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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느낌의 미녀를 담은 사진 한 장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그걸 본 남자는 그 녀를 만나지 못하면 죽을 것같지만 현실에선 절대 만날 수 없다. 그가 홀딱 반한 미녀의 사진은 무려 70년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시간여행을 결심하고 마침내 그 사진 속 현실이 되는 그 까마득한 옛날로 시간을 거슬러가 마침내 그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후 이 영화는 일종의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내 인생의 영화'란 모두가 인정하는 작품성으로 무장한 영화가 아닌, 그냥 하나의 영화가 아닌, 그 영화를 떠올릴 때면 그 영화를 봤을 당시의 나와 내 주변의 모습들이 고스란이 따라오고, 그 영화를 보고 느꼈던 그 가슴떨림 같은 것들이 그대로 살아나는 그런 몇 안되는 영화들을 말한다. 여전히 제목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사랑의 은하수'는 내게 그런 가슴떨림을 선사했던 애잔한 러브 스토리다.
이 영화는 나온 지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대단한 히트작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드문, '알려진 영화'가 아니라 안타깝다. 내 개인적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로맨스는 여태 다른 영화에선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에 다른 친구들에게 '그 영화 봤어? 그거 정말 너무 좋은데." 이렇게 말하면 거의 다들 '처음 들어 보는데.', '무슨 영화 얘길 하는 거야.' ,'제목 되게 촌스럽네.' 식의 뚱한 반응을 보였다. 히트작이 된다는 건 이래서 큰 의미를 가지나 보다. 요즘 젊은 영화팬들도 보진 못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알고 있으니 이런 영화들이야말로 불멸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랑의 은하수'같은 영화는 오래 된 앨범의 빛바랜 사진같은 작품이다. 그런 사진들이 보통 그렇듯 그걸 한동안 바라보는 어떤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영화는 타임머신이 개입되지 않은 다소 엉뚱한 시간여행 이야기이며, 한번 놓치면 절대 다시 만날 수 없는 일종의 견우와 직녀의 그것처럼 이룰 수 없는 가슴아픈 사랑을 한없이 애잔하게 그렸다. 그래서 미국의 평론가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맬랑콜리하다 뭐 그런 거다. 평론가들은 그런 거 싫어하니까.
이 영화에 출연했던 '영원한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는 몇년 전 세상을 떴다. 이번에 출시된 DVD의 코멘터리를 보면 죽기 얼마 전의 그가 출연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은 영화에 개인적인 애정을 느꼈음을 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혹평에 밀려 소리없이 사라지는 듯했던 영화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INSITE라는 단체가 존재하며 이 영화가 촬영된 그랜드 호텔(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호텔이다)에서 매년 같은 날 그들만의 이벤트를 연다는 사실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세상엔 이렇게 감성 풍부한 사람(비록 싸구려 감성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의 말도 안되는 요소들을 문제삼는다면 끝도 없을 것이다. 시간여행이 소재이지만 SF감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설적인 영화음악가 존 배리의 애잔한 선율이 이끄는 감상의 세계에 젖어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권하고 싶다. 영화는 몰라도 음악만은 누구나에게 귀에 익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처럼 과거의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음 직한 아련함을 전해주는 음악이다.
며칠 전 DVD로 출시되었다. 너무나 뒤늦게.
[펌: 영화보기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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