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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궁한 신성이 충만한 깨달음의 혼이 담긴 경전을 통해서 문화가 개발이 되고 창조되어 간다. 모든 문화라는 것은 깨달음의 원전에서 나온다. 연극, 영화, 시, 예술, 음악 무슨 정치, 경제, 문화, 의식주, 모든게 문화 콘텐츠 원전(原典)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전原典을 모르는 그런 인생은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난 이탈자이고 변방인이다.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 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환국 다음에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천부경을 보면 1, 2, 3이 나오고, 운삼사運三四(3, 4) 나오고, 성환오칠(成環五七)에서 5, 7이 나오고, 生七八九 생 7, 8, 9가 나오고, 일적십거(一積十鉅)에서 10까지 해서, 수의 원리가 1에서 10까지 다 드러난 것이다. 1만 년 전에 1에서 10의 수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지구촌 인류문화사상 처음으로 1에서 10수의 자연수를 발명을 한 것이다. 자연수가 아라비아인들 또는 중동 인도 유럽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의 동지,소한,대한,입춘,우수,경칩...24절후와 해시계 규표를 태호복희(BC3528 ~ BC3413)씨가 처음 발명한 것이다. 이것을 시간 공간의 구성 원리로 다시 한 번 계시를 해주신 것이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다. 시간과 공간의 원리에 의해서, 1에서 10수의 구성 원리를 보는 것이다. 생성수 원리(生數,成數), 음수와 양수. 낙서洛書는 9수(數)까지 밖에 없고, 하도(河圖)는 10수(數)까지 있다. 그러니까 바로 1수(數)의 조화가 완전히 우주속에서 100% 오픈된 게 하도(河圖)다. 가을우주에 열매를 맺는 이치가 바로 하도(河圖)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시간 공간 속에서 계절의 변화 원리를 나타내준 수(數)의 법칙이 바로 하도와 낙서다. 낙서(洛書)는 바로 이 동서남북 각각 사방위와 중앙 토(土) 자리 방위에서 운동하는, 작용하는, 이 오행의 기운이 실제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순환하느냐 하는, 우주의 봄 여름에 만물을 낳고 기르는 역(易)의 논리로 얘기하는 것이 낙서(洛書)다. 낙서(洛書)는 우주의 봄여름 선천, 역동적인 봄여름의 변화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원리, 상극법칙(相克法則)이 바로 낙서(洛書)다.
낙서洛書는 선천 봄 여름 상극도(相克), 하도(河圖)는 후천 가을 겨울, 상생(相生)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는 것, 평화 , 안정, 조화가 전부가 하도(河圖)의 모습이다. 하도河圖는 10수 이다. 피타고라스는 1(monad;모나드)부터 10(dechad;데카드)까지의 수는 제각기 특수한 의미와 역할을 갖는데, 그 중 특히 ‘10’수는 완전한 포용성을 지니는 만물의 주재자(the keyholder of all)다 라고 하였다. 석가 부처는 화엄경에서 이십표무진본(以十表無盡本)‘ 10으로서 다함이 없는 근본을 나타낸다라 하여 10으로써 우주의 조화법계를 드러낸다고 설파하였다. 석가부처의 손가락 결계는 역철학으로 감중연(坎中連 ☵)이며, 미륵부처의 손가락 결계는 이허중(離虛中 ☲)이다. 공자 또한 주역의 부록에 해설서인 10편의 논문 10익(翼)을 보충하면서 10의 완전성을 증언한바 있다. 1수(數)의 조화가 10수(數)로 완전히 우주 속에서 100% 오픈된 게 하도(河圖)다, 1이 완전히 열려서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이다. 10으로 완전히 열렸단 말이다. 10무극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창세편이라 할 수 있는『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보면 온 우주도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극미의 원자 소립자 세계로부터 극대우주 자체까지 모든 사물은 삼수(三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몸도, 의식의 마음의 구조도, 삼(三)의 구조를 가지고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삼신(三神)은 신의 3대 본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바로 그 神이 3가지 창조의 손길로 만물을 낳고(造化神), 기르고(敎化神), 다스리는데(治化神) 그 삼신과 한 몸이 되는 길은 즉, 삼신 그 자체가 되는 길은 우리 한민족의 시원역사의 역사정신, 문화정신, 삶의 근본정신이 삼일심법(三一心法)에 있다. 바로 이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역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해서 대원일(大圓一)로 얘기했는데, 이 대(大)라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무형의 삼신(三神)이 자기를 우주에 드러낼 때는 그것이 곧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도, 땅도, 인간도 그 바탕, 본질은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3가지 신성(一)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천부경에서 수학적으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로 정의를 하고 있다.
