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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족(義足) 삼바-김광일>
한 여인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음악이 흐르자 남자가 다가왔다. 뒤에서 여인의 허리를 껴안아 일으켜 세웠다. 둘은 천천히 스텝을 밟아 춤사위를 펼쳤다. 발레처럼 발끝으로 섰는데 아뿔사 여인의 발목이 강철이다. 무릎까지 마네킹 의족이었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우아하고 부드럽다. 1분 20초가 흐르고 춤이 멈췄다. 관객이 모두 일어섰다. 작년 봄 서른여섯 살 에이미 퍼디가 미국 TV 프로그램 ‘스타와 함께 춤을’에 나와 감동을 안긴 무대였다.
에이미는 열아홉 살 때 세균성 뇌수막염을 앓았다. 무릎 밑 두 다리를 잘랐다. 패혈성 쇼크가 도지면 생존 가능성이 2%라고 했다. 인공 다리가 안 맞아 잘 걷지도 못했다. 어느 날 라디오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타자 주변에서 춤을 권했다. 에이미는 춤이 된다면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면 스노보드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눈물 나게 훈련했다. 첫 스노보드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장애인 올림픽에도 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에이미가 그제 리우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춤을 췄다. 이번엔 공장 조립 기계처럼 생긴 다관절 로봇이 파트너였다. 로봇이 내민 강철 팔 끝을 에이미가 붙잡았다. 남미 삼바 음악에 맞춰 두 파트너는 떨어졌다 붙었다 동선을 그려나갔다. 5분 동안 6만 관중이 눈을 떼지 못했다. 에이미는 파트너의 팔을 붙들고 공중으로 솟구쳐 페달 밟는 몸짓도 해 보였다. 어깨를 덮는 금발과 시스루 망사 의상에 물음표처럼 흰 탄소섬유 의족…. 그녀와 로봇이 꾸민 무대는 인간 세상 같지 않게 몽환적으로 아름다웠다.
에이미는 모델 배우 댄서 디자이너 저술가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선수 세 명에 들었다. 이듬해엔 댄스 파트너였던 남자와 결혼도 했다. 춤을 출 때는 공중회전도 하고 남자 파트너의 몸을 휘감고 수평으로 돌기도 한다. 아차 단추를 잘못 누르면 인공 다리가 분리된다. 에이미는 하체 동작을 할 때면 실수로 다리가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웃었다.
4년 전 런던 패럴림픽 때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함성을 지르던 관중이 숨을 삼켰다. 50년 루게릭병을 앓고 기관지까지 잘라내 목소리를 잃은 그가 음성 합성 장치로 말문을 열었다. “표준적인 인간이란 없습니다.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세요.” 리우 패럴림픽에서는 다리 없는 에이미가 춤을 추고 팔 없는 선수가 활을 쏜다. 그들 머리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한 말릴 수가 없다.(조선일보 2016,9,10. A26)
이 예문 역시 5문단 구성이다. 분량은 1,300여자다. 이 5문단 구성 역시 화제(topic, 소주제)는 6개인데 5개에 담다 보니, 짝이 맞지 않는다. 1-4문단은 에이미의 얘기를 4개의 짝으로 구성했으나, 5문단은 스티브 호킹 얘기와 에이미와 ‘팔 없는 선수’의 두 화제를 한 문단으로 묶었다. 짝이 맞지 않고, 결국 ‘팔 없는 선수’ 화제는 보충 문장이 없으니 무의미하고 전체적으로 불안한 구성이 되었다.
6개 문단으로 재구성하고 불완전 문단에 보충 문장을 넣어서 ( )로 표시한다. 각 화제는 밑줄로 표시한다. 여섯째(원문은 다섯째 끝의 2개 문장) 문단은 2문장으로 문단 구성 요건(최소 3문장 이상)에 미흡해 문장 보충이 필요하다. 스티븐 호킹의 런던 패럴림픽과 리우 패럴림픽 화제와 호응하는 짝을 맞추기 위해 별개 문단(여섯째)을 구성하고, ‘팔 없는 선수’ 사연을 보충하여 그 스토리도 살린다. 수정한 다음 예문을 앞 예문과 비교해 보자. 짝수 문단 구성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 여인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음악이 흐르자 남자가 다가왔다. 뒤에서 여인의 허리를 껴안아 일으켜 세웠다. 둘은 천천히 스텝을 밟아 춤사위를 펼쳤다. 발레처럼 발끝으로 섰는데 아뿔사 여인의 발목이 강철이다. 무릎까지 마네킹 의족이었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우아하고 부드럽다. 1분 20초가 흐르고 춤이 멈췄다. 관객이 모두 일어섰다. 작년 봄 서른여섯 살 에이미 퍼디가 미국 TV 프로그램 ‘스타와 함께 춤을’에 나와 감동을 안긴 무대였다.
2. 에이미는 열아홉 살 때 세균성 뇌수막염을 앓았다.무릎 밑 두 다리를 잘랐다. 패혈성 쇼크가 도지면 생존 가능성이 2%라고 했다. 인공 다리가 안 맞아 잘 걷지도 못했다. 어느 날 라디오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타자 주변에서 춤을 권했다. 에이미는 춤이 된다면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면 스노보드를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눈물 나게 훈련했다. 첫 스노보드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장애인 올림픽에도 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3. 에이미가 그제 리우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춤을 췄다. 이번엔 공장 조립 기계처럼 생긴 다관절 로봇이 파트너였다. 로봇이 내민 강철 팔 끝을 에이미가 붙잡았다. 남미 삼바 음악에 맞춰 두 파트너는 떨어졌다 붙었다 동선을 그려나갔다. 5분 동안 6만 관중이 눈을 떼지 못했다. 에이미는 파트너의 팔을 붙들고 공중으로 솟구쳐 페달 밟는 몸짓도 해 보였다. 어깨를 덮는 금발과 시스루 망사 의상에 물음표처럼 흰 탄소섬유 의족…. 그녀와 로봇이 꾸민 무대는 인간 세상 같지 않게 몽환적으로 아름다웠다.
4. 에이미는 모델 배우 댄서 디자이너 저술가로 활약하고 있다.2014년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선수 세 명에 들었다. 이듬해엔 댄스 파트너였던 남자와 결혼도 했다. 춤을 출 때는 공중회전도 하고 남자 파트너의 몸을 휘감고 수평으로 돌기도 한다. 아차 단추를 잘못 누르면 인공 다리가 분리된다. 에이미는 하체 동작을 할 때면 실수로 다리가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웃었다.
5. 4년 전 런던 패럴림픽 때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함성을 지르던 관중이 숨을 삼켰다. 50년 루게릭병을 앓고 기관지까지 잘라내 목소리를 잃은 그가 음성 합성 장치로 말문을 열었다. “표준적인 인간이란 없습니다.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세요.”
6. 리우 패럴림픽에서는 다리 없는 에이미가 춤을 추고 팔 없는 선수가 활을 쏜다.(그 활도 예외 없이 과녁으로 날아가 꽂혔다. 관중의 박수가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그들 머리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한 말릴 수가 없다.
누구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진행하면, 서로 짝을 맞추어 생각하는 대응(對應) 사고를 하게 마련이다. 내가 있으면 네가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으며,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는 식이다. 글을 쓰게 하는 내용은 보통 이런 사고 구조를 갖는다. 이것을 문단 구성으로 반영해야 한다. 글은 사고의 표현이므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문단 인식과 구성 개념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다고 보겠다.
문단 구분이란 독자에게 내용 변화를 시각화해서 알리는 구실이다. 일종의 내용 변화 신호이다. 필자는 이 신호가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하는 사고이니 이미 그런 구분이 필요 없다. 여기에만 머무르면 외현적外顯的표시에 무심한 일이다. 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바른 자세도 아니다. 내용 구분에 따른 문단 표시를 분명히 해야 하는 연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에는 내용 변화에 따른 문단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필자 중심의 권위주의 시대였다. 성경도 사제만 보고 일반 신도에겐 금했다. 귀족만이 문자를 알고 쓰며 민중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했다. 문자 사용 자체가 특권인 시절에는 당연히 문단 구분이 필요치 않았으나, 시대는 변해 독자가 중심인 시대, 소비자가 주인인 시대가 되었다. 문단도 이런 시대의 반영이다. 이에 맞게 명확하게 문단 구분을 표시하는 것이 필자로서 독자에 대한 성의요, 바람직한 태도이므로, 문단의 표시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글에서도 필자에게 부여된 책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5. 문 구성하기
어떠한 글을 쓰더라도 먼저 개요槪要를 작성하는 게 좋다. 개요를 짜서 글을 시작하면 쓰는 도중에 문제를 발견하기 쉽고 첨삭이 용이하여 매우 효율적이다. 집을 짓는데 설계도가 필요하듯, 개요는 글의 설계도이다.
1) 균형적 구성
글은 일정한 공간 감각을 살려야 전체적인 균형감이 살아난다. 글의 공간 개념을 구성 단계로 이해하여 글 구성의 단위를 흔히 3단~ 5단으로 설명한다. 글의 일관성은 구성의 균형감을 뜻하기도 한다. 공간 구성 단위의 크기는 균형감을 말하며, 구성의 의미는 주제에 걸맞은 글감의 선택을 뜻한다. 3단 구성의 공간 구조는 본문이 서두와 결미보다 크다. 학술 논문의 경우 서론이 본론의 1/5의 분량을 넘지 않는다. 수필의 서두도 한 문단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공간의 구성이 알맞게 된 글은 대부분 문단이 응집성을 갖추었고, 그런 문단으로 연결성의 원리를 살려 구성한 문이다. 이와 같이 좋은 글을 쓰려면 문단의 조직과 문의 구성 원리를 깨쳐야 한다. 응집성은 주로 글감에 따라 결정된다. 주제에 필요하지 않은 글감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데, 글쓰기 초보자들은 모처럼 얻은 글감을 아끼다가 응집성에서 벗어난다. 이때 글의 공간 구성을 지각하는 필자는 필요하지 않은 내용을 과감히 버려 글의 공간 구성을 살린다.
문 공간을 구성할 줄 아는 필자는 독자를 배려한 결과이다. 이런 글은 문단 단위로 공간을 구성하므로 사고를 논리적으로 조직해서 건축 공학적인 뼈대를 세운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려면 공간 지각 능력을 바탕으로 비례 감각도 정련할 필요가 있다.
비례 감각이 발달한 필자는 필요한 내용이 빠져서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거나 불필요한 내용으로 비대해진 문의 공간으로 글을 구성하지 않는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일차적으로 왜소하지도 비대하지도 않아서 독자의 시각적 독서에 허전함이나 거북함을 주지 않는 문의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공간 균형에 맞도록 구성하여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2) 개요 작성
글을 쓸 때는 먼저 최선의 개요를 작성해 놓고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글을 써 보면 완벽한 개요를 작성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개요를 짠 뒤에 글을 쓰되,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더하고 뺄 내용이 생기면 개요를 고치면서 써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개요를 알기 쉽도록 도표로 나타낸 것이 개요도다. 이는 구성 단계, 문단 수와 문장 수가 총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문의 설계도와 같다.
⓵ 주제문
주제문은 글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수필은 주제를 한 문장으로 집약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또는 주제가 명시적이지 않고 암시적이고 개방적이어서 독자가 주제를 도출하거나 나름의 주제를 추상推想하도록 쓸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문장으로 구체화하지 않으면 글이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횡설수설로 빠지기 쉽다. 필자가 주제에서 이탈하지 않고 통합성을 갖춘 글이 되기 위해서는 주제문장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주제는 필자가 수필에서 문장으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의 생각이나 감정, 의견 따위다. 글 전체의 핵심 요지(주제)를 한 문장으로 진술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이 다소 어렵거나 까다로울 수 있다. 수필에서는 필자가 겪은 체험이 주요 제재이므로 주제문장에는 이 체험 내용을 먼저 담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 따위(주제)를 가능한 구체적으로 적는다.
주제문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제문장을 작성할 때 유의할 것은 다음과 같다. ①주어와 서술어를 갖춘다. ②모호한 문장, 의문문, 비유 문장, 부정문 따위는 피한다. ③범위를 좁혀 구체화한다. ④주어로 ‘나’는 피한다. ⑤근거나 이유가 있다면 밝힌다.
주제문의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그의 비밀을 알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처럼 쓴다. 여기에는 체험 내용인 ‘친구와 기차여행’을 담고, 이에 대한 필자의 감정인 ‘마음이 무척 아팠다’로 구체적이다. 주어 ‘마음’과 서술어 ‘아팠다’의 주술을 갖추었으며 모호하거나 의문문, 부정문도 아니다. ‘부산으로 기차여행’으로 행선지와 교통수단을 밝혀 구체화했다. 주어가 필자인 ‘나’가 아니다. 근거나 이유로 ‘비밀을 듣고’라고 밝혔다.
