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 산행
2023년 10월 9일 조송암(曺松岩) 원로장로를 비롯하여 몇 분들과 오대산(五臺山) 소금강을 찾았다. 소금강(小金剛)의 명칭은 1569년 율곡 이이(李珥)가 강릉 오죽헌(烏竹軒)에서부터 소금강까지 유산(遊山)하다가 이곳의 산수와 자연환경을 보고 마치 금강산(金剛山)을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듯 아름답다고 하여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이라 이름을 짓고 그의 글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 남긴 데서 유래했다. 오대산 노인봉(老人峰)에서 발원하는 연곡천(連谷川)의 지류인 청학천(靑鶴川)에 의해 형성된 12㎞에 달하는 연곡천계곡(連谷川溪谷) 또는 무릉계곡(武陵溪谷)이라고 하는 청학동 소금강은 급경사의 험준한 산세, 기암괴석, 층암절벽, 폭포, 담소(淡沼) 등이 정말 금강산의 축소판 같다. 이것들은 화강암지대를 흐르는 청학천의 차별침식으로 이루어졌다. 무릉계(武陵溪)를 경계로 내소금강과 외소금강으로 구분된다. 내소금강에는 천하대(天河臺), 십자소(十字沼), 연화담(蓮花潭), 식당암(食堂巖), 삼선암(三仙巖), 청심대(淸心臺), 세심대(洗心臺), 학소대(鶴巢臺) 등의 명소가 있다. 그중에 구룡연(九龍淵)이라고 하는 구폭구담(九瀑九潭)의 구룡폭포와 만물상(萬物相) 일대는 특히 절경이다. 금강산의 만물상과 구룡폭포는 모양도 이름도 같고 소금강의 연화담은 금강산의 연주담(連珠潭)을 빼어 닮았다. 또 구룡폭포 부근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싸우던 각축장이었던 아미산성(娥媚山城)이 있어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소금강은 1970년 1월 10일에 대한민국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가을이 예쁜 색깔로 한 편의 수채화를 그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때 찾은 오대산 자락의 소금강 입구는 나무마다 푸른 잎새에 예쁜 색깔을 입히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은 산행의 편리함을 제공했다. 이 길이 끝나자 이율곡의 친필로 쓴 소금강 비문이 본격적인 산행을 알려주었다. 험악한 오솔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등산객의 안전을 담당했다. 우거진 숲은 가을의 냄새를 물씬 풍겨주었다. 산을 오르며 펼쳐지는 기암괴석의 향연이 계곡 중간마다 펼쳐졌다. 마치 바위가 만들어 놓은 것 같이 바위 세상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저 바위가 어찌 거기에 있을까? 석수장이의 연마의 손길이 끝나고 곧 출하할 석공작품처럼 만질만질해진 수십 톤의 바위를 길도 없는 이 계곡 정원에 누가 운반하여 장식했을까? 돌박사 김대희(金大喜) 권사가 쑥 던지는 말, “하나님이시지요.” 그는 저 바위는 원래 울퉁불퉁했었는데 억겁의 세월을 거치면서 물과 바람에 쓸리고 또 쓸려서 여기에 그 모습으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어떤 사람의 손길도 없었으니 하나님밖에는 할 분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오르다 보니 율곡 이이의 일대기, 그가 유산하던 코스 등이 표지판에 가지런히 설명되었다. 여기를 찾은 사람들이 참 많았을 텐데 유독 ‘율곡의 소금강’으로 소개하는 것 같았다. 억울하면 유명해져야 한다.
계곡을 가로지른 인공 다리는 이 수려한 자연을 해치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 앞에 우뚝 선 절벽암석, 그 틈새로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꿋꿋하게 자라고 있었다. 또 김 권사가 한 마디 던진다.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뿌리는 150m 정도까지 벋치며 바위 속에 있는 각종 양분을 빨아먹으며 성장하지요.” 그래서 그 바위 아래에 어떤 영양분이 있는지를 알려면 소나무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오르다 보니 굴참나무가 많이 보였다. 김 권사는 이 나무껍질은 너무 두꺼워서 지붕으로 사용되며 기한은 1천 년 정도 간다고 알려주었다. 두 개의 고로새나무 사이로 층층나무가 함께 자라는데 두 나무가 온전히 붙어서 서로의 뿌리에서 빨아먹는 양분을 공유하며 이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두 나무의 동거가 얼마나 싫었을까? 운명처럼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같이 자라다 보니 이제는 서로를 받아줘서 진정한 한 몸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떨어지면 서로가 죽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껍질이 거북이 등짝 같이 큰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 굵은 금강송(金剛松)을 보면서 저 정도 되어야 최상의 가치가 있다고 하며 귀한 놈은 모양부터 다르다고 한다. 또 그 옆의 굵기가 서로 다른 소나무는 수령이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굵기가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이 나무는 작은 대신 송진이 많이 있어 밀도가 촘촘해서 주로 물속에 잠기는 배 밑창에 사용된다. 이놈이 이렇게 작아야 배는 침몰하지 않으며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단다. 돌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더니 그가 내놓는 학설마다 그럴듯했다. 그는 돌과 나무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할 정도로 많이 연구했다고 고백한다. 문외한들에게는 그냥 똑같이 보이는 나무일진대 계곡에 널려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꿰뚫고 있었다. 우렁차게 내려오는 구룡폭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상념에 빠진다. 시인에게는 시상(詩想)이 떠오를 것이고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감(靈感)이 솟구쳐 오를 것 같다. 세상을 잊고 자연과 합일하여 이런 곳에서 천년만년 살고 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게 변화산에 있고 싶었던 베드로를 데리고 하산하신 주님의 뜻을 생각했다. 절벽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뛰어내리며 험준한 계곡 길도 망설임없이 돌진하는 폭포수 기상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산할 채비했다. 평생 강원도 산 옆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처음 왔거나 30년 만에 왔다고 한다. 바쁜 일상 때문에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을 옆에 끼고 있어도 누리지 못하는 처지를 돌아보며 이 산에 그 아쉬움을 묻는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이사야 44:23).
소금강 비문 '小金剛'은 율곡 이이가 청학일기에 쓴 글자를 탁본하여 그대로 새긴 것이다.
식당암
구룡폭포
청학계곡의 기암괴석들
저 큰돌은 하나님이 계곡 정원에 장식하신 조각품이다
거북이 등짝처럼 굵게 갈라지 노송의 껍질
크기는 달라도 수령은 같다. 단지 쓰임 새가 다르기에 같은 세월을 살았어도 크기가 다른 것이다.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되어 이제는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었다. 이제 떨어지면 둘다 죽음이다.
첫댓글 자연인이 자연에 안겼다
잊었던 시간들
돌아 갈 본향
주님 계신 곳
내 사모하는
바로 그 곳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