의 명수이셨다. 변호사로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수많은 변호사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던 나를 주병진씨 사건을 비롯, 몇 가지 관심을 끄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일약 스타 변호사로 올려놓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결코 얻지 못했을 부분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진리 중의 진리임을 절감한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2) 늦둥이 아들 자극 주려 필리핀 단기 봉사
현지 아이들 힘든 삶 불구 밝은 모습 봉사하러 갔다가 더 큰 은혜 받아
필리핀 빈민지역 봉사를 갔을 때의 이재만 변호사 가족. 이 변호사는 크리스천에게 이웃사랑과 나눔의 실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신앙인이 되고 변화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교회생활을 통해 신앙 성장도 이뤄졌지만 집의 ‘기도방’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인생의 목적이 성공과 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실 남보다 인생이 늦은 만큼 더 빠르게 따라가 많은 것을 쌓아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대부분 수재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학창시절 1등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삼수를 했고 8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외모도 좀 특이하게 생겨 대학시절 별명은 ‘페르난도 산초’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다.
늦둥이였던 나는 부모님이 야단을 치시거나 때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약주를 한잔 하시고 늦게 들어오신 날엔 나를 쓰다듬으시며 ‘아들아’ 하고 나직이 부르셨다. 나는 아무리 부족해도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내가 결혼하는 것도 보여드리지 못하고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한 것은 지금도 너무나 죄송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신앙인이 되어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이 ‘아버지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하나님의 마음’도 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못나고 신앙인으로 부족하고, 주일을 지키지 못해도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인생을 살아 숨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귀하다는, ‘영적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40세에 나를 낳으셨는데 나도 42세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 늦둥이 아들이다 보니 마치 할머니가 내게 대해 준 것처럼 나는 아들을 손주처럼 키우게 되었다. 내게 혼난 적이 없는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외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알에 보랏빛을 넣었고, 긴 머리는 한눈을 가릴 지경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지만 나를 할아버지로 여기는 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난 아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면서 그해 여름휴가에 필리핀 단기봉사를 계획했다.
춘천중앙교회 사공정 목사님의 아들인 사공세현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는 필리핀 빈민지인 나보타스시 아프간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만조 시에 수상가옥이 되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골목길은 온통 무릎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고 각종 쓰레기가 둥둥 떠 다녔다.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끼니를 거르고 있었던 어린이 80여명에게 배식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범법자들이 있어 예배를 드린 후 서둘러 시내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해는 떨어져 가고 있어도 우리 가족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동심 속에서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지만 바로 이곳에 주님이 더 뜨겁게 살아 역사하심을 느끼고 큰 은혜를 받았다.
필리핀 어린이들의 크고 맑은 눈망울, 우리 가족이 가져간 필통 등 작은 선물을 받고 너무나 행복해 하던 천진난만한 미소, 손잡고 울면서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모습이 내 마음을 계속 뭉클하게 했다.
자기 식사 일부를 덜어서 집에 있는 가족에게 주겠다고 비닐에 담는 착한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봉사하러 왔지만 그곳에서 어린아이들로 인해 더 큰 신앙의 도전을 받았다. 아들도 현장에서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와 사랑, 나눔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나눈 것은 반드시 더 큰 은혜와 사랑, 복으로 되돌아온다. 이것은 내가 신앙생활을 하며 얻은 또 하나의 진리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3) 교회 법률상담·NGO 지원… 봉사의 기쁨 깨달아
다일공동체 협력대사 등 활동 봉사는 전도로 연결되는 통로
한 보험회사의 요청을 받아 특강을 하고 있는 이재만 변호사.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강의로 인기가 높다.