이것이 삼대(三大), 삼원(三圓), 삼일(三一) 사상(大圓一)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커발환이다. 그래서 초대 배달 환웅천왕의 호칭이 커발환(BC3897~ BC3804)이다. 커발환이라고 하는 뜻을 알면 우리 한민족의 신관, 우주관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나라 이름도 환국(桓國), 광명의 나라. 두 번째 환웅천왕의 배달(倍達) 신시는 양달,응달 할 때의 땅, 밝은 땅, 밝 달이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조선(朝鮮)은 아침에 광명이 떠오르는 밝은 땅. 조광선수지지(朝光先受地)다. 우리의 시원역사라는 것은 하늘의 광명을 환(桓), 땅의 광명을 단(檀), 인간의 몸속에 들어 있는 천지의 광명을 한(韓)이라 한다. 재세이화(在世理化) 단군세기 몇 구절 더 보면, 유인(惟人)이, 오직 사람이 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다. 너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신라 진평왕때 고승이었던 안함로(安含老,579~640)의 삼성기(三聖記) 上을 보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최초 국가를 선언하고, 有一神이 在斯白力之天하사.. 그다음에 조물주 神을 얘기한다. 오환(吾桓). 우리는 환桓이다. 나 오(吾) 자다. 나도 환(桓)이요, 너도 환(桓)이요, 우리 모두는 환桓이다. 모든 인간은 고금왕래의 우주 광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인간 선언이 없다. 팔만대장경을 읽고 도통한 부처도 이 얘기 이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인간 생명의 존귀함이, 인간의 위격이 우주 그 자체다. 우주 광명 자체다. 이렇게 존귀한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말이 무엇인가?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光明)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 이다.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다. 유형의 정(精)과 무형의 마음(心)을 닦아 생명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수행이 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 닦는 공부로 떨어진다. 수행의 궁극은 생명의 본성인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본성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광명(光明), 빛이다.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一心)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眼識)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내 몸의 혼탁한 음양 기운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또 깊은 밤 태을주(太乙呪 mantra)수행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광명,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행을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우주의 본성이 대광명이다. 수행공부가 어느 경계로 들어가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생명의 본성, 인간 마음의 본성은 광명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대우주 광명의 실체다. 동양에서는 이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顯)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왔다고 한다.『천부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한다.
만물의 생명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은 내 몸의 정(精)이 된다. 내 몸속에서 삼신의 마음(性)과 생명(命)이 발동되는 것은 실제로는 내 몸의 정(精) 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속의 참 마음(性)을 닦고 내 속의 참 생명(命)을 키우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精)을 잘 확보하는 것에 달렸다.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治化神)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三神)이 인간의 몸에 내려와 性,命,精 삼진(三眞)이 된다. 환단고기는 하늘에는 삼신(三神)이 있고,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으며,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고 말한다. 삼신(三神)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3가지 참된 것이 곧 성명정(性命精) 삼진(三眞)이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라는 삼신이 들어와 성(性)-명(命)-정(精) 삼진(三眞)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화신이 내 몸에 들어와 성(性)이 되고, 교화신이 들어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이는 내 몸 속에 삼신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전해주는 깨달음의 한소식이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어떻게 그 길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내 생명의 밝은 모습(性),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생명력(命)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 이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다. 인간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성(性)과 명(命)은 하늘땅과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더불어 호흡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되고,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된다.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성(性)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이 불과 몇 십 년 살다가 병들어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내몸속의 어둠이 사라지고 내 몸 속의 기가 환히 빛나서 어둠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진성(眞性)의 경계다. 진성眞性은 조물주의 원 밝은 마음, 우리의 원 마음자리다. 참 마음자리다. 사실 불교에서도 수행을 통해 이것을 닦는 것이다.
