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홍수희
꽃잎 한 장 떨어질 때에 무심코 손바닥에 받아 든 그 꽃잎처럼
구멍 뚫린 우산 속으로 한 방울 톡! 떨어진 그 싸아한 빗물처럼
언제부턴가 그대 내 마음 안에 살고 있었네
도무지 떠날 줄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있었네
|
홍수희의 「끈」은 짧은 분량 안에 사랑의 침투와 정착, 그리고 존재의 은밀한 유대를 놀라울 만큼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서정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과장된 수사나 관념적 언어가 아니라, 아주 미세하고 일상적인 감각의 순간들로 환원시킨 데 있다. 시는 사랑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꽃잎 한 장”, “구멍 뚫린 우산”, “한 방울 톡!”과 같은 촉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사랑이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재현한다. 바로 이 점에서 「끈」은 감정보다 먼저 감각이 도착하는 시다.
첫 연의 “꽃잎 한 장 떨어질 때에 / 무심코 손바닥에 받아 든 그 꽃잎처럼”은 우연성과 수용성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장면이다. 화자는 의도적으로 꽃잎을 잡은 것이 아니다. “무심코”라는 부사는 사랑의 발생이 인간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랑은 계획된 선택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특히 “손바닥”이라는 신체 부위는 단순한 수용의 공간을 넘어 체온과 감각의 장소로 기능한다. 꽃잎은 가볍고 연약하지만, 그 미세한 감촉은 오래 남는다. 이때 사랑은 거대한 운명이라기보다 아주 작은 촉감의 기억으로 제시된다.
이어지는 “구멍 뚫린 우산 속으로 한 방울 톡! / 떨어진 그 싸아한 빗물처럼”은 이 시의 핵심 이미지다. 우산은 본래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구멍 뚫린 우산”은 완전한 방어가 불가능한 존재의 상태를 상징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려 하지만, 결국 어떤 틈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은 바로 그 틈으로 침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빗물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톡!”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의성어는 사랑의 순간적 침투를 청각적으로 환기하면서 동시에 그 충격의 미세함을 드러낸다. 사랑은 대개 거대한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순간들이다.
또한 “싸아한”이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다. 서늘함과 떨림, 낯선 감각이 동시에 배어 있는 촉각적 언어다. 사랑은 따뜻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가슴을 스치는 싸늘한 전율로 먼저 도착한다. 이 시는 바로 그 미묘한 감각의 층위를 놓치지 않는다.
후반부는 시 전체의 정서를 조용히 봉합한다.
“언제부턴가
그대 내 마음 안에 살고 있었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사랑의 시작점을 특정하지 못한다. 사랑은 명확한 기원을 갖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듯하지만, 돌아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고 있었네”라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를 넘어 존재의 정착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이상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거주자가 된다.
마지막 연의 “도무지 떠날 줄을 모르고, / 그렇게 살고 있었네”는 집착이나 비극적 정조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체념에 가까운 평온함이 배어 있다. 이 사랑은 열정의 불꽃이라기보다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 상태다. 화자는 그것을 몰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인정할 뿐이다. 이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끈」이라는 제목 역시 의미심장하다. 시 속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끈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꽃잎의 감촉과 빗물의 침투,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거주하는 존재의 형상은 결국 보이지 않는 정서적 연결을 암시한다. 이 끈은 강하게 묶는 밧줄이 아니다. 쉽게 끊어질 듯 가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되는 관계의 은유다.
결국 홍수희의 「끈」은 사랑을 거창한 서사로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아주 작은 틈과 감각 속에 스며든 존재의 흔적을 포착한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말하지 않은 데 있다. 절제된 언어, 낮은 목소리, 사소한 이미지들이 오히려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스며듦이며, 사건이 아니라 머묾이다. 그리고 바로 그 머묾의 감각이 이 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