⓶ 개요도
주제문을 진술했다면 이제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상세히 알 수 있도록 개요를 도표로 작성할 차례다. 개요도는 주제를 문장과 문단으로 구성하기 위한 개략적 설계도이다. 이 개요도를 작성하면 초심자일수록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 기성 작가는 이런 개요도를 보통 작성하지 않는다. 글을 전문적으로 많이 반복하여 쓰는 경우엔 제재나 주제가 마련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개요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글쓰기 초보 단계엔 반드시 필요하나 일정 수준에 오르면 개요도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누가 어떤 글을 쓰건 개요도를 작성하고 집필하면 보다 안정된 구성과 충실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다. 하자 없는 건축물을 완성하려면 충실하고 꼼꼼한 설계도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간단한 요리라도 레시피를 보면서 해야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개요도에 담겨할 것으로는 다음이 있다. 주제문, 구성 단계, 구성 단계별 해당 문단, 문장 수, 개요, 핵심어 등이다. 이 중에서 구성 단계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떠한 구성으로 진행할 것인가를 계획한 것이고, 이를 몇 개의 개별 내용으로 구별하여 제시하려는가를 해당 문단으로 표시하며 더 구체적으로는 문장 수를 예상하여 적는다. 이것은 일정 분량의 글에 맞추기 위해서 또는 각 문단간의 적절한 분량의 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 개요는 각 문단의 소주제나 핵심 내용을 밝히는 것으로 각 문단의 주제문이다. 핵심어(Key Word)는 책의 색인처럼 각 문단의 요점을 한 단어로 제시하여 글 전체의 내용 파악에 효과적이다. 이들 요소는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일부는 생략하거나 실제와 다른 경우 집필 중에 수정할 수도 있다.
개요도를 작성하고 글을 쓰다보면 이와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럴 때는 상호 조정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설계대로 집을 지어야 하나, 짓다보면 상황이 달라져서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글 역시 이와 유사하여, 계획한 것을 고집하거나 그대로만 쓰려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예상된 변화가 있어도 개요도를 작성하고 글을 쓰는 것이 초보자에겐 특히 유용하고 효율적이다.
<예문 2>
(가)①색을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②흑백 영화나 흑백텔레비전을 보다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나 컬러텔레비전이 나오자 대중은 열광했다. ③세상이 이리 아름답단 말인가. ④축복이요 기쁨이었다.
(나)①모두가 색을 즐겼다.②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린 색의 범람시대에 살고 있다. ③모든 그림이 색을 위주로 그려지고 옷과 자동차 건물가지도 색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④간판에도 색이 난무해 도리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다)①하얀 종이 위에 오로지 연필로 그린 작품이 있다.②색이 넘치는 시절 모든 색이 여기에 들어있다는 단색미학이다.③바로 화가 000의 작품인데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모노크롬 작업에 몰두해 왔다.④단색화 작업은 대상을 단순명료하게 정리하는 특징이 있는데 작가는 그를 뛰어넘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라)①현대인에게 현실은 어쩌면 회색일지 모른다.②차가운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을까.③그녀의 작업 방향은 기본적으로 모노크롬을 기본으로 한 초현실세계다.④그녀의 그림이 보여주는 세계는 유달리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절망스럽거나 허무하지도 않다.⑤하지만 기본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⑥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초현실세계다.⑦이는 삶을 잠시 되돌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정서다.⑧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①작가의 작품에는 고루 등장하는 건축물이 있는데 자연 경치와 다르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②신의 피조물인 자연은 어쩌면 관조의 대상이다.③대체로 경치그림은 시선을 머물게 하지만 나무 뒤나 산 너머로 걸음을 걷게 하지는 않는다.④대신 건축물은 인간의 구조물이다.⑤벽이 있고 문이 있고 계단이 있다.⑥벽 뒤를 엿보고 싶고 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고, 계단을 걷게까지 한다.⑦그녀의 작품이 색 없이도 단조롭지 않은 이유다.⑧또한 공간을 분할하여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데 화폭 속에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다.⑨이 다양한 공간이 묘하게 어울리며 막연한 그리움이나 꿈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데 이런 점이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바)①화가는 태생적으로 꿈을 꾸는 존재다.②작가 000는 현실을 벗어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③상상이나 망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꿈을 그리기 때문이다.
(사)①그녀의 그림은 컬러사진 속에서 흑백사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②우리는 그 흑백사진 속에서 망각 속에 묻어뒀던 아련한 심상의 추억을 만날 수 있다.③심상은 구체적이지 않다.④ 그렇지만 나름 형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⑤화가 000가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점이다.⑥이번 전시를 계기로 좀 더 내밀해지고 넓어져서 우리에게 도 다른 미의식의 지평을 열어줬으면 한다.⑦벌써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그림 전시회 포스터, 문단, 문장 번호와 밑줄은 인용자)
기본적으로 문은 대련(對聯)[대구, 병행(parallelism)]구성을 이루어야 안정되고 연결성이 좋아진다. 이것은 결국 짝수 문단(4,6,8,10,12)으로 나타난다. 예문 2는 총 7개의 문단으로 구성하였다. 홀수 문단이어서 안정감이 부족해 보인다. 이것을 다음처럼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문단의 "④대신 건축물은 인간의 구조물이다."부터 새 문단으로 조직하는 것이 더 좋은 구성이다.
그리고 (나)문단의 첫 문장은 다음 문장에서 의미가 연결되지 않아 부적절하다. (나)문단에서 첫 문장의 '모두'와 연결되는 내용의 문장이 없기 때문인데, 이 문장은 (가)문단의 끝에 두어야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다. (라)문단은 첫 문장과 이어진 다음 문장 역시 그 다음 문장과의 내용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현대인'과 '차가운 현실'은 세 번째 문장의 '그녀'와 연결되지 않으므로 제거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고 의미상 명료하다. 그것이 앞의 (다)문단과 잘 연결된다.
4 . 다양한 문장
한 문단 안에 같은 구조의 문장이 반복되면 단순하고 구조가 다른 문장이 섞이면 느낌이 다양하다. 수필 문장은 문장의 구조와 길이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게 좋지만 쓰기 쉽지 않다. 문장의 다양성은 풍부한 어휘, 다양한 구조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짧고 단순한 문장과 좀 더 길고 느슨한 문장이 섞이고 단문과 중문 또는 복문과 혼문을 두루 섞어 써야 문장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문체를 살리려면 연결어미와 종결어미의 적절한 사용도 필요하다.
5. 문장의 서술 요건
글쓰기에서 문장을 강조하는 까닭은 무슨 이야기를 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간명한 문장으로 서술할수록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다. 문장쓰기에서 간결성은 개념 이해에, 명확성은 의미 전달에, 다양성은 독자 배려에 있다.
문장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져 균형을 잃으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소통에도 장애를 일으켜 읽고 나면 기분도 언짢아진다. 그러나 모든 문장을 간명하게만 써서는 재미가 없다. 주제 문장은 간명해야 하지만 보충문장은 속성에 따라 길게 또는 복잡하게 서술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장 기술에서 다양성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길고 짧은 다양한 문장이 서로 어울려야 의미의 강약심천(强弱深淺)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문장은 혼자 읽기 위한 글이 아니고 특정한 몇 사람만이 독자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수를 대상 독자로 예상하고 써야 한다. 수필의 특성에 맞게 문장을 서술하려면 고려해야 할 바람직한 요건에 대해 알아보자.
초심자들이 글을 쓰면서 놓치기 쉬운 게 독자를 배려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독자에 모두 맞추는 것은 곤란하고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독자 수준을 높게 잡으면 고려할 사항이 많아서 초심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너무 낮게 잡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와 동일 수준이나 약간 아래로 기준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무난한 해결책이다.
독자의 수준을 정하고 글을 쓰면 단어의 선택과 서술의 방향이 정해져 용이하다. 독자층의 수준에 따라 일상 언어가 아닌 전문 용어와 조금 난해한 어휘로 쓸 수도 있고 자주 사용하는 쉬운 어휘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 기준으로 글을 쓰면 무난하게 서술할 수 있다. 독자 문제는 필자의 수준에 따라 언제나 유동적일 수 있다.
문장은 필자의 여러 성향을 반영한다. 특히 진솔한 체험을 제재로 쓰는 수필은 더욱 그렇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집에 초대하여 여러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손님을 함부로 상대해도 안 되듯 적합한 품위를 갖추어 대접해야 한다.
ㆍ건축물은 인간의 구조물이다. 벽이 있고 문이 있고 계단이 있다. 벽 뒤를 엿보 싶고 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고 계단을 걷게까지 한다. 그녀의 작품이 색 없이도 단조롭지 않은 이유다 공간을 분할하여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데 이런 점이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화가는 채생적으로 꿈을 꾸는 존재다. 전시를 계기로 좀 더 내밀해지고 넓어졌다.
수필은 필자의 인격이 드러나는 글이다. 필자가 겪은 체험을 주요 제재로 삼으므로 글에서 그대로 노출이 된다. 드러낼 것과 감출 것을 결정할 때 기본 조건이 품위를 갖추는 일이다. 필자 자신을 희화하거나 비하할 수도 있지만 결코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 품위는 바로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문장에서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표현을 삼갈 일이다.
우리말의 존대법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기본 원리다. 상대를 우대하는 대우법의 정신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문화다. 수필은 여러 독자를 대상으로 쓰는 공적 성격의 글이다. 일기나 편지와 다르므로 대우법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상대 존대가 지나치면 당사자가 아닌 사물을 존대하는 일도 일어난다. 대우법에 어긋나니 조심할 일이다.
글에선 필자에겐 사적으로 존칭을 사용해야 하는 상대이나 독자에겐 객관적인 이야기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대화체의 경우에는 예외이나 일반적 서술에는 평어체로 써야 한다. 신문기사에선 결코 경어체로 쓰지 않는다. 공적인 글이고 일반 대중이 독자이기 때문이다. 수필도 지면에 발표하는 글은 공적인 글이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
수필 문장에서 지향할 서술의 목표는 참신성과 함축성이다. 표현을 색다르게 표현하여 독자에게 새로움을 전하려는 것이 참신성이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압축하여 여러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함축성이다. 이 양자를 잘 살려 써야 독자는 읽는 재미를 느끼고 매력적인 글이 된다.
참신성은 독창적인 문장 표현을 일컫는다. 우리말 단어를 사용하는데도 독창적이고 개성적 용법을 요구한다. 이 말은 참신한 문장에는 참신한 사고와 감정이 실리기 때문이다. 단어 선택과 배치와 관련되는 참신성은 수필의 문체와 직결된다. 수필의 참신성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체로 문장을 서술할 것을 요구하는 셈이다. 낡거나 죽은 비유와 진부한 표현은 새로운 감성에 맞추어 쓰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하여 객관적인 내용을 서술하면 단어와 그 사물이나 개념이 1:1의 관계로 한정된다. 과학적인 글이나 학술 논문 혹은 논설문에서 단어 사용은 이처럼 사전적이고 지시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이와 달리 문학에선 문장의 맥락에 따라, 필자의 주관적 정서에 의해 1:多의 의미로 단어를 사용할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함축성이 실현된다. 물론 수필에서도 지시적인 단어 사용의 문장도 써야 한다. 그래도 함축성을 살린 다양한 문장 서술은 수필에서 더 많이 필요하고 적극 장려할 일이다.
외국어 학습은 외국인과 언어적 의사소통을 위한 일이다. 외국어를 우리의 말과 글에서는 원래 사용하면 안 된다. 이걸 혼동하여 외국어 사용이 범람하는 현실이다. 외국어가 우리말로 변한 외래어는 당연히 쓸 수 있지만 외래어 사용하듯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의 주체성도 문제려니와 독자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문장에서도 외국 문장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 남용은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로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우리말에서 적합한 말이 있을 경우에도 다른 표현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할 수 없이 빌려와 쓸 때에는 정해진 용법을 따라야 한다.
일본어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의’와 ‘-에 있어서’, ‘-에 다름 아니다’ 등이다. 본래 한국어에는 조사 ‘-의’를 잘 쓰지 않는다. ‘-의’가 없어도 되는 경우가 많다. ‘의’가 많으면 읽기 불편하고 문장의 간결성을 놓친다. ‘-에 있어서’는 ‘-에서’로, ‘-에 다름 아니다’는 ‘-나(와) 같다’, ‘-나 마찬가지다’, ‘-에 불과하다’, ‘-일 뿐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로 쓰는 게 옳다.
영어 영향을 받은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시상(時相)에서 영어식의 완료형과 진행형을 들여와 과거·현재·미래의 시제만 사용하는 한국어에 강요한 것으로 ‘-었’에 ‘-았었-’을, ‘-겠’을 중복 사용하는 경우다. 지나친 피동형의 남발도 그렇다. 피동 의미 단어에 ‘-되다’, ‘-지다’, ‘당하다’를 첨가하여 이중 피동으로 쓴다. 피동형의 남용은 독자에겐 피동적 태도를 심어 주고, 문장의 전달력을 약화시키므로 능동형으로 서술하는 게 바람직하다.
1. 단어와 문장
단어란 낱개의 단위로 낱낱의 말을 뜻하고 어휘는 그 총량을 가리킨다. 단어는 사물의 이름이나 그 사물의 움직임, 성질을 나타내는 하나하나의 의미를 지닌 단위, 어휘는 일정한 범위에서 사용되는 낱말의 총체, 곧 동질적 집단에서 사용하는 기호의 의미 요소들이 모인 목록과 그 구성 체계이다. 그래서 단어는 낱낱의 개수 단위이고 어휘는 모든 단어의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룬다. 어휘는 단어의 단순한 집합이고 문장은 작은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의 조합이다. 단어는 문장의 재료이고 의미의 원소이며, 문장은 단어로 조립한 글의 최소 의미 단위이다. 문장은 단어가 없이 성립할 수 없는 상위 의미체이다.