고로 기성지영각야(其性之靈覺也). 우리의 마음이 열리면, 이때의 마음은 영靈이다, 영靈이라는 건 거울과 같은 것이다. 본래 우리 본성은 만물을 환히 비추는 거울이다.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직관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 우주를 비추는 큰 진리의 거울, 깨달음의 거울이라 대우주를 환히 다 보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우주 만유를 환히 보고 그런 깨달음의 작용을 하는 것은, 기성지영각야(其性之靈覺也)는 여천신(與天神)으로. 천신天神. 하늘의 신과 더불어서 동기원(同其源), 즉 내 몸 속에 있는 본성이 우주 만유를 비춰서 환히 아는 지혜와 조화의 능력은 하늘의 신과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 조화의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지차진원(知此眞源)하고, 이런 진리의 근원을 알고, 의법수행(依法修行)하면. 이 법을 알고서 수행을 하면 길상자진(吉祥自臻)하고. 마음의 본성(性)자리가 열릴 때, 넓은 평원에 있는 수수 억조 개의 풀잎들이, 수많은 풀벌레, 거대한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을 정의한 분이 바로 19세기 후반의 동학의 최수운 대신사이다. 연즉 기욕지아(然則其慾知我)인댄 자하이시호(自何而始乎)아. 그런즉 나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기욕지아(其慾知我)인댄, 나를 알고자 할 때는, 내가 누구인지, 내 생명은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내 생명의 불멸성은 어느 곳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고자 할 때는 무엇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참된 나(진아)란 무엇인가. 고故로 정심불변(定心不變)을 위지진아(謂之眞我)오 신통만변(神通萬變)을 위지일신(謂之一神)이니 진아(眞我)는 일신유거지궁야(一神攸居之宮也)라. 고로 정심불변을 위지진아오. 여기서 심心은 내 몸의 삼신의 본성인 ‘성性’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 조물주의 본성, 본래의 마음을 확고히 정해서 변치 않는 것을 일러 진아(眞我), 참된 나라 하고, 몸 속의 삼신이 그대로 발현이 되고, 즉 우주의 삼신, 만물을 낳아 길러서 다스리는 조교치(造敎治), (조화신(낳고),교화신(기르고),치화신(다스리는) 삼신의 본래 신성을 그대로 깨쳐서 확고한 마음으로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 이것을 일러 참된 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차내천인상여지제(此乃天人相與之際). 이것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려고 할 때. 연집삼신계맹이시능귀우일자야(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라. 무슨 얘긴가? 모든 수행론의 근본은, 마음을 찾는 공부는 성性과 명命을 같이 닦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과 명은 어디에서 닦아지는 것인가?
조물주 삼신은 낳고(조화신), 기르고(교화신), 다스리는(치화신) 수평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신의 3대 본성인데, 이게 우리 몸에 들어올 때는 각기 분열돼 가지고 상단전(性), 중단전(命), 하단전(精)으로 해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精)를 손상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한민족 고유의 수행법 태을주(Sounding meditation)을 읽어서 잡된 생각, 순간순간 바뀌는 생각이 다 없어져 ‘진리 의식’이 확 뚫려버리면, 마치 막힌 하수구가 확 뚫리듯 이 우주와 내가 한마음, ‘한 몸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우주 천지와 한 몸이 될 때 조물주 삼신의 본래 마음과 조물주의 영원한 생명, 불멸의 명命과 조물주의 정기, 정精을 회복하게 된다.
