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52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질문 : 좌선을 하는 중에 몸이 따끔거립니다. 그런데 따끔거리는 현상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답변 :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신경 쓰지 말고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려라.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만 알아차려라. 수행을 할 때 그런 현상이 생긴다.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대상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려야 한다.
둘째, 아주 정중하고 공손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셋째, 알아차림이 항상 연결되어야 한다. 갈 때 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올 때 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속 확립해야 한다.
넷째, 말을 할 때 계정혜가 생길 수 있는 말만 하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만해야 한다. 자기가 수행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스승과 도반, 기후, 환경, 음식, 말, 행주좌와를 적절하게 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수행이 잘 안될 때는 사기가 저하되거나 화를 낼 수 있다. 이럴 때는 수행이 잘 되었을 때의 상태를 기억하여 새롭게 힘과 용기를 내야 한다.
여섯째,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의 균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요인은 알아차림의 확립이 필요하다. 알아차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두 번째 요인은 법에 대한 탐구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세 번째 요인은 노력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네 번째 요인은 희열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이상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세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섯 번째 요인은 고요함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여섯 번째 요인은 집중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요인은 평등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이 필요하다.
이상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세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수행을 할 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희열의 증장은 집중을 통하여 오고 평등은 알아차림으로 얻을 수 있다. 알아차림만이 평등심을 가져올 수 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가 넘치면 혼침이 오고,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가 온다. 그래서 이때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일곱째,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아라한 행세를 하던 분이 있었다. 이 분이 길 위에서 부처님을 뵙고 법을 청했다. 이때 부처님께서 지금은 탁발을 하는 중이니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법을 듣기 위해 먼 길을 왔다고 완강하게 버티니 부처님께서 길에서 짧게 법을 설하셨다.
“무엇이나 보이면 보이는 것을 알아차려라. 무슨 소리나 들릴 때는 들리는 것을 알아차려라. 무슨 냄새가 나거나 냄새를 알아차려라. 무엇을 먹거나 먹는 것을 알아차려라. 무엇이 닿든지 닿는 것을 알아차려라. 무슨 생각을 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려라.” 이 법문을 들은 수행자는 아라한이 되었다.
여덟째,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괴로운 느낌을 자기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괴로운 느낌은 내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이 괴로운 느낌을 이기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부싯돌로 불을 켜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 조금 쉬었다가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과 같다. 한 번 시작해서 뜨거워지면 쉬지 말고 계속해야 불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쉬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수행은 번뇌가 생겼다고 해서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하자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망상은 생기는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쉬었다 하겠다는 마음자세로 하면 안 된다. 수행에 내일은 없다.
한 가지 비유를 하면 코끼리를 말뚝에 묵었을 때 코끼리의 코로 발로 몸으로 그 말뚝을 부수고 벗어나려고 하듯이 그런 노력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 힘이 센 코끼리가 말뚝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코끼리는 노력이고, 말뚝은 번뇌에 해당된다. 이 코끼리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벗어나려고 해야지 쉽게 대강대상 수행을 해서는 도를 이룰 수 없다. 부처님께서 대강대강 적은 노력으로는 절대 도에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매우 굳건한 결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도에 이를 수 없다. 어떤 번뇌나 어떤 느낌도 내가 이기겠다는 결심만 하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홉째, 도과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쉬지 않겠다는 확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부단한 노력으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 의를 알아차리고 마음에서 생긴 것을 다 알아차리면 번뇌가 일어날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번뇌가 생기지 않는 길은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번뇌가 생기지 않으려면 다섯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다. 이렇게 다섯 가지가 골고루 균형이 잡히면 도과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수행을 할 때 이상의 다섯 가지 근기가 약하면 수다원에 이른다. 다섯 가지 근기와 균형에 따라 도과의 지위가 달라진다. 이상의 다섯 가지 근기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룰 때 오근이 오력이 되어 아라한이 된다.
이상 아홉 가지 근기를 확립하면 번뇌가 생기지 않고 이러한 번뇌가 없어야 도과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을 잘 알아차리면 다음에 한 가지 감각기관인 의에 대한 근기가 생겨 다섯 가지인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의 힘이 향상된다.