필리핀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좀 더 뜨겁게 만날 수 있었다. 봉사가 주는 기쁨은 재충전과 함께 깊은 행복감을 선사했다. 봉사에는 순수함만 존재한다. 사회에 난무하는 위선이나 거짓이 없어 마음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것이다. 세상사가 힘들 때 순수한 봉사를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출석하던 충신교회에서 법조인선교회 회장이 되었다. 교회에서 법률상담봉사를 계속하면서 세계스포츠선교회,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대한체육회 등의 법률고문도 맡았다.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을 위한 한국지도자센터 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NGO 굿네이버스 홍보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에 연탄은행 허기복 목사님을 만났다. 아직 연탄이 없어 추운 겨울을 냉방에서 지내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쾌히 외로운 노인들을 돕는 연탄나눔은행 이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나는 참 부족한 것이 많고 바빠 사실 봉사활동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언제나 망설이곤 하는데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참여하라는 것 같아 순종하고 있다.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과의 만남도 내겐 의미가 크다. 이 '밥퍼' 목사님께서 나를 다일공동체 협력대사로 위촉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법적 자문을 통해 많은 목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고, 목사님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기독교 봉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이 모든 봉사활동은 결국 전도와 연결되는 커다란 통로이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 수많은 분들이 무명인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유독 부족한 내게 많은 봉사직책을 맡겨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기도를 했다. 이때 주님은 성경말씀으로 답을 주셨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생면부지인 초로의 시골부인이 TV에서 날 보았다면서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 부인은 "예금이 5000만원만 보장된다는 보도에 불안하다"면서 "자식도 남편도 믿지 못하니 변호사님이 6억원을 보관해 달라"고 했다. 막무가내인 부인을 설득해 아는 은행지점장을 연결해 주었다. 변호사는 신뢰가 생명인데 그분이 내게 보낸 신뢰를 생각하면 긍지가 생긴다.
인터뷰를 할 때 기자들에게서 "인생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난 "슬플 때나 어려울 때 나를 자기편이 되어 줄 단 한사람이라고 생각해 줄 때"라고 대답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감성보다 매우 냉철한 이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위선, 배신, 위증, 위증교사, 무고 등이 난무한다. 법정에서의 모든 사건은 반드시 어느 한쪽에 진실이 있다. 그것은 다른 한쪽은 명백한 거짓이라는 것이다. 사건 사고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다. 사건의 실체, 사건의 동기를 알려면 감정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청년기에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는 감성적이었는데 오랜 변호사 생활로 직업상 이성적 판단과 냉철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잃었던 감성을 조금씩 되찾는 것 같아 기쁘다.
추석이 곧 다가온다. 주변에선 호랑이 할머니로 불렸지만 내게 유독 자상하고 봄바람처럼 다정다감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난다. 내 배를 쓸어주면 신기하게 배 아픈 것이 나았던 할머니는 내게 둘도 없었던 어린시절의 든든한 후원자셨다. 손자를 위해 고쟁이 주머니에서 하얀 명주손수건으로 감싼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알사탕을 사주셨다.
이처럼 할머니가 내게 진심어린 사랑을 주었듯 지금도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다. 바로 나의 구주이시며 인생에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4) 이혼 홍수 시대에 엄앵란씨 애틋한 부부애 감동
‘빨간 고추와 노란 장미’ 사연 뭉클 아날로그적 진정한 사랑 보여줘
TV 프로에 출연해 이혼 관련 특강을 하고 있는 이재만 변호사. 그동안 숱한 유명인들의 이혼 소송을 맡으며 리스크매니지먼트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세계 최고의 발명품이자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가 빛의 속도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누가 먼저 정보를 획득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보거나 찬송가를 들을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정적이고 아날로그적 감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변호사라는 직업상 이성적일 수밖에 없지만 신문을 즐겨 보고 성경을 읽으며 스마트폰에서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활자매체를 추억한다.
우리나라는 1년에 36만쌍이 결혼하고 12만여쌍이 이혼해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다. 사랑과 전쟁에서의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13:13)는 말씀처럼 사랑이 있는 한 이혼은 줄어들 것이고 이혼을 하더라도 아픔은 치유될 것이다.
내가 변호한 유명 기업인이나 스타들의 이혼은 소송 중에 조정으로 끝내도록 권유하는데 이는 이혼소송 진행이 이전투구 양상을 띠면 쌍방간에 이미지 실추가 불 보듯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항상 안타까운 점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정폭력, 고부간 갈등, 남편의 외도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재산분할청구권, 양육권 등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결혼할 때는 하늘의 별도 따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헤어질 때는 양육권, 재산분할 때문에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안타까운 사례를 많이 접한다. 이혼 소송을 진행할 때는 무엇보다 이혼을 하더라도 상대방과 원수가 되어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법적 조언을 하는 한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기도 한다.
이혼 사유 중 1위가 과거에는 외도였지만 현재는 성격차이다. 성격차이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부부에게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서로 맞추어야 하는 것임에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려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대체로 참고 살았지만 스마트폰 세대에서는 참고 살려 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진행하는 TV 대담 프로 ‘이재만의 성공 스토리 만남’에서 아날로그 감성의 엄앵란씨를 만났다. 엄씨는 배우로서 세 번째로 한국영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곳 엄앵란실에 빨간 고추와 노란 장미가 들어간 ‘예쁜 병’이 있다. 이 병의 사연이 깊은 감동을 준다,
엄씨는 남편 신성일씨가 정치를 하다 옥고를 치러 오랜 기간 옥바라지를 하던 중 신씨가 고추장에 풋고추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해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고추를 심었다. 고추가 열리자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드실 거니까 절대 따지 마라”고 했지만 그 고추가 바싹 마를 때까지 남편은 나오지 못했다.
