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장학사 신고식 / 김석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마흔에 ㅁ시 교육청 장학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은 연고도 없고 근무한 적이 없다. 길도 잘 모르고 사람도 낯설다. 선배 권유로 연습 삼아 교육전문직원(장학사, 교육연구사, 장학관, 교육연구관) 선발시험에 응시했더니 덜컥 합격해 버렸다. 남들은 전직(교원에서 장학사나 장학관 혹은 교육연구사나 교육연구관으로 가는 것)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교단을 일찍 떠난 것을 아쉬워했다. 시골에서 생활하다 도회지로 가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출퇴근하기도 어려워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 교육부와 도 교육청에서 임용 연수를 받으면서 강사들에게 군보다 시 교육청이 민원과 일이 많아 힘들다고 들었다. 발령나면 대부분 근무하기 전에 전화도 하고 찾아가 인사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발령지가 맘에 들지 않아 전화도 하지 않고 출근 당일에야 사무실에 갔다.
교육장실에서 신고하고 아래층 사무실로 내려오니 사회체육계(사체계), 중등교육계(중등계), 초등교육계(초등계)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중등 장학사는 셋이다. 둘은 각각 중등과 사체계장을 맡았다. 중학교 학생 배정 업무를 처리하는 일반 행정직원과 장학사 업무를 도와주는 사무보조원도 있다. 나는 중등 교육과정과 생활지도, 전편입학 업무를 주로 하게 됐다. 나보다 열다섯 살 많은 o 장학사가 팀장이다. 그는 인사와 장학 업무를 하며 중등 업무 전반을 점검한다.
키가 훤칠한 ㅇ 장학사는 고등학교 교감을 하던 중 전직해서 ㅈ군 교육청에 근무하다가 집 가까운 곳으로 왔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 ㅅ교육과장과 친구다. 과장에게 회의나 공식 석상에서는 존대하지만 사석에서는 벗한다. 보자마자 발령이 났으면 출근 전에 사무실에 한번 오던가 전화를 하든지 하지 내게 무심하다고 한마디했다. 나를 과장에게 소개하고 내가 해야할 업무를 알려 주었다. 며칠 지내고 나니 친절하게 대해 주며 다른 사람에게 유머와 농담도 잘했다. 교육청에서 낮에는 전화받고 사무 처리는 저녁에 한다며 내가 장학사가 빨리 돼서 고생문이 훤하다고 했다.
첫날부터 퇴근 시간이 지나 밤늦게까지 근무했다. 그해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교원 정년 단축으로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교육부가 ‘새 학교 문화 창조’라는 기치 아래 교육청으로 수많은 공문을 보냈다. 연말에 서류를 캐비닛에서 꺼내어 정리를 하려고 이백 쪽씩 묶어 보니 일만 이천 쪽이 넘었다. 그 많은 문서를 어떻게 다 처리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대견스럽다. 교육청 업무가 처음이라 일 처리가 늦지만 사무실이 시끄러워서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전화벨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응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초등계에서 큰소리치면 사체계 직원은 목청을 돋워 가며 야단치는 소리로 말한다. 나중에 둘이 싸우기도 한다. 조용한 교무실에서 지내다 시장판 같은 곳에서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 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은 파김치가 된다.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던 시절이다.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집에 가서 쉬고 와야지 하면서 출근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정오가 다가올 무렵 과장이 불렀다. 그는 저녁에 교육장님이 참석해야 할 경찰청 행사에 내가 다녀오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육장이 저녁에 일이 있어 참석할 수 없으니 대신 과장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그는 그 일을 o 장학사에게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근무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출내기 장학사에게 시킨 것이다. 난감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처리할 공문도 있어서 체념하고 점심 먹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행사에 갔다.
행사장은 시내에서 떨어진 바닷가 유명 호텔이다. 자동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호텔 앞에서 내려서 갔다. 입구에 행사를 알리는 큰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호텔로 들어가니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교육청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ㅊ 형사도 보였다. 그도 제복 차림이다. 교육청에서 만나면 그는 항상 사복을 입었다. 교육장과 함께 왔냐고 물었다. 대신 왔다고 하니 과장은 오지 않았냐고 했다. 퉁명스럽게 글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식장으로 올라가니 크고 넓은 홀에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과 청소년들이 꽉 차 있다. 옷에 달린 금 단추와 큰 메달이 빛났다. 나를 안내하거나 맞이해 주는 사람은 없다. 단상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무슨 행사인지 알았다. 경찰서에서 불우 청소년들 사기를 높여주고 격려금을 전달하는 자리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귀띔해 주어 알았지만 지역 상공인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하는 행사라고 한다. 승진을 앞둔 경찰서장이 큰 관심을 두던 행사다. 자리에 앉지 않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니 시장이 경찰서장과 함께 들어왔다. 시끄럽던 실내가 조용해졌다.
