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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미타불의 본원, 희망의 빛
내 어머니 장영방(張榮芳)께서는 2001년 6월 14일 왕생하셨으며, 향년 65세셨다. 왕생 전후로는 특별한 감응이 많았고, 서상도 매우 뚜렷하였으며, 그 수학의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주었다. 이에 여러 연우들의 권유에 따라, 인연 있는 이들과 널리 나누고자 이 기록을 남긴다.
어머니는 평생 병약하셨다. 위 절제 수술로 위의 3분의 1만 남았고, 목에는 갑상선 종양까지 있었는데, 수술 후에도 재발하였다. 그러나 체질이 너무 허약하여 더는 수술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1997년 6월, 우리 모녀는 함께 삼보에 귀의하였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 조석 예불도 드릴 수 없었기에,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 불안해하셨다. 더구나 어떤 스님의 법문 녹음과 책을 유심히 들으며 공부하던 중, 점점 자신에게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왕생은 아득한 일이라 생각하며 탄식하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경도 못 외우고, 부처님 명호도 수천 번, 수만 번 제대로 부르지 못하니… 정 안 되면, 그냥 안 갈란다.”
나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도 꼭 돌아가서 정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나태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매일 아미타불께 임종 시 꼭 접인해 주시고, 정념이 반드시 현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어머니께는 정진하시라고 때때로 권유했지만, 정작 우리 자신도 실천하지 못했다. 계율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108배도 끝까지 하지 못했으며, 경전도 삼천 번 다 독송하지 못했다. 극락세계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이런 수행으로는 결코 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갈 수 없다면 다시 윤회할 수밖에 없다는 이치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몰랐을 때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모순과 불안 속에서 2년을 보냈다.
1999년 5월, 우리는 우연히 원부 거사(願賦居士)가 쓴 『염불의 심정』을 보게 되었고, 또 스님께서 연태(煙臺) 죽림사에서 하신 법문 녹음을 듣고는, 마치 보배를 얻은 듯 벅찬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아미타불의 대자대비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전에도 입버릇처럼 매일 “대자대비”라 말하곤 했지만, 사실 아미타불께서 어디에서, 어떻게 자비를 베푸시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미타불께서는 우리가 온갖 어렵고 복잡한 수행을 해낼 수 없음을 헤아리시고, “명호를 부르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본원을 세우신 것이다. 수행의 깊고 얕음을 따지지 않고, 잘하건 못하건 가리지 않으며, 누구든 염불하며 왕생을 발원하기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기에, 우리처럼 염불하는 사람도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 온 가족은 감동으로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며칠 밤을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다. 스님의 법문 녹음을 어머니는 하루 종일, 몇 번이나 반복해 들으셨는지 모를 정도였다. 어느덧 마음이 확 트이며,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 속에 담긴 진실한 구제의 뜻을 깨달으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온몸이 가벼워지고, 근심 없는 평안한 상태가 되었다.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모든 순간에 환희심으로 염불하시며, 자연스럽게 염불 속에서 살아가셨다. 정말로 아미타불의 본원은 우리 마음속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펴 주셨고, 구제의 빛을 환히 밝혀 주셨다. 마음속에서는 극락에 대한 간절한 동경이 더욱 깊어졌고, 반드시 왕생하리라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올해 5월, 어머니께서는 간경화로 인한 복수 진단을 받으셨는데, 이뇨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위암 말기였기에 음식은 전혀 받지 못하고, 혈변과 토혈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있었으며,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셨다. 우리 자매는 아침부터 밤까지 어머니께 마사지를 해드리며 고통을 덜어드리려 했지만,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두 차례 어머니께 염불을 권해 드렸으나, 어머니는 그리 잘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는 부처님의 명호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때면, 어머니께서도 염불을 하실 수 있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자신의 병세를 모르셨을 때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셨다. 그러나 병명을 정확히 알게 된 뒤에는 오히려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간 세상에서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아. 아미타불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나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 주시길 바란다.”
