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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다 코우지(中田幸治)씨에게 초대를 받은 사이토 이와(斎藤いわ)씨는 후카가와 키요스미정(深川清澄町)에 있는 연료도매상을 경영하고 있는 시마노(島野)상점의 부인으로 병명은 만성부인병, 만성신장염, 방광염, 요독증, 만성결막염으로 잡아주지 않으면 걷지를 못했다. 겨울에는 탕파를 4개씩 사용하며 그래도 밤중에 세 번에서 다섯 번까지 소변으로 일어나고 낮에도 배뇨는 30분에서 1시간 마다 있었다. 2층 계단을 오를 때면 손을 잡아줘도 숨이 차기 시작한다. 한여름에도 발과 허리가 얼음같이 차갑고 대하는 과거 18년 연속으로 다량으로 있었고, 두통, 현기증, 어깨결림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있었다. 도쿄에서 전문대가의 치료를 받기를 3년간, 극진하게 치료를 받았으면서도 나빠지기만 해서 온천치료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1919년 나스온천(那須温泉)의 코마츠야(小松屋)별관에서 매일 열탕에서 목욕을 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증상은 일진일퇴했으나 대체로 봤을 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도쿄로 돌아올 기회도 없이 15년 동안의 입욕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사이에 나스온천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가끔 있었다.
온천 주인 : (온천에서 입욕을 하고 있는 여러 손님들 중에, 괴로운 안색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이정도의 탕에서 3분도 못 버티면 당신 같은 중병환자는 낫지 않습니다. 힘내서 3분이라고 해도 앞으로 50초 남았습니다. 참아내세요.
손님 : 버텨내면 어떤 병이라도 낫습니까?
온천 주인 : 이 온천에서 낫지 않는 병이란 없습니다.
손님 : 저는 아직 2년째입니다만, 사이토씨는 10년 남짓 있는데, 그래도 낫지 않잖습니까.
온천 주인 : 사이토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이미 7, 8년 전에 죽었을 겁니다. 그런데 나스온천에 있는 덕분에 살아계시는 거지요,
그리하여 나스온천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입탕 15년의 나스의 여왕이라고 입탕 20년의 나스의 왕 나카다씨와 함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사이에는 다음과 가튼 서약이 있었다. 「서로 병은 다르나 빨리 나은 쪽이 그 약이나 의사를 알려줄 것.」1933년 6월의 어느 날, 사이토씨는 평소처럼 탕에 들어가서 삶은 계란과 타월을 두고 방으로 돌아오니,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사토씨는 나카다씨에게서 온 운명의 편지를 눈물을 흘리며 다 읽고 나서는 같이 온 유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모, 나는 이대로 나스에서 살다 죽을 생각으로 있었는데 나카타씨는 “나는 완전히 나았다. 당신도 내를 치료해준 광선치료로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편지가 왔어. 생각해보면 1개월 동안 머무를 예정으로 도쿄로 돌아간 나카다씨가 5월에 연락을 해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혹시 나쁜 소식이 없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했을 정도였는데, 나카다씨가 운이 좋았나봐.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나도 도쿄에 가서 나카다씨를 만나야겠어. 유모. 계산을 하고 쿠로이소(黒磯)까지 짐을 부탁해줘. 지금 상태로 기차를 타는 건 무리니까, 몸 상태를 살핀 뒤에 도쿄로 돌아가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의 친절을 뿌리치고 간 나카다씨가 나을 정도 라면 분명 나도 나을 수 있을 거야. 목숨을 걸고 돌아갈 거야. 」이렇게 하여 15년 동안 나스온천의 거리를 뒤로 하고 도쿄로 떠나왔다. 동계가 있거나 현기증이 있거나 몸을 집에 흔들려가며 쿠로이소에 가서 그 후 야행열차에 운 좋게 침대도 있어서 병을 반은 잊고 우에노에 단숨에 달려가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라서 오로지 나카다씨를 고친 광선이라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건강하게 우에노(上野)에 도착했다.