천부경(天符經)은 심법(心法)을 열고, 진리 근본을 깨고, 심지를 굳히고,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여실없이 보여준다. 대우주의 절대 조화의 근원, 창조의 궁극의 손 길,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 절대 1자(一者), 일시(一始) 일(一)은 시(始)다. 여기서 비롯된 거다. 이것을 제대로 깨치고 느끼고 심법이 순수해서 내가 그 일(一)자 자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영원히 살수 있다고 심법전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살아있는 삼신에 조화의 궁극목적이 역사속에서 이루어지느냐, 그게 바로 태일(太一) 인간이 되는 길을 여는 것, 바로 태을주(Sounding meditation) 공부다. 인일(人一)이 바로 태일(太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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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인간의 변화 이치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여기서부터 천부경의 중경中經이다. 여기서는 다시 하늘과 땅과 인간의 관계, 실제적인 변화 이법을 정의하고 있다. 이 우주에서 가장 지극한 3가지 보배로운 존재인 하늘과 땅과 인간은 어떤 이치로 변화하고 일체(一體) 관계에 있느냐? 그것은 '천이(天二) 지이(地二) 인이(人二)', 하늘도, 땅도, 인간도 현상적으로 대대(待對) 작용을 통해서 변화한다. 대대는 기대할 대(待) 자에 마주 대할 대(待) 자, 여기서는 二는 변화의 상대적인 기운인 음양 기운을 뜻하는데, 이것이 짝이 돼서 하늘과 땅과 인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도 육지와 바다가 있고, 인간에게도 마음과 육신의 관계 속에서 존재가 성립이 되니까, 이 음양의 도(道), 음과 양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음양 사상의 원본이 천부경(天符經)이다. 이 음양론에 도(道)를 통해야 현상세계의 도(道)를 알고 우주 변화 이치를 아는 것이다.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여기서 三은 포괄적인 의미다. '집일함삼(執一含三), 하나 속에는 조화의 세 손길이 작동되고 있다.' 고 할 때 三은 신(神)의 손길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三에는 우주 절대의 일(一)자 속에 있는 조물주 신(神)이 만들고, 기르고, 다스리는 세 손길'이라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
또 피타고라스가 얘기하는 3은 우주의 중심 수(數)라는 의미도 있다. 이것은 2와 3을 연결해서 해석할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2와 3을 연결해서 읽으면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에서 3수의 복합적 의미가 자신 있게 잡힌다. 천이(天二)와 지이(地二)와 인이(人二)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어떤 법칙으로, 어떤 관계 속에서 둥글어 가느냐 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천이(天二) 지이(地二) 인이(人二)' 하면 하늘도 땅도 인간도 모두 조화의 세 손길 속에서 생성(生成), 변화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1은 신의 수다. 1은 수數의 전체이자 모든 수를 '창조'하는 수이다. 만물이 태어나는 근원으로서 태극(太極)을 상징하며 첫째, 씨앗, 본질, 불변의 진리 등의 의미를 가진다. 우주 만유는 물에서 생성되었으므로 수水를 1로 나타낸다. 방위로는 모든 변화의 근본 자리인 북방이 되고, 계절로는 다음 1년의 새 봄을 잉태하는 겨울이다. 서양의 탈레스는 "우주의 본체(아르케)는 물이다" 라고 했으며 고대 서양 학자들은 1을 모든 수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재미있게도 '111111111x111111111' 하면 '12345678987654321' 이 된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원형문화, 신교神敎(以神設敎)에서는 이 우주는 광명(光明)이며, 그것이 신神이며 구체적으로는 삼신(三神)이다. 그래서 이 신神의 3대 신성(神聖), 신의 3가지 손길이, 신神은 우주 만물을 짓는 조화신造化神, 창조와 두 번째는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것, 교화신敎化神, 깨달음을 열어준다. 세 번째는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의 신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삼신의 신성인데 조교치造,敎,治, 짓고 가르치고 다스린다. 구체적으로는 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이라고 한다. 이것을 천부경(天符經)에서는 수학으로 천일(天一), 지일( 地一), 태일(太一)이다.