하루는 꿈속에서, 피부가 희고 키가 큰 한 남자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병원에 있을 필요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 꿈을 꾸신 뒤, 어머니는 그대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튿날 밤, 꿈속에서 방의 네 모서리마다 황금빛 옷을 입은 아미타불이 한 분씩 앉아 계셨다. 그때, 한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의 남자가 다가와 커다란 약환 하나를 어머니 입에 넣어 주었는데, 그 순간 몸이 아주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통증이 눈에 띄게 줄었고, 왕생하실 때까지 더 이상 혈변도 없었으며, 이뇨 주사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왕생을 사흘 앞두고, 어머니는 “이제 삼일, 많아야 오일 남았어. 나를 염불당으로 데려다줘. 거기서 왕생할 거야.”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염불을 잘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길밖에 없어. 우리를 구하실 분은 오직 아미타불뿐이야.”
어머니는 극락세계에 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팔공덕수(八功德水)에 풍덩 뛰어들어 실컷 몸을 담그는 것이라고 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탈수가 심해 온몸의 형체가 달라질 정도였다.) 또한 자주 우리 곁에 돌아와서 지켜보겠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괴롭게 사는 게 보이면 일찌감치 데려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모든 일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정리해 두셨다.
왕생 이틀 전, 점심 무렵 어머니는 거대한 아미타불께서 왼손에 작은 아미타불을 받쳐 들고 계시다가, 바깥을 향하고 있던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돌리시며, 작은 부처님의 머리가 큰 부처님의 입 아래에 정확히 닿는 장면을 보셨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이렇게 물으셨다.
“이렇게 큰 아미타불, 작은 아미타불이 함께 계신데… 난 누구랑 같이 가는 거니?”
그때 동생이 대답했다.
“작은 부처님이 바로 어머니예요. 이미 아미타불 품 안에 안겨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시고, 기쁜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왕생 당일 새벽 2시 40분, 어머니는 아미타불께서 한 아이를 품에 안고 소변을 받아내고 계신 모습을 보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와 동생은 무척 기뻐하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미타불께서 안고 계신 그 아이가 바로 어머니예요. 우리는 모두 아미타불의 아이들이잖아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시고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입으로도 염불을 멈추지 않으셨다.(우리는 어머니께서 그런 장면을 보신 데에 다른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궁에 꽤 큰 낭종이 있어 방광을 눌렀고, 그 때문에 늘 소변이 마려운 듯한 느낌을 호소하셨다. 여러 차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들어하셨다. 이번에 아미타불께서 직접 소변을 받아주셨기에, 우리는 어머니가 그 순간 분명히 편안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 이후로 왕생하실 때까지는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셨다.)
3시쯤,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미타불과 많은 성중(聖衆)들을 보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속에 자신은 없었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나와 동생은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감동했다. 우리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미타불께서는 이미 오셨어요. 어머니, 서두르지 마세요. 아미타불께서는 언제 데려가시는 게 가장 좋은지 다 알고 계세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들으시고 무척 기뻐하셨다. 그때 우리는 아미타불의 상(像)을 어머니 눈앞에 모셔두고, 큰 소리로 염불하기 시작했다.
3시 20분경, 어머니는 아미타불의 왼쪽 어깨에 두 개의 밝은 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다.
아침 9시 가까이 될 때까지 우리는 계속 염불을 이어갔다. 어머니의 상태가 꽤 좋아 보이자, 아버지는 “너희는 잠깐 별채에 가서 쉬어라. 어머니도 좀 주무시게 하자.” 하시며 우리 자매에게 휴식을 권하셨다. 나와 동생이 자리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다급히 우리를 부르셨다.
“너희 어머니가… 어쩌면 벌써 왕생하신 것 같구나. 얼른 와서 보아라.”
우리는 급히 달려가 어머니를 살펴보았다. 어머니는 길상와(吉祥臥)로 누워 계셨는데, 눈은 약간 떠 있었으며,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무척 평온하고 편안한 모습이셨다. 처음엔 어머니가 정말로 왕생하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을 지켜보아도 전혀 움직이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비로소 아미타불께서 어머니를 데려가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시각, 용구(龍口), 봉래(蓬萊), 장도(長島), 해양(海陽) 등지의 거사님들도 잇따라 찾아와 함께 염불을 해주셨다. 왕생하신 지 24시간이 지난 뒤, 연우님들이 어머니께 수의를 입혀 드렸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두 눈은 까맣고 반짝이며 살아 계신 듯했다. 방 안에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고, 자리에 있던 연우님들 모두 깊은 감동에 젖었다. 그리고 16일 오전 화장을 하기까지 50여 시간이 지났지만, 어머니의 몸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며, 팔다리와 관절도 자유롭게 움직여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온 가족 네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편지에 사진 한 장을 동봉함.)