바르고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어휘가 풍부해야 하고 정확한 단어의 뜻을 알고 있어야 하며 단어의 바른 용법을 익혀야 한다. 문장의 바른 서술은 모든 글의 기본이자 핵심임을 명심해야 한다. 건축물의 벽돌이 단어라면 문장은 벽돌로 쌓은 벽이다. 벽이 모여서 문단이란 글의 의미 공간, 한 방이 이루어지며 이 방이 모여서 주제가 사는 집을 완성한다.
문장을 서술하려면 단어를 정확히 선택해야 하고 바른 자리에 놓아야 한다. 벽을 쌓을 때 줄을 맞추어 놓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식 벽돌공이 되기 위해 많은 실습이 필요하듯 문장 서술도 충분한 문장 연습과 수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본 원칙을 알아서 부단히 노력해야 바른 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는 단어로 시작해서 단어로 끝난다. 이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문장으로 끝난다는 뜻이다. 글은 단어로 출발하여 문장으로 이어지고 문단을 이루어 써야 하니 단어 선택은 문단을 조직하고 문을 구성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수필을 쓰려면 꼭 필요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언어, 상황, 사회, 문화의 맥락이 고려 대상이다. 단어는 필자의 어휘에서 골라 문법에 맞게 서술해야 문장이 된다. 두뇌에 축적된 어휘 창고에서 필요한 단어를 꺼내 쓰는 일상의 언어활동은 일련의 단어 선택 과정이다. 단어는 잠재된 사고의 가능성이고 선택한 단어는 표현할 개념과 세계의 함축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이 선택한 단어가 그의 세계이므로 세계는 단어로 구성된다 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사물과 상황에 걸맞은 이름이 붙고 그에 어울리는 의미를 형성한다.
수필에서 단어 선택은 여러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첫째, 단어는 서정 수필이냐, 서사 수필이냐, 사회 수필이냐 등의 갈래에 따라 선택한다. 둘째, 수필의 주제가 반성적인가, 비판적인가, 감상적인가 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셋째로 수필가의 개성적 문체에 따라 달라진다. 넷째, 작가가 생존하는 시대와 사회의 언어 의식도 단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한 여러 유의할 사항을 알아보자(다음은 金昌辰, 『작문의 정석』, 삼영사, 2016, 33-45면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정하고 보완한 것임).
문장에서 정확한 단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은 모든 글의 기본적 수칙이다. 예컨대 ‘사람/인간, 나라/국가, 겨레/민족’과 같은 고유어와 한자어 쌍이 흔하다. 또한 ‘사람’, ‘인간’ 외에도 ‘개인/시민/여자/국민/유권자/소비자/인류/피조물/만물의 영장/생각하는 갈대’ 따위의 유사어도 있다. 이렇게 많은 단어 중에서 상황에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어 어휘는 60% 정도의 한자어, 25% 정도의 고유어, 15% 정도의 외래어로 구성된다. 한국에서 한자어와 고유어(토박이말)는 서로 구실이 다르다. 한자어는 명사가 많은데 다양하고 복잡한 개념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개념어나 전문 용어에 유리하다. 반면에 고유어는 형용사가 많고 정서적인 표현에 유용하며 한자어보다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다. 한자어는 한자로 적으면 개념이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필가는 한자어와 고유어의 어휘 성질의 차이를 알고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써야 한다.
적확한 단어 사용으로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어휘가 풍부해야한다. 좋은 글은 동일한 단어나 표현을 반복하지 않는다. 단어 반복은 표현력이 부족한 것을 뜻하므로 이를 피하려면 다양한 단어를 활용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다.
쉬운 단어만 쓴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휘가 풍성해야 그럴 수 있다. 예컨대, ‘매우/아주/몹시’는 정도를 나타내지만 그 용도에서 차이가 난다. ‘매우’는 ‘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의 뜻이고 ‘아주’보다 조금 덜한 정도이다. “일이 매우 급하다”로 쓰고, “아주 먼 옛날”처럼 쓴다. ‘몹시’는 ‘더할 수 없이 심하게’란 뜻으로 “나는 기분이 몹시 나쁘다”처럼 대체로 부정적인 정서에 쓴다. ‘너무’와 ‘굉장히’가 유행하는데 어휘력이 부족하여 획일화한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풀이한 ‘사전적辭典的의미’를 낱말의 ‘외연外延적 의미’라 한다. 단어는 이 밖에도 개인이 각자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내포內包적 의미’도 있다. 예컨대 ‘학교’는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재미있는 곳’으로 여기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은 ‘가기 싫은 지겨운 곳’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은 오해가 일어나고 곡해하지 않도록 외연은 물론 내포까지 잘 살피며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 한자어와 고유어는 한 쌍을 이룬다. 예컨대, ‘나라’는 ‘國家국가’와 쌍을 이룬다. 두 단어는 동의어는 아니고 유의어類義語이다. ‘나라’와 ‘國家’는 뜻은 비슷하나 똑같은 말은 아니다. ‘나라’라는 말과 ‘국가’라는 단어는 용법과 뉘앙스가 다르다. ‘나라사랑’은 자연스러우나 ‘국가사랑’은 어색하고 또 잘 쓰이지 않는다. 대체로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어울려 함께 쓰인다. 예컨대 ‘민족국가’, ‘우리나라’와 같은 식이다.
한자어와 고유어는 일대일 대응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고유어인 ‘보다’의 경우에도 한자로는 ‘見견’, ‘視시’, ‘看간’, ‘觀관’, ‘監감’, ‘覽람’, ‘閱열’, ‘瞻첨’, ‘睹도’가 있다. 토박이말보다 한자어의 의미가 세분화되어 더 다양하고 섬세한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어휘가 풍부해져 단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문장 표현이 다양하게 된다. 토박이말로만 쓰자 거나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꿔 써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문장의 표현 범위를 축소시켜 문학의 쇠퇴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자어를 적절히 쓸 필요는 있으나 남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쓰면 한글세대 독자는 글의 의미 파악에 곤란을 겪는다. 정확한 한자어의 뜻과 용례를 모른 채 사용하여 의미의 혼선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 잘못 쓰인 한자어를 그대로 따라 쓰거나 한자어의 한글 표기가 틀린 채로 쓰거나 귀로 들은 한자어를 소리 나는 대로 짐작하여 쓰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휘가 풍부할수록 좋은 글을 잘 쓸 가능성이 크다. 한국어의 60%를 넘는 한자어를 모르면 어휘력이 부족해지고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데 불편을 겪을 뿐만 아니라 사고의 폭도 좁아지고 깊이도 줄어들기 쉽다. 한국어로 글을 쓰려는 사람은 누구나, 한자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문장 서술의 깊이를 넓히고 폭을 고양시키려면 모름지기 한자어 공부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2. 간결한 문장
문장은 간결하게 서술해야 좋다. 간결한 문장은 독자에게 필자의 뜻을 잘 전달한다. 간결한 문장은 구조와 수식이 긴밀하고 길이도 대체로 짧다. 구조나 수식이 복잡한 문장은 의미 파악이 어렵다. 간결한 문장은 주술 호응이 분명하고 속도감이 있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좋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는 방법을 알아보자(다음은 金昌辰, 『작문의 정석』, 삼영사, 2016, 54-71면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정하고 보완한 것임).
첫째, 단어를 둘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말을 했다”는 ‘을’을 빼고 “나는 말했다”로 써야 간결하다. 본래 한 단어를 나누지 않아야 한다. ‘이/가’, ‘을/를’을 넣지 않는다.
둘째, 하나의 생각은 한 문장으로 서술한다. 글은 주어와 서술어가 하나씩인 단문單文이 원칙이다. 중문重文과 복문複文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한 문장은 하나의 개념만을 담는 것이 좋다(one sentence, one idea). 문장이 길고 개념이 여럿이면 필자가 의도한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셋째, 형용사와 부사를 알맞게 쓴다. 문장의 줄기는 명사와 동사이다. 수식어는 부수적이다. 줄기는 굵고 곁가지는 작은 나무가 미끈하고 보기 좋다. 불필요한 수식어는 의미 전달을 방해하고 리듬감을 방해한다. 글에서도 수식어를 되도록 쓰지 않아야 좋다.
수식어인 관형사와 관형사형을 쓰기보다 부사로 바꿔 쓰는 게 더 낫다. 문장은 주어보다 서술어, 명사보다 동사가 의미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주어와 명사를 수식하는 관형사보다, 서술어와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를 쓰는 것이 의미가 더 정확하고 표현이 간결하다. “많은 사람이 왔다”보다 “사람이 많이 왔다”로, 부사로 서술어를 수식하기보다 형용사 서술어 표현이 더 낫다. “그녀는 예쁘게 웃는다”보다 “그녀는 웃음이 예쁘다”는 ‘예쁘다’를 더 강조한다.
넷째, 불필요한 주어나 군더더기 말은 생략한다. 수필은 필자 본인의 체험을 위주로 쓰는 글이므로 ‘나’를 안 써도 말이 통하고 더 간결하고 부드럽다. 빼어도 말이 통하는 군더더기 부분은 삭제한다. 한 문장은 20자 내외에서 최대한 50자를 넘어서지 않도록 짧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넘어서면 장황해지고 중언부언重言復言하기 쉽다.
다섯째, 중복 표현을 피한다. 단어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중복된 표현은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중복 표현은 세 종류이다. ①한자어와 고유어가 겹치며 일어나는 ‘중복어重複語’ ②한 문장에서 동일한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는 ‘단어·구절 중복’ ③ 형태는 다르나 의미가 반복되는 ‘의미 중복’ 등인데, 의미를 훼손하지 않을 정도에서 이런 중복 부분을 다른 단어로 교체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 간결한 문장을 만든다.
3. 명확한 문장
산문 문장은 뜻이 명확해야 한다.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서술하면 독자는 그 문장을 읽고 뜻을 이해한다. 독자가 이해하고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감정에 공감한다. 동의와 공감이 바르게 이루어진 뒤에 감동이 따라온다. 문장의 뜻이 명확하려면 문장 구성 요소들이 바르게 호응해야 한다. 문장을 명확하게 쓰는 방법을 알아보자(다음은 金昌辰, 『작문의 정석』, 삼영사, 2016, 72-89면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정하고 보완한 것임).
주어에 맞게 서술어를 써야한다. 주술 호응이 안 되는 경우는 문장을 길게 쓰면서 주어와 술어가 멀어져서 실수하기 쉽다. 문장을 간결하게 서술하고 주어와 술어를 가까이 배열하면 해결하기 좋다.
서술어는 하나인데 목적어가 두 개 이상일 때 문제가 일어나기 쉽다. 각 목적어는 서술어와 호응해야 하는데 하나에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목적어와 서술어도 가까운 위치가 좋다. 목적어가 길 경우에는 목적어를 앞에 두고 주어를 목적어 뒤로 보내 ‘목적어+주어+서술어’순으로 서술하는 게 좋다.
수식어는 피수식어와 떨어져 있으면 제대로 역할하기 어렵다. 긴 수식어(관형절과 부사절)는 독립시켜 다른 문장으로 나누는 게 좋다. 수식어 자리도 올바른 자리에 놓아야 한다. ‘대부분 학생’보다 ‘학생 대부분’으로, ‘자동 커피 판매기’보다 ‘커피 자동판매기’가 더 자연스럽다.
관형어와 부사어 등 수식어는 피수식어 앞에 놓아야 한다. 숫자와 날짜는 위치에 따라 뜻이 달라지니 유의해야 한다. 명사 앞에 너무 긴 수식 어구를 두는 것보다 명사를 주어로 삼고 수식 어구를 서술어구로 바꾸는 편이 더 명확하다.
주어를 생략하면 문장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하는 문장은 반드시 주어를 제시해 비문(非文)이 되는 걸 피한다. 목적어를 생략하면 모호해 질 수 있으니 유의하자. 문장에서 두 개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장은 모호하다. 이를 피하려면 조사나 어미를 바르게 다듬거나 쉼표를 사용하여 해결한다.
4 . 다양한 문장
한 문단 안에 같은 구조의 문장이 반복되면 단순하고 구조가 다른 문장이 섞이면 느낌이 다양하다. 수필 문장은 문장의 구조와 길이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게 좋지만 쓰기 쉽지 않다. 문장의 다양성은 풍부한 어휘, 다양한 구조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짧고 단순한 문장과 좀 더 길고 느슨한 문장이 섞이고 단문과 중문 또는 복문과 혼문을 두루 섞어 써야 문장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문체를 살리려면 연결어미와 종결어미의 적절한 사용도 필요하다.
5. 문장의 서술 요건
글쓰기에서 문장을 강조하는 까닭은 무슨 이야기를 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간명한 문장으로 서술할수록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다. 문장쓰기에서 간결성은 개념 이해에, 명확성은 의미 전달에, 다양성은 독자 배려에 있다.
문장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져 균형을 잃으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소통에도 장애를 일으켜 읽고 나면 기분도 언짢아진다. 그러나 모든 문장을 간명하게만 써서는 재미가 없다. 주제 문장은 간명해야 하지만 보충문장은 속성에 따라 길게 또는 복잡하게 서술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장 기술에서 다양성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길고 짧은 다양한 문장이 서로 어울려야 의미의 강약심천(强弱深淺)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문장은 혼자 읽기 위한 글이 아니고 특정한 몇 사람만이 독자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수를 대상 독자로 예상하고 써야 한다. 수필의 특성에 맞게 문장을 서술하려면 고려해야 할 바람직한 요건에 대해 알아보자.
