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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박연숙
오늘도 남편은 결혼예식이 2건이나 있다며 급하게 집을 나섰다. 예전에는 예쁜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따스한 봄날이나 파아란 하늘과 결실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풍요로운 가을에 결혼식이 많이 있었지만 요사이는 사시사철 많은 부부들이 예식공장에서 30분 단위로 탄생되고 있다. 결혼하면 주례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시대의 주례사는 여인의 삼종지도로 시작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손을 생산해서 대를 이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오순도순 살다가 하늘이 갈라놓을 때까지 일부종사 잘 하라는 주로 아내에게 인내와 순종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류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은 결혼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으며 신삼종지도가 생겨났다고 한다. 내용인즉 어려서는 부모의 뜻을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가르쳐 평등한 가정을 이루며,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여성들도 높은 교육을 받아 직업을 가지고 가정경제에 이바지하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졌으니 남편이 아내를 배려하고 가사와 육아를 일정 부문 분담하여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부부는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내 입맛에 맞게 길들이며 주도권 쟁탈을 하는 종속관계는 아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도우며 협력하는 대등한 관계이다.
장기간 계속되는 경제의 악화로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다. 힘들게 벌어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는 결혼 제도 자체가 싫다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고 결혼은 해도 자녀는 가지지 않는 딩크족도 있다. 능력이 있는 연상녀를 만나 경제적인 문제를 아내에게 의지하는 가모장적인 가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이혼도 인생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며 별로 흉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전 TV에서 69년을 해로하다 40분의 시차를 두고 운명한 아이작과 테레사라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보았다. 아내가 치매를 앓아 11년간 요양원에서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하던 남편도 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규정상 다른 병원에 가게 된 남편이 아내랑 같은 요양원의 한 병실에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요양원 측이 받아들였다. 두 분이 며칠간 함께 계시다가 아내가 먼저 운명하고 40분 뒤에 남편도 편안한 얼굴로 아내를 따라가는 감동적인 부부의 사랑이야기였다. 결혼도 이것저것 요모조모 조건을 따지고 비즈니스처럼 계산하다 손해다 싶으면 한 치의 재고도 없이 싹둑 인연을 잘라버리는 요즘 세태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이다.
부부는 오랜 세월 다른 장소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가족문화를 향유하며 살다 어느 날 운명적으로 만난 관계이다. 서로의 성장 환경이나 형편이나 생각이나 식성이나 습관이나 여러 면에서 비슷한 것 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서로 사랑하지만 오해하고 미워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소리 높여 언쟁을 하기도 하고 며칠 동안 입을 다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대기도 한다. 상대를 내 기준으로 고쳐서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이해와 양보로 믿음과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좋은 아내를 얻은 남자이다.라고 탈무드는 말한다. 부부라고 해서 항상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만 하며 늘 같이 움직일 수는 없다. 부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때로는 독립적이고 때로는 힘을 모아서 모자라는 것은 서로 채워주고 보완해 주는 관계이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 따로 또 같이 영원히 동행하는 인생의 최고 동반자이다.
열쇠에 대한 오해와 편견
박연숙
열쇠하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찰스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송가의 스쿠루지 영감이 떠오른다. 스쿠루지는 지독한 구두쇠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기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을 문전박대하고 가게 직원 보브씨가 가족과 같이 이브를 보내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을 시켜달라고 하자 쥐뿔도 없는 게 무슨 크리스마스 타령이냐고 조롱한다.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 프렛이 저녁식사에 초대했지만 거절하고 혼자 불기운도 없는 가게에 남아 오들오들 떨다 꼬박 잠이 든다.
꿈에서 예전 동업자였던 죽은 마레가 나타난다. 온몸에 열쇠, 빗장, 작은 금고, 장부, 증서, 동전들이 매달린 긴 쇠사슬을 몸에 친친 감은 그는 걸을 때 마다 그 무게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마레, 이것들이 모두 무엇인가?
살아 있을 때 내가 만든 쇠사슬, 내 죄 값이라네. 자네도 이대로 계속 살면 죽어서 나보다 훨씬 더 무거운 쇠사슬을 매달고 다녀야하네.
스쿠루지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영을 만나고 자신의 탐욕을 깨닫는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금고의 자물쇠를 열쇠로 활짝 열어 가난한 이를 돕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열쇠의 사전적 의미는 자물쇠를 잠그거나 여는데 사용하는 물건 또는 어떤 일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나 요소이다. 열쇠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열쇠는 부와 권력, 실세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열쇠를 가진 자는 부와 권력과 명예가 동시에 따라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공유하지 않기 위해서 자물쇠를 꽁꽁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놓지 않는다. 손이 아프도록 많이 잡고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희생과 눈물은 외면한다. 만능열쇠를 만들어서라도 부와 권력의 세습을 꿈꾼다.
