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게 맑은날! 우리 가족은 익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보석박물관'이었습니다. 익산보석박물관은 보석에 대한 상징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총 부지면적 141,990㎡ 규모의 왕궁보석테마관광지 내에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02년 5월에 완공 개관하였습니다.
기획전시실과 카페테리아, 2층 상설전시실에는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전시하고 있으며, 연면적 932㎡ 규모의 화석전시관은 화석 및 공룡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귀금속보석 전시판매장인 ‘주얼팰리스’를 개관하여 우수판매업체가 입점하여 세련된 액세서리부터 고급 주얼리까지 숙련된 장인들이 빚어낸 보석제품의 모든 것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다양한 보석과 광물의 채굴과 씌임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편, 전시장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보석이라는 광물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에 관해 생각해봅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소개되었듯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은 광산의 이권을 둘러싼 내전으로 인해 10년간 20만명 이상 사망, 25만 여성의 유린, 7천명의 소년병, 4천명의 4지절단, 그리고 인구 1/3인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되었고 기타 아프리카국가에서 반인류, 반인권적 행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보석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서로 연대하는 마음입니다.
두번째 행선지는 '보석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함벽정'입니다. 함벽정은 1920년에 왕궁 저수지의 둑이 완성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송병우가 세운 누각입니다.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정자로서는 규모가 큰 것에 속합니다. 정자 주변의 연못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흰색 연꽃을 갖다 심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지극히 아쉬운 것은 방치수준으로 전혀 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덜렁 거리는 문짝들과 찟겨진 창호, 지저분한 화장실, 잡초만 무성한 한벽정은 1986년에 시도유형문화재 127호 지정되었다 합니다. 문화재 관리에 소홀히 한 익산시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진짜 보석은 주얼팰리스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세번째 행선지는 '늘푸른 수목원'입니다. 늘푸른 수목원은 왕궁면 사곡리에 소재한 꽃잔디 전문 개인농원입니다. 입소문을 내지 않았는데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경으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네번째 행선지는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왕궁리성지 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고 있는 유적입니다. 백제 무왕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가 남아 있습니다.
다섯번째 행선지는 '미륵사지'입니다. 업무차 간간히 이곳을 지나치면서 미륵사 창건과 함께 백제 중흥을 꿈꾸었지만 결국 스러지고만 백제인들의 한을 되새겨 보곤 했습니다. 미륵사는 백제 부흥의 전초기지로 삼국사기에는 무왕과 그의 아내인 신라의 선화공주가 큰 연못에서 현신한 미륵부처를 하룻밤만에 못이 있던 자리에 흙을 메워 그 터를 닦아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륵사는 백제의 야심찬 미래계획이었습니다. 장수왕 때부터 고구려에 밀려 공주와 부여로 밀려 내려와 다시 신라에 밀리기 시작해 멸망이 눈 앞에 온듯한 불안감 속에 고구려보다 신라를 먼저 쳐내 고구려와 대등히 맞서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백제 기술과 자본 등, 국력을 총 동원하여 쏟아부어 지은 절이 바로 미륵사입니다.
물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삼국사기에 전해 내려오는 서동요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희화된 승자의 역사왜곡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미륵사지석탑 복원과정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됨에 따라 이 모든 설화는 허구였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실제 신라인 선화공주는 백제 좌평 사택가문의 딸이었습니다.
여섯번째 행선지는 익산 망성면에 위치한 '나바위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조선 현종 11년(1845)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06년에 설계하여 1907년에 건립하였습니다. 요셉 베르모레르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하고 시공에는 청국인 기술자가 동원다고 합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입니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습니다.
100년, 머나먼 이국땅에 묻힌 프랑스 신부! 본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행선지는 전주에서 최고로 오래된 '전주 풍년제과'입니다. 1951년에 문을 열어 3대째 60년 동안 가업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빵맛을 본적은 없지만 하도 유명하다 해서 마음 먹고 들렸습니다. 빵을 사려고 줄을 늘어선 진풍경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집 빵맛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엣도 수제 초코파이가 으뜸이라고 합니다.
빵을 사가지고 나와서 시간도 늦고해서 전주의 특별식 '전주비빔밥'으로 맛있는 저녁을 챙겨 먹었습니다.