이토록 더운 날씨였지만, 아무런 냉각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의 몸에서는 부패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온몸은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그 자리에 있던,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마저 “이건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14일부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해,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며 밤낮없이 쏟아졌다. 16일이 되어서야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짙게 흐려 있었다. 그날, 70여 명의 연우들이 장례식장에 함께 모여 마당에 서서 큰 소리로 염불을 시작했다. 주변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으로 가득했지만, 우리 머리 위에 있던 두터운 구름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그 순간, 상서로운 구름들이 피어오르며 눈앞에는 실로 불가사의하고도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연꽃, 흰 새, 선학(仙鶴), 용과 봉황, 정자와 누각, 서방삼성(西方三聖), 아이를 안겨주는 관음보살(觀音送子), 관세음보살의 탈것, 하늘로 뻗은 부처님의 손,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 형상까지 하늘에 뚜렷이 나타났다. 마지막에는 해가 떠올랐고, 그 주변으로 일곱 빛깔의 광륜이 생겨났다가 두 차례 반복되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이처럼 기이하고 장엄한 광경에, 장례식장 직원들뿐 아니라 그날 화장을 하러 온 사람들까지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현상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불가사의”라는 네 글자뿐이었다. 연우들은 모두 깊은 감동 속에서 염불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이 모든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해 두었다. 하늘에 나타난 어머니의 얼굴은 실물처럼 생생했고, 그 밖의 모든 신기한 모습들도 실물처럼 꼭 닮아 있어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과(淨果) 스님께서는 이 영상 기록을 직접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며, “어머니의 왕생 과정을 꼭 기록으로 남기라”고 당부하셨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가족은 염불하러 와 주신 연우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중에는 우리와 일면식도 없는 분들도 많았는데, 모든 분들께 길상여의(吉祥如意)하시기를 기원드린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슬픔 없이, 오직 기쁜 마음으로 지냈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자주 아주 기묘한 향기가 풍기곤 했다.
7월 16일 새벽, 동생이 꿈을 꾸었다. 그때 우리 세 식구가 집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는 불보살님처럼 생긴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순식간에 어머니의 생전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리 네 식구는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치며 기쁨을 나누었다.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 곁에 둘러앉았더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희들, 나 보고 싶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보고 싶으면 극락세계에서 만나자.”
(꿈속에서 어머니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다.)
이상은 어머니께서 왕생하시기 전후의 과정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감응과 서상이 있었으나, 모두 기록하기는 어렵다. 어머니의 왕생은, 일심으로 아미타불께 의지하고 염불로 왕생을 발원한다면 누구나 왕생하지 못할 이가 없음을 분명히 증명해 주었다.
나무아미타불.
(2001년 9월 26일, 산동 용구(龍口)에서 혜운(慧雲) · 인뢰(印蕾) 기록)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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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칭명중생 필득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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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생 전후로는 특별한 감응이 많았고,
서상도 매우 뚜렷하였으며,
그 수학의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주었다.
불가사의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되는 왕생사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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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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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자리에서 희유한 서상을
체험하신 분들 넘 부럽네요
신심나는 염불감응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일향전념
집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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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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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에서 일어났던 서상들을
기록해 두었다고 했는데 사진이나 동영상 한번 볼 수 없는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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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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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를 부르면 반드시 왕생한다”는 본원을 세우신 것이다. 수행의 깊고 얕음을 따지지 않고, 잘하건 못하건 가리지 않으며, 누구든 염불하며 왕생을 발원하기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기에, 우리처럼 염불하는 사람도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 온 가족은 감동으로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며칠 밤을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다.
감사드립니다.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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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저도 그렇듯이 평생 병약한 사람들이 극락세계 첫 체험으로 꼽는 것이 팔공덕수 입수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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