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하아지누 / 귀를 기울이라 | 신 32:1-52 | 삼하 22:1-51 | 요 21:1-25 |
<단락 1> 1. 신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입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을 버리고, 더러운 우상들을 섬기며 배교하게 될 것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모세의 노래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의 노래의 구조 |
1. 모세를 증인으로 소환하고, 하나님을 배교할 자들에게 경청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
2. 이스라엘을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끌어 주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
3.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을 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후 그들을 괴롭힌 열방도 책망하시고, 보복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
5.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
신명기 32장을 읽어보면 과거, 현재, 미래의 구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자이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세대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노래를 여호수아로 하여금 회중에게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1) 신 32:2 내 교훈 (레카흐)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2절에 보면 내 교훈 (히 : 레카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명기 32장의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비, 이슬, 가는 비는 식물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의 말과 우리의 감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닌, 독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1)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나거나, 어려움이 오게 되어졌을 때 해야 할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가지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고 사실에 반응하게 되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 가운데 쉽게 빠지는 이유인 것입니다.
(2) 신 32:7 ...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만약 기억나지 않는다면, 기억해 줄 수 있는 리더에게 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혼자 기도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점검하고 확인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2) 신 32: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며,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버린 여수룬 (이스라엘의 애칭)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은 배부르고 윤택한 삶을 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방법은 대적에게 팔아 넘기십니다 (신 32:21). 이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두려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좋으신 분, 복 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금식을 통하여서, 자발적 연약함 가운데 들어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는 길임을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후 12:9).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지만, 연약함의 길은 거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높아진 마음, 느슨해진 마음,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삶이 평안하다고 하여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위험한 자리에 앉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 히 10:26 (현대인)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알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다면 그것을 속죄하는 제사는 없고 27. 두려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 ...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고의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다면, 그것을 속죄하는 길이 없고, 오직 심판만이 기다리게 됩니다.
<단락 2> 2. 신 32:34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무너뜨렸던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보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심판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심판보다 더 심한 분노와 증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높아진 교만입니다. 예를 들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반 유대주의 운동이 일어나서 유대인들은 마치 죄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 가운데 일어나는 보복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 하나님 편이 되는 길입니다.
1)신 32: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을 복수하시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예슈아이십니다. 이 날은 대속죄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에 이 땅에서 예슈아의 신부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며, 천년왕국이 시작 될 것입니다. 43절의 시작을 보면,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민족들’은 이방 교회들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로 이스라엘과 접붙임 받은 열방의 수 많은 영혼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는 혈통적 이스라엘과 비혈통적 이방인이 예슈아의 속죄의 피로 인해, 한 새 사람을 이루어 온 열방과 이스라엘의 구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새 사람을 이루게 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자신들의 죄를 사해 주는 역할로 올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원하는 메시야의 모습은 열방을 통치할 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예슈아께서 왕과 신랑과 재판장으로 오실 것에 대한 준비를 하기 보다는 여전히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예슈아만을 믿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예슈아를 믿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예슈아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유다의 사자처럼 왕으로 오셔서 대적들에게 보복하시고, 이스라엘과 열방을 다스릴 것입니다.
(1) 신 32: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위의 말씀은 신명기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토라는 이스라엘에게 생명 (풍성한 삶)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은 돌판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판에 기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라를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2) 신 32: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모세가 죽고 난 이후 믿음의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1) 창 25:8 (새번역)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게 되어졌을 때, 그가 간 곳은 조상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죽게 되어졌을 때,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간 것이 아닌 믿음의 조상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어지면 (예슈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다시금 부활의 몸으로 일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기업을 받아,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 신앙의 모습입니다.
(2)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슈아의 십자가 옆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은 회개하여 낙원에 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3) 고후 12:2 ...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 (삼층천)을 보게 되어지는데, 이는 낙원을 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지옥으로 많이 번역된 히브리어는 <게 헨나 : 음부>입니다. 히브리어 ‘게’의 뜻은 골짜기이며, 인명인 힌놈 (Hinnom)이 합성된 ‘힌놈의 골짜기’란 지명입니다 (수 18:16). 그래서 ‘스올’은 죽은 자가 가는 처소입니다. 그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은 죽음 이후에 대해서 많은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은 자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 (스올)은 죽은 자에게 1차적 보상과 징벌이 이루어지는 대기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의인이 죽어서 가는 처소가 낙원 (기쁨, 축복, 안식의 장소)이며, 죄인이 죽어서 가는 처소가 음부 (불과 어둠의 고통의 장소)입니다. 그 보상과 징벌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이 되어집니다. 의인과 악인은 언제까지 스올에서 대기를 합니까? 육체가 다시금 부활하게 되어졌을 때 (최종 판결의 때인 백 보좌 심판)까지입니다.
(4) 시 104: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
헬라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하나님 나라)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헬라 사상으로 만들어 놓은 천당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모든 죽은자와 산자에게 최후 백 보좌 심판이 있게 되며, 그들의 행위 (순종과 불순종)를 통하여 최종 심판이 있게 됩니다 (계 2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