초심자들이 글을 쓰면서 놓치기 쉬운 게 독자를 배려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독자에 모두 맞추는 것은 곤란하고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독자 수준을 높게 잡으면 고려할 사항이 많아서 초심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너무 낮게 잡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와 동일 수준이나 약간 아래로 기준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무난한 해결책이다.
독자의 수준을 정하고 글을 쓰면 단어의 선택과 서술의 방향이 정해져 용이하다. 독자층의 수준에 따라 일상 언어가 아닌 전문 용어와 조금 난해한 어휘로 쓸 수도 있고 자주 사용하는 쉬운 어휘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 기준으로 글을 쓰면 무난하게 서술할 수 있다. 독자 문제는 필자의 수준에 따라 언제나 유동적일 수 있다.
문장은 필자의 여러 성향을 반영한다. 특히 진솔한 체험을 제재로 쓰는 수필은 더욱 그렇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집에 초대하여 여러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손님을 함부로 상대해도 안 되듯 적합한 품위를 갖추어 대접해야 한다.
수필은 필자의 인격이 드러나는 글이다. 필자가 겪은 체험을 주요 제재로 삼으므로 글에서 그대로 노출이 된다. 드러낼 것과 감출 것을 결정할 때 기본 조건이 품위를 갖추는 일이다. 필자 자신을 희화하거나 비하할 수도 있지만 결코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 품위는 바로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문장에서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표현을 삼갈 일이다.
우리말의 존대법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기본 원리다. 상대를 우대하는 대우법의 정신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문화다. 수필은 여러 독자를 대상으로 쓰는 공적 성격의 글이다. 일기나 편지와 다르므로 대우법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상대 존대가 지나치면 당사자가 아닌 사물을 존대하는 일도 일어난다. 대우법에 어긋나니 조심할 일이다.
글에선 필자에겐 사적으로 존칭을 사용해야 하는 상대이나 독자에겐 객관적인 이야기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대화체의 경우에는 예외이나 일반적 서술에는 평어체로 써야 한다. 신문기사에선 결코 경어체로 쓰지 않는다. 공적인 글이고 일반 대중이 독자이기 때문이다. 수필도 지면에 발표하는 글은 공적인 글이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
수필 문장에서 지향할 서술의 목표는 참신성과 함축성이다. 표현을 색다르게 표현하여 독자에게 새로움을 전하려는 것이 참신성이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압축하여 여러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함축성이다. 이 양자를 잘 살려 써야 독자는 읽는 재미를 느끼고 매력적인 글이 된다.
참신성은 독창적인 문장 표현을 일컫는다. 우리말 단어를 사용하는데도 독창적이고 개성적 용법을 요구한다. 이 말은 참신한 문장에는 참신한 사고와 감정이 실리기 때문이다. 단어 선택과 배치와 관련되는 참신성은 수필의 문체와 직결된다. 수필의 참신성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체로 문장을 서술할 것을 요구하는 셈이다. 낡거나 죽은 비유와 진부한 표현은 새로운 감성에 맞추어 쓰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하여 객관적인 내용을 서술하면 단어와 그 사물이나 개념이 1:1의 관계로 한정된다. 과학적인 글이나 학술 논문 혹은 논설문에서 단어 사용은 이처럼 사전적이고 지시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이와 달리 문학에선 문장의 맥락에 따라, 필자의 주관적 정서에 의해 1:多의 의미로 단어를 사용할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함축성이 실현된다. 물론 수필에서도 지시적인 단어 사용의 문장도 써야 한다. 그래도 함축성을 살린 다양한 문장 서술은 수필에서 더 많이 필요하고 적극 장려할 일이다.
외국어 학습은 외국인과 언어적 의사소통을 위한 일이다. 외국어를 우리의 말과 글에서는 원래 사용하면 안 된다. 이걸 혼동하여 외국어 사용이 범람하는 현실이다. 외국어가 우리말로 변한 외래어는 당연히 쓸 수 있지만 외래어 사용하듯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의 주체성도 문제려니와 독자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문장에서도 외국 문장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 남용은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로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우리말에서 적합한 말이 있을 경우에도 다른 표현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할 수 없이 빌려와 쓸 때에는 정해진 용법을 따라야 한다.
일본어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의’와 ‘-에 있어서’, ‘-에 다름 아니다’ 등이다. 본래 한국어에는 조사 ‘-의’를 잘 쓰지 않는다. ‘-의’가 없어도 되는 경우가 많다. ‘의’가 많으면 읽기 불편하고 문장의 간결성을 놓친다. ‘-에 있어서’는 ‘-에서’로, ‘-에 다름 아니다’는 ‘-나(와) 같다’, ‘-나 마찬가지다’, ‘-에 불과하다’, ‘-일 뿐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로 쓰는 게 옳다.
영어 영향을 받은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시상(時相)에서 영어식의 완료형과 진행형을 들여와 과거·현재·미래의 시제만 사용하는 한국어에 강요한 것으로 ‘-었’에 ‘-았었-’을, ‘-겠’을 중복 사용하는 경우다. 지나친 피동형의 남발도 그렇다. 피동 의미 단어에 ‘-되다’, ‘-지다’, ‘당하다’를 첨가하여 이중 피동으로 쓴다. 피동형의 남용은 독자에겐 피동적 태도를 심어 주고, 문장의 전달력을 약화시키므로 능동형으로 서술하는 게 바람직하다.
수필의 서두는 특별하므로 쓰기 아주 어렵다. 서두는 설정한 주제를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일이다. 첫 문장에서 바로 주제를 진술하는 것은 무난하나 밋밋하다. 바로 주제를 노출하기보다 은근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게 좋다. 서두에서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서술은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글의 추동력을 잃게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서두는 주제에서 먼 내용부터 시작하여 점차 가깝게 접근하는 역삼각형 방식으로 서술해야 좋다. 이것은 여러 내용이 모여 점차 한 의미로 집약하거나 폭을 좁혀 초점을 형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문단의 미괄식 구성법과 유사하다.
그런데 주제의 진술이 역삼각형 방식으로 서두부의 끝에 오게 한다면 이 앞에는 무엇을 배치할 것인가. 서두의 머리에서 명확하게 주제를 제시하지 않되, 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서술하고 예를 들면서 주제를 보충한다. 그렇다고 주제와 관련한 어떤 분명한 것을 미리 말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본문에서 해야 할 일이므로 약간의 의문과 궁금증을 남겨두고 멈춰야 한다. 암시하거나 변죽을 울리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다. 다음에 제시하는 것은 독자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첫째, 유추로 시작하여 주제를 끌어낸다. 언급할 주제와 유사한 것을 먼저 제시하고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제의 진술로 좁힐 수 있다.
예전에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오뉴월 더위에 냄새가 고약한 우리 동네 하천에서 풀을 뽑았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땡볕
아래 생고생을 했던 것보다도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은
①외래 식물과 토종 식물이 서로 목숨을 걸면서 뒤엉켜 자라난 모습이었다. 토종 식물은 외래 식물에게 맥없이 휘감기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쓴다. ②잡초의 모습을 보니 ③우리의 생활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끈질기게 뒤엉키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대학생)
예문에서 언급할 주제와 유사한 것 ①을 먼저 제시하고 ②로 비교하면서 ③의 주제 진술로 이어가며 서두를 시작한다.
둘째, 비교나 대조로 시작하여 잘못되었거나 부정적인 진술을 먼저 제시하고 그와 대조하여 긍정적으로 진술하여 주제로 이동할 수 있다.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건물의 처마에 서서, 얼굴을 찌푸리며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러다 가방 안에 언젠가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우산을 발견하면 굳어있던 얼굴이 조금은 풀린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곧 다시 얼굴을 찌푸린다.우산을 써야하기에 한 손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그들에게 우산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나는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갈 때면, 우산에게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낀다.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이더라도, 나는 우산 속에서 늘 따스하게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산은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이다.(대학생 )
예문은 우산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찌푸리며/손은 쓸 수 없기/거추장스러운 존재)을 먼저 제시하고 그와 대조하여 긍정적으로 진술(온기를 느낀다/따스하게 보호받는 느낌)한 뒤에 주제(우산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로 이동하여 서두를 시작한다.
셋째, 실례實例로 시작하여 일화나 혹은 주제와 관련한 필자의 체험을 언급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 담임선생님은 누굴까? 기대하며 두근두근하였다. 과학중점 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국어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고 수학, 과학 선생님이 아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선생님은 ‘000’선생님이었는데,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수업준비도 열심히 해오고, 우리를 위해 재미있는 수업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열심히 하고 아이들에게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도 선생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대학생)
예문은 필자의 체험을 언급하면서 서두를 시작한다. 밑줄은 필자의 체험을 진술한다.
넷째, 친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시작하여 독자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주제로 연결한다. 독자가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인데, 이것을 익숙한 것으로부터 끌어들이면 성격이 잘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도 진행하기 좋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에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란 글이 있었다. 청춘의 아름다움을 강한 어조로 예찬한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구절은 외울 정도로 입에 붙어 다녔다. 또 얼마 전엔 199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회고적인 청춘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끈 드라마도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엔 ‘청춘을 돌려다오’란 가요도 불려졌다. ①모두 청춘을 찬양하는 점이 공통점이다. ②정말 청춘은 찬양할 만한가?(방민,<청춘을 돌려다오>, 『미녀는 하이힐을』, 태학사, 2015.)
예문에서 ①은 독자가 잘 아는 내용이고 친숙한 것이다. 이것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주제 ②, 과연 청춘은 찬양하는 것이 합당하가를 물어보며 서두를 시작한다. 일반인의 상투적인 인식이나 사고에 대해 필자는 상반된 의견을 갖는 경우를 제재로 하여 주제를 설정할 때에 적합한 서두 쓰기다.
다섯째, 일반에서 특수로 시작하는 것은 주제와 관련한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주제를 진술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야구'이다. 작년인 2015년만 해도 736만 명이 야구장을 방문했고, 2016년 올해는 800만 관중을 목표로 두고 있을 만큼 야구는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다. 물론 집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TV를 보면서 야구를 보는 것도 재밌겠지만, 야구장에 직접 방문하는 것 또한 색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산, 대구, 마산, 광주, 대전, 수원, 서울, 인천에 프로야구 팀이 하나 이상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편하다. 그리고 비싼 좌석은 7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싸긴 하지만 저렴한 좌석은 8천원이면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은 가격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대학생)
예문은 야구에 관한 일반적인 것을 서술하고 밑줄에서 특수한 주제 진술(이 글의 주제문은 ‘야구장은 매력적인 곳이다’)로 연결 고리를 만들며 수필의 서두를 쓰고 있다.
서두를 인상적으로 강렬하게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두가 최종적인 글의 형태는 물론이고, 이후의 집필 과정인 본문과 결미 쓰기와 체계를 잡는 데도 작용한다. 서두의 타당성을 갖추기 위해서 유명 작가들도 초고를 여러 번에 걸쳐 쓰거나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수필에서도 서두가 글 전체의 안정된 틀을 갖추는 데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2. 본문 쓰기
본문은 수필의 중심이고 본체이다. 구체적 예를 들어 주제를 확실하게 서술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독자에게 공감할 만한 감정을 표현한다. 글에서 필요한 건 다 드러낸다. 서두나 결미와 연결하는 문단을 제외하고 본문에 속하는 각 문단을 다른 문단과 연결한다. 말하자면 주제 진술을 뒷받침하고 입증, 예증하거나 확장해가며 문단의 주제인 소주제를 발전시킨다.
본문의 각 문단은 단독 문단처럼 응집성을 갖추어야 하고 다른 문단과 연결되어야 하며 주제로 통합되어야 한다. 주제에 따르거나 제재에 맞추어 다양한 구성을 적용하여 조화롭게 전개하며 여러 서술 방식을 활용한다. 다음에 가장 공통적으로 쓰이는 여러 방식을 제시한다. 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충분히 익혀야 본문을 바르게 쓸 수 있다.
①어떤 것이 작동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누가 한 행동에 대해서 왜 그러한가를 풀이하는 설명하기 ②사건이나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서술하는 인과 ③사실이나 통계, 필요한 자료를 제시하기 ④사람과 장소 고찰의 대상을 그대로 기술하기 ⑤가치를 판단하고 그 이유를 달기 ⑥하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비교하거나 대조하기 ⑦어떠한 것을 같은 부류나 유형으로 분류하고 교차해서 논의하기 ⑧일화나 통계를 이용하기 ⑨주제와 관계된 개념이나 용어를 정의하기 ⑩전문가나 통계, 필자의 체험을 인용하기 ⑪논의한 사실에서 도출하여 결론 맺기 ⑫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관련성 끌어내기 등이 있다. 이 방법들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어서 독자적으로 쓰이기보다 다른 방식과 연합하여 사용한다. 물론 문단의 화제 성격에 부합하도록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이 중에서 몇을 선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살핀다.
(1) 설명하기
설명문은 사실과 이념 또는 정보적인 의견을 설명하기 위한 산문이다. 이것은 필자와 독자가 어떠한 사항을 더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정밀하게 조사하는 명확한 방식이다. 이 방식의 목적은 이해시키는 것이고 그 핵심은 명료성인데 사실과 개념, 또는 정보적인 견해를 요점별로 서로 명확하게 연결하여 서술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정보적, 분석적, 설득적인 세 유형이 있다.