엄씨는 바싹 말라버린 고추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곱게 유리병에 담아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면회를 갔는데 교도관이 노란 장미를 전해 주었다. 그날이 마침 결혼기념일인데 줄 것이 없던 신씨는 교도소 화단에 있는 노란 장미를 꺾어 교도관을 통해 결혼기념일 선물로 준 것이다. 노부부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눈물을 흘리고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잘 보관한 빨간 고추와 노란 장미는 예쁜 유리병에 담겨 영화인 명예의 전당 엄앵란실에 진열된 것이다.
말린 빨간 고추와 노란 장미를 10년간이나 간직한 엄씨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진정한 사랑으로 뭉클함을 선사한다. 이혼을 하려는 부부에게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이여 다시 한번’의 마음을 가져볼 것을 권면한다. 또 헤어짐을 선택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혼의 아픔을 치유해주실 것을 기도해 본다.
***[역경의 열매] 이재만 (15·끝) “법 상식 전파하는 친숙한 변호사로 최선 다할 것”
‘법정의 승부사’로 알려지는 은혜 시름에 응답하는 하나님 항상 체험
이재만 변호사는 충신교회 박종순 원로목사가 써준 ‘길’이란 글씨를 사무실에 걸어 놓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사명을 항상 되새긴다.모처럼 집무실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바쁘게 살아온 나의 삶을 반추했다. 어려움과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감사’로 귀결되고 있는 사실이 또 감사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속의 도깨비방망이가 ‘뭐든 주문하는 대로 나온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도깨비방망이는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자 노력하지 않고 갖고 싶은 원초적 욕심이 만든 허구의 산물이다.
이처럼 인간은 악마의 초대에 응하기 쉬운 유혹에 누구나 노출돼 있다. 그래서 존재치 않는 도깨비방망이를 가지려 하고 이 과정에서 사악한 영의 미혹에 쉽게 빠짐을 경계해야 한다.
세계는 첨단 과학기술로 넘쳐나지만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종교전쟁의 참혹한 피해,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 군대 가혹행위, 성폭력, 아동 성추행 등 온갖 사건사고들이 넘치는 위기의 시대다.
위기는 갈등을 만들고 결국 해결하지 못해 법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갈등은 얽히고 설켜 있지만 해결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난 주님을 믿지 않을 때는 인간의 힘에 의지해 해결법을 찾았지만, 크리스천이 된 지금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나선다. 갈등의 매듭을 풀어주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사건 당사자들의 작은 시름에도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항상 체험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부턴가 나를 언론과 어린이들과 친숙한 변호사로 만들어 주셨다. 법을 제대로 알면 법은 친구이자 이웃이 되고 행복과 성공의 나침반이 되어 준다.
예방법학적 관점에서 법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는데 여성동아에 ‘여성 로스쿨’이라는 코너에서 여성들이 알아야 할 법에 대해 연재하고 있다. 또 KBS 여성공감의 ‘드라마 법정’과 ‘스크린 법정’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에 나타난 법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또 아이들의 준법정신 함양을 위해 ‘리틀 로스쿨’과 ‘주니어 로스쿨’을 출간하고 모의법정을 체험하는 로스쿨 과정을 개설했다. 이외에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법적 상식을 전파하고 법률 상담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어떤 미션을 주실지 나 역시 기대하는 마음이다.
최근에는 내가 진행하는 TV와 잡지에서 종교인과 문화예술인, 기업인 등 사회의 멘토들을 만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그 해법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보람이 크다.
이제 융복합의 시대이며 콜라보레이션이 대세여서 법조인도 법률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되는 때다. 기업인,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법적 상식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법적 윤리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대중강연 및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내가 ‘법정의 승부사’라고 알려지는 은혜와 여러 곳에서 간증을 할 수 있는 기회, 목사님들의 관심과 격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한 일들은 내가 나의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한다.
믿음은 우리 인간의 삶을 원천적으로 변화시키는 영적 힘이 있다. 하나님께 받은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법조인의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쓰려고 한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귀 기울이신 것처럼 나도 의뢰인의 마음의 소리를 경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듯 나도 사랑의 힘으로 소통하는 변호사가 되길 기도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 처음 받았던 말씀 신명기 33장 26절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를 마음에 새기면서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이 되길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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