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야기 (청소년기) 一心 김영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청소년기에 꿈꾸며 기도했던 삶을 현재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을 그 분의 권능과 이름으로 인도해 주신다.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더 잘 아셨다.
나는 초등학교 4-5학년 쯤 목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03년 목포에서 나주를 경유하여 광주로 향하던 유지벨 선교사께서 나주의 한 시골에 교회를 세우셨다. 전형적인 시골교회였다. 그곳에서 난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목사수업을 받기까지 거의 한 번도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간혹 목사가 아니라면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청소년기 시절 난 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에 형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형님은 군입대 직전의 청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 해에는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초등학교 6학년을 두 번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6학년 과정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허락받아 오셨던 것이다.
중학교 과정을 1년 후배들과 함께 보냈다.
고등학교 진학은 큰 난제였다. 장학생이 되는 길만이 꿈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는 나의 마음을 보시고 길을 예비해 주셨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면소재지에 있는 실업계 특수학교인 원예고등학교를 선택했다.1등으로 입학했다. 1등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었다. 80년대 초반, 서구인들은 도시생활의 한계를 느끼고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회현상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목사수업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앞둔 1992년 어느날, 현재 목회하고 있는 현천중앙교회로 오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인도해 주셨다.
많은 분들이 그곳에서 언제 나올 거냐고 염려 반, 격려 반으로 마음을 나누어 주셨다.
나는 이곳에 오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다. 3-40년 후에는 이 곳에서 웰빙의 목회를 하고 있을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청소년기에 주셨던 목사의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다.
많은 목회 환경 중에서 땅을 경작하며 먹거리를 생산하는 웰빙의 현장에서 살게 하시니 행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와 동행해 주신다.
미래를 위해 보너스도 주셨다.
내면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살며시 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