정보적 설명문은 정보를 전달한다. 필자는 어떤 사항을 면밀히 조사하여 사실적인 것을 명확한 양식으로 전달한다. 자료의 성질에 적합한 방식을 선택해야한다. 정확한 기록을 언급하고 전문가의 저술 등으로 보강하여 정보적 수필(탐방기, 답사기 등)은 사실을 진술한다. 이 사실에 대한 해석은 분석 산문의 일이다.
분석 산문은 주제를 구조 요소로 분해하고 그 세부 요소를 서술한다. 보통 이런 글의 주제는 해석적인데, 수필에서 다루는 화제 요소를 나누고 자료를 대입하여 그 사실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힌다. 정보 전달이 목적인 설명문보다 더 복잡하다. 사물을 대상으로 그 감춰진 의미를 천착하여 쓰는 수필에 적합한 방식이다.
설득 산문은 분석을 사용하는 면에서 분석 산문과 통한다. 독자가 필자의 생각을 수용하기 바랄 때, 그들을 설득하려고 할 때, 독자가 수용하길 바라는 곳을 세부까지 분석해야 한다. 분석과 설득은 정보 면에서 겹치지만, 설득은 필자에게 판단, 감정, 정보적 의견의 폭이 좁다. 독자가 주제를 수용하도록 설득하고 필자가 한 판단의 합당성을 그들에게 납득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사변적이거나 사회비평적인 수필에 더욱 잘 어울린다.
<익숙한 것들과의 밀회 –왕린>
딸아이와 백화점 아이쇼핑을 할 때였지. 구두 매장 저만치서 내 눈을 잡아채는 게 느껴졌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데. 웬걸, 요즘 즐겨 신는 빨간색 구두와 똑같더라고. 경쾌한 리듬으로 집어 들었지. 신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 하나 더 사려던 참이었거든. 딸이 가로막았어. 제발 색깔만이라도 바꿔 보라는 거야. 그 마음 알 것 같아 슬그머니 놓고 말았네. 그렇다고 한번 마음 준 게 있는데 다른 색이 들어올 리 있나. 그냥 돌아섰지. 발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어.
며칠이 지나도 두고 온 빨강이 잊히질 않는 거야. 매장을 다시 찾아갔지. 누가 채갔는지 구두는 없었어. 그날 들고 오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되던지.
⓵나는 별나도록 같은 것을 고집해. 한때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치마 얘기부터 해볼까. 블랙 플레어스커트! 단물나도록 입고 다녔네. 나팔꽃처럼 퍼지는 주름이 근사했거든. 걸을 때마다 물결쳐 출렁이는 그 치마에 보랏빛 앙고라 카디건이나 살굿빛 니트를 받쳐 입고 나가면 사람들 찬사가 쏟아졌지. 단아하고 청순해 보인다고.
사람들 립서비스에 솔깃해서였겠지만, ⓶여벌을 두고 새 옷처럼 번갈아 입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 그 핑계로 세일 때 하나 더 장만했지 뭐야. 좋아하는 것 하나쯤 더 두는 맛이 그런 것일까. 내가 선택한 것과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생겼어. 낡을까 염려하지 않고 즐겨 입은 건 물론이지. 그 후 나한테 맞춘 듯 마음에 들면 하나 더 사려고 발품을 팔게 돼.
요즘에는 디자인과 색깔이 똑같은 바지를 번갈아 입어. 한 계절 내내 같은 바지만 입고 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바로 그 이유야. 벌써 몇 켤레 째인지 모르지만, ⓷등산화도 변함없이 같은 브랜드의 같은 색을 고수하지. 산에는 열심히 다니는 것 같은데 신발은 오래도 신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혼자 웃곤 한다니까.
나의 오랜 친구, 또 다른 단짝인 펜 얘기를 해줄게. 여느 집이고 펜 꽂이가 빽빽할 만큼 흔한 게 필기구잖아. 우리 집에도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는 펜이 수두룩해. 하지만 내가 고집하는 펜은 따로 있지. PILOT 수성 펜이 그것이야. 검은색은 아니야. 검정은 감정을 배제하고 앞뒤가 똑 떨어지는 말만 써야 할 것 같잖아. ⓸맹맹하게 풀어져서 자칫 내밀한 감정까지 헤프게 쏟아버릴 것 같은 초록색도 아니지. 나를 사로잡은 색은 청색이야, 청색! 짐짓 물러나 있다 필요한 말 꼭 집어 사근사근 풀어낼 줄 아는 사람처럼 ⓹지지부진한 일상의 엉킨 상념을 명쾌하게 풀어주거든. 깊이 갇혀 있어 영원히 빛을 못 볼 것 같은 ⓺나의 어둡고 습한 이야기도 푸른 마중물을 만나면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어 글 향기로 피어난다니까. 같은 펜인데도 꼭 청색이라야 마음의 실타래가 풀어지고, 날렵하면서 부드러운 나만의 글씨체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그것 참 이상하지. 가끔 이름값 턱없이 높은 펜을 선물 받을 때도 있지. 청색 펜에 치여 서랍을 지킬 뿐이야. 신종 무기 스마트폰에 밀려 펜 쓸 일이 없다는 사람도 있더군. 어쩌겠어. 아직은 아날로그족을 고수하고 싶은걸. 길에서 문구점을 만나면 바늘이 자석에 끌리듯 들어가 사랑스러운 나의 ⓻청색 펜을 사들고 나오는 즐거움을 누가 알려나.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네. 독특한 취향이라며 잠시 추어주다 고집쟁이, 욕심쟁이라고 구박하더라고. 맘에 들면 둘씩 셋씩 자기 것으로 만드는 ⓼여자가 남편도 하나 아이도 하나인 게 이상하다며 빈정거려.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 고리짝 붙들고 혼자 좋아한다고도 하고.
좋아하는 것, 딱 그것에만 집착하는 점을 나도 인정해. 나는 한참 유행하는 것도 ⓽나와 맞지 않을 거라고 지레 생각해버리지. 첫눈에 꽂혀 산 물건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눈정이라도 들어야 비로소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근 간극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니까. 그러니 ⓾늘 얼뜬 구년묵이로 사는지도 모르겠어. 어제가 옛날 같은 요즘 세상에 익숙한 것, 똑같은 것만 고집하는 나를 내가 생각해도 답답해.
선택의 폭이 좁다고 ⑪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⑫뜻밖에 단순해질 수 있고,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잖아. 익숙하고 편한 그것만이 나를 도두보이게 한다고 믿어서일까. 어차피 죽이 맞은 것이니 갈등 없이 적응할 거라는, 안정만을 지향하는 ⑬무의식의 발로일까. 아니 ⑭낯선 것은 어쩐지 불안하고, 새로운 시도로 타인의 그간 검증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하는 ⑮소심한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네.
늘 같은 머리 모양에 그 옷, 그 구두, 그 펜…. 남 보기엔 따분할지 몰라도 내 오롯한 향이 배어 분신처럼 돼버린 그것들과 함께하면 느닷없이 엉겨 붙는 ⑯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좋아하는 그것들이 기꺼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⑰든부자가 된 느낌이라면 너무 나갔나?
⑱집착이 지나치면 이미 아름다움은 아닐 거야. 평범한 옷에 애교의 방점으로 달린 액세서리처럼 소소한 내 일상의 자그만 기쁨이라면 괜찮겠지. 사람 많은 곳에서 은밀히 주고받는 연인의 눈웃음처럼 누가 뭐라든지 ⑲내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과 밀회를 즐기며 살고 싶어.(왕린, <익숙한 것들과의 밀회>, 수사자의 꼬리, 에세이문학출판부,2015,281-284면)
이 글에서 설명의 세 종류(정보적/분석/설득)는 서술의 주요 방식이다. 이 중 정보적 설명은 밑줄 친 문장 ⓵⓶⓷⑲ 등으로 작가 자신에 관한 사실을 밝힌다. 문장 ⓸⓹⓺⓻⓼⓽⓾⑪⑬⑭⑮ 등은 작가의 여러 취향에 관한 나름의 분석을 독자에게 서술한다. 자아 성찰의 수필에서 많이 접하는 설명의 방식을 이 글에서도 발견한다. 물론 이것은 정보적 사실에 작가가 해석하고 분석한 의미를 설명한다. 설득은 정보적 사실과 분석한 내용을 독자에게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문장 ⑫⑯⑰⑱이 그들이다. 논리성을 위주로 삼는 주장과 설득 중심의 논설문이 아니라서 설의(設疑)의 방식이나 양보의 문장으로 부드럽게 유연한 설득을 시도한다. 이 글은 작가 자신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설명의 여러 방식을 동원하여 독자에게 고백한다. 아울러 친근감을 살리려고 대화체로 접근한 것도 동일한 의도로 선택한 서술 장치다.
2) 예증하기
예증은 설명문에서 특히 중요하며 수필에서 핵심적 요소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은 설명의 추상성을 해소시킨다. 일상의 세계에서 추상적인 것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이고, 바른 판정을 하게 돕는다. 그럼으로써 예증은 발전의 수단이 되고 결속시켜 요점을 보다 적확하게 한다. 필자가 체험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전개하는 대부분의 수필에서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다. 거의 모든 수필에서 만날 수 있다.
< 화살촉 –강정주>
소파에 앉아 TV를 켜면 종편방송에 매일 나오는 똑같은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벌이는 패널들. 얼굴을 내세워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은 편당 얼마를 받고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도시라는 정글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하이에나들이 떠오른다.
현대의 생활이 원시시대에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사냥하던 때와 무엇이 다를까. 현대인들은 고도로 분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먹이를 찾기 위해 오랜 훈련을 거친다. 그리고 사냥감에 따라 혼자서 또는 집단으로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먹잇감을 향해 달려든다. 호랑이나 사자같은 무시무시한 놈들을 사냥하는 인간도 있지만 다람쥐나 토끼같이 보잘것없는 먹이를 잡으며 살아가는 인간도 있다.
옛날엔 간단한 도구나 화살촉을 이용해 힘과 꾀로 사냥을 했다. 그러나 이제 먹이를 구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게 되었다. 화살촉이 제일 무서운 사냥 도구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화살촉보다 무서운 게 펜촉이다. 예전엔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사냥이었다면 지금은 끝없는 탐욕의 위험한 사냥을 하고 있다.
원시시대에는 생물학적으로 단연 힘이 좋은 남자들이 주로 사냥에 참여했고, 힘세고 잘 싸우는 용맹한 남자들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오며 인간을 지배하는 힘은 주먹이 아닌 머리가 되었다. 힘은 두뇌와 손가락에서 나오지 근력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파워가 생기며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남자들보다 감성지수가 높은 여자들에게 유리한 시대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능적 모습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나의 남편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자기 고유의 화살촉을 연마했다. 어렸을 때부터 앞 논에 비가 와 볏단이 떠내려가도 모르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고 했으니, 자기의 화살촉 연구는 천직이라고 했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나에게 구애를 할 때에도 특별했다. 자기 화살촉은 지금까지 나온 어느 화살촉보다 더 나은 품질일 것이라며 나를 꼬드겼다. 어느 눈 오는 날 대학 캠퍼스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눈길에 넘어졌는데 그는 나를 일으켜주는 척하며 같이 넘어졌다. 우린 눈 내리는 언덕에 누워 낭만을 만끽했다. 그의 손과 입술엔 화살촉 냄새가 났다. 난 그 냄새에 넘어갔고, 우린 부부가 되어 유전자를 후대에 계승시킬 수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연구가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며 평생 화살촉 연구에 매진해왔다. 결국 그의 고유한 화살촉은 남에게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냥은 하지 않았다. 화살촉 연구방법을 전수하며 그 대가로 다달이 꿩 열 마리정도는 얻어왔다. 아내인 나도 남편이 연구하는 화살촉으로 꿩 대여섯 마리 정도는 쉽게 잡아 올 수 있었다. 우리 기술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고맙기만 했다.
어느 친구의 남편은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종 사냥감들을 무더기로 잡아온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남편은 사냥 실력이 뛰어나 어느 때는 집채만 한 멧돼지도 잡아오고 늑대도 잡아왔다. 그가 기르는 사냥개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가끔 곁들여 잡아온 여우나 토끼같은 것은 아내에게 던져주며 인심을 썼다. 친구는 그 고기로 이웃들과 회식도 하고 털옷을 해 입고 멋을 내었다. 나는 그게 부럽기는 했지만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끔 예쁜 꿩 털을 머리에 꽂는 정도에 만족했다. 그저 우리 수입인 꿩 열댓 마리 중 아홉 마리 정도는 먹고 나머지는 꼭꼭 갈무리해서 힘없어서 일 못할 때를 대비했다.
신문이나 TV를 보면 나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느 욕심쟁이는 집단으로 잡은 코끼리나 물소 떼를 혼자 꿀꺽 먹으려다 잡혔다고 했다. 어느 권력 추종자는 자기를 우두머리로 뽑아달라고 몰래 집집마다 토끼 한 마리씩돌리다가 사회구성원들에게 매장당하기도 하고 울타리에 갇혀 벌을 받기도 했다. 먹을 것은 풍부해졌는데 사는 게 더 각박해진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이제 일을 안 한다. 오랫동안 화살촉 연구에 매진해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나라에서는 일도 안 하는 우리에게 먹고살기에 충분한 꿩을 죽을 때까지 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게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늙었다. 남들은 지금도 청춘이라고 하지만 옛날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나이다. 우리 집 남자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기술 정보화 시대에 잘 적응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평생 연구하던 화살촉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다. 어쩌랴 외곬인 남편을. 그래도 사는 동안 다른 여자 한번 넘보지 않고, 받아 오는 꿩 열 마리도 축내지 않고 다 마누라한테 갖다 주었는데. 오늘도 나는 그놈의 정 땜에 꿩 육수를 만들고 있다.