미카와시마(三河島)의 환상선(環狀線:루프라인)과 마주보고 있는 영화극장인 후지관(富士館)이 있다. 그 바로 정면에 채소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다섯 건물을 지나서 다음 교차로의 모퉁이에 있는 담배가게가 여왕이 임시로 머무르는 곳이었다. 찾아가 보았더니 의외로 건강해서 「나카다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저의 병은 당신이 어떤 위대한 광선으로 치료를 하셔도 전부 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카다씨가 치료한 심장과 이 눈만 치료를 해주십시오.」라는 주문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길게 이야기를 하면 숨이 차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정확한 말투로 명랑하게 병력을 이야기 했고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환자에게 있기 쉬운 삐뚤어진 생각이나 비관하는 기색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 날은 양쪽 발바닥, 양쪽 무릎, 눈 정면과 후두부의 치료를 하고, 다음날에는 발의 두 곳과, 복부, 허리를 각 5분간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여 당분간은 이 치료를 반복하도록 같이 온 유모에게 가르쳐주고 돌아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3일째부터 권태감이 심해져서 밤낮으로 잠을 잤다고 한다. 게다가 대하가 늘어 7일째부터 15일째 까지는 맹렬한 기세로 나와서 좋은 반응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너무 많아서 조금 불안한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사이에 이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 생겼던 것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의 쾌감이었다. 즉,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잠이 와서 곧이어 권태감이 심해지고 대하가 연속되고 있는데도 아침만은 20년 동안 계속 무겁기만 했던 머리가 가벼워졌고 식사는 세 끼 모두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었다. 광선조사 30회에 이르자 시력이 0.3이 되었고 체력도 회복되었다고 해서 매일 밤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광선치료강습을 받으러 미카와지마에서 코아미정까지 다니게 되었고 강습 3개월 동안 그녀는 15년 동안 나스의 여왕이었던 지위를 완전히 넘기고 광선치료업을 시작하여 수많은 빛나는 광선기록을 남겼다. 그 업적을 서 너 가지 이야기하기로 한다.
◈ 사례 1 뼈가 붙었다고 소리치다.
어느 날, 사이토씨의 광선치료소에 어떤 무진회사(상호신용금고의 옛 명칭)의 수금원으로 일하고 있는 스기시타(杉下)씨가 골목입구의 채소가게 주인의 안내를 받아서 6살 난 여자 아이를 치료하러 왔다. 스기시타씨는 이 아이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골막염이 걸려서 ○○외과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어제 의사가 환부(발톱을 뺀 곳에서 살이 떨어져나가서 첫 번째 마디까지 뼈만 보이고 있었다.)를 진찰하고는 「이거 뼈도 썩었구만.」이라고 중간쯤을 핀셋으로 두드리니 핀셋이 닿은 부분이 0.3cm정도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의사는 이 이상 침윤되지 않았을 때 엄지발가락을 뿌리부터 절단해야 한다. 내일 4시에 수술을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오늘은 수술에 참관하러 동생을 맡기고 아침 일찍부터 승용차로 일곱 군데의 신사참배를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가기 직전에 야채가게 주인이 오랫동안 시달렸던 골막염을 사이토씨의 광선으로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가는 것을 단념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붕대를 풀어보니 가련한 여자 아이는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떨어져 나갔고 살은 반 이상 괴저를 일으켜서 겨우 남은 살 위에 한 가운데에 떨어진 뼈가 늘어선 듯이 드러나 있었다.
가련한 여자 아이의 엄지발가락의 살이 3분의 2가 무너져 내려서 아프다며 울고 있는 모습을 앞에 두고 사이토씨는 광선기를 조작하는 손이 떨려서 발끝까지 찌르르하는 느낌으로 치료용 카본 4001번으로 2호 집광기를 사용하여 10분간 환부를 조사한 다음 환부는 아버지인 스기시타씨에게 붕대를 감게 하고 복부와 허리에 5분씩 광선조사를 했다. 그리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 일찍 와서 건강하게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3일째 아침, 스기시타씨가 딸의 붕대를 푼 순간, 뼈가 붙어있다고 소리를 쳤다. 너무도 큰게 소리를 질러서 놀랐으나, 조용히 환부를 보니 어제까지 없던 뼈가 하룻밤 사이에 접착되어 있고 육아도 현저하게 발생하여 볼록하게 형성되었고 겨우 뼈를 지탱하고 있던 엄지발가락도 조금씩 모습을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스기시타씨는 「신에게 인도를 받아 광선치료를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원래대로 되지 않더라도 발가락을 절단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라고 환하게 광선조사를 받고 있는 딸의 환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기시타씨는 「최근 50일 동안은 밤마다 아프다고 울어서 아이보다 저희 부부가 수척해졌습니다. 광선으로 인해 가족 3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계속해서 감사를 했다. 그리하여 조사 50회 만에 거의 발가락이 모양을 갖추고, 발톱이 보이기 시작하여 95회 만에 발톱도 완전히 자라났고 조금의 비틀림도 없이 완전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스기시타씨가 사이토광선치료소에 올 때마다 소개자인 야채가게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니까, 야채가게 주인은 광선치료를 선전을 해주게 되어 사이토광선치료소는 환자가 쇄도하게 되었다. 조수 1명을 고용해도 끝이 없을 정도라는 풍경이었다. 그 후 스기시타씨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와서 나에게 치료를 의뢰했다. 이는 친구의 부인이 6년 전부터 척수병으로 발과 허리가 펴지지 않고, 병원에서 손을 썼지만 점점 악화되어 현재는 배변도 자각하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어도 식사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식사도 최근에는 먹지 못하게 되어서 주치의도 「이미 오래살지 못할 것이네.」라고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되어 마지막 수단으로 광선치료를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후 스기시타씨에게서 다행히도 경과가 좋다고 하며 한 두 번 광선치료 방법을 상담받았다.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스기시타씨가 찾아와서 「저도 상당히 많은 난치병 환자를 사이토광선치료소에 소개하여 환자들이 고마워하고 있는데, 친구에게는 병이 나아서 오히려 원망을 받게 되었습니다.」참으로 약해졌다고 나에게 그 수습방법을 상담했다.