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환국(桓國)으로부터 내려온 한민족의 우주론을 기록한 하늘의 조화경, <천부경 天符經>, 배달시대에 동방민족을 교화하기 위해 시조 커발한 환웅이 내려주신 우리 민족의 신학(神學), 교화경 <삼일신고 三一神誥>와 일명 <366사(三百六十六事)>라고도 불리는 치화경, <참전계경 參佺戒經>이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는 타이틀 그대로 삼일신관(三一神觀)이다. 이는 동방의 삼신일체(三神一體) 신관(神觀)이다. 즉,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이다.’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보면 환국과 배달, 고조선은 이 조물주 삼신의 3가지 창조 덕성인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신성과 신권을 하나씩 맡아 나라를 다스렸다. 즉 환국은 조화신의 덕성을 바탕으로, 환국桓國은 하늘의 광명, 하늘의 조화신의 신성을 가장 강력하게 깨달았던 시절이다. 생활이 단순한 것이다. 언어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우주 만유와 마음으로 소통하는 시대이다. 서양의 학자들은 고대 인류문명시대의 특성을 통틀어서 ‘황금시대the Golden Age’라 한다. 독일의 칼바이트H.Kalweit에 의하면, 이 때에는 ‘인간이 행복과 평화 속에 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로 그때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신과 소통할 수 있었고, 죽음을 모르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테일러S.Taylor는 그의 저서 『자아폭발』에서 ‘BCE 4000년을 경계로 그 이전 시대는 황금시대였고 원초적인 낙원시대였다. 그때는 완전한 미덕을 갖춘 사람들이 살던 시대로...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 인간들 사이의 조화가 지구 전체에 충만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환국桓國시절에는 ‘조화신造化神의 신성이 구현된 시대’로, 인간이 대자연과 한마음이 되어 수행을 통해 천지의 광명(光明)을 직접 체험하며 무병장수하는 신선의 삶을 누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태백일사]「환국본기」), 전쟁과 폭력을 몰랐으며, 천지의 광명을 직접 체험하며 무병장수하는 신선의 삶을 누렸다. 환국은 자연과 인간이 극치의 조화를 이룬 ‘환(桓)의 인간’시대였다.
동양 의학서인 고전 [황제내경] 제 1장에 나오는 황제와 기백의 대화에서도 먼 옛날에 누렸던 장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어찌하여 백 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는가?’ 라는 황제의 질문에, 기백이 ‘그들은 천지의 법칙을 지키며 살았기 때문’이라 답하였다. 우리나라의 신선계보를 적은 [청학집]에서 동방 선(仙)의 최고 조상으로 환인(桓仁)을 지목한 것에서도 환국(桓國)은 인간이 선(仙)의 경지에서 살았던 조화 시대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생명공학과 나노기술, 예방의료기술 등 과학기술과 접목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1,000세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그는 중요한 대사 과정에 분자 및 세포 손상의 7가지 유형을 확인하였고, 이 세포손상으로부터 질병이나 노화가 온다고 말한다. 따라서 노화 세포손실, 죽음 내성 세포, 핵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 단백질 가교, 내부 정크 세포, 외부 정크 세포 상관관계 등을 치료할 수 있는 7가지 기술만 개발하면 노화의 종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桓(환)은 밝은 桓자로 광명을 상징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하게 빛나는 광명’, 天光明을 상징한다. 광명은 삼신의 덕성이니, 환국은 곧 삼신의 덕성이 발현된 나라요, 천상 삼신 상제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이식된 첫 나라인 것이다. 환국 사람들은 태양을 광명이 모이고 삼신(三神)이 머무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침에는 동산에 올라 해를 향해 절하였다}-[태백일사]<환국본기> 환桓은 단지 나라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의 광명과 하나된 자신을 ‘환桓’이라고 불렀다. 환국 시대의 인간은 삼신상제님의 신성을 그대로 발현하여 천지의 광명으로 빛나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환의 존재들을 다스리는 사람을 ‘仁’이라 불렀고 환국의 통치자를 ‘桓仁(환인)’이라 하였다. 그것은 환인桓仁이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다스릴 때 반드시 어진 마음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환국의 초대 통치자는 안파견 환인천제였다. 환웅의 배달국은 교화신(敎化神)의 덕성을 바탕으로 다스렸으며, 단군의 고조선은 치화신(治化神)의 덕성으로 다스렸다. 신교(神敎) 삼신의 도道를 국가 경영제도로 뿌리내려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 문화를 열었던 것이다. 환국-배달-조선(고조선)의 역사가 바로 삼신 문화를 인간 역사 속에 실제로 이식하는 과정이었다. 배달국의 3대 성인