아홉 가지 근기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홉 가지 근기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 의를 잘 알아차려서 다섯 가지 근기인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모든 것이 괴로움이다. 모든 것이 즐거움이 아니고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아홉 가지 근기가 좋아진다. 그래야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가 완벽해진다. 이것을 알아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아야 도과에 이른다. 이상 다섯 가지의 경중에 따라 도과의 종류가 다르다.
< 참고 >
수행자의 몸이 따끔거리는 것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 중에서 네 번째인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에 이른 것입니다. 이때 마음이 환희심이 생겨 몸과 마음에 다섯 가지 종류의 희열현상이 생깁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도로 제어할 수 없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계속됩니다. 수행을 하는 중에 휙 하고 고개가 돌아가거나, 팔이나 다리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들썩거려 놀라기도 합니다. 때로는 감전이 된 것처럼 몸이 찌릿하면서 머리가 쭈뼛 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풍에 걸린 것처럼 얼굴이 실룩 거리면서 떨리기도 합니다. 또 개미에 물린 것처럼 따끔거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주석서에 의하면 실제로 순간 이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형태의 희열은 수행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단계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길 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반드시 스승께 보고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보고의 대상이 아닌 줄 알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고해서 적절한 지도를 받아야 이 단계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희열을 좋아해서도 안 됩니다. 희열의 단계에서 머물면 수행이 퇴보합니다. 그리고 이런 단계가 깨달음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수행자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멉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이 단계가 깨달음인줄 알고 자기만족에 빠져 수행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결코 혼자서 갈 수 없는 알 수 없는 길이고 위험한 길입니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 중에서 첫째인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인과 둘째인 법에 대한 탐구의 깨달음의 요인과 셋째인 노력의 깨달음의 요인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본구성에 속합니다. 세 가지의 기본적인 구도가 갖추어져서 수행을 하면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희열이 생겼을 때 수행의 기초현상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희열로 시작된 단계에서 다음에 고요함, 집중, 평등의 깨달음의 요인의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상의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러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이 성숙되었을 때 비로소 본격적 도의 과의 이르는 단계적 과정이 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인은 단지 깨달음에 이른 과정이지 이것 자체가 깨달음은 아닙니다.
네 번째 단계인 희열의 깨달음의 요인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느냐에 따라 이 단계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않고 수행을 게을리 하면 이 단계에 오래 머물거나 수행이 퇴보합니다. 수행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서 항상 그 단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정체현상은 수행의 퇴보를 의미합니다. 수행의 상태는 자격증이나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순간순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경험한다고 해서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갈고 닦는 연마가 필요합니다.
수행을 하면서 무사히 희열의 단계를 거쳐 더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서 희열의 단계를 졸업한 것이 아입니다. 수행은 졸업이 없습니다. 마음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므로 내가 소유하거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경험했다고 해서 이것이 영원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행에서 얻는 지혜도 단지 순간의 경험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최고의 단계에 이르러 완전한 지혜가 나기 전까지는 모두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지혜도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조금씩 더 발전합니다.
희열의 단계를 거쳐 고요함과 집중과 평등의 어느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서 다시 희열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단계에 올랐다가도 한순간에 낮은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상근기가 따로 있고 하근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에 상근기가 하근기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습관적으로 살아온 정신세계와 새로 경험하는 정신적세계의 간극의 차이 입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존재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입니다. 습관으로 떨어지기는 쉬워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어려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서 많이 알아차리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막고 품은 우직하고 단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 균형입니다. 균형을 이루려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욕망이며 싫어하는 것은 성냄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만이 대상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납니다. 수행의 최종적 목표는 사물의 궁극의 이치를 알아 집착을 끊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도며 계정혜며 팔정도며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만 사천 법문을 하나로 줄이면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비로소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균형입니다. 이때 좋은 것이라서 해서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모든 것을 이끄는 알아차림 하나만 아무리 많아도 부족합니다. 이것 자체가 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 노력, 집중, 지혜도 지나치거나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균형의 절묘한 실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