지금도 종편 방송에서는 수많은 하이에나들이 화살촉을 날리며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TV를 껐다. 점심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해주기 위해서다.(『에세이문학』2016년 가을 90-93면.)
위 글은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작가가 주제를 펼치기 위한 예증에 동원한 비유 대상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원시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사냥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이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서 실례를 들어 생각을 풀어낸다. 이 과정에 사용하는 설명 방식으로 예증을 선택한다. 밑줄 그은 단어에서 구체적 실례를 본다.
3) 정의定義하기
정의는 주제에서 제기하는 마땅한 것에 요점을 보완하고 그걸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이것은 대체로 예증과 합치하지만, 실제는 사전적 정의와 동일하다. 필자만의 명명하기, 어떤 서술 대상에서 작가 나름의 독자적 의미를 해석하거나 발견한 뒤에 이 정의를 사용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처럼 수필에서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조개는 둥글다.둥글기에 포용적 원만성, 완전한 형태인 원을 지향한다. 모성이 자라는 소이(所以)다. 그중에 기다란 말 조개는 일종의 변이형이다.이게 조개의 원형이 아니듯 간혹 남성적인 여자가 있기 마련이라 보면, 여성의 본질은 원형이 분명하다. 얼굴이 동그랗고, 가슴이 둥그스름하고, 엉덩이가 둥글지 않은가. 남자보다 더욱 예쁘게 동그랗다. 이 둥근 형태 안에는 사랑이 담겨 있고, 세상과 남자의 마음을 담아낼 포용과 관용이 자리한다. 여신이 탄생할 수 있는 까닭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이를 지키려는 게 모성의 본성이고 여성성의 정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방민, <조개이야기>, 『미녀는 하이힐을』, 태학사, 2015,18-19면. )
예문의 밑줄은 정의의 설명 방식이다. 필자만의 것이라기보다 사전적 정의와 합치한다. 이것을 필자 나름의 독자적 의미로 해석하여, ‘모성이 자라는 소이(所以)다’, ‘조개의 원형이 아니듯 간혹 남성적인 여자가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발견하며 의미를 확장한다. 이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이를 지키려는 게 모성의 본성이고 여성성의 정체’라는 작가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과 정의를 이끌어 낸다.
낙타가 그 많은 동물들 중에 오직 인간만을 태워주기로 한 것은 자기보다 불쌍한 짐승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나운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이, 힘 센 앞발도 탐스런 갈기도 없이, 약은 잔꾀 하나로 왕 노릇하다가 욕망의 늪에 빠져죽고 마는, 천하에 어리석고 미련스러운 천둥벌거숭이들을 묵언설법으로 제도하기 위해, 겸허하게 무릎을 꿇고 잔등을 내밀어주는 것이다. 낙타에게도 인간에게도 삶이란 견디는 것, 갈증도 그리움도 시간의 상처도 삭히고 삼키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타자의 죄를 지고 가는 늙은 성자처럼 저보다 더 고단한 중생 하나 잔등 위에 앉히고 낙타는 초연하게 걸어 들어간다. 아득한 비현실의 현실 속으로.(최민자, 『낙타이야기』, 수필과비평사, 2015, pp. 58-60.)
< 돼지고기 반 근 - 정 성 화>
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날 밤이었다. 어두운 얼굴로 나가신 아버지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발걸음 소리가 우리 집 대문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소금이 물에 녹아내리듯 내 몸도 슬픔에 조금씩 녹아내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아버지를 기다리는 귀 두 개뿐인 듯했다.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눈이 먼저 보고 머리로 연락을 취한 그 순간, '아' 하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게시판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누군가 뒤에서 밀며 머리를 좀 치우라고 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머리는 뒤에서 봐도 눈에 영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골목으로 접어든 바람은 모두 우리 집 대문을 흔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섣달 바람이 지루한 겨울밤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려니 생각하자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문에 걸어둔 우편함도 덜컹대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대학합격통지서를 담게 되리라던 제 예상이 빗나가서 제 딴에도 꽤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젠 낡아서 틈새가 벌어진 대문 두 짝이 계속 삐거덕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쇠로 된 문고리가 철판에 부딪히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내 속에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바람에 채이고 멱살을 잡히면서도 대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맨 앞에 서서 고스란히 비바람을 맞고 있는 대문, 자신이 보듬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참고 있는 대문을 보면 나는 늘 아버지가 연상되었다.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는 두 가지였다. 술을 드시지 않았을 때는 군인 출신답게 아주 규칙적인데 비해,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의 발걸음 소리는 구두 밑창이 바닥에 조금 끌리면서 장단이 좀처럼 맞지 않았다.
간간이 발걸음 소리가 끊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때 골목 중간쯤에 있는 전봇대나 담벼락을 붙잡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지도 모른다. 희망이라는 것들은 죄다 하늘로 올라가서 이제는 따오지도 못할 별이 되고 말았다는 아버지의 푸념 소리가 골목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밤이 깊어갈수록 내 귀는 더 밝아졌다. 옆에서 잠든 동생들은 내 낙방 사실을 잊었는지 편안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안방에 계신 어머니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슬픔과 아픔에 절고 절어 내 몸이 오롯이 소금 한 줌으로 남는다 해도 나 혼자 감당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이 밤 어디에서 이 못난 딸의 슬픔을 되새기고 계시는지.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철커덕, 대문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내복 바람의 어머니도 부스스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며 마루로 나오셨다.
대문에 들어서는 아버지에게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아버지…."
"어이구, 이 가서나야.“
아버지도 목이 메는 듯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부축하려는 나에게 아버지는 잠깐 있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잠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 꺼내려고 애를 쓰셨다. 휘청거리는 아버지 손끝에 겨우 딸려 나온 것은 신문지에 둘둘 말린 무엇이었다. 마루 끝에 서 있던 어머니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돼지고기 반 근이다."
내게 그 뭉치를 건네주시며 아버지는 내 어깨를 한 번 짚으셨다. 그 순간 내 속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 품속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돼지고기 반 근을 손에 들고 나는 그대로 마당에 서 있었다.
“너거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너거들 소고기도 못 사 먹인다.”
는 혼잣말을 하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힘겹게 마루를 오르셨다.
바람 부는 거리에서 식육점 문을 두드리는 아버지, 지갑을 펴 보며 '돼지고기 한 근'에서 '반 근'으로 다시 고쳐 말하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틀거리면서도 간간이 안주머니께를 더듬어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당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때 나는 마음속 활시위를 한껏 당겨 아버지를 위한 별 하나를 쏘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비춰줄 별, 아버지가 올려다보면 어느새 어깨쯤까지 다정히 내려와 주는 별 하나를.
슬픔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 걸까. 그것은 고작 반 근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신문지가 엉겨 붙은 돼지고기 반 근과 맞바꿀 수 있었던 그날의 슬픔을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사랑은 한 손으로 들 수 없는 무게였다.
참으로 온전한 한 근이었기 때문이다.
(정성화, 『돼지고기반근』, 수필과비평사,2014, pp. 17-20.)
< 수필로 써 본 수필 작법-방민 >
주로 체험적인 것이므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함께 또는 사후에 글의 주제를 낚는다. 사건과 관련하여 생각이 떠오르면 이게 수필로 쓸 수 있는 주제가 될지 따져보고 메모한다. 사물 수필도 비슷한데, 작정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모으고, 그게 가지고 있는 문학적 또는 인간적 의미를 천착한다. 사물 본질과 현상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람직한 해석을 연결하고 통합하여 최종 주제를 설정하고 집필에 착수한다. 거기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과 해석이 자연스레 담기고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스며든다. 이런 수필을 자주 쓰고 싶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고 독특한 해석과 가치 있는 의미 찾기가 수월하지 않아서 의욕만큼 많이 쓰지 못한다. 주제를 잡아서 쓰게 되면 합당한 제목을 생각한다. 일단 제목은 제재나 주제와 직결되는 걸로 잡아놓고 초고를 쓴다. 제목은 글을 써 가면서, 다 쓴 뒤에도 여러 번 생각하고 고치며 바꾼다. 주로 즐겨 사용하는 제목은 독자를 고려하여 호기심이 가는 걸 정한다. 다음은 친근감을 줄 수 있는 걸 고른다. 평시에 들어봤음직한 단어나 쟁점 혹은 관심사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예컨대 ‘으악새 슬피우니’ 등의 유행가 가사나 영화 제목 등에서 따다 쓴다. 친숙한 것으로부터 독자를 쉽게 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책이다. 또는 영화 예고편처럼 대강 주제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걸로 달기도 한다. <샛길이 좋다>나 <커피국을 끓이다>식인데 안 읽어도 알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독자가 혹시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만 하다고 보아 붙인다. 주로 개인적 취향에 관한 글이거나 무언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강할 때 선택하는 수법이다. 예로선 고유한 길의 지명을 없애고 도로명 주소 사용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보수주의자>가 해당한다. 친근감을 살리는 제목과 대비되는 것으로 반어적이거나 낯선 것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반어적인 것을 노려서 쓴 것에는 <청춘을 돌려다오>가 있는데 실상 주제는 청춘 시기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독자를 글로 끌어들일지에 대한 것이다. 독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켜 글을 읽도록 어떻게 유인할지에 집중한다. 꽃 색과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이듯 일단 읽게 만드는 것, 일종의 시식용 미끼를 제목으로 사용한다. 본문 내용에 상관없이 상당수는 제목에서 이미 독자의 마음을 잡아채지 못하면 좋은 글이 되기 어렵다. 첫 키스의 짜릿함에는 못 미친다 해도 그걸 향한 목표는 잊지 않으려 고민한다. 최소한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은 품도록 말이다.
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첫머리다. 이 서두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고 독자에게 알리는 구실이면서 독자가 호기심을 갖고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시발점인데 참말 제일 어려운 곳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다루는 주제에 관한 일반론으로 붓을 대기도 하고, 그에 관한 친근한 어떤 대상으로부터 비롯하기도 하지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짧게 쓰려고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내용은 본문에서 충분하고 풍부하게 다루고 가능하면 서두에서는 어떤 임팩트만을 주려고 애쓴다. 이와 호응하여 결미도 역시 짧고 강하게 끝내려고 힘쓴다. 그러면서 여운을 주거나 암시도 하지만 필자 입장, 본문에서 지금껏 다루던 주제에 관한 최종 태도를 나름의 것으로 묶어내는 소위 자기화 방식으로 제시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서두와 결미의 호응 관계, 이른 바 수미쌍관법에 충실하도록 구성하여 의미상 앞과 뒤를 긴밀하게 연결하려 한다.
주제와 종속 관계 하부를 구성하는 각 문단은 대강 비슷한 분량으로 균형을 잡는다. 지면상 글도 사물의 공간 구조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아 균형을 고려한다. 일정한 면적에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각 기능에 맞는 공간의 적당한 넓이 배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실보다 욕실이 더 크거나, 현관보다 주방을 더 좁게 짓는다면 이상한 집일 것이다. 물론 집의 콘셉트에 따라 예외적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정상적 일반 주거에 그러한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로 각 문단의 고유한 기능(시작-중심-마무리-연결-보충-부연 등)에 맞도록 분량을 조정하지만 다른 문단에 비해서 과도하거나 과소한 크기의 문단은 들이지 않으려 주의한다. 문단은 글의 골조이며 골격이므로 이게 허술해선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고 구실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단을 조직하면서 소주제는 주로 앞에 두는 두괄식을 많이 쓴다. 그래야 좀 더 명확하게 문단에 배치한 문장들이 하나의 소주제로 응집하고 엉뚱한 샛길로 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맥 흐름에 따라 미괄식이나 양괄식, 중괄식과 추정식도 쓰나 문단 소주제를 보완하여 의미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해선 최소한 둘 이상 보충문장을 거느리게 한다. 한 명 팀장(소주제)에는 둘 이상 팀원(보충 문장)으로 팀(문단)을 꾸려가려고 한다. 총 팀원은 세 명 이상 아무리 많아도 열두 명을 넘지 않게 한다. 팀원이 적어도 문제이나 너무 많아도 팀장이 통솔하고 관리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수가 몇 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소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할 만큼 필요하고 충분한 독립된 의미(문장)를 거느리게 하는 게 핵심이지만.
