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경상북도 구미의 금오산 오늘은 이곳의 금오산을 오르기위해 처음 가는 산악회를 이용하였습니다..
대전을 출발한지 약 두시간만에 도착한 금오산 주차장. 오늘의 등산코스는 채미정~대혜폭포~약사암~정상~금오정~칼다봉~자연보호연수원~주차장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자연보호연수원은 원래 계획이 없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 선택하였네요^^
977m의 금오산(金烏山)은 기암 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金烏山城)이 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주봉인 현월봉(懸月峯)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으며, 시생대(始生代)와 원생대(原生代)에 속하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 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吉再)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오산 [金烏山] (두산백과)
금오산 공원내 위치한 조형물이 정상을 가르치고 있죠..
시작하는 계곡의 물이 시원함을 느끼죠. 오늘은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정상까지는 약 3.3km라고 하는데 약사암을 뺑돌아서 가느라 거리가 조금 더 걸린듯 합니다..
아마 이곳의 동 이름이 금정동 인가 보죠?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시작부터 약 500m구간은 이렇게 계단으로 시작합니다..
금오산성의 대충문 입구입니다.. 크게 충성하여 대문을 지키라는 뜻인가요?
금오산성은 둘레 약 3,500m. 남문 ·서문 ·중문 ·암문(暗門) 및 건물터가 남아 있다. 높이 977m의 금오산의 정상부를 테뫼형으로 두른 내성(內城)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었으며, 천연의 암벽이 태반을 차지한다. 고려 말 선산 ·안동 ·개령 ·성주 등의 많은 주민을 징발하여 산성을 수비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10년(태종 10)~1413년에 성을 수축하였다. 이 무렵 성내에는 3개의 못, 4개의 샘에서 계곡물이 흘렀으며, 군창이 있던 것으로 보아 천혜의 요새로서 상당한 규모로 수축, 정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방상의 요충으로 부각되어, 1595년(선조 28) 성벽을 수축하여 승병대장 사명(四溟)도 이에 참여하였다. 1639(인조 17)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내성과 외성을 다시 쌓았다. 1735년(영조 11)에는 선산도호부사가 산성별장(山城別將)을 겸하는 거진(巨鎭)이 되어 상주 군병 3,500여 명이 배속되었다. 1868년(고종 5) 마지막으로 수축하여 당시의 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산정 부락터에 남아 있다 금오산성 [金烏山城] (두산백과)
29분(약1.6km)만에 도착한 약수터.. 운흥이라는 뜻은 구름이 일 듯이 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데 약수터의 이름이 특히하네요..
일단 물맛을 보았습니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산행을 가뿐하게 해줍니다.
33분(1.7km)만에 도착한 해운사(海雲寺) 지장보살전에 들어가시는 스님이 한국분은 아니신듯 합니다.. 구미는 전자산업이 발달한 도시라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으셔서 이곳에 스님도 외국인이 있으신듯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에 임진왜란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는데, 근래에 석고탱화와 칠성탱화일제강점기石造修行大師立像)이라고도 한다. 한편 합장한 석불좌상이 전해지는데, 조성 연대는 알 수 없다. 해운사 [海雲寺] (두산백과)
41분(1.9km)만에 도착한 댸혜폭포.. 이름이 특이 하지 않나요?
금오산(金烏山, 977m) 대혜골의 해발고도 약 400m 지점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28m이다.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
또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 지방의 용수 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鳴金瀑布)라고도 불린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沼)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욕담(浴潭) 또는 선녀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즐기고 시회(詩會)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폭포 옆 암벽에는 ‘욕담(浴潭)’이라는 예서체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장현광의 문도 중 한사람인 김공(金羾)이 폭포 근처 도선굴 아래에 움막을 짓고 학문을 닦다가 새긴 것이라 한다.
대혜폭포 오른쪽으로 펼쳐진 절벽의 위태로운 벼랑길을 따라 가면 신라 말의 고승 도선(道詵)이 수행했다고 알려진 천연동굴 도선굴이 있다. 대혜폭포 [大惠瀑布] (두산백과)
대혜폭포(명금폭포)로 부터 할딱고개가 시작됩니다. 아마 오늘 등산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 1km구간의 오르막과 칼다봉구간의 약 2km구간이 조금 힘든코스 중 하나 일듯합니다.
그래도 계단이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오를만 합니다.. 아직 한시간도 걷지 않았으니까요..
계단구간을 약 400m오르면 할딱봉이 나오는데요 이곳 할딱봉에서 본 도선굴 입니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지 터,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곳을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 도선굴 [道詵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상을 오르다 본 금오저수지의 모습입니다. 우측의 촛대바위와 주변풍경과 어울림이 ....
3.1km(1시간 40분)지점에 위치한 갈림길.. 정상이라는 말에 조금은 당황햇지만 선두대장님의 시그널을 믿고 약사암으로 향합니다.. 그래야 약사암과 오형돌탑 등 기이한 광경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금오산은 이렇게 화강편마암이 많은 산 입니다.. 이런곳을 뭐라고 하던데 잘 생각이 안나네요^^
3.5km(1시간 58분) 지점에 있는 오형돌탑 지점 입니다. 이곳에는 금오산에 있는 화강편마암을 이용하여 돌탑을 많이 쌓아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오형 돌탑 이네요..
오형 돌탑 좌측에 있는 동물농장 이라고 합니다. 돌탑 상층부에는 갖가지 동물의 형상에 맞는 돌을 올려 놓아 정말 동물농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 됩니다
건너편에는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거북이와 하트를 만들어 놨는데 저곳까지 올라 인증을 하시는 대담한 분들도 계시네요^^
이제 쌍룡문을 지나 약수암으로 향합니다. 통문 좌우측에 있는 나무가 용을 닮지 않았나요?