친구는 부인이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이에 애인이 생겨, 5년 동안에 아기가 두 명이나 생겼다. 부인도 위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던 애인의 문제를 부모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그것이 광선으로 부인이 회복되었고, 1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완전히 건강해져서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다행히 부인은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용서를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곤란하게 된 것은 친구에게는 원래의 부인에게도 자식이 둘이 있었고 앞으로도 아이를 더 낳을 것이다. 두 가정을 오랫동안 유지할 경제력이 없었다. 병을 치료하는 광선기를 구하자마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스기시타씨도 진정한 친구였던 만큼 걱정이 되어서,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서, 스기시타씨의 딸이 완치되었을 무렵, 사이토씨에게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실은 친여동생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재작년 말부터 자궁암으로 이미 두 번이나 절개수술을 받았는데,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심한 동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광선치료를 권해줬는데 좀처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더욱 더 악화된 데다가, 저의 치료소에 온 사람들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겨우 광선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였습니다.」그리하여 후카가와 키요스미정에 출장와서 치료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 사례 2 자궁암 절제 후 재발방지에 집중하다.
환자는 47세, 자궁경부암으로 첫 번째 수술에서 자궁의 반과 함께 암을 모조리 절제했으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만일을 위해 재발하지 않도록 뢴트겐의 심부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재발하여 다시 자궁을 전부 적출하는 수술을 하여 「이번에야말로 괜찮다. 재발하지 않는다.」라는 병원의 말을 믿고 있던 중에 또 재발을 하여 좌우 서혜부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하복부, 허리 등의 강렬한 신경통으로 특히 한밤중부터 이른 아침까지 견디기 힘든 동통이 엄습하여 매일 밤 괴로워하고 있었다. 코이즈미(小泉)씨를 찾아가보니, 언니가 권유를 해도 광선치료를 믿지 못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코이즈미씨의 남편은 위암에 걸려 온갖 치료를 받은 끝에 절제수술, 뢴트겐 조사, 라듐 등을 했지만 효과가 없이 작년 사망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첫 번째 광선치료로 코이즈미씨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우선 양쪽 발바닥, 양쪽 무릎을 각 5분간, 하복부와 허리를 각 10분간, 합계 30분간 광선조사를 한 다음에 감상을 물어보니 코이즈미씨는 「이 치료는 참으로 기분이 좋군요. 하복부와 허리는 철판이라도 대어 놓은 것처럼 뻣뻣하고 통증이 계속해서 있었는데 광선조사를 받으니 하복부와 허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해져서, 얼음이 따뜻한 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아픔도 대체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눌린 것 같던 가슴까지 탁 트여서 무언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이 치료는 하루에 몇 번 하는지요?」라고 물었다. 내가 하루에 한 번 한다고 말을 하자,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날 밤은 이제까지의 반만큼도 아프지 않고 지나갔다. 2회째의 치료로 밤에는 동통없이 숙면하게 되었는데 3회째에는 대하가 많아져서 종일 권태감이 느껴진다고 호소를 하였다. 광선조사 10회째에 권태감이 사라지고 건강하게 되었을 무렵, 상당히 많은 출혈이 있어서 놀랐으나, 이것 또한 일시적이었고 광선조사 30회째에는 밤낮 모두 동통이 일어나지 않고 임파선상에 진한 자색을 띄고 심하게 부어있던 암종의 주변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일어나서 종일 집안일을 할 정도로 건강해져서 매일 밤 2시간 씩 열리는 광선치료강습에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선조사 11개월 만에 하복부에서 좌우 임파선까지 전이된 암종을 완전히 극복하고 그 후 15년이 지났지만 지금은 더욱 건강하다.
