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는 해파랑길. 울진 후포항부터 대진항까지 12km 을 거쳐 축산항까지 16km 도합 28km 거리에요.
후포항에서의 출발시간이 11시 축산항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이 5시30분.
총 6시간30분 안에 28km를 걸어야 하는 코스에요. 원래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잡지는 않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후포에서 대진까지는 걸었으므로 대진항에서 축산항을 지나 3km쯤 더 진행을 할 계획인데 지난번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후포항에 내려준다기에 한번 가보기로 한거에요.
서울 새벽 기온은 영하 7도인데 울진지역은 영하 1도. 한참 걷고 있을 시간의 기온은 최고 7도에 바람의 풍속은 시속 7km. 체감온도는 5도 정도 될거라 예상하고 내피는 예비용으로 넣고 조끼를 입고 출발했어요.
자켓을 입고 한참을 지나니 차의 실내 난방으로 덥기에 벗었더니 바깥의 찬 기온에 식은 유리창에서 나오는 냉 기에 팔이 춥더군요. 자켓을 한팔만 걸치니 좀 괜찮아졌어요.
부족한 잠을 채우고 가다보니 문경휴게소. 시간은 9시경. 두시간을 달려왔네요. 휴게소에서 떡볶이와 오뎅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는 차에 올라 나머지 잠을 보충해요.
후포항에 도착하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요. 바람은 부는데 바람끝이 맵지를 않아요. 훈풍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푸근한 바람이에요.
신발끈 동여매고 스탬프 찍고 인증샷 찍고 대진항까지의 12km길을 나서요. 해안가 도로를 걷는 길은 하도 걸어 이골이 나기도 했지만 경관도 그게 그거인지라 열심히 속도만 올려 걸어요.
4km 남짓 걸었을까? 도로옆으로 난 목책길 아래까지 파도가 밀려오는데 소리가 조금 다르네요. 가만히 보니 몽돌들이 구르며 내는 소리였어요. 몽돌해안이 여기 저기 있기는 한데 보길도에서 본 후 처음이네요. 몽돌 사이를 빠져 나가며 몽돌들을 부딪히게 해서 내는 소리는 참 감미롭다, 아니 간지럽다? 뭐라 표현할지 모르겠어요.
다시 열심히 걸음을 재촉해요. 작은 포구에는 말리려고 늘어 놓은 어망으로 도로 한켠의 공간이 채워져 있고 조업을 나가려 어망을 손질해 배에 싯는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한 모습이에요.
내친김에 속도를 내니 말로만 듣던 흰모래를 머금고 초생달처럼 굽은 고래불 해안이 눈에 들어와요.
초입에 돌고래 형상의 조형물이 있어 사진에 담고 스탬프함을 찾아요. 영덕블루로드 스탬프 함이 잠시 헷갈리게 하지만 곧 찾아서 스탬프를 찍었어요. 지금은 추운 계절이라 인적이 없지만 한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닦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안가로 펼쳐진 갈대밭과 도로 연변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서 쉴수 있는 벤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봉송정이라는 정자를 지나니 캐러반 촌이 설치 되어 있네요. 영덕군청에서 조성한 것 같은데 약 20대 정도의 캐러반이 있고 개중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사슴 토끼 같은 동물의 외형으로 단장한 것이 있어요. 캐러반 앞에 주차된 차가 너덧대 정도 보이고 아이들 소리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겨울 날에도 이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고래불 대교를 건너다 멋진 모래톱이 있는 사구호 위를 지나고 있다는 걸 알고 모래톱을 사진에 담아요. 조금 지나니 대진해수욕장이에요.
40년 전인가. 안동교구 영덕본당의 정호경 신부님을 뵈러 와서 며칠 유숙하며 지낸 곳이 대진 해수욕장이었어요.
당시 군부대가 주둔하다 여름철에는 일시적으로 철수하고 개방하던 해수욕장이라 모래사장 군데군데 기름에 뭉쳐진 검은 모래덩어리가 있었지요.
당시 그 동네 선주 집에 민박을 하며 동네 꼬마들에게 500원인가를 주고 뭘 좀 잡아오라면 갯바위 근처에서 자멱질을 해서 게도 잡고 조개도 잡아 한 바께쓰를 가져다 주었지요.
이런 싱싱한 해산물 안주삼아 신부님 포함해서 남다 다섯이 매 끼니마다 소주 됫병 하나씩 마셔대던 기억이 나요.
정신부님은 후에 안동농민회 사건으로 투옥도 되셨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셨는데 안타깝게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어요.
지금도 검고 굵은 뿔테 안경에 거무티티한 얼굴로 미소를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때 그 대진해수욕장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찾을 수 없네요. 하긴 그때 함께 갔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 한두명이 기억이 안날만큼 40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지요. 강산이 변해도 네번은 변했으니 그 흔적을 어디서 찾겠어요.
잠시 20살 초입의 추억에 잠겨봤네요.
대진항은 자그마한 항구에요. 대진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두시반이 조금 넘었어요. 괴시리 민속마을을 거쳐 봉화산 정상을 지나 후포항으로 들어가는 코스가 남아 있어요.
대진항부터 출발한 팀과 연락을 해보니 아직도 봉화산을 벗어나지 못했다네요. 저희가 지금부터 괴시리마을을 거쳐 봉화산으로 들어서면 산길로 7km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오르내리막이 많아 제시간에 도착을 못할 거라는군요.
시간을 계산해보니 산중에서만 세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일몰시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듯 해서 해안도로로 우회하기로 했어요. 해안도로로는 축산항까지 7km. 시간반이면 도착해요.
지루한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데 발걸음이 무뎌지네요. 시간 여유가 생겨서 긴장이 풀렸나봐요.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 계단길과 이어진 숲길을 모처럼 숨을 몰아쉬며 올라요. 남씨 발상지라는 표지가 보이고 내리막을 내려가니 커다란 무덤의 묘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보다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더 눈길을 잡아 끌어요. 대충 사진에 담고 내려오니 커다란 돌에 남씨 발상지라고 새겨져 있네요. 제가 알고 있는 네명의 남씨들에게 여기 와봤냐고 물어봐야겠어요. 여기 가봤냐구요^^
점심도 간식으로 때워 선발대가 자리잡은 "김가네 식당"에 가서 가자미 정식을 시켰어요. 1인분 15,000원의 싸지 않은 가격이에요. 네명이 정식을 시켰더니 중간 크기의 가자미 두마리가 구워져 나오고 매운탕에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가자미 너덧마리를 넣은 매운탕이 나와요.
밑반찬도 말린 가자미 조림이 나오는데 딱딱해서 별로이고 탕은 제법 맛이 좋았어요.
음식맛은 중간인데 주인장 서비스 정신은 영 아니더군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집이에요. 방송에 나온 집이라는데 그리 추천할 만한 집은 아니더군요.
그래도 밥 한공기 배고픈 김에 후딱 해치우고 매운탕 안주로 소주를 곁들이니 노곤한 참에 차안에서 잘 자면서 올라왔네요.
첫댓글 장거리걷기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방가방가 ~ 까페 등단하셨네요
멋진 사진 글 기대함다 ^.^
뛰어난~글솜씨에~멋진~사진까지~역시~~멋쟁이십니다~~^
대장님, 가을여인님, 수석천님, 물레방아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