3.7km(2시간 15분)지점에 있는 마애 보살입상.. 마애보살입상은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높이 5.5m의 석불 입상으로 특이하게 자연암벽의 돌출 부분을 이용하여 좌우를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각한 불상으로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으며, 가는 눈 작은 입 등에서 신라보살상보다는 다소 진전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하여 고려시대의 불상이라고 하네요..
불상 하단 우측에는 이렇게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는 곳도 있고요.
기도하는 장소 옆에는 이렇게 많은 석간수가 담수 되어 등산객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합니다..
4.3km(2시간 40분) 지점에 있는 약사암 종탑 입니다. 약사암에서 종을 치기 위해서는 이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야 하고, 종에는 故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과 영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잇네요..
이렇게 약사암은 커다란 바위옆에 있습니다.. 약사암과 종각을 이어주는 교량에서 인증샷...
약사암에는 이렇게 등산객들을 위한 커피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 아닐까요?? 다른 사찰은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산행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요..
약사암 내부의 모습입니다.. 약사암 중앙에는 또한 산행객들을 위한 사탕이 놓여져 있습니다..
약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金烏山, 977m) 정상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一善誌>,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 梵宇攷>에 고찰(古刹)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 嶺南鎭誌>에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약사암은 약사전·삼성각·일주문·종각·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신중탱· 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요사채 왼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이 조각되어 있다. 약사암 [藥師庵] (두산백과)
삼성각은 통제되어 있고요 . 이렇게 약사암 본당과 삼성각 사이를 다시 올라야 바로 금오산 정상이 나옵니다.. 저 계단을 오르자 마자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금오산의 최고봉인 현월봉이 나옵니다..
3시간(4.7km)만에 도착한 현월봉
현월봉은 달이 걸려 있는 봉우리란 뜻으로 지금의 현월봉은 지난 1953년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미군 통신기지(2만2천585㎡)가 금오산 정상에 들어서면서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금오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정상 10m 아래까지만 머물다 내려와야만 했다.
구미시는 출입이 통제된 금오산 정상을 반환받기 위해 10차례에 걸친 협상과 끊임없는 요구를 해 2011년 3월 미군측과 금오산 정상 미군통신기지 반환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하고 정상을 포함한 일대(5천666㎡)를 돌려받는데 성공했다. 구미시는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은 구역을 환경보전 및 정상주변의 경관복원을 위해 사업비 11억원(도비 4억·시비 7억)을 투입, 2013년 3월부터 경관저해 시설물 및 휀스 철거, 이동통신사탑 철거, 등산로 정비, 신 정상석 설치를 완료하고 2014년 10월부터 일반인에 개방된 곳이다.
대한민국 300대명산 117좌, 한국의 산하 79좌, 산림청 80좌 블랙야크 94좌 도전 성공!!
오늘도 클린산행과 함께... 이 클린산행으로 얻어진 포인트는 제 이름으로 기부된다고 합니다. 제 이름으로 기부도 하고 산도 깨끗해 지고 일석이조 죠 ㅎㅎㅎ
현월봉에서 바라본 구미시와 낙동강 입니다..
저 아래 약사암과 종각루도 한폭의 그림같고요..
2014년 9월 이전까지 미군부대 옆에 있었던 표지석 입니다.
성안이라는 곳은 성안쪽의 금오정을 말하고요 칼다봉을 향해서 갑니다
성안으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헬기장도 있는데요 아마 미군들이 이용했던 헬기장 인듯 합니다
정상에서 헬기장을 경유하여 약 300m하산하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없어 조금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트랭글을 이용하여 좌측의 길로 선택한게 잘한 일이죠
금오정까지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아기자기 합니다.. 아 ~ 이런길로 하산하는 구나 하는순간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바로 이어서 이런 계단도 나오고요.. 이 계단을 내려가면 금오정이 나옵니다.. 넓은 휴식터 같은 곳이죠..
성안전위봉을 지나는 순간부터 이런 너덜길이 시작됩니다.. 이곳부터 다름 호텔과 자연보호연수원 갈림길까지의 약 1시간 30분 정도는 이런길을 가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4시간 15분(7.4km)만에 도착한 칼다봉.. 왜 칼다봉 일까요? 성안에서 칼을 많이 갈아서 생긴 이름인가??
칼다봉을 지나 채미정으로 하산하기로 했는데 다른 이정표는 안 나오고 자연환경 연수원 이정표만 나옵니다.. 어차피 금오랜드에 있는 금오저수지(금오지) 옆에 있는 연수원이 자연보호연수원이니 그냥 내려가 봅니다..
겨울에는 조금 위험할 듯 하죠..
산행 중에 본 금오지와 금오랜드 주변 입니다..
5시간(9.1km)만에 도착한 삼거리.. 드디어 금오산 관광호텔 이름이 등장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자연환경연수원으로 과감히 방향을 틀어봅니다.
자연환경연수원 방향으로 가다가 다시 유선장 방향으로 틀었더니 바로 금오지 상류로 하산하게 되네요.. 이곳까지는 약 9.1km구간으로 5시간 8분이 소요되었네요..
금오지위에 난 교량을 이용하여 이동하다가 본 금오지와 금오산 풍경입니다..
이렇게 보니 제가 저산을 좌측에서 부터 우측으로 다 밟아 봤네요^^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인증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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