◈ 사례 3 사이토씨의 의기, 당뇨병과 백내장의 합병증과 싸우다.
사이토씨의 미카와지마의 치료소는 2년 동안 경영을 한 끝에 대성공을 거두어서 후카가와 키요스미정으로 이전하였다. 그것은 남편도 광선치료에 공명하여 2층 건물을 치료소로 만들어서 사이토씨가 15년 동안 바라고 있었던 귀향이라는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사이토씨는 석탄 도매상을 경영할 때도 우수한 수완을 가지고 있어서 그 옛날 석탄판매로 활약하여 일류 도매상으로서의 기초를 세웠기 때문에 점원들도 부인의 건강회복을 계기로 한 번은 가게로 돌아오게 하고 싶다는 희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일면도 있었다. 그러나 사이토씨는 집에 있는 한 달 동안에 시바다이몬정(芝大門町)에 광선치료소를 열었다. 그 때의 감상에 대해서 「저는 나스온천에 있었던 15년 동안 도쿄에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스에서 평생 살 것을 결심했었는데 귀향이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이루어졌으니 이 이상 남편을 혼자 지내게할 수는 없지요. 남편은 15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 준 여자도 있으니까 저는 신께서 주신 광선으로 되찾은 건강함을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사이토씨는 시바다이몬의 광선치료소에서 다음과 같이 전화로 이야기 했다. 「쿠로다씨. 자동차로 즉시 와주세요. 어느 큰 회사의 중역인 사람이 와서 당뇨병으로 인한 백내장에 걸려 눈이 안보여서 부축을 받으며 왔습니다. 저의 설명으로는 납득하시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즉시 달려가서 환자인 오카노(岡野)씨를 만났다.
오카노씨는 다음과 같이 병력을 설명했다.
「저는 72세 입니다. 30년 전에 당뇨병에 걸려서 매일 세번 인슐린 주사를 계속 맞아오며 가족 70명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특히 손자 세 명이 모두 의사라서 당뇨병을 고치려고 했지만, 그들 세 명이 입을 모아서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과자도 드시니 그래서는 낫지가 않는다고 말하며 약 한 봉지조차 주지 않습니다. 또 눈이 나빠져서 안과에 가봤지만 이것 또한 방법이 없다고 해서 이제 저는 의사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리(森)씨가 광선치료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고 해서 여기를 찾아왔지만, 이 광선을 조사해서 병이 나빠지지는 않겠는지요? 또 반주 한 잔 정도와 차에 곁들이는 과자 조금 정도는 먹어도 병을 치료하는 데에 문제가 없겠습니가? 그 부분을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요.」그래서 오카노씨의 시력을 검사해보니, 유리창에서 태양쪽을 향해 눈 앞으로 뻗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고 눈앞에서 손을 움직이는 것 정도만 약간 느끼는 정도 였다. 그리고 2층의 계단을 오를 때는 부축을 해 줘도 숨이 차올라서 도중에 두 번 쉬는 것이었다.
나는 이 광선으로 치료를 하면 반주 1잔과 과자를 조금 먹어가며 쭉쭉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하여 광선치료부위를 양쪽 발바닥, 양쪽 무릎, 눈 정면, 후두부를 각 5분간, 합계 20분 동안 하루 한 번씩 치료용 카본 3001번과 5000번을 합께 사용하여 치료할 것을 지시하였다.
오카노씨는 사이토씨의 광선치료를 받은지 7회 만에, 부축을 받지 않아도 숨이 차지 않고 2층까지 올라 갈 수 있게 되어싿. 치료 10회째에는 손가락의 수를 분명하게 알아맞히게 되었고, 광선조사 15회 만에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도 종일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치료 16회째부터는 간장부에 추가로 5분간 조사를 하여 하루 한 번 합계 25회의 조사를 하게 되었다. 광선조사 50회만에 신문의 표제에 있는 4호 활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있던 오카노씨는 체중이 6kg증가하여 피로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늘어나서 반년후에는 보통의 안경을 쓰고 신문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이토씨에게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자택에 있는 셋 집을 제공하여 사이토씨의 치료소로 사용하게 해 주었다. 오카노씨의 이러한 보은에 사이토광선치료소는 시바다이몬에 있는 치료소 이상으로 1945년 종전때까지 계속해서 번창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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