배달국의 천도(遷都) 백두산의 신시에서 출발한 배달국은 점차 도시국가의 틀을 벗고 동북아의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배달국의1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도읍을 백두산 신시에서 서토에 가까운 청구(현 대릉하 유역)로 옮김으로써 치우천황의 전성기이자 배달의 전성기인 청구 시대를 열게 되었다. 고조선은 신교의 삼신(조화신, 교화신, 치화신) 가운데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의 도가 실현되는 때이다. 단군왕검께서는 삼신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삼한, 즉 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국가경영 제도인 삼한관경제이다. 단군왕검은 대단군으로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을 통치하고, 요서지역의 번한과 한반도의 마한은 각각 부단군이 통치하였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天一]을, 번한은 땅의 정신[地一]을, 진한은 천지의 주인이요, 중심인 인간[太一]을 상징하였다.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 번한의 수도는 안덕향(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지금의 평양)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삼한관경이 고조선의 국가 경영 원리였음을 말하였다. 신채호선생은 한반도의 남쪽 삼한시대 남삼한시대 이전의 만주, 요서, 한반도에 걸쳐 광대하게 뻗어 있었던 단군조선의 북삼한시대가 실재했음을 말하였다. 동방의 이 삼신三神의 이치를 깨닫고, 삼신의 문명을 열어서 제도화 시키는 과정이 바로 한민족의 뿌리 역사다. 즉 고조선은 삼신三神의 3수 법칙으로, 삼신의 3가지 창조 덕성을 생활 문화로 뿌리내린 것이다. 삼신三神의 정신을 인간의 역사 통치 질서에 뿌리를 내려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다시 말해서 뿌리 문화를 종합하여 삼신의 가르침을 통치 역사로 제도화시켰다. 이것이 중요하다. 배달국을 연 거발환 환웅이 백두산 신시에 나라를 처음 건설할 때 환국으로부터 받아내린 가르침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 광명이세(光明以世)다. 그런데 홍익인간, 제세이화, 광명이세의 배달국 3대 건국이념을 지금의 역사교과서에서는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잘못가르치고 있다. 나라를 삼한(三韓)으로 나눠 다스린 것이 단군조선이다. 이 조선을 후대의 한양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 고조선이라고 한다. 초대 단군성조가 배달국의 법통을 계승하여 아사달을 수도로 나라를 세워, 총 47대 단군이 2,096년간 통치하였다. 단군조선이 건국한 지 1,048년이 지나, 정치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22대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번한과 마한에 병권을 일부 나누어 줌으로써 삼한 체제의 동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삼한관경의 체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독립된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3조선 체제(分權管境)로 개편되었다. 그 후 43대 물리 단군의 재위 말기인 기원전 426년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켜 아사달이 점령되고 물리 단군이 피난길에 붕어하고 만다. 이 때 구물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하고 44대 단군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국호(國號)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서 다시 살려보려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진조선(진한)의 중앙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되고 번조선(번한)과 마조선(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인간 삶의 3대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이 들어 있다. 진선미(眞善美)의 발원처가 다름 아닌 삼신(三神)의 3가지 덕성이라는 것이다. 삼신三神이 낳은 천지인의 덕성이 각각 진선미이기 때문에, 진선미는 삼신(三神)에서 발원한 영원불변의 가치이다.