단상 중앙에 시장이 앉고 그 옆에 교육장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강단 밑에 있다가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단상에 보니 제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중압감이 들었다. 식순을 보니 시장 격려사 다음 교육장 축사가 있다. 순간 아찔했다. 축사를 하는지 모르고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당황스러워서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 머리가 멍멍했다. 경찰서장 인사가 끝나자 시장이 격려사를 하러 연단으로 갔다. 그는 나를 교육청 학무과장(교육과장)으로 소개했다. 내 얼굴을 보니 교육장은 아니고 과장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탁자 위를 보니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그것을 집어 들고 보았다. 맨 뒤에 교육장 축하 인사말이 간략하게 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불빛을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경찰청 요청으로 교육청 담당자가 축사를 작성해서 보낸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힌트를 찾았다. 시험 문제를 풀다가 미리 준비한 답을 적어 놓은 쪽지를 보는 느낌이다. 재빠르게 읽었다. 간단하게 내용을 추리고 격려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장은 꽤 장황하게 말을 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팸플릿을 들고 연설대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연단에 축사가 있는 쪽을 펴서 조심스럽게 놓았다. 긴장을 풀려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청중들 가운데 ㅊ 형사 얼굴도 보였다. 나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교육장님이 꼭 참석해야 하나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해 미안하다. "는 말로 시작했다. 그 후 써진 내용을 중심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막히면 힐끗 아래를 쳐다보고 말을 이어 갔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실수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끝나고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연단에서 내려왔다. 긴장이 풀렸던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월요일 출근해서 아침 회의에 참석하고 과장실에서 나오니 ㅊ 형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신삥 교육장님 지난 토요일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훌륭한 축사였습니다."라고 웃으면서 큰소리로 내게 농담을 건넸다. 옆에 있던 ㅇ 장학사는 "그래 나도 경찰서에 근무하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교육청에 젊은 과장이 새로 와서 연설을 잘하더라고 했어. 김 장학사는 이제 교육장이야. 축하해.”라고 농담조로 맞장구를 쳤다. 나는 "식은땀이 나고 죽는 줄 알았어요. 무슨 행사인지 잘모르고 가서 혼났어요."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는 과장 앞에서 "앞으로 경찰서 행사에는 항상 김 장학사가 가야 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풋내기 장학사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후 외부기관이나 교육청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꼼꼼하게 챙겨보았다. 행사 목적과 의전은 물론 참가 대상과 초청 주요 인사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교육장과 함께 가면 축사를 미리 써 주지만 나도 한 부 가지고 간다. 한번은 학부모 대상 행사에 교육장이 깜박하고 축사를 가지고 오지 않아 내가 현장에서 다시 주었더니 그는 내가 주도면밀하다고 칭찬했다. 나중에 후배 장학사 임용 연수에서 강의할 때 장학사는 사전에 빈틈없는 준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에피소드 한 토막을 가끔 예로 들었다. 누구나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그 성격과 내용을 잘 따져보아야 나처럼 고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세월이 흘러 '신삥 교육장'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ㅇ 장학사가 시 지역 고등학교 교장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업무가 서툰 내게 유머를 섞어가며 자상하게 가르쳐 주던 그를 한번 보고 싶다. 까칠했던 ㅅ 과장과 농담을 좋아했던 ㅊ 형사도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코로나 시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첫댓글 실실 웃으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신참 장학사가 일주일 만에 교육과장이 되셨으니 초고속 승진이네요.
이 방에 유난히 교원이 많아서 하늘 보고 침뱉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교직만 그런 게 아닐 텐데요.
그래도 시간은 마술을 부려 돌아보면 그리운 추억이네요.
바쁘셨는지 오타가 많습니다.
교수님께 혼나기 전에 얼른 고치심이 어떨까요? 하하!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타를 고처서 다시 올렸으니 보고 또 지적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당황하고 식은땀 흘렸을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처음하는 연설에 칭찬까지 들었다니 소질이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돌이켜보니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됩니다. 그런 크고 작은 경험이 모여 현재의 그 사람이 아닐까요?
그때의 잊지 못 할 경험의 자양분이 크고 단단한 나무로 자라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궁금증을 자아내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물 흐르듯이 쓰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신 삶이 느껴져서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그 어려운 일을 해 내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