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경제 불평등에 대한 나의 관념을 깬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은 무엇인가
나는 세계의 모든 ‘경제 불평등’이 강자들의 탐욕에서 기인된다고 생각하며 인도에서처럼 빈부의 극단적인 불평등은 적나라한 인간의 이기적인 악마성의 표출로 여겼다. 기아와 질병을 양산하며 한편에서는 굶주려 죽고 한편에서는 배가 불러서 죽게 만드는 인간사의 불평등은 반 하나님, 반생명적인 악의 얼굴로서 반드시 타파되어야할 것이었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소득격차)에 대하여서 나는 막연히 추상적으로 선진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시장정책과 군사독재에 시작된 재벌위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며 1997년 IMF 때부터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역대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말미암아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나의 생각은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이다.
그런데 최병천의 ⌜좋은 불평등⌟에 의하면 나의 생각은 다 잘못된 관념, 지식이었다.
그는 한국 진보세력이 가지고 있는 불평등(소득격차)에 대한 다섯 가지 통념을 지적하며 잘못된 분석에 근거한 잘못된 지식이라고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통념은
첫째 불평등(소득격차) 확대 시점이다. 압도적 다수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둘째 불평등 발생 원인이다. 그들은 재벌 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편향 정책, 비정규직 남용정책이 불평등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셋째 정치권 책임론이다.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의 정책적 잘못이 불평등을 확대시켰다고 본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 해고와 근로자 파견제를 수용한 김대중 정부와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를 불평등 확대 주범으로 본다.
넷째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는 대부분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거꾸로, 불평등을 줄이면 그 자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은 ‘불평등을 줄여 경제성장률을 제고한다’는 논리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경제 불평등은 국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됐다고 본다. 국내적 요인 중에서도 역대 정부의 정책 불평등 확대 주범으로 본다.
⌜좋은 불평등⌟, 43,44쪽
그러나 저자 최병천은 진보학자들의 이 5가지 불평등에 대한 통념이 잘못된 분석에 근거하였으며 감성적이며 세계관의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5가지 통념에 근거한 진보정권의 ‘불평등기획’을 실패하게 만든 불평등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하여 ⌜좋은 불평등⌟을 썼다고 하였다.
그의 국내외 통계와 자료에 근거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짧은 지면에 요약 정리하는 것은 차후로 미루고 아직도 생소하지만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좋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음미하고자 한다.
우리의 학교와 사회, 언론을 통해서 불평등은 항상 나쁜 것이며 지양되어야 하는 것으로 배웠는데 저자는 불평등을 나쁘다 좋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저자는 불평등•평등과 관련하여 경제발전의 4차원을 말한다. 좋은 불평등, 좋은 평등, 나쁜 평등, 나쁜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 ‘좋은 불평등’은 소득이 증가하고 불평등 또한 증가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신흥공업국의 성장 초기에 나타난다.
둘째 ‘좋은 평등’은 소득이 증가하고 불평등은 감소한다. 포드주의(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 자본주의 복지국가 전성기에 나타난다.
셋째 ‘나쁜 평등‘은 소득이 감소하고 불평등이 감소한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거나 대규모 전쟁 시 나타난다.
넷째 ‘나쁜 불평등’은 소득은 감소하고 불평등은 증가한다. 그런 사례는 소련 공산주의 붕괴 직후 러시아에 나타났다.
‘좋은 불평등(소득격차)’은 경제 발전 초기에 소득이 증가하면서 불평등이 따라서 증가하며 나타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나라이든 경제발전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균형 발전’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경제성장론과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것은 도시화, 산업화, 기업의 대규모화다. 자본주의 이전 전근대적인 농업경제는 공간은 농촌, 산업은 농업, 기업 규모는 소규모의 특성을 갖는다. 전근대적인 농업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산업경제로 발전한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도시화가 되고 산업적으로 상업과 공업이 발전하고, 기업은 대기업이 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소득격차)이 증가하는 것은 도시화로 농촌이 몰락하며, 상공업의 발전으로 농업이 쇠퇴하며, 대기업의 출현으로 중소기업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 나타나는 불평등을 ‘좋은 불평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기업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경제발전이 일정한 궤도에 오를 경우, 도시 소득 상승이 농촌 소득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기업 출현하면 인근지역을 중심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함께 발달하게 된다. 또한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농촌에 계신 부모님께 돈을 송금하여 농촌의 이전소득이 증가되며 또한 도시 노동자들이 고향에 왕래하면서 시골 농촌의 상권도 함께 발달하게 되므로 도농이 함께 발전하게 된다.
저자는 불평등은 절대선도 아니고 절대악도 아니며 경제성장 좋은 놈, 불평등 나쁜 놈, 때려잡자 불평등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불평등과 경제성장을 종합적•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불평등⌟,29,30 쪽
저자는 ‘좋은 불평등’에 대한 사례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선부론을 들고 있다. 오늘날 경제 대국의 중국을 만든 것은 덩샤오핑이 불평등을 감수하면서 경제발전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불평등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덩샤오핑이 주장했던 선부론(先富論)이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과의 오랜 내전에서 승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마오쩌뚱의 통치가 시작된다. 이후 마오쩌뚱은 국유화와 계획 경제를 중심으로 국가경제를 운영한다. 인구의 압도적인 다수가 살고 있는 농촌은 국가소유의 집단농장 형태로 운영된다. 가족 농장 혹은 개별 농장 체제는 불허된다. 1976년 마오쩌뚱이 죽은 이후, 1978년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게 된다. 이후 덩샤오핑은 중국경제의 재건을 위해 농촌에서는 가족 농장 체제를 인정하고, 가족 농장 체제로 발생한 잉여분의 판매를 장려한다. 홍콩 및 대만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에는 경제특구를 만들어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 해외자본도 적극 유치한다. 이러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대해 사회주의 원칙을 저버린다는 반대파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꾸준히 추진했다. 이 때 덩샤오핑이 주창한 논리가 “먼저 부자 되어라”라는 선부론이다. 최근 중국경제 뉴스를 보면, 시진핑의 ‘공부론’ 혹은 ‘공동부유론’ 표현이 자주 나온다. 공부론 역시 당시 덩샤오핑이 했던 이야기다. “먼저 부자가 되어라”라는 말에는 “나중에는 함께 부자가 되자”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판 낙수 효과론이다. ⌜좋은 불평등⌟,31 쪽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진보학자들의 통념을 넘어설 수 있도록 종합적인 안내를 해준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연구하지 않는 진보는 연구하지 않는 보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제 불평등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심어준 진보학자들의 무책임한 주장이 참으로 공허하다.
끊임없이 겸허히 연구해야 한다.
2023.2.16. 목
우담초라하니
참고서적
최병천 저 ⌜좋은 불평등⌟, 메디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