하늘은 ‘청정과 참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淸眞大之體)이다. 하늘은 언제나 맑고 참되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본성은 참(眞)이다. 그래서 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거짓된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지 대자연이 얼마나 넓고 신비로우며 무한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지 느낄 수 있다면 참의 세계, 진리의 세계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下界主神은 其號曰地一이시니 主敎化하사 有至善惟一之法力하시며 無爲而作하사 使萬物로 各知其命하시니 是爲善聖大之體也오. 땅은 ‘선함과 거룩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善聖大之體)이다. 땅은 선하고 성스럽다. 때문에 박테리아에서부터 바다 속의 어족들, 공중을 나는 새들, 들판을 뛰노는 짐승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가 이 지구상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땅의 덕성, 선善은 마음씨가 착하다는 윤리적 의미의 선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수용해서 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 대지의 덕성을 일컫는 것이다. 뱀도 있고, 송어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물방개도 있는 큰 연못, 택국澤國을 생각하면 선善의 덕성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中界主神은 其號曰太一이시니 主治化하사 有最高無上之德量하시며 無言而化하사 使萬物로 各保其精하시니 是爲美能大之體也시니라. 인간은 ‘아름다움과 지혜로 지극히 큰 본체(美能大之體)이다. 인간은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 천지의 덕성인 참眞과 선善을 체득하고 생활화 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천지의 꿈을 이루는 태일太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천지의 광명과 신성, 지혜를 체득하여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역사의 주인공’인 태일太一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천지를 알아야 하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인간을 아름다움의 창조자요, 지혜의 주인으로 일컫는 미능대지체(美能大之體) 이 한마디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극치의 표현이자 진리에 대한 최종 정의라 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항구불변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도 다름 아닌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와 하나가 될 때, 우리 몸에서 진선미(眞善美)가 발현될 수 있다. 인간 삶의 제1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의 소자출所自出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진정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한 역사경전일 뿐만 아니라 동서 종교와 철학에서 탐구해 온 여러 진리 주제에 대한 명쾌한 깨달음을 열어주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경전인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인간이 하늘과 땅의 참됨과 선함을 체득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을 실현한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진선미眞善美 사상이다.
11세 ‘도해 단군(BC1891~BC1835)’의 염표문念標文은 당시의 국민교육 헌장이었다. 염표念標, 항상 마음으로 헤아리고 그 가르침을 언제 어디서나 내서 쓸 수 있고 실천해야 되는 하늘의 글이란 말이다.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천天은, 하늘은 말할 수 없는 고요함으로 장대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수행을 통해 고요히 침묵을 해야 자연의 도와 합일이 되는 것이다. 동정動靜 법칙이니까, 정靜이라고 해서 죽어있는 고요함이 아니고 온 우주가 하나 되어 가지고 살아있다는 말이다.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라” 하늘의 도라는 것은 보원(普圓)이다. 넓고 원만하다는 것이다. 하늘은 모든 만물을 포용하고 다 담고 있다.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요 기사야진일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이 하는 일이란 “其事也眞一기사야진일”, 참됨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참 되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늘의 정신과 하나가 되지를 않는다. 수행을 해도 광명이 열리지 않는다. 개안開眼이 안 되는 것이다.
거짓행위를 하고, 마음이 분열돼 있으면, 앉아 있어야 다리만 아프지 수행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도야진일其事也眞一이다.” 참 진眞자 한 일一자라는 게 해석이 무궁무궁한 것이다. 거기에 태일太一사상도 있는 것이고, 바로 우주의 본성자리 속에 들어가는 비밀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天)은 아득하고 고요함(玄默)으로 광대하니, 하늘의 도(天道)는 두루 미치어 원만(원융무애)하며, 그 하는 일은 참됨으로 만물을 하나 되게 함(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땅(地)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蓄藏) 성대하니, 땅의 도(地道)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사람(人)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知能) 위대하니, 사람의 도(人道)는 천지의 도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太一의 세계(協一)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그러므로 삼신(三神)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수행을 통해 삼신의 천지광명을 회복하여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하라.
사실 모든 과학자들이 ‘이 우주의 꿈이 무엇인가? 우주의 뜻과 목적이 뭔가?’ 이것을 알고 싶어한다.『신과 천문학』을 쓴 과학자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평생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를 더듬어 보니, 깊은 밤에 이런 의문이 들더란다. ‘야, 우주는 왜 이렇게 광활하냐? 이 우주는 왜 수많은 별들을 자꾸 지어내느냐?’ 하고 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신학자나, 천문학자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살아 있는 대도의 답을 전해주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밖에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법도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岐矣니라. 盖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 自我所先所重者也라.
자아 인식의 중요성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 我者인댄 自何而始乎아.
우주의 삼신三神과 인간의 탄생 원리 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精하니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사람의 본성과 목숨의 존재 원리 성性 명命과 신神 기氣의 상호 관계 夫性者는 神之根也니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에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니라.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
우주와 하나 되는 길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故로 定心不變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此 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故로 性命精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與宇宙萬物로 渾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고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구국求國의 길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若其時之制先하야 以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魂夜行하야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慈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어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人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환단고기, 상생출판, 62~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