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각 문단을 둘씩 짝짓게 하는 일이다. 문단 짝의 기능적 핵심은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게 하여 글 전체 완성도를 높이게 하려는 의도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어떠한 대상도 짝을 이루어야 안정되고, 인공물도 근본적으로 이와 이치는 같기에 인간의 창조적 인공물인 글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짝을 지어 앞뒤 연결 문단이 의미 연속과 발전, 대비와 반전, 순접과 역접, 축소와 확장, 논리와 예증 등 기능적 의미에 따라 어울리게 하고, 이 결과로 전체 글 총 문단 개수 역시 짝수로 맞춘다. 글이 목표로 하는 분량인 원고지 200자 기준으로 5매, 10매, 12매, 15매에 따라 다르게 문단 수를 조정한다. 일반 수필로 5매일 경우는 4개 문단, 10매의 경우는 8개, 12매는 10개 문단, 15매는 12개를 기준으로 잡아서 글을 쓴다. 이것은 집을 짓는다고 가정할 때 대지 평수에 맞추어 방 개수를 미리 정해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문단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은 4단 원리 기승전결이다. 이 방식이 문단 짝수 구성에도 적당하고 글이 밋밋하지 않게 변화를 주면서도 의미 전달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동양권 선인의 지혜와 관습이 작용한 것으로 수필에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습작기에는 3단 원리인 기-서-결 방식을 애용했다. 초창기엔 학술 논문에서 주로 사용하는 서양식 방식인 이것에 익숙하다 보니 수필도 그걸 적용한 셈이다. 그래서 서두 한 문단, 본문 세 문단-본문도 그 안에서 한 문단씩 기-서-결을 갖추어서- 결미 한 문단의 총 5문단을 기본으로 삼았는데, 주제의 직접 전달에는 적합하지만 문학적 윤기나 감동을 주기 위한 감정에 호응하기 위해선 기술적 변화가 필요한 것을 차츰 깨달았다. 한시는 정형으로 기승전결을 사용한 장르이고, 시조는 외형상 석 줄이나 내면 시상 전개 논리는 4단 기승전결임에 착안할 때, 문학 산문인 수필에는 기승전결 구성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고, 이는 외형적 짝수 문단 구성을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 보통 수필은 서두와 결미가 한 문단이지만, 10매 이상 글에서는 서두와 결미를 두 문단씩 짝을 맞추어 구성하기도 한다. 수필 구성을 공부해 가면서 산문에서 가장 안정된 글, 특히 문학 문장 전개 방식은 3단보다 4단 구성이 더욱 적합한 것으로 보아 수필 창작에선 모두 이 구성을 택한다.
수필 문장 첫째 조건은 간결하게 쓰는 것이다. 주술 간격을 가까이 하고 수식어는 최소한으로 줄인다. 둘째는 의미가 명확하게 하려고 단어 선택과 배치에 신경 쓴다.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를 골라 쓰고자 힘쓴다. 또한 체험을 위주로 쓰는 글이 수필인 만큼, 사건과 행위와 사고 주체인 ‘나’란 주어를 최대한 안 쓰고 뺀다. 일기 쓸 때 ‘나’를 안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 문장에선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한결 간결하고 명확한 경우가 더 많기도 해서 더욱 그리한다. 독자가 행위 주체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는 수정하면서 모두 덜어낸다. 다른 인물이 등장하거나 사건 주체가 이중적이거나 혼란을 줄 때만 주어나 ‘나’를 넣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 이래야 글이 아주 깔끔해지고 군더더기 없는 말쑥한 글이 되며 읽기에도 입맛에 탁 붙는다고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필 쓰는 목적은 글쓴이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표현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제일 원칙이라 보기에 그렇다. 아름다운문장과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라 본다. 알다시피 수필은 특히 주제를 강조하는 문학이어 교술 문학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문장의 아름다움에만 지나치게 경도한 나머지 몽롱하거나 모호한 표현은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른바 서정 수필은 나와 잘 맞지도 않지만 그렇게 쓰려고 심히 애쓰지도 않는다.
문장에서 또 유의하는 것은 동일한 단어 반복을 피하려고 하는 점이다. 세상에 똑같은 의미 단어는 애초에 없다. 유사어나 유의어, 약간 의미상 편차를 보이지만 이 말들이 어울려 복합적 의미와 정감을 표현하도록 많은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어휘가 생각만큼 충분치 못하여 의도만큼 결과는 훌륭하지 못하다. 실상은 그렇다 해도 그런 의도와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낭독할 때 변화와 문장의 다양성을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은 사실 단어로 출발해서 단어로 마무리하는 단어의 집합체이니 어떤 단어를 고르고 그걸 어떻게 배치하여 의미를 표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지는 글의 핵심이고 관건이다. 해서 단어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글의 초고는 대략 쉽고 빠르게 쓰는 편이다. 어느 제재는 앉은 자리에서 한 두 시간에 10 여매의 글을 금방 써내려가기도 한다. 시작은 쉽게 하지만 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여러 번에 걸쳐 초고를 읽고 수정하고 다듬는다. 평균적으로 최소 5번에서 10여 번 정도는 다시 손을 댄다. 수정 대상은 제목과 주제는 물론이고 제재까지도 바꾼다. 문장과 문단, 문장 부호와 단어 등, 글의 모든 것이 수정 대상이다. 말하자면 고칠 수 없을 때까지 보고 또 보고 고쳐나간다. 그리하고도 발표한 글을 보면 잘못된 것, 수정할 것이 눈에 띄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떠한 글이라도 천의무봉처럼 완벽한 것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쓰기 위한 사전 준비를 대략 소개해보자.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늘 레이더를 켜둔다. 글감에 해당하는 제재나 주제를 잡아채기 위한 상시 가동이다. 날아가는 곤충을 잡는 포충망처럼 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어느 짧은 순간에라도 그것이 다가오면 잡고 싶고 또한 그런 경우가 언제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 길을 걷거나 차를 타거나 몰다가도, 밥을 먹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그것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 내용의 얼개를 메모한다. 종이에 쓰기도 하지만 요사이는 스마트폰 메모 기능을 이용한다. 이것은 차를 타고 이동 중이거나 걸어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옮길 수 있어 잘 애용한다.
이것을 다시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 파일 명은 ‘수필초고목록’이다. 여기에는 탈바꿈을 기다리는 글 애벌레들 수십 마리가 늘 갇혀서 웅성거린다. 글을 써야 할 때나, 쓰고자 할 때 이것을 열고 그중 적당한 것을 잡아내서 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자주 글 유충실을 방문하여 조금씩 먹이를 준다. 메모한 것에 약간 살을 붙이며 내용을 덧붙인다. 평소에 사육하는 방의 애벌레를 놔두고 급작하게 쓰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 환생 강도와 성장 속도가 애벌레를 능가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정해둔 순서를 넘어 먼저 글 세상에 출현하는 행운을 누린다. 마침 무언가 좋은 것을 떠올려 궁글리고 있을 때 오비이락처럼 원고 청탁이 오면 그게 바로 간택의 영광을 누려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수필미학>, 2017년 겨울호, 157-165면)
ㆍ바다는 물로 된 바람이다. 멈추어 있는 것들을 충동질하는 바람, 세상 모든 움직임 뒤에 바람이 있다. 바람은 신이다, 폭군이다. 근원을 흩트리는 음험한 動因이다. 자유의 다른 이을미다. 머물고 싶은 데 머물지 못하고 닿고 싶은 데 닿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바람 또한 자유의 표상이 아니다. <바람은 자유혹인가. 최민자>
우리네는 전통적으로 차를 마시는 민족이 아니다. 맑은 차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우리를 서양 세계에 처음 소개하였던 하멜이 신기하게 보았던 음료는 숭늉이었다. 우리는 숭늉을 식사 후에 마셔왔다. 숭늉이란 가마솥에 나무를 때 밥하고 난 뒤에 솥바닥에 눌어붙은, 약간 타거나 누렇게 달라붙어 밥보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 누룽지다. 이것을 주걱으로 긁어서 아주 견고한 것은 떼어내어 간식용으로 남겨두고, 그래도 바닥에 필사적으로 눌어붙어 솥과의 찰떡궁합을 과시하여 아낙네의 미움을 사는 녀석들은 뜨거운 물맛으로 달래어 떼어낸다. 이 숭늉은 구수하다. 구수함이 숭늉 맛의 본질이다. 이 구수한 것이 커피의 구수한 맛과 통하는 것은 아닐까? 구수한 숭늉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전통적 입맛(?)이 고소한 커피의 서양적 향미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 빈대떡의 입맛이 피자에 빠져들듯이 그렇게.
모양과 색이 예뻐 사람들이 좋아하고 향기가 그윽해서 사랑하는 꽃들은 대부분 그 외양은 꽃에 비해 볼품이 없어 보인다. 꽃들만 그렇지 않다. 과일 나무도 이와 유사하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들도 역시 그 모양새로는 젬병이다. 그들은 초록 빛 잔디밭과 어우러져 고대광실 정원수가 될 수 없다. 산비탈이나 너른 밭 가운데 터 잡고 그들만의 고옥한 삶을 가꾸어 간다. 보아주는 이가 없다보니 여로에 지친 나그네나 눈길 한번 줄 뿐, 권태로운 개들마저 그들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오로지 고독한 도인처럼 자신들의 사명에 충실할 뿐이다.
꽃은 예쁘게 피우려고 온힘을 쏟다보니 모양을 가꿀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건가. 과일 나무도 달고 맛있는 열매를 만드느라 바빠서 줄기의 모양새를 건사할 수 없을지 누가 아는가. 혹여나 꽃이 딴 생각을 품고 외모를 단장하기 나서면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주지 못할 것을 아는 게 분명하다. 과일 나무가 과실에 열성을 쫒지 않으면 화목으로 베질 것을 빨리 눈치 챈 것도 확실하다. 아니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꽃은 애초에 그런 마음 없이 그것만으로 만족한 화초생(花草生)을 기약하는 건 아닐까. 과일나무라고 다르겠는가. 이 땅에 과일나무로 살아가는 것에 충심을 다하기로 선서하고 태어났기에 언제나 서있어도 피로한 줄 모르는 게 아닐까.
관상수는 외모가 예쁜 거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니 열매에 관심이 적다. 후손을 잇기에만 겨우 신경을 쓰는 정도로 만족하는 건 아닌지. 과수는 튼실하고 알찬 과일만으로도 자신의 값을 지키기에 외양은 무심하게 내버려두겠지. 허우대가 멀끔하거나 외모만 반짝이는 사람들은 내면의 열매 가꾸기에 소홀해 보인다. 겉을 치장하고 광을 내는데도 그들은 시간이 부족하고 힘이 달리기도 할 것이다. 그것도 그리 만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성형과 미용 산업이 날로 번창하는 것만 보아도 이점은 확연하게 보인다. 그들에게도 갈 길 역시 따로 있는 셈인가 보다. 과일나무보다 관상수가 더 고가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외피와 내질은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가. 양면을 둘 다 갖추는 게 식물이나 사람에겐 애당초 신이 허용하지 않았는가 보다. 오랜 경험으로 선조들은 이미 이걸 알아챘기에 미인박명이란 말을 만들었으리라. 내외를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보지 말고 쓸모가 각각 다르고 보면 어떨까. 네가 할 일이 있듯 내가 할 일도 따로 있다고 보는 게 더욱 온건한 건 아닐까.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고 그만큼 그 가치도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62-66면)
ㆍ희망이라는 것들은 죄다 하늘로 올라가서 이제는 따오지도 못할 별이 되고 말았다는 아버지 푸념 소리가 골목 어딘가에 남아 있다.
ㆍ독자는 인물 묘사를 정확하게 하는 세부 묘사에 주의하며 읽기 좋아한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현실감을 유지하여 자가와 독자의 원활한 소통을 넘어 공감의 폭을 넓히는 긍정 결과를 낳는다.
ㆍ땀으로 찐득거리던 살갗이 벌써 서늘한 기운을 느껴 보송보송해졌다. 이산화탄소를 주식으로 먹거 산소를 내뱉은 숲에 사는 식물 덕택이다. 숨구멍을 한껏 열고 숨쉬기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ㆍ비유- 우린 어렸을 때는 사탕 몇 알, 공책 두어 권 살 돈이면 입이 벌어졌는데 요즘은 원하는 물건의 단위가 높다. 아이패드 스마트폰, 노트북, 게임기 등 가난한 할미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나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좀 사치스러우면 어떠랴. 손자들이 원하는 것, 제 부모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해주지 않는 것들을 선물하고 싶다.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인기짱 할머니가 되고 싶다<할머니의 흔적 남기기. 홍경희>
ㆍ수다를 뒤집어 읽으니 다수가 된다. 다수가 모여 이야기를 한다? 하다 동사가 아닌 떨다는 서로의 감정과 기분을 마음껏 떨어내는 정화 작업이다.
ㆍ수필 리듬은 혼자 존재하지 않고 제재와 내용과 문장 구조와 어울려야 한다.
<어진 임금이고 싶다. 강철수)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어디 가서 그런 뿌듯함을 구하랴. 그것은 백성을 위하는 임금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일 터. 그들을 위해 더울 바삐 움직여야 한다. 여는 때는 키 작은 매화나무가 볕을 잘 받게 키 큰 모과나무 가지를 한쪽으로 붙들어 매야 하고, 같은 터전에 사는 장미와 철쭉은 꽃피는 시기에 맞춰 품앗이로 볕을 양보하게 해야 한다.
바른 정치를 하려면 국민의 사정을 알아야 하듯, ‘정원왕국’을 다스림에도 신민들 각자의 특징과 성질을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밀어 붙임은 낭패를 볼 수 있다.
