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매력
오랜만에 둘이서만 여행을 하였다. 1박 2일이고 배로 흑산도에 가서 잠을 자고 그 다음날 홍도 유람선을 타기로 하였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이층 선실은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떡과 술 그리고 안주는 단체로 오는 사람들에겐 필수품인 것 같았다.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초를 지나자 큰 서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오더니 갑자기 배가 흔들거렸다. 웃음소리가 신음소리로 바뀌고 그들은 바다에게 혹독한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섬에 도착하여 시원한 바람을 마시니 살만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택시로 해안누리 길을 한 바퀴 돌기로 하였다. 잘하면 일몰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흑산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다. 행정구역상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고 예리와 진리가 있다. 3000년 전 부터 사람이 살았고, 장보고가 쌓았다는 반월산성이 있는 것으로 봐서 서남해를 지키는 요충지임을 알 수 있었다. 성황당을 지나 십이 구비 고갯길을 오르니 상라산 입구와 흑산도 노래비 전망대가 있었다. 앞에는 긴 섬이라는 뜻의 장도가, 그 너머는 희미하게 홍도가 보였다. 장도는 산 위에 습지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3번째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 되었다고 한다. 솔개, 수달, 매, 도롱뇽이 살고 있고 자생춘란 후박나무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니 포구마다 마을들이 숨어있었다. 이상열변호사의 고향인 심리, 김해 김 씨의 집성촌, 손암 정약전의 유배지인 사리마을을 지났다. 그들은 홍어 우럭등 여러 고기들을 잡고 전복과 다시마 양식을 한다고 한다 . 장도나 영산도가 그를 둘러쌓아 태풍을 막아 주어 천연 요새가 되니 웬만하면 목포에 집 한 채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하다고도 하였다. 해가 서산에 기우니 남편은 낙조를 찍고 싶어 했다. 신안군에는 대략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하여 천사 섬이라고 한다. 그래서 2010년에 준공한 기념비가 있는 곳에는 천사의 조형물이 있었다. 묘하게도 석양이 되면 준공 천사의 손으로 해를 잡는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해무가 가득하여 그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읍내가 가까워지니 앞에 영산도가 보였다. 그곳은 바다낚시로 유명한 곳이면서 홍어와 밀접한 섬이라한다. 홍어가 잡아서 육지로 가는데 데 풍랑을 만나면 육지에 닿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사이 다른 고기들은 부패하였어도 홍어는 발효가 되어서 독특한 풍미를 낸다고 한다. 나주에 있는 영산포는 영산도 주민이 이주해 와서 홍어 거리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부드러운 잔모래가 백사장처럼 있고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그들도 고령화가 문제였다. 또 세월호 와 여교사 성폭행사건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낙조는 보지 못 했지만 아침에 영산도 근방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구경하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잠을 청하니 유배를 당했던 손암의 글 쓰는 모습과 복성재(사촌서당)에서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밀려왔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습지를 안고 있는 장도, 고기를 품고 있는 영산도, 기암괴석이 있는 아름다운 홍도를 거느린 흑산도를 그는 왜 우울하게 느꼈을까? 자신의 처지가 어두워서 밝은 느낌을 가지려고 흑산을 자산으로 불렀을까? 나도 그처럼 현실에 유배를 당하고 있는 걸까? 바람 따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것을 받아내는 섬. 여행은 단지 풍광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살아왔던 행적과 고뇌 그리고 저항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알면 나를 알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근본이 하의도 여서 일까? 파도 소리가 그다지 낯설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