한때 의사, 판․검사 사위를 보려면 신부 집에서 집, 빌딩, 자동차 등 세 개 정도의 열쇠는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보통의 서민들은 작은 평수의 아파트 열쇠를 얻기 위해 허리끈을 졸라매고 아등바등 거리며 전세 탈출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엔 자가용이 귀했다. 예쁜 키홀더에 차 열쇠와 아파트 열쇠까지 매달아 달랑거리며 자랑삼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열쇠꾸러미를 상속받는 아이들을 금수저라고 부르며 부러워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쇠를 쟁취하는 열쇠 예찬론자를 양산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열쇠는 새로운 길을 열거나 어떤 일을 해결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경주 최부자는 곳간 열쇠를 활짝 열어 자기집의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남은 재산은 대학에 기부해서 청년들이 희망의 열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서 칭송을 받고 사랑을 실천하는 명문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육군에 열쇠부대가 있다. 굳게 잠긴 북한 땅에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의 씩씩한 장병들이 꼭 통일을 가져다 줄 것이라 확신한다. 또 열쇠는 꼬인 일이나 어려운 일을 풀어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여는 키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열쇠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인들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아름다운 유종의 미를 거둘 때에 행운의 열쇠를 선물해서 축복해 주고 기쁨을 같이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열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열쇠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속박하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지독한 수전노인 스쿠루지가 사랑의 메신저로 변화된 것은 마음의 문과 금고의 문을 동시에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열쇠를 소유하려는 우리의 욕심으로 인하여 파생된 열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우리의 노력과 땀으로 일군 조그마한 열쇠지만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마음의 열쇠까지 활짝 열어 행복한 삶들을 가꾸어 가면 좋겠다.
2017.4.8
솔향 그늘 아래서
박연숙
지난 목요일, 아직도 우리 조상들의 단오 풍습이 가장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강릉 단오제를 보러 갔다. 고속도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나란히, 가까이 또는 멀리 병풍처럼 겹겹이 펼쳐지는 산들은 각양각색의 수종들이 어울려 싱그러운 녹음으로 단장하였다. 초봄에는 청순한 처녀처럼 새잎을 틔워 연두색 저고리로 수줍게 치장하더니 어느새 산은 농염한 여인이 되어 짙은 청록 저고리로 갈아입고 울창한 산림을 이루며 신록을 노래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는 내년 2월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세계 각국 손님맞이를 위해 확장을 하고 아스팔트를 새로 까느라 차선을 군데군데 막아놓아 어수선했다. 가는 내내 공사로 인해 정체가 되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신록의 풍경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대관령을 넘어서니 비가 오락가락하다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할 정도의 굵은 비가 내려 쉼터에서 잠깐 비를 피했다. 높은 산을 휘감아 낮게 드리운 묘한 구름의 움직임이 신비함과 공포감을 동시에 주었다. 고개를 내려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금방 날이 개었다. 강원도는 대구와는 기온 차이가 많이 났다. 대구는 이미 다 져버린 아카시아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달콤한 향내를 전해 준다, 조금은 독한 비릿한 밤나무 냄새도 한창으로 코를 찔렀다. 나무들도 아직은 연두색을 더 많이 품고 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자태로 붉은빛 몸매를 뽐내는 금강송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과연 별칭으로 미인송이라 할 만한 고고하고 아름다운 슈퍼모델 같은 모습이다. 우리 국민은 예부터 소나무를 가장 사랑하고 아꼈다. 사시사철 바람서리에 변함없는 푸른 기상이 우리 국민성을 닮아서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제 일의 나무이다. 금강산을 비롯해서 태백산맥 줄기인 강원도나 경북 북부에 군락을 이루던 금강송은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건축재로 사랑받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영주, 봉화, 태백을 잇는 산업철도로 인해 무분별하게 벌목되어 영동선 춘양역에서 서울로 실려 나가 건축재로 사용되어 춘양목이라고도 불리 운다. 지금은 유전자보호림이나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수종 보호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강릉시립 솔향수목원을 찾았다.
규모가 그리 크진 않으나 솔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잘 가꾸어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숲은 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었다. 이름표가 없으면 알지도 못하는 풀과 꽃과 나무들, 쪼르르 겁도 없이 나타났다 재빨리 사라져 버리는 앙증맞은 다람쥐, 반가움을 더해주는 청아한 새소리에 깨끗한 공기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솔향 그늘 아래서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니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벤치에 앉아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볕을 즐기며 눈을 감고 잠깐 쉬었다. 온실에는 건조 지역을 대표하는 나무인 올리브와 바오밥 나무도 한 식구로 살고 있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필요 이상의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조금 험한 길엔 재료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깔개가 깔려있어 흙을 제대로 밟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립, 도립공원이나 수목원은 너무 인간의 입맛대로 인공적으로 고치고 다듬고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제 작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아들과 주의 북서쪽에 위치한 레드우드주립공원 구경을 했다. 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메리카삼나무들이 빽빽하게 자생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나무는 키가 84미터, 둘레가 31미터, 수령이 2,100살로 어마어마하게 컸다. 올려다보는데 목을 한껏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키가 115미터가 넘는 나무도 있었는데 그 곳 사람들은 빅 트리라고 불렀다. 큰 나무가 썩어서 넘어져 군데 군데 길을 막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 때문에 사람이 돌아서 가야만 했다. 길은 울퉁불퉁 구불구불 생긴 그대로고 떨어진 나뭇잎이 자연스레 밟히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소규모의 산불로 타버린 곳은 시간은 걸리지만 산림 스스로가 치유를 하고 원상으로 회복되기 때문에 그대로 둔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지나친 욕심은 신록의 푸른 숲을 병들게 하고 있다. 산불로 애써 가꾼 산림이 한순간에 수천, 수 만평이 사라진다. 무분별한 개발로 산의 허리가 잘려 나가고 숲이 우거져 있던 자리엔 택지개발로 아파트 숲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몰지각한 일부 채취꾼들과 등산객들이 숲을 망치고 생태계를 훼손한다. 건강한 숲이 뿜어내는 웅장한 하모니가 신록이다. 원래대로 두고 아끼고 보존해야만 숲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 오랜 가뭄으로 숲이 메말라 가고 신록이 푸르름을 잃고 있다.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나는 신록의 청량함이 주는 위로와 건강을 얻으려 고마움을 가지고 동네 산을 오른다.
2017. 6.10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