정원의 기품을 높여주는 소나무의 성질도 알아 두어야 한다. 저들은 홀대 받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싱싱함을 거두어들여 다닥다닥 솔방울 매다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내게 삿대질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별을 욕심내지 않고 거름도 사양하며 물도 어쩌다가 마시는 고매한 선비 같은 나무라 그에 맞게 대접해주어야 한다. 자기들 각자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한데 모아 ‘정원 왕국’의 멋스러움으로 조호를 일구어 임금인 나를 즐겁게 한다. 그 멋스러움이 가장 돋보일 때는 왕국의 축제 기간이다. 사월 하순부터 오월 중순까지 잔디들이 연초록 잔디를 깔아 잔치 준비를 시작하면 야생화 싹들이 연보라 물감을 칠한 붓끝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고, 겨우네 알몸이던 나무들이 가지마다 풋대추만한 잎눈으로 치장을 한다. 나도 있다는 듯 홍자색 박태기 꽃이 촘촘히 떼를 지어 피어난다.
시와 다른 수필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서정성을 대조적으로 알아보자. 첫째, 수필의 서정성은 연속된 서정이다. 시의 서정이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서정이라면, 수필의 서정은 기-서-결을 갖춘 서정이다. 또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서정이 시에서 보는 서정이라면, 수필의 서정은 지속적이고 장편적인 서정이다. 시의 서정이 집약적인 서정이며 수필의 서정은 확산적이라 하겠다.
둘째, 수필의 서정성은 설명적이다. 시의 서정이 제시적이고 이미지적 서정이라면 시는 서술적이고 설득적인 서정이다. 수필의 서정은 이미지로 드러낼 수 없고 스토리를 동반한 체험적 사실적 시공간에서 드러나는 서정이다. 시의 서정은 상상을 넘어선 허구적 시공간의 가공적 서정인데 반해, 수필의 서정은 작가의 체험적 실체를 드러낸 서정이므로 시의 서정정보다 직접적인 서정이다. 시는 추상적 서정성일 수 있다면 수필은 구상적 서정성일 수 있다는 말이다.
셋째, 시의 서정은 율동적인 서정인 반면에, 수필의 서정은 서술된 서정이다. 이는 시의 서정이 입체적이라면 수필의 서정은 평면적이라 말해도 좋다. 이건 가공을 통한 허구의 사실에서 유발한 상상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때문에 수필의 서정은 상상으로 추상하거나, 독자가 공감하기 위한 공력을 시에 비해 많이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하면 독자와 작가 사이 서정의 공감대가 자리하는 거리가 시에 비해 그리 멀지 않다.
이상으로 수필의 서정성을 시와 비교하고 대조하여 알아보았다. 여기서 서정을 시와 견주어 살펴서 공통성과 차별성을 살폈지만, 이들은 상당히 유사하여 서로 넘나든다. 엄밀히 말하자면 동일한 서정이나, 시와 수필의 장르적 특성에 따라 외적으로 드러난 양상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일한 감정도 시로 표현할 때와 수필로 서술할 때는 장르의 특성에 따라서 변질되고 변형되어 조정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는 시인과 수필가의 작품에 드러나기 이전 원질의 감정을 알 수 없고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별로 형상화된 서정을 대상으로 논의하는 셈이라서 드러나기 앞선 감정의 원석은 가공한 이후의 감정 보석만으로 추정하는 데도 일정 부분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명심할 것은 수필에서도 서정성은 시에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적 장르 요소란 점이다. 따라서 수필에서도 서정성을 표현하고 감상하며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요긴하다 하겠다. 다음 예문을 보면서 더욱 이해를 북돋기로 하자.
예문 1
고향집 뒤란, 작은 단지 큰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고추장 단지, 새우젓 독, 된장항아리……납작한 단지, 길쭉한 독, 펑퍼짐한 항아리, 입술이 도톰한 단지, 코가 비뚤어진 독, 귀가 찌그러진 항아리, 이마가 반짝이는, 목덜미가 붉은, 허리가 굵은 독, 항아리들이 간장 고추장 된장을 가슴에 담고 가부좌를 튼 채 참선에 들었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서리가 오고 눈이 내려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뻐꾸기 독경소리, 딱따구리 목탁소리, 매미들의 범패, 달님도 별님도 지켜봅니다 바람도 숨을 죽입니다
저 보살들 다 성불하시면 참 맛난 세상이 되겠지요
(임문혁, <아주 오래된 사원> 전문, 《귀·눈·입·코》, 시와 소금, 2016, 34면.)
이 시는 고향집 장독대를 제재로 한 서정시다. 장독대의 항아리들을 서정의 대상으로 삼아서 시인의 감정을 펼친다. 첫째 전 4연의 모든 서정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서로 단편적으로 분리된다. 제1연은 풍경으로서의 서정, 개괄적인 서정을 펼친다. 제2연은 항아리들의 개별화된 형태적 서정이다. 예컨대, ‘납작한, 길쭉한, 펑퍼짐한, 도톰한, 비뚤어진, 찌그러진, 반짝이는, 굵은’ 수식어에서 외형적 특징을 드러낸다. 화자가 여러 항아리들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감정은 일시적인데, 이 모든 항아리들은 ‘가부좌를 튼 채 참선에 들’은 느낌이다. 제 3연은 역시 다른 서정의 펼침이다. 자연 풍경, ‘비, 바람, 서리, 눈, 달님, 별님’ 따위와 불교적 정서, ‘독경, 목탁, 범패’ 등으로 조화시킨 감정의 제시로 순간적이고 일시적 서정이다. 이렇게 각 연별로 분리된 서정은 제 4연에서 집약된 서정 ‘참 맛난 세상’으로 마무리 된다. 제1연의 ‘단지, 항아리’들은 제 4연에 이르러 어느 사이 ‘보살들’로 변전하여 ‘성불’을 고대하길 기원하는 ‘아주 오래된 사원(제목)’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한다.
둘째 이 시의 서정은 가공적이고 허구적이다. 단지와 항아리를 보살로 보거나, 가부좌 틀고 참선하여 성불한다는 설정은 허구이고 가공적 상태이다. 사물인 단지를 보살로 본다는 자체가 현실 세계에선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상상이 빚어낸 허구이다. 이 허구에서 빚어진 서정은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시인이 만든 이미지를 제시할 뿐이다. 독자가 이를 공감하든지 수용하는 것과는 사실 관련이 없다. 그렇다 보니 구상적이라기보다 추상적 서정일 뿐이다. 왜 항아리가 보살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이미지를 던져놓고 제시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이것이 시의 서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셋째 이 시의 서정은 율동적이고 입체적이다. 율동성을 위해 여러 개의 쉼표를 사용하고, ‘~습니다, 요’의 경어체를 선택한다. 제 1연은 서술어나 종결어미도 없다. 명사 ‘고향집, 뒤란, 단지, 항아리들, 장독대’와 형용사와 부사 ‘작은, 큰, 옹기종기, 모여 있는’으로만 사용하여 율동성을 배가한다. 이밖에도 동일한 음운 쌍, ‘~는, ~은, ~고, ~도, ~다’를 의도적으로 율동에 맞게 배치한다. 평지의 장독대 항아리를 천체의 별과 달, 사계의 변화와 연결하고, 인간의 불교 신앙과 연계하여 시공간으로 펼쳐 입체화한다.
예문 2
이삿짐을 풀고, 정자동 재래시장에서 춤이 두 자가량 되는 단지 다섯 개를 사왔다. 갖가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던 장무새를 단지에 한 가지씩 옮겨 담았다. 이들도 우리처럼 산뜻한 새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환호했다.
숨 막히는 통에서 빠져나온 장무새는 사람의 옷이 날개이듯이 매초롬한 단지에 담기는 순간부터 때깔이 달라졌다. 뒤태도 앞태도 그만이다. 볼수록 옹골지다. 마른 수건으로 자꾸 닦는다. 그리고 다섯 개 단지에게 이름표를 붙인다. 우리 집 맛깔의 대표 주자인 간장 단지에는 ‘맛순이’, 오래된 친구 같은 묵은 된장 단지에는 ‘죽마고우’, 풋풋한 새색시 같은 햇된장 단지에는 ‘새댁’, 품격 높은 고추장 단지에는 ‘홍장미’, 그리고 봄의 향기를 사철 담아내는 매실 효소액 단지에는 ‘매향이’라고. 단지들은 이름을 지어주니 싱싱한 생기가 돌아 살갑게 다가온다.
다용도실 장독대 자리는 우리 집에서 정동향이다. 그래서 장독들은 일출과 월출 시에 가장 먼저 해와 달을 맞이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이 친구들에 끼어서 일출과 월출을 맞는 느꺼움을 맛보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횟수가 잦아진다. 동탄 쪽 산 위에 붉게 솟은 햇덩이를 통째로 품은 불룩한 단지를 보면, 새날의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푼다. 저녁에는 달빛을 흡입하여 윤기 자르르한 단지들은 신비함까지 배어나며, 끝없는 생각의 바다로 이끈다. 단지들은 이렇게 묵은지 같은 친구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네 딸들의 입시와 취업시험이 계속될 때였다. 마음이 볶음 냄비에 기름 닳듯 자글거릴 때면 장독대로 나가 조용히 마음 문을 열었다. 큰딸과 둘째 딸의 혼삿날을 받아놓고 질정 없는 마음을 달래주던 곳도 이 장독대였다. 어디 그뿐인가? 남편과 찌그락짜그락 복닥거린 후에도 이곳에서 위로를 받곤 했다. 그래서 이들 앞에 서면 너울 같던 마음의 파도가 영랑호 수면처럼 잔잔해진다. (김덕임, <장독대> 일부, 《심껏 살다 보면 좋은 끝이 올 겨》, 생각나눔, 2015, 93-94면.) 이 수필은 앞의 예시처럼 장독대를 제재로 한다. 이 글이 시와 어떻게 다른 서정성을 펼치는지 보기로 하자. 첫째 시와 달리 연속적이고 기-서-결로 연결되어 확산하는 장편 서정이다. 첫 문단에서 이사하며 단지를 사와 장독대를 마련한다. 둘째 문단에서 이 단지에 간장, 된장 고추장 들을 옮겨 담는다. 셋째 문단에서 자리 잡은 단지와 작가는 서로 존재의 일체감을 형성한다. 넷째 문단은 복잡한 가정사를 이들이 위로한다. 앞의 시(예문 1)에서 화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장독대의 서정만 드러낼 뿐이다. 이와 달리 이 수필에는 화자 즉 작가가 등장하여 장독대에 대해 어떤 감정을 지니는지를 기-서-결의 스토리로 연속시켜 긴 시간의 서정을 보인다. 장독대는 어느 사이 화자와 일체가 되어 감정을 교류하는 존재로 변전한다.
둘째 이 수필이 보여주는 서정은 설명적이고 설득적이며 직접적이고 구상적이다. 시와 달리 장독대의 단지에 대한 감정을 이미지로 제시하지 않고 설명하고 독자를 설득한다. 어떤 때 왜, 장독대와 일체감을 갖게 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장독대로 향한 감정의 정체를 낱낱이 설명하여 구상적으로 드러낸다. 집의 정동향 자리에서 일출과 월출을 먼저 맛본다거나, 생각의 바다로 이끌어 존재감을 과시하며 화자에게 새날의 기대감으로 가슴을 부풀게 한다고 말한다. 종국에는 가정사의 위기나 곤란에 화자의 심란함을 달래주고 위로해준다며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독자에게 작가의 감정을 설득한다. 시와 전혀 다른 서정성의 표현과 전달 방식이다.
셋째 이 수필이 표현하는 서정성은 서술적이고 평면적이다. 설명 방식의 서술이 그러하고 해와 달이 등장해도 화자의 감정을 연결하여 입체화를 시도하는 대신 평면적으로 맞이하는 ‘느꺼움’을 맛볼 뿐이다. 이러한 서정은 구체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사실적 서정이기에 허구적 서정인 시와 달리 입체성으로 가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수필의 서정은 독자가 별도의 상상을 펼치려고 애쓰지 않아도 수월하게 공감의 자리로 불러들인다. 그만큼 독자와 작가의 거리는 가깝고 친근감이 더 깊어진다고 보겠다.
앞에서 시와 수필의 서정을 비교하여 대조적으로 살펴보았다. 시와 수필 모두 ‘장독대’를 주요 제재로 각기 다른 장르의 문학을 생산하였는데, 서정성의 질에서 편차가 있고 재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렇다 해서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는 스토리가 없는 정적인 서정이라면, 수필은 이야기가 따른 동적인 서정인데 둘 다 사물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서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정물화라면 다른 하나는 영상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또한 시는 정의적(定義的)이고 관찰적 서정인데 반해, 수필은 체험적이고 현실적 서정이다. 말하자면 시에서의 ‘장독대’는 관찰하여 그 의미가 어떠하다고 명명하는 서정이라면, 수필에서의 ‘장독대’는 작가가 현실에서 체험하면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서정인 점에서 차이난다. 하지만 시인의 관찰과 정의 역시 수필에서도 사용한 방식이고, 수필가의 현실 체험 역시 시인에게도 해당하는 숨겨진 과정이다. 시인이 그려내는 ‘장독대’의 서정이 순전히 허구적 상상으로만 펼쳐질 수 없다. 어느 시절 시인은 고향집 뒤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지와 항아리들을 관찰하거나 만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고향집과 유사한 어느 곳에서 비슷한 장면을 체험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기억 속에 잠겨 있다 어느 순간에 시로 형상화 되면서 서정으로 재현했을 터이다. 구현된 서정의 양상은 시와 수필의 장르적 특성으로 구별이 되나 저류하던 서정의 원형질은 둘 다 상통하는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둘의 서정성은 소통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