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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 ☆ (大先知書)
겔2:1-3:11절) 에스겔의 소명(召命)
Ⅱ.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중)
에스겔이 포로(捕虜)로 붙들려 간 자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는 이것입니다.
2:8-10절)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우리는 먼저 무엇보다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보배(保陪)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生角)에는 이 세상(世上)에 좋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이 세상(世上)에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복(福)이라고 생각(生角)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世上)에 있는 복(福)들은 진짜 복(福)이 아니고, 찌꺼기 복(福)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복(福)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性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진짜 복(福)이고, 진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귀(貴)하게 보시는 것은 세상(世上)의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어려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음으로 이리 같은 본성(本姓)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양(羊)처럼 변(變)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世上)에서 최고(最高)로 가치(價値)있게 생각(生角)하시는 것이 바로 이리가 양(羊)으로 변(變)하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패역(悖逆)한 자들이 되어버렸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世上) 의 썩을 양식(糧食)을 잔뜩 먹었을 때, 겉으로는 양(羊)같았지만, 실제로는 양(羊)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였습니다.
실제로 이리보다 더 사나운 것이 겉으로는 양(羊)같은데, 실제로는 양(羊)으로 덜 변(變) 한 이리 떼들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이 포로(捕虜)된 곳에서 하시려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서도 올바른 말씀을 먹으면, 믿음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엉터리 세상것 짭봉 말씀을 아무리 먹어도 안 되던 일이, 이 바벨론 땅에서 올바른 말씀을 먹으니까 심령부흥(心靈復興)이 일어나더라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더 중요한 사람들은 포로(捕虜)되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계획(計畫)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철거(撤去)가 되게 되어 있고, 바벨론에 온 사람들을 중심(中心)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歸還)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시계획(都市計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기로 하신 것은 아무리 붙들고 있고, 거기서 아무리 집을 잘 꾸며놓고, 잘 살아도 아무런 소용(所用)이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宣布)되고, 성도들이 기도(祈禱)로 반응(反應)하는 곳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먼저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전달(傳達)만 해서는 안 되고, 자기(自己) 자신(白身)이 먹어야만 했을까? 이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는 특징(特徵)입니다.
설교(說敎)라고 하는 것은 설교자(說敎者)의 인격(人格)을 관통(貫通)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설교(說敎)라고 하는 것은 먼저 설교자(說敎者) 자신(自身)이 먹고, 자기(自己)가 소화(消化)를 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즉 남을 때리기 전에 자기(自己)를 먼저 때려야 하고, 남을 울게 하기 전에 자기(自己)가 먼저 울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은 먹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所用)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연구(硏究)의 대상(對象)이거나, 밥벌이의 대상(對象)으로 생각(生角)하면, 아무 소용(所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여기에 모든 생명(生命)을 다 거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은 내가 먹지 않으면, 나와는 아무 상관(相關)이 없는 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양식을 내가 먹으면, 그때부터는 이 생명의 양식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기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꿈틀 꿈틀 거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關係)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생명의 양식을 대(對)하는 성도(聖徒)들도 60-70%가 한문으로 된 한글을 특별히 이해하고 알기 쉽게 했으니. 간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간절(懇切)히 사모(思慕)하듯.저장된 글을 여러번 읽고 되새김질로 완전(完全) 소화(消化)시켜야 영혼(靈魂)에 효과(效果)가 있습니다.
물론 생명의 양식을 먹어도 우리의 형편(形便)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더 세상적(世上的)으로 힘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매일 매순간 느끼게 되고, 그리고 기도(祈禱)가 응답 (應答)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위기(危機)를 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이 반드시 피(避)하게 하시거나, 이기게 하시는 것을 체험(體驗)하게 될 것'입니다.
2:10절을 보면 *두루마리 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애가(哀歌)와 애곡(哀哭)과 재앙(災殃)의 말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재앙(災殃)의 말씀을 먹어야 할까? 그 이유는 이 말씀들이 *겉으로만 재앙(災殃)의 말씀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生命)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아무리 먹어도 독(毒)이 되지 않고, 중독(中毒)도 되지 않고, 부작용(副作用)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아픈 부분을 찔러서 아프지만, 결국 회개(悔改)함으로 내 영혼(靈魂)이 온전히 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아프지 않게' 됩니다.
3:1-3절)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하시기로 내가 먹으니.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고 소화(消化)를 하면, 그 말씀은 약(藥)이 되어 버리고, 축복(祝福)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마치 주사(注射) 백신(白身)과 같습니다. 우리 몸에 병균(病菌)이 침투(浸透)해 들어오면, 우리가 병(病)들어 죽게 되지만, 이것이 일단 사람이나, 다른 가축(家畜)의 몸에서 항체(抗體)가 되면, 우리 몸에 주사(注射)를 해도 병(病)이 들지 않고, 그 다음에는 병(病)을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傳)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자기(自己)가 먼저 먹어야 합니다. 자기(自己)가 먼저 먹고, 부르짖는 말씀은 이미 그 안에 병균(病菌)의 독(毒)은 약화(弱化)가 되고, 항체(抗體)가 생겨 있기에 그것을 먹어야 죄(罪)를 이기고, 마귀(魔鬼)의 시험(試驗)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독감(毒感) 주사(注射)를 맞거나, 전염병(傳染病) 예방(豫防) 주사(注射)를 맞으면, 약간 아픈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약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소화(消化)가 되고 난 후에 죄를 이기는 항체(抗體)가 우리에게도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축복(祝福)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두루마리(하나님의 말씀)를 먹으니까 뱃속에서 꿀 같이 *달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지는 특별(特別)한 맛입니다. 이것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고,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른 것은 먹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었을 때, 영혼(靈魂) 깊은 곳에서 만족감(滿足感)이 있고, 분노 (憤怒)의 불이 완전히 꺼져서 성령의 샘이 내 뱃속에서 생기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7:38절)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름에 너무 더운 상태에서 아무리 얼음과자를 먹어도 입만 시원하지, 뱃속까지는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찬 얼음과자를 먹으면, 나중에는 배탈이 나서 장염(腸炎)이 생기든지, 설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따뜻한 차 같은 것을 먹어서‘이열치열(以熱治熱)’로 배가 시원해지게 되면, 더 이상 그런 갈증(渴症)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갈증(渴症)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공부를 해도 갈증(渴症)이고, 연애를 해도 갈증(渴症)이고, 텔레비전을 봐도 갈증(渴症)입니다. 술을 마시면, 더욱 갈증(渴症)이 생기고, 도대체 이 세상(世上)에서 만족(滿足)스러운 것이 없으니까 사람이 더 사나워지고, 더 광적 (狂的)으로 미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음속에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인간(人間)들은 잘 살면 잘 살 살수록 더 광인(狂人)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에스겔도 포로(捕虜)로 붙들러 오고 난 후에 굉장한 분노(憤怒)와 불만(不滿)이 마음속에 꽉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먹고 난 후에는 그런 갈증(渴症)이 싹 없어졌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臨)하시면, 너무나도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서 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찬송가 288장 3절)...세상과 나는 간 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는 찬송(讚頌)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愚昧)어리석게도 세상(世上)의 행복(幸福)으로 영혼(靈魂)의 갈증(渴症)의 불을 꺼보려고 하지만, 이 불은 지옥(地獄) 불이기 때문에 성령의 불이 아니면,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영원(永遠)히 탐욕(貪慾)을 부리면서 영원(永遠)히 서로 미워하고, 욕 (辱)하면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겸손한 자의 진실과 정직한 아멘, 축복⟺교만한 자의 숨김과 불통은 (假裝)된 좀비.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